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오랫동안 빛을 보지 않은것인지 아니면 앓고 있는 지병의 상세가 심각한 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창백한 피부의 노인. 그는 마법사였다. 신께서 짜놓은 복잡하고 균
형있는 인과의 법을 늘이고, 신의 저울대의 근수를 속이는 이적을 발휘하는 마법사.
"본의 아니게 세계를 구하게 되는군..."
탑의 다른 공간과 완전히 괴리된 어떤 밀실. 대낮임에도 어둠으로 가득찬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노인은 한숨을 토했다. 원래 이럴려고 마법을 배운게 아니었는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의 꿈과 계획을 모두 무위로 돌릴 어떤 몹쓸 인간떄문에 쓸데없이 마
력을 낭비 하여야만 했다.
"젠장."
노인은 씹어 뱉듯이 말을 끊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여 자신의 무병 장수에 별로 도움
이 되지 않을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이제 마법발동의 클라이 막스로써 엄청난 정신집중
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석달간 세번 실패했다. 아무리 자신이 대륙에서 손꼽히
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과연 이번 시도에서도 성공할지 의문인 그런 고차원의 마법이
었다. 소환...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잠시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눈을 감으라는듯한 달콤
한 정적. 하지만 노인에게 있어선 무엇보다도 골치 아프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계의
소환자를 강제로 끌어오기 위해 필요한 공간 좌표계산이 단 한자리만 틀려도 또 주문
실패. 그렇게 된다면 노인도 더이상 이 마법에만 전념할수 없게 되는것이다. 이래뵈도
노인은 한 조직의 수장. 이미 그가 자리를 비운지 오래되어 내부에 쌓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더 이상 이쪽에 신경쓸수 없게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노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한손으로 훔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네번만에 정해진
시간안에 좌표계산을 끝냄으로서 주문의 어려운 고비를 넘은것이었다. 무려 4개월만에
.. 이제 어려운 일은 다 끝났다... 하고 그는 안도했다.
손. 손이 움직인다. 손가락의 유연한 움직임으로 신의 의지를 무기로 삼고 인과의
법으로 그의 늙은 옴몸을 감춘다.
다리. 다리가 움직인다. 비록 기력은 쇠하였으나 한줄기 남아있는 자기 자신의 의지로
힘차게 지역을 눌러 저울대의 근을 속인다.
입. 그리고 인간의 몸중 유일하게 의지를 직접적으로 발출시켜주는 혀..
노인은 혀에서 쏟아지는 언어에 자신의 모든것을 담았다. 인과, 법 , 상념 , 절규 ,
소원, 희망, 강박감, 공포, 생명, 마력. 노인의 모든것을 조금씩 담은 언어는 이제 일
체화되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켜 저 거대한 인과의 법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깨어
지고 불타오른다. 부서지고 가루가 된다. 거대한 신의 의지의 일부분과 보잘것 없는
한 인간의 모든것이 부딪혀 으스러진다.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고통의 신음소리가
모든걸 채운다.
...믿기지 않게도 인간의 의지는 신의 거대한 사슬의 한 귀퉁이를 뚫고야 말았다. 그
리고 이미 소진되어버린 자신의 대부분을 버리고 아직 생생한 일부를 떼어내어 그들을
도피시킨다. 빛보다 빠르게 그들은 인과의 중심부에 다다러 시전자와 공명했다. 일부
를 제거키 위해 사슬이 스스로의 안을 헤집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은 그보다 먼저 약속
된 언어를 내뱉는다. 약속된 언어로 내려진 명령은 신의 명령으로 거짓 인식되어 바람
과 영혼을 가르며 쏘아졌다. 사슬은 헛걸음을 했을 뿐이다.
노인은 힘겨운 고성을 지르며 주저않았다. 가쁜숨을 들이키고는 있지만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앓던 이를 빼어버린듯 만족한 표정이다. 이제 그의 의지는 확실
히 이루어질것이다... 확실히. 차원의 인과율에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소환술.
하지만, 그 소환은....
[G.E.S.F] (고교생 이계 강제 소환 판타지)
제 1화... 늘 그렇듯이, 강제 소환.
