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6코스 탐방 제2부(구두미포구~이중섭거주지)
제주올레6코스 탐방 제1부(쇠소깍~구두미포구)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두미포구를 올라서며 ....
구두미포구를 올라서 전경초소쪽으로 향하는데 ....
전경초소는 간데없고 그 자리에 전망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전망대에 설치된 서귀포의 비경
잠시 후 소천지는 꼭~ 들려보리라 ....
이 위치에서 보면 포구 모습이 마치 거북이 머리 모양이라고 해서 구두미포구라 한다.
어디 살펴볼까요. 포구 모습이 거북이 머리 모양으로 생겼는지 ~~~
아무리 봐도 거북이 머리 모습이 연상되지 않으니 .....
옛모습이 콘크리트로 많이 가려진 것 같다.
구두미포구를 올라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바닷가 풍경이다.
문섬, 범섬, 서귀포항과 삼매봉 ....
전망대에서 주위 풍광을 조망하며 ....
전망대 밑에 친구들 ....
전경초소의 동초 흔적
전경초소의 참호와 동초 흔적
전망대를 뒤로하고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는 제주대학교 연수원 뒤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겹담으로 견고하게 쌓은 잣성이 보이는데, 환해장성 치고는 너무나 온전해 보이고 ....
제주대학교 보목연수원 뒤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를 걸으며 바라보는 서귀포 바닷가 모습
제주대학교 보목연수원 뒤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 바닷가 숲속의 정자
정자에서는 바닷가의 나무들이 조망을 가려 조금을 벌채했으면 좋겠다.
제주대학교 보목연수원 뒤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를 걸으며 ....
제주대학교 보목연수원 뒤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를 걸으며 바라보는 서귀포 바닷가 모습이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서귀포 바닷가 모습이 운치를 더 해준다.
드디어 찾은 소천지 이정표 ....
소천지로 내려가며 ....
현재시각 12:04, 소천지 전망대에 도착하여 ....
길이 안보이는 울퉁불퉁 왼쪽의 큰바위를 넘어 소천지 안으로 들어가며 ....
제주는 사면이 바다이지만 한라산 반영을 바다에서 담을 수 있는 곳은 제주올레 6코스 제주대학교 연수원 뒷편 바다에서만 담을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이 곳을 소천지라 하는데 이 곳에서 이른 아침 바람이 없고 물결이 잔잔할 때 한라산의 반영을 담을 수 있다.
오늘은 흐린 날씨로 한라산 반영을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
오른쪽으로 들어왔으면 이 용암제방을 타고 쉽게 들어왔을 것을 ....
보목동 더베이리조트에선 최근(10/30~11/5) 한국 탠런트 이지훈과. 중국유명가수 주징이 뮤직비디오 촬영도 했다고 하네요 ^_^
다시 숲길을 따라 내려가며 ....
자연림이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서귀포 바닷가 모습은 초겨울 정취를 느끼기에 아주 그만이다.
꽃이 피면 행운이 찾아 온다는 팔손이 꽃
팔손이는 대표적인 공기정화식물 중의 하나로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음이온을 방출하며 새집즐후군의 원인 이 되는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키우면 한층 더 쾌적한 실내를 만들 수 있다.
바닷가 풍광을 감상하며 제주올레길 6코스 보목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향한다.
이 계단을 오르면 .....
현재시각 12:15, 보목하수종말처리장이 있는데 여기 해우소에 영역표시를 하고 ....
제주올레길 6코스 보목하수종말처리장으로 올라서며 바라보는 서귀포시 보목동 앞 바다 모습이다.
보목하수종말처리장 앞을 지나며 ....
보목동 하수종말처리장은 시민체력단련시설과 잔디광장이 잘 마련되어 있으며 ....
어린이 놀이터 시설도 되어 있지만, 오늘은 오물 냄새가 많이 풍겨 서귀포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될지 의구심이 든다.
보목동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고 .....
게이트볼 경기장
보목동노인게이트볼동호인회 사무실
제주올레길 6코스 국궁장 '백록정' 앞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앞 바다 모습이다.
초겨울 하늘에는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짙푸른 태평양 바다는 숨죽여 나를 반기고 있다.
백록정 맞은편에 3개의 과녁이 있으며 사대까지 거리는 145m이다.
국국장 옆 길건너 국기계양대에는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
현재시각 12:22, 국궁장 '백록정'에 도착하여 ....
백록정 현판
백록정을 자세히 둘러보니 회원수칙이라든지 궁도 9계훈 등 화살을 쏘는 궁사들이 지켜야할 예의범절이 많다.
백록정에서 바라보는 섶섬쪽 풍경이다.
저 소나무 밑에 화살 과녁이 있는데, 잘 안보이네요. ㅎㅎㅎ
보세요. 거리가 정말 만만치 않죠.^^
우리나라 궁국장 과녁의 거리는 모두 145m라 한다.
시위도 당겨보고 ....
