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실상과 십자가의 도
율법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임의적으로 율법의 사역을 순기능과 역기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율법의 실상과 순기능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품성이요 품격입니다.
율법의 성질은 신령하고 거룩하며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처럼 령(靈)성(聖)의(義)선(善)하게 되기를 원함 입니다.
율법의 기간은 기본적으로 지구 종말 후 심판 때까지입니다만, 그러나 거듭나는 순간부터 율법의 효력과 기간은 폐지와 정지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대상은 땅에 있는 육체를 두른 사람들에 한하여만 입니다.(유대인)
율법의 수준은 율법을 받아들이는 상대가 유아라서 그 눈높이에 걸맞게 하려니 자연적으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법이라는 것을 세상에 최초로 세우려니 그 당시 사람들은 법 즉 죄에 한 하여는 백치의 수준인지라 소심하고 세세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깨우쳐줘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죄라는 죄는 시시콜콜한 죄까지 모조리 다 세상에 들어 내야하는 법칙이라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저들과는 달리 유아가 아닌 군병이요 신부로 장성된 자들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깨닫는 순간부터 죄와의 피 터지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표적은 죄요, 죄를 정죄하여 세상에 널리 공포하는 것이 근본 사역입니다.
율법의 목표는 죄에 대한 물증을 확보함에 있습니다.
율법의 특기는 사람을 정죄함에 있습니다. 율법을 붙좇는 것은 정죄를 자처하는 격입니다.
율법의 결과는 차후 죄를 십자가에 매달아 공개하고 무저갱에다 처리함에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효율은 죄를 많이 짓게 한 것이 율법의 효율이며 이것도 하나님의 대의입니다. 죄가 깊을수록 은혜는 반대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율법의 치적은 우선 세상이 질서가 잡히고, 치안의 안전성 등입니다만. 그러나 법이 많아지니 양심의 가책은 반비례로 상승하여 의에 이르는 방면에는 백해무익입니다.
율법의 결론은 하나님은 의롭고 거룩하고 신령하고 지극히 높다는 것과, 반면 죄는 악하고 더럽다는 것과 사람들은 죄와 하나라는 것들을 깨닫는 선까지만 입니다.
율법의 실상과 역기능
역기능은 은혜의 입장에서 역기능일 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순기능일 뿐입니다.
이 땅에 율법이 제정되니 두 가지의 엇갈린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죄와 하나가된 사람들이 율법을 원수 같은 담으로 받아드리고, 이와는 반대로 죄(罪)는 쌍수를 흔들며 환영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근본생각은 하나님처럼 의롭기를 바라나, 바라는 기대치 보다 죄는 더 강한 힘으로 밀어냅니다. 힘 이센 죄가 만연하고 연약한 육신의 입장에서는 율법의 위엄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위력을 보니, 이는 넘지 못할 장벽으로 다가와 본방과 이방이 갈리고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닥아 설수가 없음을 알기에 이를 원수와 같이 야속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엡2;14.15)
이에 그치지 않고 율법을 범하면 가차 없이 투석질로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구약시대를 사망의 마당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이유는, 계명이 이르매 살아야할 나는 죽게 되었고 죽었던 죄는 살아나 개미같이 작은 죄에서 코끼리 같은 큰 죄까지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경중을 예를 들어 말하자면, 비늘 없는 물고기를 먹은 죄와 사람을 죽인 살인죄의 무게는 개미와 코끼리일 것입니다.
더욱 가관(꼴불견)인 것은, 죄가 율법을 자신의 무기화한다는 그것입니다.
<고전15:56>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권세 힘)은 율법이라.
죄는 율법을 힘입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고 힘들게 하는 황당한 사연은,
<롬5:20>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상반절)
이는 엎어진 사람 뒤통수 밟는 격이나 진배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물론 율법 때문에 죄가 증가한 만큼 그 반면에는 은혜가 풍성하며 은혜가치가 어떠함을 發함입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하반절)
그런데 문제는, 넘쳐나는 그 은혜를 힘입지를 못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바울은 율법에 속한 계명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율법으로 유대인을 이끌어온 모세의 역할을 두고 이를 죽이는 직분(죽음을 가져다준 직분)이라 하였습니다.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3;7.8>
죄가 살고 죽고는 율법에 딸린 문제인 것입니다.
