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프라하의 존 레논과 카프카
여성조선 2023.07.05
프라하 카를교 블타강변에는 ‘존 레논의 벽’이 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 것은 아니다. 1980년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던 존 레논이 암살당한 후 공산주의 체제에서 억압받던 체코의 젊은이들에게도 자유 열풍이 불어 닥쳤다. 당시 익명의 화가가 레논의 초상화와 비틀스의 노랫말을 그린 것이 ‘레논의 벽’의 시작점이었다. 또 프라하에는 유대인 타운이 있다. 그곳은 체코 대표적 유대인 작가인 카프카의 삶이 있는 지역이다.
레논의 벽.
레논의 벽.
레논의 벽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카를교를 여러 번 건너게 된다. 낮과 밤 풍경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레서 타운의 다리 탑(Lesser Town Bridge Tower, Malá Strana)을 기점으로 블타강변 길은 두 군데로 나뉜다. 일단 레논의 벽(Lennon Wall)이 있는 대수도원 광장(Velkopřevorské náměstí)으로 간다. 가는 길목에 ‘악마(Devil's Stream)’라는 의미인 체르토브카(Certovka) 수로가 있다. 체르토브카 수로는 캄파(Kampa) 섬의 경계가 된다.
체르토브카 수로.
체르토브카 수로의 연인.
레논 벽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수도원 광장은 그리 넓지 않고 사방이 막혀 있다. 레논 벽은 체코 몰타 기사단 대사관의 일부다. 레논 벽 맞은편에는 체코주재 프랑스 대사관이 있다. 그렇다면 영국 전설의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이 체코 프라하를 왔을까? 아니다.
1980년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던 존 레넌이 암살당한 후 공산주의 체제에서 억압받던 체코의 젊은이들에게도 자유 열풍이 불어 닥쳤다. 당시 익명의 화가가 레논의 초상화와 비틀스의 노랫말을 그린 것이 ‘레논의 벽’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이 벽은 존 레논, 평화, 서구 문화, 정치 투쟁 등과 관련된 주제의 그림들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레논의 벽의 그래피티.
몰타 기사단은 벽에 시민들이 그래피티를 그릴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낙서 행위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지우지 않았고, 체코의 공산 정권도 치외 법권에 해당해 낙서를 강제로 삭제할 수 없어 ‘평화의 벽’으로 상징됐다. 근처 카를교에서 학생 수백 명과 정보경찰 간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학생들이 추종한 자유화 운동은 ‘레논주의’로 불렸으며 공산정권에 있어 골칫거리였다. 정권 인사들이 벽을 도배해도 다음날이 되면 시구와 꽃들로 벽이 다시 가득 찼다. 레논 벽은 지속적으로 모습이 바뀌어 갔으며 처음에 있었던 레논의 초상화는 새로 그린 그림들 아래 덮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었다.
그러다 2014년 체코의 행위예술가 그룹에 의해 밤 사이 레논 벽은 하얀 페인트로 뒤덮었다. ‘벽은 끝났다!’(WALL IS OVER!)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후 누군가가 노래 제목인 ‘전쟁은 끝났다!’(WAR IS OVER!)로 고쳐놓았다. 결코 끝나지 않은 레논 벽은 2019년부터 야외 갤러리가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의 낙서장이 되어 사랑 고백과 평화와 인생의 심오한 화두들이 모두 모여 있다. 볼만한 레논의 벽이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레논 거리 근처의 바에서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체코 맥주를 마시는 일일 것이다.
카를교 밑 카페.
캄파섬
레논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캄파(Kampa) 섬이 있다. 좁은 인공 수로인 체르토브카 수로가 캄파 섬의 경계가 된다. 이 지역에 살았던 날카로운 혀를 가진 여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섬 이름이다. 캄파섬은 17세기 화이트 마운틴 전투 동안 이곳에 텐트를 쳤던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캠퍼스(field)로 명명됐다.