백록정과 사대의 모습
사대는 한 조에 7인 3개조, 전체 21인이 동시에 시위를 당길 수 있다.
백록정의 사대
백록정 관리인과 수다를 나누고 ....
다시 제주올레길 6코스로 접어들어 '검은여'로 향한다.
삼매봉과 서귀포 칼호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지각생 코스모스
미나리꽝에는 .....
미나리가 파릇파릇 ....
검은여 해안 인근 도로 옆 이 바위에는 큰 비가 내리면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데 오늘은 물줄기가 약하다.
현재시각 12:34, 검은여해안 해녀의집을 지나며 ....
해녀의집 곁의 제주 전통 뗏목 테우
검은여쉼터 바로 밑에 코지가 검은여해안이다.
검은여쉼터에서 소정방폭포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칼호텔과 2008년 대한한공에 매각되고 드라마 올인을 촬영했던 파라다이스호텔로 막혀 칼호텔 담장을 끼고 돌아간다.
서귀포칼호텔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요런 대문이 동백아트로 단장된 멋드러진 주택도 보인다.
검은여에서 소정방폭포로 가기위해 칼호텔 담장을 따라 우회하는 'ㄷ'자 길이다.
낮은 담장 너머로 잘 가꾸어진 호텔의 후원을 들여다 본다.
노박덩쿨열매는 여성의 생리통과 냉증 치료에 특효약이라 할 만하다. 가을에 잘 익은 노박덩굴 열매를 따서 볶아 가루내어 생리가 없을 때에는 노박열매 5g 당귀 40g을 물로 달여서. 하루 3회 나누어 마신다.
농원의 직판매장
지나가는 올레꾼들에게 시식도 하게 하고 ....
올레꾼들에게 지역농산물을 팔고 있다.
현재시각 12:40, 서귀포칼호텔 동쪽 출입문을 지나며 ....
이곳은 서귀포칼호텔이다.
이곳을 지나며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이 사유지라 제주올레길 6코스가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대도로로 우회해서 소정방폭포로 이어진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에서 협조가 된다면 검은여에서 소정방폭포로 이어지는 올레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협조가 되서 길이 만들어진다면 소나무 숲 사이로 걸으며 바라보는 서귀포 앞 바다 풍광이 아주 환상적인 길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도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어떻게 협조를 구해서 이 길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우리 한 번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측에에 부탁을 드려봅시다.
서귀포칼호텔 동쪽 정문을 지나 칠십리로를 코앞에 두고 .....
이제 칠십리로로 접어들어 소정방폭포로 향한다.
'남한조선노동당 간첩장비 은닉장소 위치 : 해안방향 50미터 지점 야산에 있는 쌍소나무 밑. 이 장소는 북한 공작원이 92년 9월 서울에서 검거된 간첩 황인호에게 전달하기 위해 장비를 은닉한 곳입니다. 사각수류탄 4발, 벨기에제 브로닝 권총 2종, 실탄 120발, 무전기 4대, 난수표 6매, 야간투시경 등 총 15종, 159점이 발굴.'
이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은 남제주군 대정읍 출신 거물간첩 이선실(북한권력서열 22위)이 국내에 침투, 95년 한반도 적화통일 달성을 목표로 재야인사 포섭, 지하당 결설 등 간첩활동타 당국에 적발된 남노당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이란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06년 8월 과거사위에 의해 이선실과 황인오, 최호경 씨 등이 남한에서 암약했던 간첩이었고, 중부지역당도 실제로 존재했었지만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작되고 부풀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독특한 형상의 장승
칠십리로 보목입구사거리
서귀포칼호텔 서쪽 출입로
칠십리로를 지나 소정방폭포로 향한다. 저 멀리 서귀포칼호텔도 눈에 들어온다. 다시 생각을 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검은여에서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 바닷가를 지나 소정방폭포로 이어지는 올레길을 만들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귀포칼호텔과 섶섬
서귀포칼호텔 서쪽 출입로를 지나며 ....
파라다이스호텔과 소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길
소정방폭포로 내려가며 ....
파라다이스호텔 주차장을 지나며 ....
파라다이스호텔 주차장을 지나 소정방폭포로 내려가는 목재계단
이 수벽 너머에 드라마 올인을 촬영했던 파라다이스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데크 밑에 소정방폭포의 수원
현재시각 12:55, 소정방폭포에 도착하여 ....
소정방폭포로 내려와 일단 폭포 모습을 한 장 담아보고 .....
폭포 조꼬띠 엉의 모습도 담아보고 ....
더운 여름철에는 물맞이 최적의 장소이다.
엉의 모습은 불규칙절리가 해식작용으로 파인 것 같다.
소정방폭포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앞 바다 풍광 역시 환상적이다.
서귀포 앞 바다에 떠 있는 문섬도 좋고 검푸른 태평양 바다 물빛도 좋다.
소정방폭포로 내려오는 친구들 .....
물보라를 무릅쓰고 폭포 앞에서 ....
소정방폭포의 포토존 ....