<롬7: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이로보아 죄와 율법은 떼려 해도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니만큼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죄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의(義)로운 율법에 더러운 죄가 찰싹 달라붙어 의로운 율법으로 자신(죄)의 권능(권세. 힘)을 삼아 우리를 사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곧 죄라는 등식이 성립되므로 율법에 대하여 부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는 표현으로써 도리어 율법에 대한 이해를 바르고 빠르게 도와준다고 보는 것이 정석일 것입니다. 하여 율법을 이단시하는 것은 곧 죄를 단죄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롬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죄가 악하고 더럽고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과 반면 하나님이 무섭고 지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한하여는 이 세상에는 어떠한 방법이나 길(道)이 있을 수 없고 오직율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악하고 더럽고 무거운 죄를 벗어던지는 일에 있어서는 율법은 조금도 도움이 않된다는 그것이 맹점인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유익이 없어 이를 두고 히브리서기자는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7:18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은혜를 입은 입장에서는 율법은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디도서>
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율법을 두고 악평을 하거나 호평을 한다 해도 나의 죄는 요지부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폐기라는 말은 곧 죄를 단절한다는 의미로 봐야하는 이것이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이 율법에서 죄와 사망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체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매우 빈약하기 마련이라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폐단을 위하여 율법을 이단시하고 또 천하고 원수 같고 배설물처럼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에 처한 나를 구하시려고 율법의 대가 즉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쳐 우리를 죄(율법의 속박)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 일컬었던 것입니다.(빌3;18)
이렇게 무서운 율법으로 우리를 초달하시는 이유는, 다시는 죄와 어울려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하는 일이 없도록 함이며 또한 변절자가 되지 않게 하기위함이요 그리고 저 나라에서 알찬운영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창세전에 계획된 불변의 프로그램이요, 지략의 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하여 인간입장에서 죄와 사망이라는 폐단도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는 은혜요 영광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는 생명과가 간절하듯이 율법으로 하여금 죄와 사망을 경험한 자에겐 영생이신 주님이 간절하게 갈구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만남은 극적상봉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은 집회(예배)시 교독(交讀)용이나 또는 교육(敎育)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죄되어 저주와 사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저는 율법폐기주장자입니다.
율법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곧 십자가의 도를 함양함이요 또한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율법폐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마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주님의 섭리에 입각하여 옛 법을 버리고 새 법 곧 생명의 성령의법을 권장하려는 취지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율법폐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새 법을 권장하려는 취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새 계명 즉 생명의 성령의법을 깨닫고 이를 존귀히 여기면 옛 계명 즉 죄와 사망의 법은 절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한하여만은 맞춤형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 이유인즉, 유대인들은 한 피 한민족이요 같은 신을 믿는 신정국가이기 때문에 내 이웃은 곧 내 몸과 같은 원리라서 율법수행에 있어서는 호조건에 놓인 자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다만 인간들의 수행능력이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옛 법(계명)은 유대법이요, 새 법(계명)은 그리스도법이며, 유대인들은 옛 사람이요,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새 사람들이며, 옛 사람은 육을 입은 땅의 사람들이요, 새 사람들은 육을 벗은 영의 몸을 가진 천상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율법을 교통법교에 빗대어 말하게 되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내려올 날이 없게 되는 원리를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율법을 빚 즉 부채에 견주어 말을 하면 제일 근사치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채무자가 그 빚을 다 갚을 시에는 빚 문서를 파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골2:14>
여러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사실을 기록한 명세서를 지워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목을 적은 명세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 무효로 만드셨습니다.<공동변역인용>
이제 우리는 율법의 빚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하여금 탕감 받았기 때문에 율법의 종이 아니라, 지금부터 우리는 주 예수그리스도께로 빚진 자가 된 것입니다.
