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비과학, 그리고 과학적 사기
/ 윤덕균 한양대 명예교수
에너지 경제 9월1일자
<과학, 비과학, 그리고 과학적 사기>
누가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있을 때 과학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없을 때 비과학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과학을 과학으로 변조 또는 조작해서 정신적 물질적 이득을 취할 때
과학적 사기라고 한다.
국내 퀀텀에너지 연구소가 '아카이브'(2023.07.22일 자)를 통해
임계온도 섭씨 127도(400K)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 'LK-99'
개발 소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노벨상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수천조 원에 달하는 상업적 가치를 추정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만 되면 묻지 마 투자가 난무했다.
초전도체 관련주로 거명된 덕성, 모비스, 서원, 국일신동, 대창,
파워로직스, LS전선아시아, 인지컨트롤스, 한양이엔지, 신성델타테크,
아모텍, 서남 등의 관계사들이 초전도체와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공시가 이어졌지만 묻지 마 상한가 행진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리이론센터(CMTC)가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뉴스(2023.08.09.일 자)로 급락했다.
이후 김인기 보나사피엔스 대표가 SNS를 통해 "LK-99는 상온 초전도체도 맞고
새로운 강자성체도 맞다"며 "원저자들은 원래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걸 발견했다"고 언급한 이후 다시 관계 주들의 상종가 행렬이 이어졌다.
최근에 네이처(2023.8.16일 자)에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라는
확정적 표현의 기사가 나오자 모두 하종가를 보였다.
부정적 기사와 긍정적 기사가 반복되면서
주가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한다.
여기서 초전도체 개발 소식을 사기로 단정할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퀀텀에너지연구소 관계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이득을 편취한 사실이 명확하다면 사기로 단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상온에서의 초전도체 개발은 과학기술계의 꿈이다.
112년 전인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카멜린 온네스 교수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이후,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수많은
과학자가 밤낮을 잊고 실험실을 지켜 왔지만 모두 허사였다.
2019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미하일 에레메츠가 수소화란타넘으로 영하 23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발표한 것이 상온에 가장 근접한 연구다.
연구는 무수한 실패 과정을 거쳐 진보한다.
그래서 과학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할 때 과학계는
실패에 관용을 가진다. 이것이 과학적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이유다.
에디슨은 전구의 필라멘트의 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2만 번의 실패가 있었다.
그때 에디슨은 “2만 번의 실패가 아니라 2만종의 재료의
부 적절성을 확인한 성공이다.”라고 말한다.
연구 부정행위는 그 경중에 따라서 사기, 변조, 표절로 대별된다.
사기는 명백하게 데이터를 날조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이다.
변조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조작하여
결과를 오도하는 것이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문장표현이나 데이터를 적절한 인용처리 없이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약간씩 변조하는 것,
긍정적인 결과만 보고하는 것, 인정해줘야 할
다른 사람의 공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 등 사기, 변조, 표절의
경계 선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다반사다.
아이디어에 대한 ‘공헌의 문제와 타이밍에 대한 논란도 있다.
지도교수가 지도 학생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논문 심사위원이 심사논문의 공헌을 가로채는 일 등 칼로
물을 베듯이 경계를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과학적 사기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오도와 편향,
그리고 의도적 왜곡이 있다.
골프에서 홀인원은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것과 같이,
과학도 필연보다는 우연에서 찾아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연구 전체가 가설검정처럼 정돈되고 엄정한 절차들에 따라
신중하게 기획되고 이뤄진 것처럼 편집된다.
학술지 편집인들도 연구 과제가 우연히 성공하였음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적인’ 논문을 채택하지는 않는다.
편향의 문제는 과학자들의 문제이기보다는
연구비 지원자 또는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서 제기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CA(Chemical Abstracts: 화학 논문 요약)에 기술된
화학공정의 80%가 논문에 기술된 데로 실험하면,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사기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물고 지적 재산 보호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코카콜라의 경우 레시피를 곧이곧대로
학술지에 공포하면, 바로 유사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래시피에서 결정적인 요소 몇 가지를 제외하고 발표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금까지 과학은 한 번도 진실인 적이 없었다.
모든 과학 이론은 후진 과학자에 의해서 부정된다.
천동설은 지동설에 의해서 부정되었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뉴턴의 만유인력이 부정되었다고 해도
뉴턴의 사기성을 말하지 않는다.
뉴턴은 그 당시로는 가장 과학적이었고 정직했고,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의 초전도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주식 시장에서
광풍을 일으키게 되면 과학의 사기성 문제가 대두될 필연성이 있다.
이러한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결과의 발표에 신중해야 한다.
아카이브는 정식 논문이 아닌 출판 전 논문을 수집하는
피어 리뷰가 없는 웹사이트이다.
접근의 편의성은 있지만, 결과의 책임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말썽의 소지가 있다면 피어 리뷰가 있는 정식 논문에 게재해야 한다.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에 상관없이 한국의 벤처가 초전도체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꿈과 열정 그리고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