소정방폭포의 인증샷!을 남기고 ....
폭포가 작지만 떨어지는 물보라는 정말 아름답다.
소정방폭포는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맞으면 관절통, 신경통에 아주 좋다고 해서 ....
나이 드신 분들이 떨어지는 물을 맞으러 즐겨 찾는 곳이다.
또한 해안산책로가 너무 아름다워 가족, 연인, 친구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여행을 즐기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로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소정방폭포를 뒤로 하고 '소라의 성'으로 이동한다.
소정방폭포를 올라서 커브를 돌면 보이는 건물이 '소라의성'이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죠 ^_^
아마 70~80년대 신혼여행을 제주로 다녀가신 분들은 추억이 떠 오르실 겁니다.
'소라의 성'하면 제주의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해물뚝배기를 잊을 수가 없죠.^^
해물뚝배기 맛이 아주 기가막히게 맛이 있었는데 ~~~
또한 "소라의 성"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앞 바다 풍광은 정말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그래서 연인들이 많이 찾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고 (사)제주올레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제주올레길 6코스를 걸으시는 분들은 한 번 들려보세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님도 뵐 수 있습니다.
만나서 제주올레에 대해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제주올레 사무실을 들려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현재시각 13:00, '소라의 성'에 도착하여 ....
사무실 앞에 제주올레길 6코스 중간 기착지 스템프가 놓여 있다.
'소라의 성'을 지나며 ....
배꼽시계도 울려 앞선 친구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고 ....
'소라의 성' 후원에 둥지를 틀고 ....
'소라의 성' 건물
'소라의 성' 후원에서 바라보는 소정방폭포 해안도 정말 장관이다.
깍아지른 기암절벽이 눈앞에 다가온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만들수 있을까?
그저 자연의 위대함에 놀랍기만 하다.
풍림리조트에서 기증한 벤치
짐을 풀고 곡차와 간식을 나누며 ....
세 시간을 걸은 지친 다리도 쉬고, 방전된 기력을 보충하며 ....
수다도 나누고 .....
무엇 보다도 원서기 부부가 준비한 머리고기 수육과 보쌈김치가 빅히트!!!
"소라의 성"에서 정방폭포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 풍광도 아주 볼만 하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놀멍 쉬멍 걸어보세요.
이쯤에서는 "느림의 미학"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정자
보세요.
이렇게 멋드러진 서귀포 앞 바다 풍광을 감상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제주의 대자연을 가슴에 한아름 담고 가세요.
그리고 제주에서 멋진 추억을 만드세요.
캬~~~정말 좋다 좋아.
걸으니 이런 모습을 감상 할 수 있네요.
제주올레길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제주올레길은 각 코스마다
또 다른 제주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오름, 바당, 숲, 바닷가, 들녘, 유적지, 관광지 등 제주의 전부를 볼 수 있는 길이 제주올레길이라 생각합니다.
'소라의 성'에서 정방폭포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
문섬과 서귀포항
해안산책로를 따라 정방폭포로 이동하며 ....
멀어져 가는 제지기오름과 섶섬
주상절리(柱狀節理)는 마그마의 냉각과 응고에 따른 부피 수축에 의해 용암에 생기는 다각형(多角形) 기둥 모양의 금을 말하며 화산지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의 대포주상절리(지삿개), 갯깍주상절리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울릉도의 공암(코끼리바위)과 국수봉, 육지에는 철원 한탄강, 광주 무등산 정상의 서석대(입석대)등이 유명하다.
또한 동해안을 따라 울산 강동화암주상절리~경주 양남 하서.읍천주상절리~포항연일 달전리 주상절리가 볼만한데 이는 모두 신생대 제3기의 화산활동과 관련있는 지질시대의 산물이다.
여기 해안산책로 절벽 밑에 주상절리군은 수평으로 누운형태의 주상절리군으로 와상절리(臥狀節理)로 구분하기도 한다.
와상절리와 함께 섶섬의 모습을 담고 ....
이제 해안산책로는 끝나고 정방폭포 영역으로 들어선다.
현재시각 13:34, 정방폭포 매표소에 도착하여 ....
정방폭포(正房瀑布)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정방동 해안에 있는 폭포이다.
정방폭포는 동홍천[에이리내] 하구에 위치하며 수직 절리에서 떨어진 하천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해안 폭포이다. 높이 23m, 경사도 90°로, 구성 암석은 조면안산암이다. 상류하천(常流河川, perennial stream)인 동홍천[정방천]에서 물이 공급되고 있다. 제주의 대표 경승지인 영주십경과 영주십이경에 모두 포함될 정도로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탐라순력도』를 보면, 폭포 주변에서 배를 띄워 풍류를 즐기는 「정방탐승(正方探勝)」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남아 있다. 중국에서 서복(徐福)이 진시황에게 바칠 불로초를 찾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 명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을 찾아왔다가 돌아갔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모연(正毛淵)', 『탐라지』와 『탐라순력도』에 '정방연(正方淵)'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영주산대총도』와 『1872년 지방지도』 등에도 ‘정방연(正方淵)’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로 보면 '정방연'이 있는 폭포라는 의미에서 정방폭포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정방폭포는 조면안산암질에 잘 발달하는 주상 절리로 인한 수직형 폭포에 해당된다. 용암류의 말단에 주상 절리가 형성되면서 수직에 가까운 해식애를 만들고, 여기에 하천이 흘러 정방폭포가 된 것이다. 처음 폭포가 생성될 때는 수직형이었지만, 폭포 하단부터 굴식 작용이 일어나면서 돌출형 폭포가 되고 있다.