<롬8:11.12>
8:11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은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8: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과연 빛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육체(율법)의 빛을 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율법)를 따라 살 의무는 없습니다.<공동번역 인용>
거듭난 새 사람의 주소와 환경
<롬7:1>
형제 여러분, 율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만 율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현대인>
필자(부르지저)는 율법의 조명에 의해 범죄자로 들어나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를 나의 주 곧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아픔과 치욕의十字架로 참혹한 처형을 받아 일만 달란트에 해당하는 죄 값을 변재 해 주심으로써 이제는 그분의 소속. 소유물이요 이를지나 그분과의 동심일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당한 의인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되니 저 초등수준의 율법을 완주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일례를 들어 말하자면,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은 부분할례를 받고 이에 자부심을 갖고 십자가를 무시하나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전신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2:11 여러분은 사람의 손으로 베푼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육적인 죄의 몸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저들은 죄 사함을 받으려고 황소와 염소의 피를 받쳤으나 우리는 하나님이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심령안식 즉 마음이 쉼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공동번역>
주 예수그리스도의 멍에는 쉽고 가볍고 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율법은 그림자요 우리주님은 실체이십니다.
<히10: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동물의 피와 주님의 보혈, 그리고 그림자와 실체 등등을 비교해 볼 때 율법은 참으로 유치한 초등학문인입니다.
우리는 명절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킵니다.
구 율법시대 유월절음식은, 누룩은 물론이요 가급적 발효되지 않은 곡물을 사용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곡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곡물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먹어야하고 주님양식은 우리입니다.
4:31 한편 제자들이 '선생님, 좀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자
4:32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중간생략....
4:35 너희는 아직 넉달이 더 있어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떠서 들판을 바라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우리한국의 추수기는 가을에 있으나 주님의 추수기는 365일입니다.
아래 성구는 우리주님이 섭취하실 유월절 빵입니다.
5:7 여러분은 누룩 없는 새 반죽 덩어리가 되기 위해서 죄악의 묵은 누룩을 버리십시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5:8 그러므로 악의와 죄악의 묵은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유월절을 지킵시다.
우리의 모임은 이렇게 순결과 진실한 누룩 없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은 365일이 유월(절)이요 1년 내내 안식(일)인 것입니다.
아멘~할렐루야~~
제사장 직분이 변하면 율법도 반드시 변경되어야 합니다. <히7:12>
율법이 새로이 변경됐으면 옛 율법은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주와 하나가된 나도 더불어 율법을 마스터(master)한 사람으로 간주해 주셨습니다.
하여 나는 이제
<갈6;14.15>
6:14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6:15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렇게 십자가로 처리되니 세상은 나를 무가치한자로 취급하고 나 역시 세상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내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니 더 이상 율법이 나를 관여치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의 주소는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의 거처지(居處地)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히12 현대인역 >
12:22 그러나 여러분이 다다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城)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 곳은 수많은 천사들과
12: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로운 사람들의 영이 있는 곳입니다.
이제 나는 소속이 위의 말씀처럼 하늘에 있으니, 천상법(天上法)을 따르므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자연스레 유치한 세상 법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골2:20>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그렇습니다. 내 육신은 비록 이 땅에 살지라도 나의 속사람은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천상의 영법(天上의 靈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땅에 있는 나의 육신을 간증해 봅니다.
현재는 저 황홀하고 환상적인 천성과는 달리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은 처참하고 비참한 신세로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히11;13~16>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1: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1: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주위사람들이 내 신앙에 대하여 나그네라고 증거를 해주더냐를 묻습니다. 거듭난 새사람들은 신양면에서는 나그네요 이들이 죽으면 곧 바로 천성(天城)즉 낙원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왕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을 거처 지나가실 때도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머리되신 예수께서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시니 어찌 그의 몸 된 교회가 거처할 곳이 있겠습니까!!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역시 사도바울도 사도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결을 같이 했습니다.
<고전4:11~13>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생활비를 위해 수고하며 손수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욕을 얻어먹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고 13 비방을 받아도 좋은 말로 달래니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신앙생활면에 있어서는 사도들처럼 저토록은 아니어도 그들과의 결이 같은 길목에 들어선 자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는 하룻밤을 묵을 여관에다 장독과 장롱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이 땅에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신앙의 정석중 하나입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새 사람의 소속은 하늘이요 한 몸이거늘, 세간에서는 교회당을 궁전처럼 건축한 후 명칭을 자기들의 입맛대로 붙여 정부에 등록을 합니다. 그러니 건물과 날과 절기와 사람이 우상화가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오리가리 찢어 졌습니다. 이것은 지상에다가 족적과 흔적을 남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입니다. 교회는 바람과 같은 풍류체로 있어야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교회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교파와 경륜과 직분과 바리새인의 율법적 신앙들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습니다.
