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지
(빌립보서 3:20~21)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선교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지원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선교에 동참하자고 부탁드리기 전에 선교의 근거인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에 대해서 한 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보통 전도할 때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C.C.C 간사에게 사영리를 통한 전도훈련을 받고 전도를 나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C.C.C 전도책자인 사영리에 나와 있는 것을 정리해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하면 내 인생의 모든 뜻과 행동이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해서 여러분에게 제가 예수를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과연 대답하실 있습니까?
한 마디로 오늘 여기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정도와 질이 다 다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예배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수 믿고 천국간다고 할 때의 그 믿음은 사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갖고 계속해서 그런 믿음으로 향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그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빌립보서 3:20에 보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실 제 설교 제목을 하늘 나라의 영주권이라고 하려고 했습니다. 영주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받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정말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가족이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영주권 받는데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영주권이란 무엇입니까? 캐나다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영어 시험을 쳐야된다는 것입니다. IELTS라는 영국식 토플을 봐야 했습니다. IELTS는 영연방 국가에서 보는 것인데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라는 4가지 분야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9점 만점에 6점 이상을 맞으면 통과합니다. 하지만 이 4가지 분야 중에 한 분야라도 6점 이하를 받으면 떨어집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험은 무사히 통과하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어려움은 첫 번째 어려움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이제 영어 시험을 다 마치고 신체검사를 해야하는데 제 아내가 계속해서 몸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했습니다. 그런데 병명도 잘 모르고 그래서 집사람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국에 가서 치료받고 오는 동안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신체검사는 연기되었고 그 이후에 겨우 신체 검사 통과하여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영주권 얻는 것이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도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정말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정말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천국 영주권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직분을 주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노블레스 오블리지’인데 그 유래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지’가 합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지는 초기 로마 시대에 왕과 구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이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몸소 보여준 일가가 있습니다. 바로 우당 이회영 선생의 6형제(건영, 석영, 철영, 시영, 호영)입니다. 이회영 선생(1867~1932)은 당시 이조판서를 지내던 이유승의 4남으로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명문대가의 자손이지만 일신의 안락과 영화를 혼연히 버리시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치신 독립운동가로서 안창호,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신민회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1909년 국내 활동이 어렵게 되자 독립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을 위해 남만주 지역의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에 부지를 확정하여 독립기지로 개척하였으며, 1910년 재산을 처분하고 6형제 40명이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으며,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항일투쟁에 진력하던 중 1932년 독립운동 세력 규합과 주만 일군사령관 암살 등을 목적으로 대련행 기선을 타고 만주로 향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11월 17일에 옥중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우당의 나이 환갑이 지난 66세였습니다. 우당의 6형제 중 5명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한 채 타국 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또한 5형제를 포함한 가족 대다수는 굶주림과 병, 그리고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고, 다섯째인 성재 이시영만이 유일하게 해방 이후 살아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성재 이시영 선생은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여 1951년 부통령을 사임하였습니다. 불의를 보면 좌시하지 못하는 가문의 전통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계속된 셈입니다. 우당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이회영의 형제는 물론 그 자제들도 대부분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그들 또한 이국땅에서 엄청난 고초를 겪었고 상당수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명문가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온 가족이 고난의 길을 자청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회영 일가의 일화는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귀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귀한 신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자녀다운 의무를 했습니까? 롯과 롯의 아내는 본래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자랐고 모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존귀한 자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신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도시 생활에서 물질에 집착하고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 결과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은 동굴에서 두 딸과 성교를 합니다. 롯은 이렇게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자는 정말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집중적으로 감당하는 선교사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노력하며 우리도 그분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선교사는 현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현지 선교사와 그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의 보내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보내는 선교사도 선교사입니다. 우리 모두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