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은 너너테레사 국제공항이다. 마더테레사의 이름을 따서 그리
붙인 것인데 이웃한 마케도니아 출신이기도 하지만 알바니아계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알바니아에서는
하나뿐인 국제공항의 이름을 너너테레사 국제공항으로 지었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시 수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은 보았다. 스코틀랜드식 치마를 입은 한무리의 남자들을
보았는데 상의 가슴에는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축구 경기가 있냐고 물어보니 알바니아와
스코틀랜드간에 A매치 경기가 알바니아 북부 슈코더르에서 열린다고 한다. 친선 경기냐고 물어보니 유럽
네이션스리그 게임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스코틀랜드도 축구를 못하나 보다. 알바니아와 같은 조인걸 보니...
(참고로 유럽네이션스 리그는 등급별로 같은 조에서 게임을 한다.)
아주아주 친절한 알바니아 입국심사관(물론 젊은 여성분)의 입국 심사와 인사를 받고는 짐을 찾았다. 이제 밖에
나가면 나를 시내 여행사 사무실까지 데려다 줄 기사아저씨가 나와 있을 것이다. Besnik Hysa 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공항이라 눈깜짝할 사이에 내이름이 적힌 보드를 들고 있는 기사 아저씨와
만났다. 아주 좋은 인상의 아저씨다.
약간의 환전후 Besnik 아저씨와 같이 공항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아주 상큼했다. 적당한 햇볕과 기온, 그리고
아열대 기후의 나무들... 그런데 차를 보니 무려 18인승 벤츠 차량이다. Oh My GOD!!!
나 한명을 위해 이번에 만나기로 한 여행사의 사장이 보낸 차량이 18인승이다. 이거 너무 미안한데... 게다가 이번
출장에서 뭐라도 얻어가던지, 아니면 주고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든다.
이제부터 혼자 이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공항 도착 시각이 아침 7시 45분인데 시내 사무실에서 약속은
오전 10시다. 입국심사와 짐찾는 시간도 너무 짧았지만 생각보다 시내로 가는 길도 안막혔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은 온통 멀리보이는 산과 들판뿐이다. 아주 조용하다. Edmond라는 이름의 가이드는 시내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기사 아저씨가 보디랭기지로 알려준다. 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고 한다. 어이쿠!!
처음부터 기사 아저씨 팁 주는 것도 걱정이다. 공항에서 알바니아 돈으로 환전도 많이 못했는데...
그냥 부딪쳐 봐야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 현지언어로 Republika e Shqiperise)은 유럽의 남동부 발칸 반도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하며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를 바다로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와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28,748 sq km 로 경상북도와 전라북도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 인구는 3,057,000명(2018년 7월 기준)이고 수도는 티라나로 공식인구는 476,000명(2018년 기준)
이라고 하며 수도 이외의 근교 지역까지 합치면 80만명이상이고 한다.
알바니아계가 82.6%로 대다수의 민족을 차지하고 언어 또한 알바니아어가 공식언어이고 98.8%를 차지한다고
한다. 종교의 경우 이슬람 56.7%, 로마카톨릭 10%, 알바니아정교 6.8% 로 나뉘어져 있으나 타종교에 대하여
거부감이 거의 없다고 한다. 통화는 레크화(Leke)를 사용하며 1레크가 우리돈 10원정도이다. 돈계산하기는
아주 편한 편이다. 1인당 GDP는 4,275달러(2017년)이다.
알바니아는 1912년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1939년에 이탈리아에 의해 정복되었고 1943년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다. 공산당원들이 1944년에 알바니아를 점령하였다. 먼저 구 소련과 동맹을 맺었고 그 후
1978년까지는 중국(중공)과 동맹을 맺었다. 1990년대 초 알바니아는 46년간의 외국인 혐오 공산주의 통치를
끝내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잇따른 정부들이 높은 실업률, 광범위한 부패, 황폐화된 사회 기반 시설,
강력한 조직 범죄 네트워크 그리고 투쟁적인 정적들을 다루려고 노력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알바니아는 1991년 처음으로 다당제 선거를 치른 이후 민주발전에 진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결함이 남아 있다.