<빌립보서>
3:4 하기야 세속적인 면에서도 나는 내세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3:5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정통교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모태신앙)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대대적집안)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신학파)
3: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범생이 속어를 써서 미안함)
3:7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3: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율법을 배설하지 않은 사람은, 십자가의 도와 내 주 그리스도예수를 아는 존귀한 지식이 빈약하여 다만 문자에 지나지 않는 상식일 뿐 믿음이 깊다고는 보기가 어렵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율법을 고집하면 하나님을 빚쟁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4:4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4:5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아멘!! 주~예수여~~~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의 공적을 뽐내나, 우리는 반대로 저들이 미련하게 여기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할 뿐입니다.
이제 <마5:17.18>에 대한 말씀을 숙고해 봅니다.
아래성구는 율법폐지론자들의 입막음용으로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마5:17.18>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많은 성경 신자들이 17.18절 말씀을 놓고 두 가지의 실수를 하는 경향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첫째는 판독이요, 두 번째는 인용이 문제인 것입니다.
먼저 정독을 위해 말씀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일차로 생각해 봐야할 문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기치 못할 단어 즉 “폐기(廢棄)”또는 “없애다”라는 극단적인 부정어(否定語)에 속한 단어를 잇대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세계에서 부친의 가훈이라도 아들이 폐기라는 말을 잇댈 수가 없거늘, 하물며 성부의 법도를 성자가 어떻게 감히 잇대어 발설을 하신단 말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상상조차도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러면 그 단어는 암시적인 힌트로써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보면 맞는 말 일것입니다.)
그때의 배경을 잠시 더듬어보면, 주님을 율법폐기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17.18절 말씀을 하셨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율법의 대가들인 바리새인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연유를 짐작해 보자면, 예수께서는 율법에서 제외된 앉은뱅이 봉사 문둥이 귀머거리 나라 팔아먹는 세리 그리고 창녀들과 먹고 마시며 안식일을 범하고 간음한 여자를 두고 투석질을 만류하며 오히려 방관을 넘어 용서를 하는 것들은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나 용납이 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율법폐기자로 정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깊이 헤아려보면 그 극단적 부정의 단어가 반대로 율법이 폐기 또는 없어질 수가 있겠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읽혀지는 것입니다.
<마5:17.18> 요약해 보자면,
17 내가(예수께서) 선지자(서)와 율법을 실현하려고 왔다.
18 실현의 기간은 지구 종말 이전에 완료(이룸)하겠다.
이것이 17.18절의 요지일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완성되는 시점이 지구 종말 전이냐, 아니면 지구 종말과 동시냐, 그것도 아니라면, 지구 종말 후에 이뤄지는 것이냐에 대한 답이 분명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면 누구나가 다 주후 33년 6월로 답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서(자)와 율법의 완성은, 주님이 십자가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우리가 의롭다는 것을 증거 하시려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곧 선지서와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24장 전체를 깊이 상고해 보시기를 권고합니다.)
위의 기록된 말씀인 즉,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 하여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주님이 이를 알고 믿게 하시려고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이 설명의 내용은 위에서 밝혔지만 이를 확고히 하려고 재 반복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출생부터 죽고 부활하신 이것이 곧 예언과 율법이 다 이뤘다(완성)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선지서와 율법이 완료되었으면 주제본문인 “율법의 일점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을 고쳐 읽어야 옳을 것입니다. “다 이뤘으니 율법은 없어진 것이다”로 읽어내야 이치에 맞는 정독(正讀)이요 판독(判讀)일 것입니다.
두 구절 말씀을 좀 더 쉽게 이해를 하고자 비유로 말씀을 드립니다.
선지서와 율법은 건축물의 설계도요, 또한 보물섬의 지도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 한 하여는 우리 주 예수께서는 목수로써 설계도의 식양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건축물을 온전히 완성하신 분이며, 또 정확한 방향과 거리를 완주해 보물섬에 도달하여 목적을 성취하신 것으로 빗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선지서는 주님에 대한 예언이며, 율법은 주님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언의 성취요, 율법의 실체이십니다. 예언과 율법이 완전히 성취되었으니 이제는 예언과 율법은 효력이나 영항역이 소진되어 가치가 없잖느냐 하는 것입니다.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위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국한된 조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율법을 고집하면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롬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다음은 <마5:17.18>성구에 대한 인용문제입니다.