정방폭포 앞에는 자갈 해안이 발달해 있다. 이 자갈 해안은 60~120㎝의 둥근 정도가 보통인 거력(巨礫)으로 구성되며, 자갈 해안 주변부에서는 직경 약 2m의 낙하암괴가 많이 쌓여 있다. 폭포 하단부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힘에 의해 형성된 ‘정방연’이 있다. 정방연은 유수 방향이 남북이며, 폭포 아래 발달한 소인 폭호(plunge pool)의 너비가 14m이다.
천제연폭포·천지연폭포와 함께 제주도 3대 폭포에 해당되며, 생태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명승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1년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에 소개되었으며 중국 출신 서복(徐福) 전설지로 알려지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탐방하고 있다.
제주올레길 6코스를 따라 정방폭포 앞 매점을 지나며 .....
이 쪽을 통해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곳이다.
정방폭포를 지나 서복전시관으로 이동을 하며 ....
서복전시관 인근 중국공원 옆을 지나며 ....
서복전시관으로 이동을 하며 바라보는 소남머리(소낭머리)모습이다.
깍아지른 기암절벽이 정말 볼만 하다.
제주4·3사건 당시 서귀리는 서귀면뿐만 아니라 제주도 한라산 남쪽지역의 중심지였다.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이 있었고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었다. 때문에 토벌이 강화되면서 토벌대의 주요 근거지가 되어 대대본부가 위치해 있었고, 취조를 담당하는 정보과[대대2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어서 대부분 혐의자 및 중산간 초토화 이후 야산을 헤매던 피난민들이 붙잡히면 이 곳 군부대에서 취조당하고 처형되었다. 군부대의 수용소에는 수감자로 넘쳐났다. 특히 군부대 정보과에서 산간에 피신한 주민들을 붙들거나 조그만 혐의를 내걸어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 취조했던 농회창고는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즉, 당시 면사무소에는 군부대가 주둔했고 그 옆 창고에는 주민들을 수감시켜 취조를 하고 대부분 총살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때 취조 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을 처형했던 일상적인 주민학살터가 된 곳이 정방폭포 상단과 이어지는 ‘소남머리’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4·3사건 당시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이곳에서 학살당했다.
이곳에선 서귀리 및 서귀면 일대의 주민뿐만 아니라 남원면 의귀·수망·한남리 주민과 중문면, 멀리 안덕면 동광리 주민 등 산남지역 전체에 이를 정도로 많은 주민희생이 있었다. 특히 당시 대동청년단들로 하여금 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하는 등 학살은 광기를 띠고 있었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남, 2003년 71세] 씨는 “그 때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렸어. 그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지. 떨어지니까 군인들이, 이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 해가지고. 그러니까 사람 두 번 죽인다는 것이 없으니까. 나도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이라 회고했다.
이곳은 당시의 지형과 별 차이 없이 옛터가 남아 있다. 정방폭포 등 절벽을 이루는 서귀포 해안의 특성 때문에 특별히 개발 흔적도 없다.
서복전시관으로 이동을 하며 서복전시관 중국공원의 서복 설화의 부조도 담아보고 ....
서복전시관으로 이동을 하며 서복전시관 중국공원도 담아본다.
이 하천은 동홍천(東烘川)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가지를 관통하여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동홍천 미악산 북쪽 한라산 사면에서 발원하여 정방폭포에 이르러 바다로 유입된다. 유로 연장은 12.1㎞이고 유역 면적은 9.16㎢이다.
과거 동홍리 지역을 경유하여 흐르기 때문에 ‘동홍천’이라 했고, 정방폭포에 이르러 바다로 유입되기 때문에 ‘정방천’이라 했다. 지리지나 고지도에는 동홍천의 지명을 보기가 힘들다. 서쪽의 연외천에 비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주로 연외천만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주로 ‘애이리내’·‘애릿내’ 등으로 많이 부른다. ‘애릿내’에 대한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하천 주변에 애기 무덤들이 많아 이와 연관되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일부에서는 동홍천의 하류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랫내’가 변음되어 ‘애릿내’로 되었다고도 한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동홍천은 미악산에서 서쪽 직선 방향에 이르면 급격히 좁아진다. 어떤 곳은 난대림의 수목으로 빼곡하여 폭이 1m 안팎에 불과한 곳도 있다. 하류로 유입되면서 ‘고냉이소’라고 불리는 포트홀도 나타난다.
