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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성지순례는 꼭 다니지요,
요즘은 종교인이 아니라도 일반인들에게 관광코스가 된 성지도 많습니다.
브라질 문학가 ‘파울로 코엘료’가 스페인의 카톨릭 성지인 산티아고까지 걸으면서 느낀 체험기 ‘순례자’를 발표하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로 성지순례길 걷기 붐이 일어났는데요.
아무튼 종교인이 아니라도 그런 길을 걸어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이 또한
성지순례길이 가진 미덕이 아니겠습니까 ?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1911년에 천주교대교구로 설정된 카톨릭의 도시입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과거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신자들을 기리기 위한 성지조성사업을 했었는데요,
마침 2013년에 개청 100주년을 맞은 칠곡군의 지원으로 관내 최대 순교지였던 한티 신자들이 미사 참석을 위해
신나무골로 오가던 길을 정비하여 2016년에 성지순례길을 개통했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 하나로 순교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알아보고자 그저께는 대구 북쪽 근교인 ‘한티’성지순례길을 답사하였는데요,
한티로 가는 길이 어떤지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한티’는 ‘한치’의 변음입니다.
‘한’은 억울하거나 몹시 아쉬운 일 때문에 잊을 수 없이 남겨진 안타까운 마음을 뜻합니다.
‘치’는 길이의 단위이며 미터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거리를 재는 단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힘들게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얼마나 긴지 측정해보다가 지리산 ‘정령치’처럼 자연스레 이름 뒤에
‘치’나 ‘티’가 따라붙게 되었지요,
전국에는 이처럼 ‘치’나 ‘티’가 붙은 고개가 많은 데요, 대부분 옛고개입니다.
‘한티’도 대구와 군위 사람들이 높은 팔공산 줄기를 넘어 다니던 옛날 고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한 많은 고개가 된 까닭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시기에 많은 신자들의 순교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티 순례길의 출발점인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의 가실성당입니다
순례길의 시작인 이름다운 이름의 가실성당은 조선 말엽인 1895년 다섯 칸의 기와집을 본당으로 선교를 시작한
경상북도 최초의 유서 깊은 성당입니다.
당시는 육로교통이 취약하여 수로를 이용한 선교의 방편으로 낙동강 선착장이 있었던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가실이란 마을에
터를 잡았는데요,
이후 신자가 늘어 본당이 비좁아지자 1923년 ‘투르뇌(한국명 여동선) 주임신부가 본당을 신축하였습니다.
오전8시5분, 가실성당 동쪽 언덕, 한티로 가는 길의 들머리에서 출발합니다.
본당의 동편으로 올라갑니다.
1895년에 설정된 본당은 2003년 4월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가밀로 파이아스’(한국명 하경조)신부가 신나무골에서 낙산리 가실마을로 이주한 후 1922~1923년에 지어진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지상1층,지하1층,연건평 217제곱미터)의 성당입니다.
건물은 신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울의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인 ‘빅토르 루이 푸아넬’(한국명 박도행)신부가 설계를 했습니다.
건축공사는 중국인들이 했으며 벽돌은 현장에서 구어서 썼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점령하면서
병원으로 사용하여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실성당 ‘엠마오’감실의 전면은 ‘칠보’작품이고 주제는 ‘엠마오’ 또는 ‘부활감실’입니다.
감실 앞에 성체등(조명등)이 걸려 있습니다.
1924년 프랑스에서 제작한 한국 유일의 ‘안나’상은 ‘안나’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한국 유일의 성당입니다.
독일 색유리 화가 “에기너 바이너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예수의 일생을 그린 14개 스테인드글라스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동양화가 손숙희가 그린 14처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1926년에 설치된 미사 전에 치는 ‘안나’종과 파라핀을 채워 넣어 쓰는
감실등(조명등)도 가실성당 만의 매력입니다.
1958년부터 행정소재지의 동명을 따라 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2005년에 가실성당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가실성당 동쪽의 오른쪽 표지가 붙어 있는 철문이 낙산리로 나가는 한티 가는 길입니다.
낙산리 가실마을을 통과합니다.
한티 순례길은 왼쪽 기둥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코스를 따라 방향 표지를 매달아 두어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칠곡 왜관3산업단지1길의 통로를 통과하여 오른쪽 보병1길을 따라갑니다.
낙산2리 마을로 넘어가는 서원푸드 왼쪽의 언덕길로 올라갑니다.
언덕길 마루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갑니다.
믿음으로 걷는 구도(求道)의 길입니다.
신자들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능선을 우회하는 길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 돌을 주워 탑을 쌓으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 ?
임도와 마주치는 갈림길에는 이렇게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바위들이 놓여 있습니다.
임도에서 왼쪽 오솔길로 가라는 표시이군요.