현재 율법에 대한 이해에 있어 폐지와 존속을 주장하는 두 구릅으로 갈려 끝없이 논쟁을 해 내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존속주장자들은 <마5:17.18>성구를 필자처럼 읽지를 않고 율법이 지구 종말까지 존속된다는 말로 이해를 한 나머지, 이를 끌어다가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주저 없이 인용하여 저들을 단칼에 나가떨어지게 하는 성구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이없고 생각이 모자란 처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첫째로
예수를 믿으면 제1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또 율법을 백독을 해도 예수를 믿으라는 말씀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어떤 이들은 제사법은 폐지됐다고 합니다만 그러면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라는 말씀은 뭐가 되겠습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율법을 마음대로 빼고 넣고를 한단 말입니까!!
또한 자신들은 율법수행은 고사하고 율법의 율자 옆에도 가지 않으면서 율법을 다 지킨 것처럼 당당하게 인용하며 율법폐기론 자들을 이단시 하는 것들과, 더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율법을 지키려는 안식일교도들을 이단시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신앙의 정체는 과연 무어라는 것인가. 이는 너무나 생각 없는 노릇이 아니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래 말씀을 상고해 봅니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성전을 헐면 폐기처분되는 것은 건물과 십계명과 제사장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않되는 대목은 내가 성전을 헐어 버린 실제가 있느냐가 안건입니다. 이제 헐어버린 것들을 두 번 다시 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갈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소 한 마리에 두멍에가 필요 없고, 내 앞에 두 성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한 몸에 두 지게를 질 수 없고, 보약과 독약을 같이 복용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죄와 사망의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을 겸하여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생명의 성령의 법인 하나님의 계명을 소개합니다.
<요한일서 표준새번역>
3:23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3: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압니다.
이 법은 모세가 아닌 천상에서 하강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계명입니다. 여기서 신관은 여호와가 아닌 예수(Jesus)입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은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인 것입니다. 이제는 십계명과는 달리 이 세분을 모시며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주의 이름 예수를 믿고 아래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입니다.
사랑에 대한 계명도 짚고 넘어가야할 것입니다.
구 계명에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입니다. 그러나 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그러면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봅니다. 먼저 구 계명부터 시작합니다. 만약 내 이웃이 is(이스람)라면, 그들의 가게가 부도가날 때 과연 내 재물로 그들을 기업을 받혀 줄 필요와, 또는 그들의 교리로 인해 죽음에 처할 때 내가 저들의 목숨을 대신해줄 필요가 있겠느냐 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신 계명을 논해봅니다. 서로 사랑하라에서 서로라는 범주는 예수 안에 들어선 교우 즉 형제자매들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교우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교회당은 백악관보다 더 위대한 곳이요 교우들의 식단은 청와대의 만찬보다 월등히 훌륭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러니 신 계명은 쉽고 가볍고 편하며 즐거운 계명인 것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멘~ 아멘, 주~ 예수여~~모든 범사에 감사드리옵나이다.~~~
그러면 이제 살인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 하는 류(類)의 가르침은 저 초등생들에게나 가르쳐야 맞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자면, 어떤 성도가 큰소리로 (((엘리야후님))) (((25시님))) (((돌아온 탕자님))) (((부르지저님)))~~~이름을 불러 외장치며 (((살인하지 마십쇼)))~~~라고 큰소리를 질러댄다면 격에 어울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살인과 간음죄는 교회의 소관이 아닙니다. 만약 십계명이 살아있다면 교회당 마당은 투석질로 피로 물들어 있고 우리는 돌로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먼저 돌로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율법시대에는 정(政)종(宗)이 곧 율법이라서 그 율법으로 백성을 이끌어 나갔으나, 이방과 하나 된 후로는 정종이 불리 되어 악역은 정부에서 맡아 하고 있어 살인과 간음을 하면, 경찰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1도 없는 경찰들이 잡어 갑니다. 그러나 경찰이 잡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는 곳 하나님이 붙잡아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요(롬13;4) 하나님의 일꾼(롬13;6)입니다. 이점 복음에 참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위상은 정부청사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여 수준 낮은 율법의 제도와 악역은 정부가 도맡아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이제 교회는 차원 높은 고급법입니다.
