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들의 대가 없는 믿음』 2023. 성탄예배
누가복음 2:15-20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1.들어가며
해마다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사자성어로 정리하곤 합니다. 올해 2023년을 대학교수들은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한자 성어로 정리하였습니다.
‘견리(見利)’ 즉 이익을 보면, ‘망의(忘義)’ 의로움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리옷 유다가 은 삼십을 본 후 자신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 가야바 무리에게 넘겨줍니다. 가리옷 유다의 경우를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 우리는 성탄 예배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신앙인이란?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신앙인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 듣지 못하고 때로 입이 있어 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들 입니까?
우리가 과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엄동설한과 같이 차갑게 식어가는 세상을 향해서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술을 벌려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우리들이야 말로 ‘에바다’ 주님께서 열어주시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더욱더 ‘에바다’ 열어주시길 소망합니다.
2.당연한 믿음 욥의 아내
우리는 새벽기도회를 통해 욥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사탄의 시험으로 모든 재산과 자녀들 심지어 건강까지 잃어버린 욥이 재 위에 앉아서 깨진 옹기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습니다. 그때 욥의 아내가 욥을 찾아와 한다는 말이
“그러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어버리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왜 욥의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한 줄 아십니까?
성경을 보면 욥이 이때 재 위에 앉아 있습니다.
재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주님께 지은 죄를 사함 받을 때, 자신을 살려달라고 기도할 때 재 위에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욥의 아내가 보기에 재산도 잃고 자녀도 가족도 잃고 건강까지 잃어버렸는데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욥을 보니 부화가 치미는 겁니다. 그래서 욥을 향해
“당신 그렇게 잃어버리고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겁니까?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고 당신도 그만 포기하세요.” 이런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오면, 때로는 인생의 고난과 재난이 몰려오면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도 나를 몰라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욥의 아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라들이 너무나 쉽게 나를 판단하고 규정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이러면 더 큰 상처와 충격을 받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그런 상황 중에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아시는 줄 믿습니다. 때로는 내가 흔들리거나 때로는 내가 뒷걸음질할 때가 있지만, 내 진심은, 내 본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주님은 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그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우리 안에 충만히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어쩌면 욥의 아내는 당연한 믿음 아닙니까?
욥의 아내가 믿음이 없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그녀는 당연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섬기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화를 주셨을 때는 그를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믿음 혹 대가성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이 당연한 믿음 혹 대가성 믿음에만 머물러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대가가 없어도, 당연하지 않아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복을 주셨다면 그분이 주시는 화도 견뎌내야 하지 않겠소?”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목자들의 믿음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입니다. 말이 좋아 목자들이지 생각해보십시오. 목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냄새나고 불결하고 율법에서도 정결하지 못하고 사람들도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바리새인들에게 찬사들이 나타났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에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주의 성탄을 말했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싫어하고 거리를 두는 목자들, 들판에 나가 양이나 치던 목자들은요?
대가가 없는데, 당연하지 않은데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그들에게 합당한 것일까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요? 그런데 저를 보세요 냄새나고 불결하고 사람들이 혐오하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웃을 겁니다.”
우리 권사님들 제가 그러시잖아요.
“목사님 이제 늙었어요. 몸도 시원치 않아요. 힘이 없어요. 그래서 못해요.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목자들은 당연한 믿음이 아니라 대가성 믿음이 아니라 대가 없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들은 대가 없이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뵙고 자신들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귀한 것을 주셨으니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전심으로 대가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을 섬길 때
대가 없이 그저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이 우리의 목적이 될 때,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하여 주시고 공급하여 주시고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비록 바리새인이 아니고 사두개인도 아니고 들판에서 양이나 치는 신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가장 먼저 축복한 목자들처럼
2024년에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가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달려 가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달릴 수 있도록 새 힘과 은혜와 능력을 더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위에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