서귀포 시가지를 통과하는 동홍천은 정방천으로도 불리는데, 시가지의 시민회관 일대에서는 하천이 복개되어 있다. 시민회관 일대를 벗어나 주택가 사이로 정방천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중앙동을 지난 곳에는 동홍교가 있는데, 그 아래에는 장마 때 구멍이 터진다는 ‘산지물’이 자리 잡고 있다.
동홍천이 바다로 다이빙하는 장소, 바로 이 곳이 정방폭포 상단부이다.
정방폭포 마애명(正房瀑布 磨崖銘)은 서귀포시 정방동 정방폭포 암벽에 새겨져 있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이러한 폭포수의 장관을 보기 위해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관광명소이다. 또한 영주 10경 중 제4경에 해당하는 정방하폭(正房夏瀑)으로 유명하며, 진(秦)나라의 서불(徐市)이 이곳의 절벽에 ‘서불과차(徐市過此)[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을 새겼다는 전설이 남아있기도 한 곳이다.
서복전시관
서복전시관(徐福展示館)은 서귀포에 전해오는 서불(徐巿, 徐福이라고도 함)에 대한 전설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마애명(磨崖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명(혹은 삼천명)과 함께 대선단(大船團)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漢拏山〕)을 찾아 항해를 하였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복전시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서복전시관(徐福展示館)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정방동 에 위치한 서복[서불] 설화를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서귀포에는 서불[徐市] 또는 서복(徐福)이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리고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하였다는 설화가 전하여 내려온다. 정방폭포 인근 서복 전시관에서는 서불과 관련된 설화와 관련된 전시품을 관람할 수 있다.
서복전시관은 서복에 관한 설화에 기초하여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서귀포시가 지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총 92억5500만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서복전시관은 크게 서복 전시실과 서귀포시 역사관으로 나뉜다. 서복 전시실은 '불로불사의 꿈'과 '서복의 여정', 진시황제의 청동마차와 병마 용갱(兵馬俑坑)의 실물 복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서귀포시 역사관은 서귀포시의 연혁과 문화 유적지, 관광 문화 홍보물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안에서는 서귀포와 서복이라는 영상 애니메이션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의 4개 언어로 상영된다.
서복전시관은 주변으로 제주 올레 6코스가 조성되어 올레꾼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설무대에서는 웨딩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2003년 10월 26일 개관 이후 유료관람을 해 왔으나 2011년 4월 25일부터 무료관람으로 변경되었다. 2012년 11월 1일 다시 유료관람으로 변경되었다.
서복설화를 주제로 한 서복전시관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잇는 구비문화유적으로서 자원적 가치가 높다.
현재시각 13:40, 서복공원을 빠져나오며 ....
서복전시관 입구 '문'도 완전히 중국풍으로 지어진 모습입니다.
서복전시관을 지나 이제 소암로를 따라 소암기념관으로 향한다.
횡단보도를 우측으로 건너면 소암로에 접어들게 된다.
서복전시관을 빠져나오며 ....
조화와 생화로 단장된 화단
정방폭포 입구에서 소암로로 이어지는 교차로의 인공섬에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인호, 이문영 작가의 <드림-Dream>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작품은 서귀포 주민의 소망과 기원을 손에 담아 마치 그 소망과 기원을 누군가에 드린다는 손의 모습을 연출해 보였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마을미술 프로젝트 추진위원회 주관의 ‘생활공간을 공공미술로 가꾸기’ 사업으로, 지리, 역사, 생태, 문화적 가치가 있는 마을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이다. 2009년 예술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작가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어 현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년 동안 전국 57곳의 마을에서 시행되었는데, 유토피아로는 가장 규모가 큰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총 14억5,000만원(국비 5억 원, 지방비 9억 5,000만원)이 투입되었다.
용처리네 ....
이 작품은 누구에게 드릴까요?
어느 민가의 담장너머로 누렇게읶은 감들이 지락지락 ....
보기만 하여도 풍요롭고 언제보아도 정겨움이 많은 열매 감
소암로를 걸으며 ....
소암로는 정방폭포 입구에서 소암기념관을 지나 태평로로 이어지는 길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시가 이중섭 미술관, 기당 미술관, 자구리 해안, 서복 전시관, 소암 기념관과 같은 문화 관광지를 엮어 만든 스토리가 있는 약 3시간 20분, 4.9㎞의 걷기 코스다. '작가의 산책길'을 거닐면 한국의 유명 예술인인 이중섭, 변시지, 현중화 세 분의 삶과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현재시각 13:45, 소암기념관을 지나며 ....
소암기념관(素菴記念館)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에 위치한 소암 현중화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미술관.
소암 현중화는 서귀포에서 출생하여 서예와 서화로 이름을 남긴 대한민국의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현중화 선생의 글씨는 모든 서체에 능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초서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따라서 소암기념관은 소암 선생의 업적과 그의 주요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미술관이다.