캄파 섬에는 중앙 유럽(주로 체코) 작품을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인 캄파 박물관(2003년 개관)이 있다. 섬의 동쪽 기슭에는 15세기의 거대한 소바스 물레방아(Sova’s Mills)가 있다. 강 위 야외 전시관에 있는 막달레나 예텔로바(Magdalena Jetelova)의 거대한 의자 조각은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블타강과 아름다운 가옥이 그림같이 어우러져 ‘프라하의 베니스’라고 불린다. 섬의 잔디밭은 피크닉과 휴식 장소로 인기다. 섬의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보려면 배를 빌리거나 블타바 강에서 증기선 유람선을 타면 된다.
카프카 박물관.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레서 타운의 다리 탑을 기점으로 북쪽의 블타강변을 따라 올라가면 ‘카프카 박물관’을 만난다. 작은 박물관 입구에는 호수에 소변을 보는 두 남자의 청동 분수인 ‘오줌(Piss)’이라는 청동상이 있어서 절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동상은 2004년 체코의 도발적인 조각가인 다비드 체르니(David Černý, 1967년~)의 작품이다.
박물관에는 카프카의 책, 편지, 일기, 그림과 같은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특이한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인테리어를 했다. 공간은 어둡고 긴 붉은 빛의 계단과 신비한 음향 효과와 같은 특별한 요소가 있다.
레서 타운의 다리 탑 아래.
박물관을 지나 강변을 따라 더 위쪽으로 오르면 블타강에서 노는 백조도 볼 수 있다. 야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만난다. 손님이 거의 없는 바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블타강변으로 떨어지는 해걸음을 즐기는 재미가 좋다.
프라하 유대인 타운의 카프카
프라하에는 카프카와 연관된 것들이 많다. 황금소로를 집필을 했던 집과 블타강변의 카프카 박물관 말고도 올드 타운의 유대인 지구에 가면 카프카의 삶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올드타운 쪽에는 유대인 타운이 있다. 그곳 두슈니 거리(Dušní Street)에는 높이 3.75m, 무게 800kg나 되는 카프카 동상이 있다. 체코계 유대인 조각가, 화가인 야로슬라프 로나(Jaroslav Róna, 1957년~)의 작품이다. 1990년대 초에 제작을 시작해 2003년에 공개된 이 거대한 카프카 동상은, 2004년 건축가 커뮤니티 그랑프리 상을 수상했다.
유대 지구의 카프카 동상.
황금소로 22번지.
카프카 동상은 프라하 유대인 구역을 알려 주는 이정표다. 유대인 지구의 길모퉁이에 있는 그의 생가에는 카프카의 이름을 딴 카페가 있으며, 벽에는 그의 흉상이 걸려 있다. 심지어 거리 이름도 ‘프란츠 카프카’로 불린다. 또한 카프카가 다닌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생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프라하의 유대인 마을
작가 카프카가 나고 자란 곳은 ‘유대인 마을’로 불린다. 아직도 이곳에는 오래된 유대인 회당들이 흩어져 있다. 요세포프(Josefov)는 도시의 유대인 게토였다. 1850년 ‘유대인 타운’이라는 뜻의 원래 이름인 지도프스케호 몌스토(Židovské město)에서 현재 이름으로 변경됐다.
현재 이름은 마리아 테레사의 아들인 요세프 2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요세프 2세가 1781년 유대인 거주자들에게 평등권을 부여하는 관용법(Tolerant Patent)을 반포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지역은 흔히 지도프스케 게토(Židovské ghetto)라고 불렸다. 게토의 좁은 길은 1893년~1913년 재개발로 사라졌다.
현재 이곳에는 유대 구청(Židovská radnice, 지도프스카 라드니체)을 비롯해 13세기~19세기에 이르는 유대회당이 아주 많다. 클라우스 시나고그(Klausova synagoga)는 1694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프라하의 게토에서 가장 큰 것이다. 16세기 후반 모르데하이 마이셀(Mordechaj Maisel)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운 병원, 시나고그, 탈무드 학교 등이 화재로 사라진 자리에 지어진 것이다.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했다는 <변신>(1915)이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대표소설이라고 학창시절에 배웠다. 실제로 프라하에 와보니 <프라하의 봄(원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으로 알려진 작가 밀란 쿤데라보다는 카프카에 대한 메모리얼이 훨씬 많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나고 자랐고 이곳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카프카(Kafka)라는 성은 체코어로 ‘검은 까마귀’라는 뜻이다. 자수성가한 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평생 ‘밥벌이(브로트베루프, Brotberuf)’를 하기 위해 애썼다.
