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항. 성경 또는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이 들어있으니, 다음과 같다.
구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책을 영감하시고(딤후 3:16, 벧후 1:20-21) 믿음과 생활의 법칙이 되게 하셨다(딤후 3:16-17).
해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확하게 정의해주고 있습니다. 최초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들려진 말씀이었습니다. 들려진 말씀이 구두로 전승되어 일정 기간 구약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들려진 말씀이 더 잘 보존되고 전파되기 위해 기록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기록되지 않으면 육체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으로부터 주님의 진리가 공격받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나님은 주님의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설립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약 40여 명의 인간 저자를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1600여 년에 걸쳐 기록하게 하신 신 구약 성경 66권을 주셨습니다.
2.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보다 앞서 존재했다고 설명하지만, 로마천주교는 교회가 먼저 존재했고 교회가 말씀을 창조했다고 주장하여 교회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를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교회보다 먼저 존재했기에 교회는 말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존 패스코, 역사적 신학적 맥락으로 읽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부흥과 개혁사. p.85-87).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도 교회의 최고 권위는 오직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에게 있다고 단언합니다(1장 10항). 종교개혁 초기부터 말씀과 교회의 관계를 이해할 때 개신교의 핵심 원리는 말씀이 교회를 낳지 교회가 말씀을 낳지 않는다는 원리입니다.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루터의 말처럼 성경은 신성한 진리와 교회가 탄생하게끔 만든 모태입니다(페스코, 88).
3.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영감이라는 말은 딤후 3:16에 나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실 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없었다면 인간이 흙먼지에 불과했던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의 숨결, 곧 성령의 영감이 없었다면 종이와 글자로 구성된 문서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글자 속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기에 성경은 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영감의 방법이나 범위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단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고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 된다”라고만 진술합니다. 당시는 성경이 영감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영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기에 우리는 영감의 방법과 범위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영감의 방법은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입니다. 인간 저자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적은 기계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생각을 활발하고 자유롭게 문장과 단어와 표현으로 기록할 때 성령께서 오류가 없도록 특별하게 감동하셨다는 것이 유기적인 영감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기록했습니다(눅 1:3). 그렇게 자세히 미루어 살필 때, 그리고 그 살핀 결과를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누가에게 유기적으로 간섭하셔서 죄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올바르게 자료와 목격담을 살펴서 취사 선택하게 하시고, 기억을 바로 회상하게 하시며, 꼭 기록해서 전해야 할 내용과 사상을 확정하고, 글의 구조와 형식과 단어까지 오류가 없도록 감동하셨다는 것이 유기적 영감입니다.)
5. 영감의 방법이 유기적이라면, 영감의 범위는 ‘완전 축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일부, 특별히 사상만 영감 되었고 문자는 영감 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부만이 아니라 66권 전부가 영감 되었습니다. 또한, 인간 저자의 사상만이 아니라 그가 사용한 문자도 영감 되었고 구체적인 단어까지 영감 된 ‘완전 축자’ 영감입니다. 성경의 영감 교리가 약화 되어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 저자와 시대적인 배경연구를 더 우선시하는 이 시대에 성경의 영감 교리를 잘 이해하고 양보 없이 지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6.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진리이므로 신자의 믿음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이 됩니다. 성경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cannon)임을 믿는다면 호기심이나 다른 동기로 읽어서는 안 되며 마음과 뜻을 다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믿음과 생활에 관하여 생각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람의 전통과 여론과 학문과 실정법을 참고는 하되 최종적인 판단은 언제나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일례로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241조의 간통죄를 “헌법상 보장되는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라는 명목으로 위헌판결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과 생활의 최종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교회와 신자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말씀처럼 여전히 간통을 무거운 죄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7. 로마천주교는 성경만 믿음과 생활의 법칙이 아니라 교회의 성전(거룩한 전승)도 동일한 권위의 법칙으로 받습니다. 이들은 주교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하고 온전하고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받은 사도들의 후계자라고 주장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7항 67, 그리고 계시 헌장 7항). 이들은 사도들과 주교들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허락되고 이어져 온 사도적 설교를 성경과 구별되는 거룩한 전승(성전)이라고 부르면서 이 거룩한 전승이 신자의 모든 것과 믿음의 모든 것을 영속시켜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에게 믿음과 생활의 절대적 규범은 ‘오직 성경’ ‘전체 성경’이 아니라 성경과 전승입니다. 더욱이 천주교는 전승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발전한다고 주장하여 주교들의 해석과 결정이 언제든지 성경과 전승의 권위보다 위에 있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잃다. 정요석, 크리스챤 르네상스, p.44). 만약, 그렇다면 천주교는 믿음과 생활의 규범이 성경만 아니라 교회의 거룩한 전승과 더불어 주교들의 교도권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추가되는 셈입니다.