소암기념관은 한국 서단의 대가인 소암 현중화[1907~1997] 선생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기 위해 2008년 10월 4월 개관하였다.
소암기념관은 지난 2006년 10월 건립과 관련한 실시설계 용역이 완료되어, 같은 해 12월에 건립공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2007년 11월 30일에 소암기념관 건립이 완공되었고, 이듬해인 2008년 10월 4일에 소암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소암기념관에서는 건립 이후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 등 5가지 서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던 소암 선생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고 한국서예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터전으로 삼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대체로 추모전이나 예술 강좌 등이 주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2011년에는 제주 소묵회[현중화 선생 제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의 협조를 받아 제14회 소암 현중화 선생 추모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2012년 5월 11일에는 문인화와 수묵화 그리기에 관심과 소질을 갖고 있는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1박 2일 동안 시민 예술 강좌를 마련한 바 있다.
소암 현중화 선생이 거주했던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건립된 소암기념관은 부지면적이 1,903㎡에 달하며, 건축연면적은 1,523㎡ 규모이다. 지하1층 지상 2층의 기념관은 상설전시실Ⅰ[53㎡], 상설전시실Ⅱ[175㎡], 기획실[123㎡], 세미나실[62㎡], 소암 일대기실[66㎡], 창작산실[6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상설전시실Ⅰ에는 소암 선생의 예술혼과 글씨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고, 상설전시실Ⅱ는 습자기(習字期)[1-31세], 학서기[32-49세], 실험기[50-73세], 완성기[74-90세] 등으로 구분되어 소암예술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설이 곁들여진 시기별 작품들이 각각 전시되어 있다.
그 밖에 소암 선생이 생전에 거주했던 조범산방(眺帆山房)은 '유물로 보는 인간 현중화'를 주제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는 소암 일대기실과 창작 산실 나뉘어 꾸며졌다.
그리고 2012년 5월에는 소암기념관에서 '문봉선, 서귀포 칠십리의 봄'라는 주제로 기획전을 진행하여 서귀포 시민과 더불어 관람객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소암 현중화 선생은 한국 근·현대 서단(書團)을 이끈 '거장'으로 평가되고 있어 소암기념관는 그의 작가적 삶과 업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이러한 미술관 또는 기념관이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건립이 되면서, 지역 미술계가 활성화되고 미술 저변이 확대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소암기념관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산동사무소를 지나며 ....
소암로에서 태평로로 접어들고 정방동사무소앞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이중섭 거주지로 향한다.
이중섭 거리로 접어들며 ....
앞에 보이는 건물이 이중섭미술관이다.
이중섭미술관(李仲燮美術館)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화가 이중섭을 소재로 설립한 미술관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화가 중 한사람인 이중섭의 삶과 예술 작품을 모티브로 한 미술관으로 2002년 11월에 개관하였다. 서귀포시에 자리 잡은 미술관 중 기당미술관과 더불어 대표적인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크게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로 구분하여 전시 활동을 벌여 나가고 있다.
천재 화가 이중섭의 삶과 그의 예술 활동을 기념하고, 그의 작품을 토대로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화가 이중섭미술관은 개관에 앞서 이중섭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과 기념 사업들을 전개해 왔다. 즉, 1995년 11월에 이중섭 거주지에 기념 표석을 건립하였고, 1997년 9월 이중섭 거주지를 복원하였다. 2001년 11월에는 이중섭 기념 조형물을 설치했으며, 2002년 6월 이중섭미술관을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2003년 3월 2종 미술관으로, 그리고 2004년 9월 1종 미술관으로 정식 등록하였다. 2008년 12월에는 창작스튜디오도 준공하였다.
이중섭미술관에서는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로 나누어 다양한 전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먼저 1층 상설 전시실에서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으며, 2층 기획 전시실에서는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와 그 밖의 기획전을 구안하여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1층 기념품 판매 코너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이중섭 작품을 소재로 한 다양한 로고 상품들, 즉 핸드폰 고리·판화·타일·타올·접시·스카프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원형의 아담한 2층 건물로 부지 면적은 1만3863㎡, 연 면적은 960㎡이다. 실내는 크게 2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중앙 홀을 중심으로 좌측 공간에 상설 전시실을, 우측 공간에는 기념품 판매코너를 비롯하여 사무실과 창고 등을 두었다. 2층에는 전시실과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화가의 명성만큼이나 서귀포시가 소중하게 여기는 미술관이다. 현재 미술관 바로 앞에는 이중섭 화가가 잠시 거주했던 살림집이 복원돼 있으며, 또 살림집으로 이어지는 길가는 이중섭 거리로 명명되어 천재 화가 이중섭을 기리고, 또 그의 작품세계를 감상하는 데 필요한 기반 시설을 조성해 놓고 있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이 서귀포에 머문 시간은 비록 짧지만, 이중섭을 흠모하며 그의 예술세계를 탐미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섭 거주지로 향하며 ....
현재시각 13:52, 이중섭 거주지에 도착하여 ....
