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고♡창호10주기 추모사진전을마치고->
1, 한밤의 벨 소리
따르릉,따르릉-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고교 시절 반장 영준이가
'친구야 우리 창호 10주기
추모 사진전을 하자’며
나보고 '추모위원장'을
맡아 달란다,
대뜸 무슨 소리냐? ‘
'나도 투병중이라 상갓집도
안 가는데 .
고인의 사진전이라니’ 하며
못한다 했지만,
거듭되는 그에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고,
그날부터 난 창호의 환영에
사로잡혀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먼저 몇몇 친구들에게
카페마다
남아있는 창호의 사진을
찾는 것에 도움을 청했지만
10년 넘게 시간이 흘러
쉽지가 않았다.
다행히 총동 카페에서
‘영희’가
보내온 100여장의 사진과,
총동 산행 카페 '민순’,
프리첼에서 33‘지동회’의
도움을 받아 300여 장의
사진이 모였지만
안타깝게도 화질이 안 좋아
전혀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플랜 최하위
등급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오랜 기간 동문들의
행사를 촬영해온
‘경흠’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마침내
그에 적극적인 지지와
밤샘
선별작업을 거친 333장의
사진들이 보석처럼
이메일 통해 날아왔다,
내겐 마치
333인의 전사와 같았다,
감동
그 자체였다.
그날 밤부터 나는
고인의 눈과 몸짓이 되어
생전에
최고의 모습이었던
창호를 떠올리며
사진을 선별하였다,
낮에는 전시회가 예정된
<공간 미끌> “침잠”
전시회 중인 후배 '35회
조 주영 작가'를 찾아
최상의 효과를 얻기 위해
수차례 자문을 구했다.
2월초 도봉산
시산제가 있던 날,
‘산악대장 영준’이가
햇빛 잘 드는 카페에
산악회원들을 모아놓고
추모산행과 추모 사진전을
논의하던 중에
조용히 듣고 있던
‘승철’이가 인쇄,
인화, 사진책자 제본까지
사진에 관한 모든 일체를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한다,
그 말에 박수가 터져 나오고
덕균이, 영례,상숙이가
‘찬조대열'에 앞장을 선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간 이식을 받을 때
창호가 병문안 와서
하는 말이
병원에 왜 술이 없냐?
장례식장 가면
술도 주는데,
그나마 장례식이 아니라
다행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눈물 나게
웃다 배가 다시 터지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여긴 모인 친구들 모두가
창호요,
앞으로 누구나 창호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였다.
하산 길에 ‘산악대장
영준’이가
‘32동기 산악회가
서로를 배려해 주는
따뜻한 산악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다,
나도'그런 리더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했다,
결국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도
우리들의 복이요,
좋은 리더는 회원들이 만들고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2, 우리는 겨울 하늘에 봄이 되었다
이른 시산제와 산행으로
아직도 대낮에 날씨는 쾌청,
일찍 들어가면 집에서
혼난다는 너스레를 떨며
산악회 친구들과
자리를 옮겼다,
2차 자리에서는 들풀처럼
거친 '흥병'의 입담에
여동들이 깔깔대며 연신
고개 방아를 찧고
부딪치는 술잔마다 인정이
넘쳐 흐른다,
제법 술이 오른 원이가
내 옆자리에 앉더니
마치 내 얼굴을 제 얼굴 인냥
핥고 빨듯 쪼물락 거리며
전시회 작업할 때
장비를 챙겨와
작업을 해주겠다고 한다,
제법 술이 올랐는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다
원이의 반복적인 배려로
내 얼굴은 그에 손에 뭉개졌고
곰장어, 홍어,
비릿한 통영의 굴 까지 안주
냄새로 뒤 범 범이가 되었다.
‘차라리 내가 그냥 무릎 꿇을게’
했다, 모두가 웃었다,
옆에 있던 승철이도 손을
꼭 잡고 ‘'멋있게 잘해보자’
힘을 주며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오늘은 모두가 창호가 되어
술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추운 겨울 하늘에 따뜻한
봄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마음이 동한 걸까?
‘승철’이에게
연락이 왔다,
사진 출력을 벌써
다해 놨다는 것이다,
오 마이갓!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하며 갔지만
사진은 상상 이외였고
화질도 최상급이었다,
생전에
채식주의자였던
창호보다
때깔이 훨씬 좋았다,
자칭 15억짜리 첨단 인쇄
장비의 결과물 이였다.
고인의
사진을 받아들고 나와서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
사진을 손에 꼭 쥐고 먹는데
갑자기 ‘창호를 두 번씩이나
잃을 수가 없다’ 하는 마음에
울컥하며 눈물이 맺혔다,
그날 창호는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긴 하룻밤을 지냈다.