임도에 붙은 휴식처로 내려갑니다.
깔끔한 시설의 휴식처에서 스템프로 도착했다는 확인을 합니다.
휴식처마다 구비되어 있는 스펨프로 확인 후 성지순례사무국에 수첩을 제출하면 기념품을 증정한답니다.
가실성당에서 출발한지 1시간15분 만에 동쪽의 칠곡군 지천면 금호리와 동남쪽의 하빈지가 보이는 곳을 지나갑니다.
금무산 남쪽 안부인 바람골고개를 통과합니다.
남서쪽의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와 북동쪽의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부락민들이 넘어다니던 옛고개입니다.
금무산 동쪽 산비탈을 돌아내려가는 길이 좀 까다롭습니다.
걷다가 지칠 때쯤 되면 이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2리의 운치 있는 도암지를 2.5km 남겨둔 지점입니다.
야영을 할 수 있게끔 텐트자리도 있네요.
금호로1길을 통과합니다.
금무산의 북쪽 산비탈을 휘감아 도는 도로로서 서쪽의 칠곡왜관산업단지와 동쪽의 연화리 물류단지를 직접 연결합니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로 내려가는 길에서 북서쪽으로 구미 금오산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왜관읍도 보입니다.
맞은편 연화리로 가는 길은 아래에 보이는 경부선과 칠곡대로, 경부고속국도를 차례로 지납니다.
아름다운 도암지가 있는 연화리의 포토존입니다.
경부선 통로 입구가 순례길답지 않게 지저분하네요.
이곳 주민들의 의식수준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경부선 바로 옆의 칠곡대로는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하천통로를 빠져나가면 연화예술원 방향으로 갑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는 예술인들의 활동장소로 변했습니다.
오전10시35분, 지천면 연화2리의 명소인 도암지에 도착합니다.
도암지 제방의 정자에는 양심냉장고가 있습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내먹고 카드기기에 결재하면 됩니다.
저수지에 연꽃이 피면 선경의 마을로 변할 것 같습니다.
소나무에는 그네가 있어서 재미삼아 잠시 타보고 갑니다.
도암지 제방을 지나 신나무골로 가는 길로 올라갑니다.
맞은편 능선을 넘어가면 신나무골입니다.
오전 11시, 가실성당에서 10.5km 지점의 신나무골성지에 내려서고 있습니다.
가실성당 안내판에는 4시간30분이 소요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초갓집들은 옛 사제관이었는데 오른쪽 초갓집은 카페로 사용 중입니다.
'김보록'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나무골 성당입니다.
한티 성지 순례길은 신나무골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
신나무골에서 311봉 동쪽 임도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전망봉으로 갑니다.
임도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0m를 가면 전망봉이 나옵니다.
오후12시5분, 전망봉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합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봉에서 동쪽의 한티로 가는 길을 확인해봅니다.
전망봉 -관개수로 -징검다리 -양떼목장 -창평지 -쌀바위 -금락정 -여부재 -동명성당
전망봉에서 급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댓골저수지가 나옵니다.
댓골저수지 아래에 있는 고가관개수로를 지나갑니다.
하천까지 똑바로 가서 왼쪽의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농로에서 왼쪽의 칠곡군 지천면 달서리 풍경입니다.
멀리 보이는 산이 황학산(782m)입니다.
이언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왼쪽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건물 옆 사잇길로 들어가서 골을 넘으면 양떼목장입니다.
양떼목장 전경
사기점공소로 가는 임도로 올라갑니다.
임도에서 창평지를 내려다봅니다.
사기점공소로 내려가서 창평지 제방을 따라 쌀바위로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임도입니다.
임도에서 사기점공소로 내려가는 곳에는 금락정을 바라보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금락정 동쪽 기슭이 순교지였기 때문입니다.
오후 2시12분, 사기점 공소에 도착합니다.
사기점 공소에서 잠시 쉬면서 쌀바위로 올라갈 힘을 얻기 위해 간식을 나눕니다.
창평지 제방을 지나며 윗마을인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를 봅니다.
제방 건너 맞은편 골짜기 안에 쌀바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쌀바위로 오르는 이 길이 상당히 가파릅니다.
사기점 공소에서 먹은 간식이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힘내라, 힘 !
오후 2시 55분, 쌀바위 도착.
쌀바위에서 북쪽의 금락정으로 올라갑니다.
파란지붕의 사기점 공소가 보입니다.
금락정 남쪽 아래인 당골과 심천지를 내려다봅니다.
멀리 대구시내와 오른쪽으로 비슬산이 희미하게 드러납니다.
금락정으로 가는 아름다운 임도 꽃길입니다.
활짝 핀 개나리꽃의 사열이 끝날 즈음 금락정이 나타납니다.