천재화가 이중섭, 그를 기리며 ....
서귀포시는 1997년 서귀포에 이중섭거리[360m]를 선포하고,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매입하여 복원했다. 1999년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이달의 문화 인물에 이중섭이 선정되어,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그의 특별전이 마련됐다.
2002년 서귀포 이중섭 거주지 부근에 이중섭전시관이 개관됐다. 2003년 이중섭전시관은 가나아트갤러리로부터 예순여섯 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여덟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2종미술관으로 등록됐다. 2004년 갤러리현대로부터 54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한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1종미술관으로 등록됐다.
이중섭(李仲燮)은 한국전쟁 중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 피난 와 거주하면서 활동한 서양화가이다.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로 피난 온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경이었다. 이중섭이 일본 여자인 이남덕[본명 야마모토 마사코]과 결혼해서 북한 지역인 원산에서 살다가 피난길에 나선 것은 1950년 12월 10일로 그때까지 그린 작품을 고향에 있는 어머니께 맡기고, 그리다 만 풍경화 한 점을 들고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 조카 이영진과 함께 원산항을 출발하여 3일 후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한 달 정도 어려운 생활을 하던 이중섭 가족은 조카 이영진이 먼저 와 있던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 도착해 머문 곳은 알자리 동산으로, 이 마을 반장이던 송태주·김순복[2012년 현재 이중섭 거주지 거주] 부부가 이중섭 가족에게 4.6㎡[약1.4평] 정도의 방을 하나 내주었다. 이중섭 가족은 이곳에서 피난민 배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했고, 이러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이중섭은 「서귀포의 환상」 등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부산으로 떠났다.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는 불과 11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개의 대표작을 남기고 있다. 서귀포로 피난을 와 얼마 되지 않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의 풍경화들은 인상주의 화풍의 평범한 그림으로서 이후 통영 시대의 풍경화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귀포에서 자주 대했던 섬·게·물고기·아이들·귤이라는 소재는 이후 이중섭의 유화나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린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중섭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의 소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게였다. 배가 고파 게를 많이 잡아 먹다보니, 그것이 미안하여 게를 그리게 되었다는 화가의 말은 곧, 게를 관찰 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의미한다. 제주도를 떠난 이후 그린 「그리운 제주도 풍경」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게의 모습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가장 활력 있는 소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중섭이 가족의 사랑을 더욱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마지막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귀포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아이들·게·물고기 등의 소재들은 은지화에서도 하나가 되어 서로 뒤엉켜 있다. 서귀포에서 더욱 친숙해진 이 소재들은 이중섭 그림의 강한 모티브로서 작용했다. 결국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애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귀포 시대와 관련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따뜻하고, 해학적이고, 즐겁고, 포근한 사랑으로 표현됐다.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서귀포 시대와 그 이후의 그림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이상세계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전쟁 기임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또 이중섭은 서귀포 시대에 초상화 4점을 그렸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웃 주민 세 사람과 집주인 송태주다. 이중섭은 원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그려달라고 해도 다음으로 미루었을 정도로 초상화 그리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이중섭은 이웃 주민과 집주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마당에 쌓아 놓은 땔감 위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세 사람의 증명사진을 올려놓고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는 「서귀포의 환상」·「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길 떠나는 가족」·「가족」·「싸우는 소」·「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어린이와 물고기와 게」·「꽃과 어린이」 등과 다수의 은지화가 있다.
이중섭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의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다
이중섭은 1938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 제2회 공모전에 출품해 협회상을 수상했고, 1943년 제7회 협회전에 출품해 태양상을 수상했다.
1972년 서울 갤러리현대[당시 현대갤러리]에서 15주기 추모전을 열었고, 1986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30주기 추모전이 열렸다. 1989년 이중섭미술상이 제정[조선일보, 이중섭기념사업회]됐고, 1999년 1월에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97년 서귀포에서 이중섭거리 선포 및 이중섭거주지 복원 기념식이 열렸고, 2002년 이중섭전시관이 개관됐다. 2004년에 이중섭미술관이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어었다.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한국전쟁 발발 후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 피난와 거주하면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서귀포의 환상」 등의 대표작을 남긴 화가이다. 1950년 12월 10일 이중섭은 그때까지 그린 작품들을, 함께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께 맡기면서 “이 작품을 저처럼 생각하시고 잘 보관하시라” 하고는 채 완성하지 못한 풍경화 한 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원산항에서 화물선을 타고 사흘 만에 부산에 도착했고, 이중섭 가족은 부산에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조카 이영진이 있는 제주도로 향했다.