10년 전,
나는
아들과의 간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고
창호는
딸과의 간 이식을 거부하며
세상을 떠났다,
10년이 흐른 지금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을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도
창호가 선택한 영원한 삶도
아직은 눈물뿐이다,
그저 살다
떠나가는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제일 중요한 것은
32 동기들과의 공감이었다,
하여
사진 작업 과정은 물론
전시회 준비 및
홍보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동기 밴드에 공유하며
창호의 눈과, 귀가되어
생전의 그를 송환해
친구들과의 추억속에
흠뻑 빠져 보았다,
3, 망각도 큰 선물이다,
드디어 전시회 날,
이른 새벽부터 일정에 맞추어
청아공원에서 추모식과
관악산 추모산행이 이루어졌다.
이어 ‘공간 미끌’에서는
전시회의 서막이 오르고
많은
친구들의 발길과
19임재봉, 31정권천,
36정순철 동문들의
마음이 속속 전해져왔다.
멀리 제주에서
‘찬’이가 날아오고,
영주에서 ‘흥병’,
원도‘병수’, 당진에서 '상연’,
미국에서 온 ‘을성’,
제천 찍고 온 '운택'이가
연일
반가움을 전해온다.
전시장에서는
22장의 대형 사진과
영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600여장의 사진 퍼즐들이
매 순간
추억의 빛을 발하며
맞춰질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사진 속의 창호가 연실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친구들은 큰 웃음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생전이나 지금이나
창호는 친구들에게
맑은 웃음을 주는
그런 친구였다.
그렇게 전시회의
막이 내려지고
그리움은 정지된
시간의 길목에서
찰나의 순간들에 대한
깊은 고뇌와 성찰
그리고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동과
성취감을
각자의 마음속에
선물로 남겨 주었다.
전시회를 마치며
총평회 자리에서
산악대장
‘영준’이가
‘이제 우리는 창호를 떠나
보내려 합니다’ 하니
‘민순’이가
‘그래 망각도 큰 선물이야’ 한다.
사진은
6월 산행 때
소백산 자락 ‘최풀가든’에서
소각하기로 하였다.
뒤풀이 자리에서
‘대장!!!
다음 기항지는 어디요’
물어보니
얼큰하게
술이 오른 '영준’이가
다음은
‘하와이 갑시다’ 한다
‘좋은 사람들 과 좋은 날
놀러 갑시다’ 한다
역시 우리의 리더 답다,
덕분에 울다가 또 웃는다,
우린 그렇게 웃으며
친구를 떠나보냈다,
꽃비 흩날리는 시리도록
고운 봄날에~
잘 가라 창호야!
사랑한다~.
첫댓글 아.
너무도 진하게 스며든
따스한 향기여!
다시 있을 수 없는
단 하나 최상 감동의
'보고픈 친구 추모사진전'
10년이나 흘렀으면
가벼이 추억하고
가도 그만일 텐데
역시 꿈꾸는 청년들인
32회 후배님들은
달랐다.
나는
한 편 수필 속에 빠지고
모두가 만든 다큐영화에
흠뻑 취했다.
내가 이렇게 기쁘고
감격해 눈물이 흐르는데
하늘나라
창호 후배님은
어땠을까.
사정이 있어
6개월 넘는 시간 동안
사람과 만남, 모임,
활동들을 모두 접은 채
침잠하다가
오늘 아침
불암산 정상 태극기
빠락빠락 춤추는 소리
귓가에 생생하기에
이곳엘 찾아 들었더니.
그래!
언제나 팔팔대며
꿈꾸는 32기 후배들이
또 한 건 근사하게 해냈구나.
내가 그 사진전 현장에
있는 착각에 빠지도록
멋진 김광복 후배님
사진작가 수필작가의
대단한 감성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가요.
실제로 32기 후배님들과
그 자리 함께 했더라면
나도 그대들처럼
얼싸안고 울었을 거요.
참 자랑스럽다.
곁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팔딱팔딱 뛰며 꿈꾸는
그대들이
나의 후배님들이어서.
에고
감사합니다 온화 선배님
먼저
사진반 야유회 핑계삼아
이제서야 답글 올려죄송
해욤
새삼
살아
보니 사는것도 죽는것도
인생의 노래가 되더군요
하여
친구
들과 가던길 잠시멈추고
장구
치고 북치고 놀았답니다
산악
대장 영준이가 진두지휘
하고
저는
추임새만 쬠 넣었답니다
이리
지혜롭게 바라봐 주시니
온화 선배님의 따뜻하신
맘과
삶도
아름다운 노래가 되겠죠
언제
한번
들려주세요 살아보니 께
그래도 살만 하더라고요
조은
날에
자주
뵈요^^
멋있읍니다 창호는 행복하겠다 (26 차경호)
꾸벅
따뜻한 마음으로
보아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나의
모습이 누군가엔
삶의
이유가 되곤하죠
멋지
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