공산주의 이후 선거의 대부분은 선거사기 주장으로 망쳐졌지만 1997년 피라미드 계획(다단계 피라미드 사건)
의 붕괴 이후 정치적 안정이 회복된 이후 국제적인 관측통들은 선거가 대체로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판단했다.
알바니아는 2009년 4월에 나토에 가입했고 2014년 6월에 EU 가입 후보가 되었다. 알바니아는 2017년 4월
유럽연합 가입협상을 열자는 유럽위원회의 권고를 받았다. 알바니아의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성장률은 다소 둔화되었고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대규모의 비공식 경제와 취약한
에너지 및 교통 기반 시설은 여전히 장애물로 남아 있다.
예상보다 일찍 티라나 시내의 A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약속이었는데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너무 이르긴 했지만 어디 가 있을 곳도 없고 해서 그냥 A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번 출장에 도움을
준 E. M 사장이 이회사의 Ceo 다. 우리로 치면 출근시간(9시) 조금 넘어서라서 다소 미안한 감이 있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이메일을 주고 받던 여직원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2층으로 올라가니 사무실이 두세개
보인다. 3층으로 올라가니 또 사무실이 있고 넓직한 회의실이 있다. 여자 직원 A와 또 한명의 남자 직원이 먼저
회의실로 안내를 해준다.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직 E. M 사장은 없나 보다. 두 명 다 자기 명함을
안주고 E. M 사장 명함을 대신 준다. 패키지 시장과 개별여행 시장 그리고 인센티브 시장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로 준비해간 한국의 패키지상품 이익 구조 등에 관한 자료를 주니 선뜻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다.
이윽고 10시가 조금 못되어서 E. M 사장이 나타났다. 지난번 3월 한국 행사때도 얼굴을 보았고 사진으로 많이
봐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다. 누구 말처럼 부산에 사는 로버트 할리(하일)씨를 닮은 듯도 하다. E. M 사장이 오자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였다. 역시 결정권자랑 이야기를 하여야 시원시원하게 일이 끝나나 보다. 다시 한국
패키지 상품의 이익구조 및 시장 상황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한국의 (단체)기준 요금 등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E. M 사장이 오기 전에 A 사의 주요 고객에 관하여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독일이라고 했다. 요금을 물어보니
대략 어느 선이라고 알려준다. 독일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등지에 알바니아 티라나와 기타 도시 등으로 직항편이
있고 단체 프로그램은 역시 알바니아만 가는 프로그램보다는 2~4개국 정도 가는 프로그램이 대세라고 한다.
중요한 비즈니스 거리는 온라인부킹시스템이었다. 지불 관련해서 나에게 물어보는데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행사후 15일이나 30일후에 결제를 한다고 말해줬더니 수긍하는 눈치다. 내가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인 K사와
M사의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하니 1년에 얼마난 손님을 보내냐고 묻는다. 그래서 조금 부풀려서 답해주었다.
이정도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 기타 인센티브 프로그램과 드라이빙 가이드 프로그램도 꾸준히
의뢰하겠다고 했다. 이 E. M 사장은 내가 아는 동유럽의 한국인 여행사 사장들과도 많이 아는 눈치다.
이지역에서는 발이 넓은가 보다.
E. M 사장에게 다음 방문지인 P사에 관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지난번 한국에 찾아와 주었을때
다른 여행사를 하는 지인이 한국에서의 행사(알바니아 여행사 두군데)후 컨택을 하였고 메일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에 내가 알바니아에 간다고 하니 한국의 지인이 꼭 P사 사람을 만나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잡았고 잠시 만나 보는게 좋겠다고... 실례인듯 하여 미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오전 11시에
약속을 하였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1시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지난번 P사에서 보냈던
이메일 내용을 E. M 사장에게 들이 밀었더니 천천히 살펴보다가 나를 이해해 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A사를
떠나기전 2층 사무실에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더니 E. M 사장은 대만족이다. 멀리 한국땅에서 자기 사무실까지
찾아와준 나에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사업가에게는 또 이런게 필수 일 수도...
