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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주일설교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세상(사사기9:7-57)
본문: 사사기9:7-57
제목: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
오늘은 사사기9:7-57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
요즘 드라마 들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그것에 대해서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거짓말과 권모술수는 너무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잘하는 것이 무슨 재능인양
너무나 자주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그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한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두 다가 다 그렇게 합니다.
물론 그중에 한 두 사람은 바르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고통을 당할 뿐이고
오직 악을 행하는 자들만의 세상이 되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 양심이나 정직이나 상식은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것이 목적이 되어
수많은 돈을 써서 어떤 악이든지 자행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선악의 구분 없이 사람들과 손잡고
돈이면 무슨 일이든지 행하고
더 나가서는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죽이는 일이나
속이는 일이나 그 어떤 일도 행하는 일을 봅니다.
왜 이럴까요?
어떻게 그렇게 행할까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요담의 이야기
오늘 말씀은 요담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요담은 기드온의 아들입니다.
요담은 기드온의 아들인데
기드온의 첩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이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형제 70명을 죽였는데
막내아들이었던 요담은 스스로 숨어서 죽지 않았습니다.
요담은 기드온의 아들로 기드온도 알고, 아비멜렉도 알고, 또한 이스라엘의 여러 상황도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담은 악을 행하여 왕이 된
아비멜렉을 도운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 말을 들으리라”
나무들의 이야기
요담은 비유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앞에서 행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악한 행동을 비유로 말합니다.
비유로 말하는 것은 아주 쉽고
명확하게 들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숲속에서 왕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 중에 최고인 감람나무에게 가서
“너는 우리의 위에 왕이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요구에 감람나무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감람나무는 “자신을 할 일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대는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은 감람나무 다음이라고 할 수 있는
무화과나무를 찾아가 똑같이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도
감람나무와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나무들은 자신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중요하지
다른 나무를 다스리는 일
곧 그들 앞에 우쭐대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자신들이 자신의 일을 다 잘하면
다스리는 자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을 세우고 싶어서
결국에는 가시나무에게 갑니다.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는
자신들의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다른 사람을 영화롭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시나무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을 해치는 존재였고,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존재였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가서 말합니다.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그러자 가시나무는 대답합니다.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요담은 이 비유를 마치면서 그래서 세겜과 밀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가시나무와 같은 아비멜렉을 세겜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왕을 삼았다고 통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책망합니다.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너희 행동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베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자신들의 친족이 된다고
왕으로 세운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요,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세상일이 그렇습니다.
옳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위한다고 행동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죽는 길인데
자신을 망치고 전체를 망치는 일인데
좋을 줄 알고 행동합니다.
악은 악을 불러옵니다.
옳지 못한 행동은 처음은 좋게 보이지만
그 결과는 분명 좋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의 왕이 된 결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악한 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 짓는 사람들의 마음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악한 일에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배반과 거짓과 폭력과 살인입니다.
아비멜렉이 자신의 형제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악한 일 그들의 죽여 피흘린 죄는
결국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을 도와 왕이 되게 한
세겜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결과로 돌아가게 합니다.
곧 자신들의 죄는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믿지 못합니다.
기드온을 배반하고 그 아들을 죽인 아비멜렉이기에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은 산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는 악을 저지릅니다.
그러한 악은 알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알립니다.
그때 에벳이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릅니다.
악한 자들에게 속삭이는 자가 나타납니다.
선악과를 탐하는 아담에게 사탄이 나타나듯이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속삭이는 자가 나타나 속삭여 충동하고 모합니다.
그때 사용하는 것이 잔치를 베풉니다.
먹고 마시며 연회를 베풀고 그들이 섬기는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무엇이라고 쑥덕거립니까?
아비멜렉은 누구냐? 기드온의 아들이 아니냐!
그런데 세겜에 왜 기드온의 아들을 섬기냐고
이간질을 합니다.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는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자신의 같은 혈통의 사람을 섬겨야지 다른 혈통의 사람을 섬기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이간질을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세겜이 자신을 따르면
가알이 아비멜렉을 제거하겠다고 장담을 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가알의 그런 허풍을 믿고 신뢰합니다.
그러자 가알은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고 합니다.
한번 붙어 보자고 합니다.
그런 가알의 행동에 아비벨렉 보다 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가서 가알이 아비멜렉을 대적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함께 연합해서 가알을 치자고 합니다.
서로 악한 자들끼리 서로 합치고 연합해서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전쟁도 속이고 매복하고 전쟁하는 상황에서
먼저 가알이 망하고 아비멜렉은 전쟁을 핑계 삼아
성에 있는 백성들을 다 죽임입니다.
방백 스불이 아비멜렉을 도왔지만
그의 성 사람은 아비멜렉에 의해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겜 망대에 피해 있던 사람들도
다 불태워 죽이는 잔인한 일을 행합니다.
자신 뿐 아니라 따르는 모든 백성들로
그 악한일 같이 하도록 합니다.
참으로 아비멜렉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를 대적하던 자들은 다 죽여 버리는 승리를 거둡니다.
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그들을 죽이니(44절)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45절)
모든 백성들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놓고
그것들이 얹혀 있는 보루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천명이었더라(49절)
그런데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비멜렉은 승승장구하던 자신의 길이
계속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비멜렉 뿐 아니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을 줄 모르고
자신이 망할 줄 모르고
자신이 당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한 여인의 맷돌 위짝으로 두 개 골이 깨뜨려짐
아비멜렉은 데베스 가서도 그
렇게 승리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처음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성읍을 점령했지만 사람들은 견고한 망대로 도망하여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그들을 완전히 멸하기 위해
그 망대를 불사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하면 완벽하게
승리를 거둘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 여인이 망대 꼭대기에서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아비멜렉이 여인이 던진 맷돌에
죽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부끄러움을 좀 감추기 위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죽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여인의 맷돌에 죽는 것이나 자기 부하의 칼에 죽는 것이나 죽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요담의 저주가 응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아비멜렉이 그렇게 악한 일을 합니까?
어떻게 세겜 사람들은 그런 아비멜렉을 돕습니까?
또한 여러 사람들이 아비멜렉과 한 편이 되어서
어떻게 그렇게 악을 자행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기에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합니다.
그것이 형제를 죽이는 것이든 동족을 죽이는 것이든
악한 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하는 것이든
무슨 일이나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일들이 어떻게 결정되고 있습니까?
자신의 뜻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에
성도님들이 참 적게 참석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뻐서 그러겠죠!
피곤해서 그러겠죠!
요즘 같은 세상에 수요기도회를 참석할까요?
바쁘고 피곤하면 참석하지 않아도 되나요?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다는 말입니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빠지는 것이 일상이라면
그들에게 정녕 하나님 아버지가
그들의 하나님일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은 예배를 참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고도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됩니다.
하지만 찬양예배가 멀어지고
수요기도회가 멀어지고 금요기도회가 멀어지면서
무엇이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면
수요기도회 안 나오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몸을 위한 시간이거나
그 시간이 나를 원하는 것을 위한 시간이라면
그것이 아비멜렉의 행위나 뭐가 다를까요?
죄라고 하면 살인과 거짓말과 폭력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이 없이 행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선하게 보이는 어떤 행동이라도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기도했고, 구제했고, 금식했고, 십일조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 우리의 가정은
지금 우리의 직장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는 세상입니까?
하나님이 왕이 되어 그 왕의 지배하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곳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신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내가 믿고 살며 의지하며 살며
의식하면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산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인정하던 안하던 왕이요 주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지 않으면
그것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그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은 결과를
3년 만에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주인 되시는
그런 세상에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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