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궁 (1979) - 임권택감독의 평범한 이류 문예물. 윤정희의 평범한 연기와 달구어지지 않은 감독의 가슴이 흐미한 영화를 만들다.

[디스테파노]

신궁이란 무당이 사귀를 물리치기 위해 쏘는 화살을 말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무당이다. 그것도 아주 큰 무당인데, 어떤 사건으로 신기를 잃고 방황하는 여인이다.

원작이 천승세의 소설이라는데, 소설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아주 현란한 문체를 가진 작품이라고 한다. 

문체 - 언어의 아름다움에 기댄 소설은 특히 영화화가 어려울 것 같은데, 임권택감독이 여기 도전하였다. 

그리고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윤정희가 무녀도에 이어 다시 무당역에 도전하였는데, 어째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윤정희가 나이 든 중년여인역할을 하며, 자기 나이 또래 배우를 아들로 두고 풋내 나는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데 손이 오그라든다. 열녀문이라는 영화에서 이십대부터 노역까지 모두 소화해낸 최은희에 비하면 더 아쉽다. 

최은희가 40대의 나이로 16세의 민며느리를 연기하면서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 인물을 그려냈는가?

(신상옥감독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복원된 민며느리를 보고 이 영화는 걸작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질펀한 남도사투리를 잘 활용하여 토속적인 생생한 연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대사를 국어책 수준으로 읽거니와 연기의 폭이 좁은 것이 현저하게 느껴져서 안타깝기만 하다. 

이어도에서 박정자가 보여준 그로테스크하고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무당연기나, 산불에서 도금봉이 보여준 

흙냄새 나는 남도여인의 토속적인 욕망같은 것에 비하면 아마츄어같은 느낌마저 든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사랑하는 남편을 악랄한 선주의 흉계에 잃은 무당이 복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왜 표면적이라고 했는가 하면 여기에 신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무당은 접신을 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바다에 잃고 무당은 바다에서 죽은 혼백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굿을 한다. 그런데, 다른 혼백들은 다 건져냈는데

정작 남편의 혼백은 아무리 애를 써도 건져낼 수 없다. 무당은 아무리 해도 혼백이 건져지지 않자 주저앉아서 절규한다.

그리고 그 이후 무당은 신기를 잃는다. 접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건 무슨 상징적인 뜻이 있지 않을까? 

김기영감독이었다면 이 무슨 상징인가를 분명하게 포착하여 건져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상징이 현실보다도 더 중요하게 되고

현실은 이 초월적인 것에 의해 비틀리고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김기영식의 접근방법에 더 적합한 것이 아니었나 한다. 임권택감독처럼 아낙네의 한 정도로 단순하게 파악하여 

신파조로 무덤덤하게 그려내서는 안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신기를 잃은 무당은 무기력하게 구멍가게를 열며 살아간다. 늘 남편이 손수 만들어주었던 종이양산을 펴들고 다닌다.

그런데 무당후계자로 만들려고 민며느리처럼 데려온 여자가 바람을 피운다. 그 여자의 잘못만도 아닌 것이, 

무당의 아들은 여자를 내버려두고 떠돌아다니며, 젊은 여자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고 모진 고생을 하는 것이다.

아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들은 오이디푸스컴플렉스인지 어머니가 들고 다니는

종이양산을 찢어발기며 발악을 하고 자기 여자보다는 어머니에게 신경을 쓴다. 방황하는 원인도 어머니가 

신기를 잃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냥 오이디푸스컴플렉스도 아닌 것이, 그는

어머니가 신기가 올라 굿을 할 때 북채를 쥐고 북을 치며 희열을 느낀다.) 

아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본 무당은 다시 큰 굿을 열기로 작정한다. 

이렇게 무덤덤할 수가! 막 건져올린 생선처럼 비린내를 확 풍기며 꿈틀꿈틀거려야 할 남도의 거센 섬사람들이 

티브이 홈드라마의 정형화된 인물들처럼 표현된다. 

그리고 굿이 열리는 자리에서 무당은 신궁을 가지고 선주를 쏘아죽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신기를 잃은 무당은 선주에게 즉각적인 보복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엎드려 산다. 신기를 되찾은 다음에야 무당은 선주를 죽이고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왜일까?

무당이 아닌, 신이 복수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왜 아들은 어머니가 신기를 되찾는 것을 염원하고 괴로워한 나머지

방황을 할까? 섬사람들은 섬의 지배자인 선주에게 복종하는 것만큼이나, 신기를 가진 큰 무당인 윤정희에게 복종을 한다. 

생활인으로서의 윤정희는 평범한 섬주민들처럼 연약하고 선주의 횡포에 짓눌려산다. 

하지만 무당으로 그 지위를 회복하자 선주를 징벌한다. 어떤 권력관계를 표현하려는 것은 아닐까?

혹은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에 대항하는 초월적인 권력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선주를 신궁으로 쏘아죽이는 마지막 장면의 윤정희는 아낙이 남편의 원수를 갚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갖는 초월적인 행위였을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무당과 떨어뜨려 원혼이 되어 떠돌아다니게 만든

선주에 대한 귀신의 복수였을까?

이 영화는 아주 복잡한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주제라고 본다. 그런데 임권택감독은 이 중 어느것도 살려내지 못했다.

그냥 남편을 희생당한 아낙네가 한을 갚는다 정도로 시시한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 드라마나마 그다지 설득력 있게 만들지도 못한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가 붙잡았어야 했을 화두가 있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