"판타지? 그딴건 안읽어. 예전에는 기존 문단이 비교적 식상한 사랑 얘기나 되풀이하
고 있었고 뭐, 새로운 종족에 세계를 구하느냐 마느냐 하는 방대한 스케일이 재밌었
기 때문에 읽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재미가 없어. 모조리 매너리즘에 빠져서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 하고 있거든."
"... 이봐, 그건 대부분의 일반인이 하기 쉬운 일반화의 오류아냐? 너마저 그럴줄은
몰랐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야지. 하여간 같은 내용이라는게 대체 뭐냐?"
"일단 거의 비슷한 이야기로 빠져드는 류들이 형성되어 있어. 일단 가장 폐혜가 심각
한 사이케델리아류. 물론 원작은 정말 재미있었고 새로운 내용이란것을 인정하지. 하
지만 그 후로 원작에 인기에 편승하려는 수많은 아류가 생기면서 문제가 심각해졌어.
무작정 우리같은 고교생이 이동해서 판타지 세계에서 성격 파탄자로 바뀌고 사람죽이
기를 우습게 알며 별 목적없이 떠돌아다니는... 중간중간 여자들 꼬이는 이벤트만 바
뀌는 일명 일명 고교생 이계 강제 소환 판타지가 시작된거지. 또 여기서 드래곤류가
파생되며 문제가 심각해졌어. 그냥 판타지 세계에서 즐겁게 논다....란게 중심이 되니
까 그냥 낙서 수준으로 판타지라 불릴수 있는 소설의 질이 저하된거라고. 문체도 뭣도
없는. 낙서. 그런게 출판되니 또 문제고 말이야... 전혀 자격없는 작가가 나타나는 거
지.. 저놈처럼."
늘 그렇듯이 오창고등학교 2학년 4반의 쉬는시간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주목받
는 신예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한철영군과 인터넷 청소년 웹진의 잘나가는 인기기자
인 신재국군의 설전으로 시작했다. 이미 부와 명예와 지성을 움켜쥔 두사람의 불꽃튀
는, 사회 전반의 현상으로 부터 요새 이슈화 되는 또 거품이라 비판의 대상이되는 판
타지 소설에 대한 이야기 까지 둘의 설전은 광범위 했고 또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으
로, 주위에 아이들이 떠드는걸 멈추고 저절로 귀를 귀울이게 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여튼 철영이 저런것도 글쟁이라고 명함 내밀수 있냐.. 하는 시선으로 한 아
이를 바라보자 주위의 시선이 모두 그곳을 향했다.
소위 상고 머리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아라면 군대가기전 울며 해야 할 모범
적인 머리를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니, 선생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모범학생
이라 칭찬을 해야할. 그는 주위에서 반경멸적인 시선이 자신을 쏘아붙이고 있는지조차
모른체,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한철영의 입가가 끌어
올려졌다. 순수한 웃음 따위가 아닌 경멸 그 자체였다. 철영의 학교 커트라인을 간신
히 오버하지 않는 찰랑이는 단발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어이, 우영상. 뭘 그리 쓰고 계신가? 또 낙서지? 낙서구만. 또 그 잘난 일기체로 상
상속의 하렘을 만드는거냐? 키스 한번으로 여자가 붙는 초절정 미남 주인공의? 안봐
도 뻔하구만. 대충 이런 내용이지? 지금 쓰는거. [나는 사악하게 웃으며 단숨에 전사
를 돌려차기 해붜렸다. 으아악 거리며 그가 쓰러지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뒤로
돌아 엄청난 미녀인 엘프와 썸씽을 벌였다.] 안그래? 이딴거 보다 문체부터 바꾸는게
어때? 전사를 돌려차기 해붜렸다? 초등학생이냐? "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듣자 우영상의 안색이 변했다. 아니 진짜 모욕이었다. 아무리 제
가 선배 문인들에게서 인정받고 또 많은 팬을 거느린 문학상 수상의 신인 작가라도 남
의 글을 그렇게 폄하해도 되는건가? 자신도 글을 써봤으니 알것 아닌가? 글 한줄을 토
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격어야 하는건지. 뭐 영상 자신에게는 별로 안통하는 말 같
지만.. 하여튼 왜 나를 붙들고 늘어져야 하지? 철영이 환상보다는 리얼리티를 추구하
고 또 깨달음을 추구한다는걸 알지만 그것을 남에겐 강요할수 없는 이야기다. 난 그저
대중이 원하는대로, 또 내가 원하는대로 재미만을 추구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됬
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 이 많은 상념은 오히려 밖으로 빠
져 나오는데 상당한 문제였고 결국 입밖으로 토해진 말은 간단했다.