<마5:21.22>
5;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아멘~~할렐루야~~~~
구 율법을 폐기할 때 율법은 더욱 굳게 세워지는 법입니다.
**구약계명의 독특한 면은 이방인들에게 전도는 물론이요, 저들의 집에 들어가 식사까지도 금기사항 이였습니다. 반대로 신약계명의 대상은 온 우주만민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십계명이 존속되어 있는 한은 이방인과 강도와 창녀 등등이 구원은 고사하고 돌로 먼저 쳐 죽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십계명을 범한 자를 죽이지 않고 관망하는 것은 명령불종이요 이는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망신을 주는 처사입니다. 십계명은 교회의 교독(交讀)이나 교육(敎育)용만이 아니라, 오직 준수수행이 아니면 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십계명의 주인이신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계명의 저주의 대가(代價)를 십자가로 받아 치르시고 완납된 증거로 죄와 사망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본방은 물론이요, 이방인들까지 주님의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치우시고, 치운 그 자리에 생명의 성령의 법을 세우시므로 율법이 완전히 굳게 세워졌습니다. 유익이 없고 또 그림자 적 율법을 허무시고, 그 허무신 터에 율법의 실상이신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신하시니 율법은 완벽히 굳게 세워졌습니다.
이를 예를 들어 말하자면,
오래된 고택이 낡아 위험을 느낄 때 그것을 헐고 그 터에 새집을 세웠다면 그집은 굳게 세워진 집입니다.
의문의 율법은 죽이는 법이요, 주의이름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복음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롬15:20>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름의 정의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이 내재했다는 증표요,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기 때문에 성호(聖號)가 곧 복음인 것입니다.
거듭남의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예수의 이름을 믿고 부르짖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점에 이의가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요1:12 >
1: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주의 이름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통으로 출생된 자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주 예수이름을 믿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죄 사함도 오직 그 이름을 힘입어야 합니다.
<행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주 예수그리스도의 성호(聖號)가 법제화 즉 하나님의 계명으로 채택됨을 유념하시고 신양생활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의이름이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성령의 이름이요.
예수이름을 믿고 부르짖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유월된 것입니다.
하여 예수의 이름은 생명의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은 성령 충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짖음은 믿음의 증표인 것입니다.
<롬10:13.1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실행 면이 결여된 구원론은 내용물이 없는 공 박스와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공식이요,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 성경의 답인 것입니다.
** 주의 이름을 위해 죽을 각오가 서지 않은 자들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언저리 사람들이요 과녁을 빗나간 화살인 것입니다.
<행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예수이름 외에 안식일이다 또는 침례나 집총과 수혈거부 등등으로 죽는 것은 낭사요 사족일 뿐임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첫댓글 이 글도 명작 명품 게시판에 모십니다.
귀한 글 잘 봤습니다
(먼저, 논지와 반대쪽에 서있는 입장이라 밝힙니다)
논리가 일관되며 관련성구들이 논지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합니다. 천상을 언급하여 순례자길, 타향살이의 애절함과 본향을 그리는 마음이 글에 녹아있습니다. 율법폐지를 유지하시는 입장이신 것은 신학적논쟁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의 집중하시고자 하는 경지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함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속어를 1회 사용하셨으나 글에서 충분히 사과하셨으니 이해가 되어집니다
글에서 뜨거운 뭔가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건필하십시요
답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율법에 한하여는 비록 결이 다를지라도 상대의 글을 정확히 읽 내어 긴글을 짧게 요악하여 요점을 드러내는 그 필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힘을 북돋아 주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르지저 찬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글의 중후함이 뜻밖의 속어로 잠시 가벼워진 부분은 고려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진정한 글은 얼이 있어야 하고 이부분은 감탄을 자아냅니다만
한결같아야 하는데 논지는 일관되나 중후한 무게감의 어조가 잠시 일탈한 부분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표현기교이시리라 쉼표와 같은 쉼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쉬레이 역시~~ 입니다. 혜안과 표현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