1901년 카를 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계 보험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죽기 2년 전까지 샐러리 맨으로 살았다. 카프카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변신>이라는 책을 통해 많이 보여진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이면 글을 썼다. 생전에 카프카는 본인의 작품이 세간이 나오는 것을 꺼려해 다 불사르라고 했지만 절친에 의해 출간됐다. 41세의 생을 마감한 그는 프라하 유대인 묘지에 매장돼 있다.
카프카의 가족사
카프카는 유대인이었고 현재 남아 있는 유대거리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콘골드(1972)에 따르면 ‘거대하고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업가’로 그려졌다.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몰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평일에는 부모가 집에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사업을 도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아이들은 보모와 하인들이 돌아가며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상인의 기질이 보이지 않자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대학교(카렐 대학교)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1906년 카프카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시민법정과 형사법정에서 1년간 의무 과정으로 서기를 했다.
1907년 이탈리아계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거의 9개월 정도 일했다. 그는 그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1908년 일을 관두고 2주 후 보다 마음에 드는 보헤미안 왕국의 노동자 사고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해 밤늦도록 글을 썼다.
카프카의 연인들
카프카는 싱글로 살다 죽었지만 평생 4명의 여인을 사랑했다. 펠리체 바우어, 율리 보리첵, 밀레나 예젠스키, 도라 디아만트다. 첫 번째 연인은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 1887~1960). 1912년, 그의 평생지기인 막스 브로트(Max Brod, 1884~1968)의 집에서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 1887~1960)를 만났다. 그는 29세, 그녀는 25세였다. 그녀는 속기용 구술 녹음기 회사인 베를린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후 5년간 상당량의 서신왕래를 하였고 종종 만났다. 두 번 약혼했고 1917년 그들은 헤어졌다.
카프카의 두 번째 연인은 율리 보리첵이다. 1919년 여름에 그녀와 약혼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났다. 율리 보리첵의 아버지 직업은 최하층을 의미했다. 보리첵의 아버지는 프라하 근교 유대인 회당의 사무보조원이자 구두 수선공이었다.
카프카의 세 번째 연인은 밀레나 예젠스카(Milena Jesenská)다. 그녀는 체코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였다. 카프카와 만났을 때 그녀는 기혼이었다. 밀레나와 1920년 대 초반부터 2년간 깊은 관계를 맺었다. 밀레나는 카프카가 교류한 여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의 문학을 이해했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소통이 가능했던 단 하나의 여인이었다.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은 도라 디아만트(Dora Dymant, 1898~1952)다. 1923년, 그는 가족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잠깐 가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도라 디아만트를 만나 함께 살았다. 그녀는 정통 유대교 집안 출신으로 유치원 교사였다. 그러나 결핵은 악화되었다. 그는 프라하로 돌아왔다. 그 다음 비엔나에서 가까운 결핵요양소에 갔고 그 곳에서 1924년 6월 3일 사망했다.
Travel Data
레논 벽 주소: Velkopřevorské nám, 말라 스트라나
캄파섬 주소: Cihelná 635, 말라 스트라나
카프카 박물관(Muzeum Franze Kafky) 주소: Cihelná 635, 말라 스트라나 /전화: +420257535373 /웹사이트: https://kafkamuseum.cz/en/
카프카 동상(Statue of Franz Kafka) 주소: Dušní, 프라하 /웹사이트: https://www.prague.eu/en/object/places/1872/statue-of-franz-kafka
프라하 유대인 지구(Prague Jewish Quarter) 주소: Prague Jewish Quarter /웹사이트: https://www.jewishmuseum.cz/en/info/vis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