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학사전
● 프로야구 소사( 80년대, 90년대) ○ 연도별 우승팀 ○ 2000프로야구 일정
1982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MBC와 삼성의 첫경기를 시작으로 한국 프로야구시대 개막. 창단팀은 서울의 MBC 청룡(감독 백인천), 인천-경기-강원의 삼미 슈퍼스타즈(감독 김진영), 대전-충청의 OB 베어스(감독 김영덕), 광주-호남의 해태 타이거즈(감독 김동엽), 대구-경북의 삼성 라이온즈(감독 서영무), 부산-경남의 롯데 자이언츠(감독 박영길)등 총 6개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시구로 열린 개막 경기에서 MBC는 연장 10회말 이종도(李鍾道)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11-7 승리. 여기서 만루홈런을 내준 삼성 이선희(李善熙)는 시즌을 마감하는 OB와의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에서 김유동(金裕東)에게 또다시 만루홈런을 허용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7월 4일 서울에서 벌어진 올스타전 3차전에서는 롯데 김용희(金用熙)가 만루홈런을 터뜨려 사상 첫 미스터 올스타의 영광을 손에 쥐는 영광을 안게된다.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가려진 운명의 10월11일 서울운동장의 6차전. "만루홈런으로 동트고 만루홈런으로 저물다"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낳은 한판승부. 박철순이 이번 시리즈 들어 처음으로 선발로 등판, 이선희와 완투대결을 펼쳤다. 양팀은 8회까지 3-3으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가 OB가 9회초 2사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이선희는 신경식에게 밀어내기 포볼을 내줘 균형이 무너졌고 김유동은 낙담한 이선희가 던진 한복판 초구를 통렬한 좌월 만루홈런으로 연결시켜 8-3으로 승부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김유동의 이 만루홈런은 결승타는 아니었지만 OB가 우승을 확정짓는 데 극적이고도 결정적인 일타였기 때문에 시리즈 MVP의 영광은 그에게 돌아갔다.
MVP - 박철순(OB):24승 4패 7세이브 방어율 1.84
1983
원년에 2백13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관중을 동원한 프로야구는 1983년에는 3백87만5천명으로 관객이 급증하는 대성황을 누렸다.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제패의 주역들인 국가대표선수 최동원, 김시진, 장효조, 한대화, 박종훈, 이해창, 유두열, 정구선과 재일·재미동포선수 장명부, 주동식, 김무종, 이영구, 이원국 등 대거 입단.
장효조 타율·최다안타·장타율·출루율 부문에서 1위 차지. 장명부는 30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 외 최다출장(60), 최다선발(44), 최다 타자 상대(1712), 최다 투구이닝(427 1/3), 최다 투구수(5886), 최다 완투승(26) 등 기록.
MVP - 이만수(삼성):타율 .294 홈런 27 타점 74
1984
전기리그에서 9승을 따내 데뷔 시즌(1983년)의 성적을 이미 달성한 최동원은 후기리그에서 동료투수들을 '바람잡이' 삼아 주로 구원투수로 활동, 총 50게임 중 무려 31게임에 등판해 18승6패5세이브 기록. 팀이 후기에서 거둔 29승중 79%인 23승을 담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1등공신이 된다.
역사에 길이남을 삼성 대 롯데의 코리안 시리즈. 9월 30일부터 열린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저주기 까지하며 선택한 롯데에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 특히 최동원은 한국 시리즈 6경기에 등판 4승2패를 올리는 전대미문의 활약을 펼친다.
이만수 타격왕 만들어주기 추태. 삼성은 이만수와 홍문종의 타격왕 경쟁 마지막 맞대결 무대인 삼성-롯데의 2연전에서 주전포수 이만수를 벤치에 앉혀두고 홍문종은 전혀 타율의 변동이 없게끔 모든 타석을 고의4구로 걸리는 작전을 써, 홍문종은 9월 22일 게임에서는 누상의 상황과 전혀 관계없이 5타석을 전부 고의4구로 걸어나갔으며 23일 게임에서도 4타석을 똑같이 출루, '9연속 고의4구출루'라는희한한 기록을 얻게 됐다. 삼성구단의 눈물겨운 지원(?)을 등에업은 이만수는 기어코 타율, 홈런, 타점, 장타율 부문에서 1위에 등극, 최초로 타격 3관왕을 거머쥔다.