3항. 보통 외경(外經)이라 부르는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지 않았으므로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권위도 없으며, 사람의 다른 글들 이상으로 달리 인정하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해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신구약 성경 66권 외에 외경이라 불리는 책들을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경은 신적 간섭이 없는 단지 사람의 글일 뿐이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정경과 같은 권위를 행사할 수 없으며 그런 식으로 인정되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경은 다른 사람의 글보다 결코 나은 것이 없으므로 우리의 신앙과 기독교 진리를 확정하는데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경이 다른 문서처럼 구약 이해에 도움이 되는 여러 역사적 정보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위조된 경전인 위경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위경은 외경과 달리 의도적으로 성경을 위장한 책을 의미합니다. 구약 외경이 정경에 넣으려는 목적 없이 기술한 책이라면, 위경은 성경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그 권위로 정경처럼 인정받기 위해 기술된 책입니다. 이 책들은 주로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이후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까지 약 400여 년의 신구약 중간기 기간에 쏟아져 나온 것으로 야고보 원시 복음서, 에비온인 복음서, 히브리인 복음서, 이집트인 복음서, 도마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니고데모 복음서, 바울 묵시록, 베드로 행전, 요한 행전, 안드레 행전, 도마 행전, 므낫세의 기도, 예례미아 서신, 에스더서 부록 등 무려 60-70권이 있습니다.
2. 70인 역(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자녀들을 위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습니다. 이를 70인 역이라고 합니다)과 천주교는 구약 39권에 7권의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킵니다. 그 일곱 권은 토빗서(욥기와 유사), 유다서(에스더서와 유사), 유대 왕들의 전쟁사를 다룬 마카비상, 마카비하, 지혜서, 시락서(잠언서와 유사), 바룩서(예레미야서와 유사)입니다. 천주교는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구약 성경에서 제외되었던 7권의 외경을 다시 구약 성경으로 채택하여 지금까지 구약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트렌트 종교회의는 외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사람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존 페스코, p 90). 한편 동방정교회는 천주교보다 3권이 더 많은 10권의 구약 외경을 채택하고 있습니다(천주교의 외경에 에즈라, 마카비3, 예레미야를 ‘아나기그노스코메나’ (읽을 만한, 읽을 가치가 있는)라하여 구약 정경으로 추가합니다). 신약은 27권으로 동일합니다. . 성공회는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삶의 본보기와 태도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 외경 가운데 일부를 교회 안에서 낭독합니다. 지금은 성경의 교훈들과 무분별하게 섞여서 전달되고 있으므로 사실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현실입니다(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서. 생명의 말씀사, p. 48). 그러나 개신교는 유대인들을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만을 구약 정경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천주교로부터 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3. 구약 39권은 주후 90년 유대 랍비들의 얌니아 회의에서 확인되었으며, 신약 27권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공회에서 확인되었습니다. 363년 라오디게아 공회는 교회에서 정경만 읽는 것이 옳다고 결의했고, 393년 히포 공회는 정경 66권을 결의했으며 397년 카르타고 공회는 정경 66권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공적 회의가 66권을 정경으로 결정해서 채택한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상기한 교회의 회의들은 당시 초대교회가 이미 정경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던 성경들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확인했을 뿐입니다.
4. 그럼 정경과 외경의 구분 기준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를 보는 사도성(예수님은 물론 사도들도 이 책들을 인용하지 않았으며 신약성경 가운데 이 책들이 존재했다고 암시하는 성경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 책들에는 많은 오류와 미신과 부도덕한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둘째, 고대 성경 사본들과 역본들에 대한 교부들의 증언, 셋째, 교회 회의의 증언, 넷째, 성경 각 권의 내적인 증거입니다. 성경의 자증성은 제4항과 5항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그때 확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