E. M 사장이 저녁에 보자고 하길래 좋다고 했다.
E. M 사장과 헤어지고는 이번 알바니아 Inspection 에 동행해줄 가이드 Edmond를 소개 받고는 P사로 이동했다.
차가 막힐 거 같아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P사의 사무실로 Edmond 가이드와 같이 열심히 걸어갔다.
약속시간도 늦고, 화장실도 못가고, 시간도 없고 총체적 난국이다. 소변도 마렵고 정신도 좀 없고 가방도 무겁고,
이런 와중에도 가이드는 걸으면서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귀에 들어올리 만무다. 1 km 정도 거리를 걸으니 P사
사람이 나와 있다. 많이 기다린 눈치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가이드와 잠시 헤어진후 이회사의 사무실로
갔다. 이전 A사와는 대조적으로 동네 자체가 많이 낙후해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해 나를 안내한 사람이 D. X
라는 실무 책임자였는데 한국에서의 행사때 본 얼굴과 좀 달라보였는데 알고보니 수염을 안짤라서그런거란다.
D. X의 사무실에서 둘이 이야기를 하였다.
소변도 마렵고 피곤하기도 하고 인사치례만 하고 나와야지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할수록 조금씩 빠져
든다. 게다가 이친구의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는 동아시아의 여행사 일본,대만,중국,싱가폴,홍콩 이라고 한다.
일본에 직원도 있고 티라나 사무실이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있다고 한다. 여기는 인바운드(인커밍) 오퍼레이션만
보는 곳이라고 한다. 자기 컴퓨터로 몇몇 한국 및 아시아 관련 자료들도 보여준다. 그 내용은 한국 아웃바운드
통계와 신장률 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짚어 주었다. 한국의 아웃바운드 숫자가 인구대비 높은 것은
근거리를 다니는 LCC(저가 항공사)와 FIT(개별 여행)호텔 및 관광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해서라고...
유럽 관광시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고 개별 여행, 차량, 식당예약, 인센티브 투어 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고,
한국 패키지상품의 이익구조등에 관하여 오전에 만났던 A사와 똑같이 이야기를 하였고, 한국의 개별 여행 시장,
성장예상에 관한 기사도 공유하였다. 내년 1월 한국에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거의 오후1시가
되어간다. 점심을 먹자고 한다. 흔쾌히 OK라고 하고는 인근 지중해 식당(이태리식당)으로 이동했다. 생각지도
않던 점심 약속에 다소 당황했으나 호의를 거절할 수 도 없었고 내심 반가웠다.
사실 처음 만나 말도 별로 섞어보지 않은 Edmond 가이드와 먹기도 좀 그랬었는데...
생선이랑 고기랑 뭐를 좋아하냐고 묻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빵(피자스타일),엔초비,수프,파스타 그리고 생선
구이를 준비해줬다. 맥주도 이곳 알바니아 맥주를 마셨는데 그냥 보통 수준이었다. 코르차(Korça)라고 하는
알바니아 국민 맥주인데 동부에 가면 코르차 지방이 있는데 그쪽 양조장에서 나오는 맥주라고 한다. D.X는 속이
안좋다고 하며 빵과 수프만 먹었다. 이식당의 이름은 Artigiano 였는데 관광객 단체도 오는 식당이라고 한다.
알바니아에는 이태리 식당이 꽤 많고 이태리 사람들도 일하러 많이 와 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D. X와 가이드 Edmond와는 잘 아는 사이라 식사가 끝나갈 즈음 Edmond가 식당으로 왔다. 5분정도 같이 차를
마시고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D. X 와 식당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는 헤어졌다. 동양단체를 많이 핸들링해봐서
그런지 목례를 끊임없이 하며 빨리 되돌아서지를 않는다.
3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