이중섭이 서귀포(西歸浦)에 온 것은 1951년 1월경이었다. LST를 타고 화순항에 내려 서귀포를 향해 걷는 동안 눈발이 세차게 몰아칠 때면 농가의 소외양간에서 눈보라를 피했다. 이런 피난길의 생생한 기억은 이후 「피난민과 첫눈」이라는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 도착한 곳은 알자리 동산으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이중섭 가족을 맞이한 사람은 이 마을 반장 송태주와 김순복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이중섭 가족에게 방을 하나 내주었다. 그들도 식구가 많아 흡족치 못한 살림에 신세를 지게 된 이중섭 가족은 미안할 따름이었다. 1.4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이중섭 가족은 숨소리를 느끼며 꼭 끼여 잠을 자야만 했다. 그래도 이중섭 가족은 거주지 왼편으로 섶섬이 보이고, 옆으로 문섬과 새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겨울 바람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서귀포에 도착한 이중섭을 맨 처음 찾아온 사람은 조카 이영진이었다. 이영진이 가끔 군용 통조림 등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식량은 늘 부족했다. 이중섭 가족은 끼니로 채소를 캐 오거나 게를 잡아 반찬으로 삼았다.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게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이중섭의 말을 새겨보면,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다. 당시 피난민들은 얼마 안 되는 배급 쌀과 고구마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을 때 이웃에는 서귀포 화가 고성진[1920년생]이 살고 있었다. 고성진의 집은 이중섭이 사는 곳에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의 집이 바닷가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이중섭은 자주 그 집 앞을 지나갔다. 어떤 때는 스케치 북을 들거나, 때로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중섭은 고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고성진은 이중섭이 북한에서 왔고, 북조선에서 예술위원장을 지냈다는 소문 때문에 꺼림칙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고성진을 볼 때마다 우호적이었다. 이중섭은 고성진의 스크랩북을 빌려갔다가 자기 부인을 통해 되돌려 주기도 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넉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전쟁[6·25] 때 전사한 이웃 주민 세 사람과 집주인 송태주이다. 이중섭은 원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그려 달라고 해도 다음으로 미루었을 만큼 초상화 그리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그는 이웃 주민과 집 주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마당에 쌓아 놓은 땔감 위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작은 사진을 올려 놓고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웃에서는 답례로 고구마와 보리쌀 등 식량을 나눠 주었다. 이웃과 잦은 교류는 없었지만, 이웃에 대한 이중섭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집 주인 송태주에게는 고마움의 표시로 마루에 앉아 모델이 되게 한 다음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원산(元山)에서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는 이중섭은 서귀포에서도 남의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었다. 이중섭의 소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 현재 남아 있는 작품들은 1953년 이후 통영에서 그려졌지만, 서귀포 생활에서 얻은 소의 이미지가 습작을 통해 마침내 통영에서 유화로 완성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중섭이 서귀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힘차고 아름다운 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귀포에서 받았던 순수한 소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중섭의 생애에서 서귀포 생활은 온 가족이 반찬 없이 밥을 먹고, 고구마나 게를 삶아 끼니를 때울지언정 웃으면서 함께 살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1997년 이중섭 거주지 복원 당시 서귀포를 방문했던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 여사도 서귀포 시절을 “시댁 식구들을 벗어나 달랑 네 식구만 남고 보니 소꿉장난처럼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남덕 여사는 이때 집주인 김순복 할머니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한다.
예술가에게 시간과 공간은 예술 창작의 두 축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된다. 시간은 의식을 변화시키고, 공간은 작품의 무한한 소재를 제공해 준다. 이중섭에게 서귀포라는 장소가 등장하는 물고기와 게, 벌거벗은 아이들은 바로 서귀포라는 공간에서 잉태된 것들이다. 이 소재들은 섬에서 보낸 고뇌와 그리움,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에서 건져 올린 예술적 형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서귀포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서귀포의 환상」은 작품의 주제나 소재에서 ‘아름다운 서귀포’라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의 서귀포는 ‘귤’과 ‘섬’이 중심 소재가 돼 작품에 반영된다. 겨울인 데도 푸른 바다 때문에 더욱 노랗게 보이는 감귤에서, 이중섭은 따뜻한 평화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는 불과 11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귀포를 주제로 한 좋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가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섬·게·물고기·아이들 등의 소재는 이후 이중섭의 유화나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됐다.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가족도(家族圖)라 할 수 있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제주도를 떠나서 그린 그림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과 함께 있었던 제주도 시절을 그리워하며 기억에 의존해서 그렸다. 게를 모티프로 하여 가족의 단란했던 한 때를 엮어 내는 이 그림에서도 역시 이중섭 특유의 해학성과 강한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서귀포 시절과 관련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따뜻하고, 해학적이며, 즐겁고, 포근한 사랑으로 표현됐다. 이중섭이 가족의 사랑을 더욱 심도 있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마지막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귀포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게의 어울림에 빗대어 표현한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가족이야말로 지상의 아름다운 최소한의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게와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서 풍부한 해학성으로 다가서는 이 작품에서는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는 이중섭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제주올레길 6코스는 A코스와 B코스로 나뉘며 B코스는 서귀포항으로 내려가게 되며 ....
우리는 A코스를 따라 이중섭거리로 향한다.
제주올레 6코스는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제주도민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너무 아름다운곳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