MVP - 최동원(롯데):27승 13패 6세이브 방어율 2.40
코리안 시리즈 4승 2패
1985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에 매각. 삼성이 트리오 김시진, 장효조, 이만수의 활약에 힘입어 전·후기 통합우승. 종합승률제 실시로 코리안 시리즈 무산
선동렬 3월25일 계약금 1억3천8백만원, 연봉 1천2백만원에 해태와 전격적으로 입단계약. 7월 2일 대구 삼성전서 프로데뷔. 거물 김일융과 맞대결한 선동렬은 7회까지 서로 무실점으로 팽팽한 대결을 펼쳤으나 8회말 집중 5안타를 얻어맞고 5실점, 5-0으로 패전투수가 되는 것으로 데뷔전을 마쳤다. 선동렬은 후기에서 25게임에 등판, 단 1게임만 완투하고 주로 롱맨으로 활약하면서 7승4패8세이브를 기록. 111이닝에서 방어율 1.70의 성적을 올린 선동렬은 110게임을 치른 이 해 규정투구횟수를 아슬아슬하게 넘겨 방어율 1위에 만족하며 데뷔 시즌을 마친다.
허리부상으로 신음하던 박철순 8월 20일 청보와의 대전경기에 선발등판, 6회까지 삼진 8개를 뺏으며 4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9-1로 승리. 1982년 9월23일 해태전에서 구원승을 거둔이후 무려 1,057일만에 승리를 맛본다.
MVP - 김성한(해태):타율.333 홈런22 타점75
최다안타(133) 장타율(.575) 1위
1986
제 7구단 빙그레 이글스(감독 배성서)가 대전, 충남, 충북을 연고로 출범.
선동렬 8번의 완봉승을 거둬 신기록 수립.
OB 한대화 1985년 11월 23일 해태 황기선(黃起善)·양승호(梁承虎)와 2-1 트레이드
OB-MBC 잠실구장 공동사용 합의, 롯데 홈구장을 구덕에서 사직구장으로 변경.
MVP - 선동렬(해태):24승3패6세이브 방어율 0.99
1987
군웅 할거의 시기.
투수부문에서 선동렬이 방어율과 승률, 김시진이 다승, 김용수가 세이브, 최동원이 탈삼진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한다. 타격부문에서는 장효조가 타율, 이정훈이 최다안타, 김성래가 홈런, 이만수가 타점 1위에 등극.
4월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세기의 수퍼스타 선동렬과 ‘무쇠팔 ’최동원 간의 숙명의 라이벌전.
선동렬:162이닝 16자책점으로 방어율 0.89의 세계야구사의 최고기록.
프로원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주역들 중 MBC 이선희, OB 이종도, 빙그레 김우열 은퇴.
김시진 10월 3일 OB와의 잠실경기에서 7-0으로 이겨 시즌 23승째이자 대망의 개인통산 첫 100승 고지 등정.
인천 연고의 삼미슈퍼스타즈를 인수한 청보 핀토스는 2년반만에 구단을 다시 태평양화학에 매각.
MVP - 장효조(삼성):타율 .387 홈런2 타점58
1988
창단 첫 해 꼴찌, 이듬해인 87년 6위로 바닥을 헤매던 빙그레는 전기리그에서 일약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더니, PO에서 삼성마저 3연패로 격침시키며 창단 3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킨다.
프로야구선수 142명이 1988년 9월 13일 대전 유성관광호텔에 모여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약칭 선수회) 를 결성. 이 모임의 후견인인 최윤식(崔允植)씨가 아들 최동원의 명의로 8월 10일부터 전체 선수들에게 선수회 결성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 창립총회를 열고 선수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구단들의 반대와 선수들 자신들이 선수회 조직을 계속 끌고 나가겠다는 단합된 의지와 구심점이 사라지는 바람에 선수회는 활동을 개시하기도 전에 해체돼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선수회 파동의 주축인 롯데 최동원은 삼성 김시진과 11월 23일 전격 트레이드돼 타의로 고향 부산을 등지는 아픔을 겪는다.
김상훈 타율, 이순철 도루, 김성래 출루율, 선동렬 방어율과 탈삼진, 윤학길 다승, 윤석환 승률과 세이브로 각각 1위 차지.
MVP - 김성한(해태):타율 .324 홈런30 타점89
최다안타(131) 1위 장타율(.577) 1위
1989
단일 시즌제 채택으로 4위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 제 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MBC청룡 럭키 금성에 야구단 매각.
고원부 타율 1위, 이강돈 최다안타, 김성한 홈런·장타율 1위, 유승안 타점, 김일권 도루, 한대화 출루율 1위 차지.
MVP - 선동렬(해태):21승3패8세이브
승률 .875 방어율1.17 탈삼진198 투수 3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