오후 3시41분, 금락정에 도착했습니다.
금락정 바로 아래의 쉼터 청마루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갑니다.
금락정 쉼터 동쪽의 벌겋게 황토가 드러난 곳이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 신자 14명의 순교지였습니다.
그리하여 금락정은 한티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14인의 신자가 순교를 당한 자리마다 장독을 엎어두고 그 날에 있었던 참화를 기록하였습니다.
14인의 마지막 순교 장소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상 아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기도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기도처 앞에는 숭고한 영혼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하여 지나는 순례객들을 맞이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아멘.”
<시편 23장 1절에서3절>
너무나 아름다운 한티 가는 길.
뒤돌아보니 금락정으로 올라왔던 개나리꽃길도 보입니다.
살아온 길이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남쪽으로 대구 시내가 보입니다.
금락정에서 여부재로 가는 산비탈길.
박해를 무릅쓴 채 미사 참석하러 저렇게 험한 산길을 넘어다녔던 신자들의 믿음에 감동합니다.
아래 주차장이 여부재 고갯마루입니다.
맞은편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한티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오후4시35분, 여부재 도착.
경상북도 동명면 송산리와 지천면 심천리를 잇는 고개로서 여화현이라고도 합니다.
북쪽의 건령산에서 남쪽의 명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낮은 곳입니다.
그 옛날 심천리에서 동명 장날에 장보러 간 남편을 아내가 이 고개까지 올라와서 기다렸다고 여부재(女夫岾)라 합니다.
여부재에서 동명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비포장으로서 휴일에는 산악오토바이족들이 굉음과 매연, 먼지를 내면서 자주 다닙니다.
여부재 뿐만이 아니라 성지순례길의 곳곳이 몰지각한 오토바이족들에 의해 환경이 훼손되고 있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산책길을 오토바이들이 다니면 얼마 가지 않아 흙먼지가 쌓이고 파헤쳐져서 다니기가 어렵게 됩니다.
아무리 취미활동이라고는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부터 동명성당에 이르는 길은 아름다운 풍광도 없는 데다 오토바이족들이 무리를 지어 경주를 하는 탓에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명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2분이었으니 가실성당에서 8시간 57분이 걸렸네요,
거리가 27km였으니 점심식사와 휴식시간을 감안하면 시간당 3km 이상 걸은 셈입니다.
그늘이 없는 임도를 이용하는 길이 많아서 햇볕이 강한 여름철에는 양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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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성가득한
포스팅에 절로 머리가 숙여
십니다. 감사 합니다.
^^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몰랐던 곳인데 자세한 설명과 생생한 사진으로 흥미있게 보여 줘 이해가 잘 됐습니다.
역사 유적과 자연 경관을 세세하게 보여 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갈 것 같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걸어볼 만한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쩜 이리 글을 잘 쓰실까요.
매번 감탄합니다.
한티가 저곳에 있군요.
순례길의 시작점인 가실성당
ㅡ경상북도 최초의 성당에서 부터
한티 순례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순례길 체험을
함께 하는 듯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티'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산재합니다.
그만큼 조상님들은 한 많은 삶을 살아가신 듯합니다.
그러나 칠곡의 '한티'는 이처럼 특별한 곳입니다.
절망적인 시절을 살다 가신 님들의 영혼을 위로합니다.
감사합니다.
순례길 따라 걷는다는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원하는 바입니다, 고마워요.
오롯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고
타국 땅에서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던
프랑스인 김보록(로베르) 사제.
기억하며 ..잠시 묵상합니다
한티 가는길!
한옥성당 신나무골 성지를
다시 방문하고 싶어집니다
^^ 다녀 가셨군요,
다음에 가실 땐 금락정까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걸음이 불편하시면 금락정까지 차를 이용하여
올라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세상을찾아서
방방곡곡 여행기를
상세하고 실감있게 올려 주니
흥미 진진 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님 이시여 !
@로즈 마리 ^^
한티성지는 본당에서나, 제단체에서나, 아니면 가족여행겸 성지순례로
자주 가보았습니다만,
가실성당에서 부터 한티성지까지의 한티가는길
'그대 어디로 가는가' 는 언제가는 한번 걸어야 할 순례길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답니다
아름다운 세상님 덕분에 아주 생생하게 순례길을 볼 수 있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중간 십자가의 길 도 있으니
요즘같은 사순시기에 좋은 순례길로,
묵상과 기도가 함께 될듯 합니다.
저도 용기를 가지고, 시간을 내어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소리 물소리와 더불어
걷는 십자가의 길.
최고의 순례지가 되겠군요
한국의 산티아고__^
^^ 천주교인이셨군요,
조선시대의 교인들은 짚신 신고 저 험한 산길을 넘어 다녔을 텐데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걸으니 호사다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