"그..그래. 하지만 그..글은 재미..만 있으면 되는거 아냐?.."
이번엔 철영의 안색이 변했다. 재미라. 그것이 나쁘다는건 아니지. 하지만 현실을 완
전히 무시한체 재미만을 쫓는다는것이 읽는 자에게 어떤도움을 줄지는 전혀 알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재미만을 위해 사람이 개미목숨처럼 죽어나가고 여인들을 모아 하렘을
만드는 이야기를 읽는다는건 도움은 커녕 정신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는것 아닌
가. 그런 이야기를 초등학생정도의 문장력으로 표현한다는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철영의 입에서는 기름이라도 친듯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 꾼이었으니까.
"물론 시간죽이기로 글을 읽을수도 있다는건 인정해. 하지만 넌 재미있으라고 네 동생
한테 도색소설을 쥐어주냐? 네가 재미만 쫓는다면, 그 도색소설과 네 글이 다를게 뭐
가 있어? 안그래? 네 말은 괴변이야. 싸구려 타자(打字)."
영상의 이가 악물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싶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런걸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런건, 내 자신부터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구.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조용히 돌아앉아 오늘 올릴 분량을 연습장에서 찣어 볼품없이 구겨버린다. 아니 갈기
갈기 찣었다.
딩동-
몰개성의 종소리가 잠시 울린뒤, 종례가 끝났다. 학교가 끝났다. 파했다.
아직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기간은 아니라 아이들은 일찍 집에 들어갔다.그래봐야
이제 지옥문이라 불리는 고3이 머지않아 다들 학원에 가지만.
우영상은 조용히 생각에 잠겨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지금 자기가 쓰는 퓨전 판타지
소설을 집어 치우고 싶은 생각은 요새 종종 하고 있는 터였다. 자기가 글을 잘 못쓴다
는거, 잘 안다. 철영에게 물어보니 많이 쓰면 고쳐진다고 해서 어디 판타지 소설 홈페
이지 습작란에 연재하나를 시작한게 벌써 7개월전. 으외로 그글이 재미있었던지 추천
란에 조금은 모습을 드러냈고 급기야는 출판 제의까지왔다. 아무생각없이, 철영과 같
은 작가가 된다는것이 마음에 들어 승낙한 출판. 마감날은 다가오고 고료는 짜고 철영
은 자신을 매일같이 비웃는다. 그것만이 아니다.자기가 쓰는 판타지 홈페이지의 게시
판에는 심심치 않게 때려 치우라는 이야기가 들었있었고 욕메일을 견디다 못해 메일
주소를 바꾸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더 그만두고 싶지만 이미 계약을 한몸. 이젠 마음
대로 끊지도 못한다.
"하아...."
일탈. 그의 소설에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다. 그부터가 우선 일탈을 꿈꾸고 있
기 때문에. 한국에서 재능없는 고교생의 삶은 정말 어려웠다. 힘들었다. 집안도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니다. 여자친구? 그건 꿈속에서나 사귀어본 일이다. 그의 얼굴은 정말
평범했다. 싸움실력? 맞아 죽지않으면 다행이다..
그의 소설은 다들 쓰레기라 평가하는 고교생 이계 강제소환 깽판 판타지다. 그안에
투영된것은 진실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신들린듯 주인공을 먼
치킨으로 (롤플레잉 게임등에서 무적 캐릭터로 나오는 것을 통칭함)만들고 온갖 썸씽
을 엮었다.한때는 그것이 내 소설의 주인공에게 애착이 있어서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어디까지나 그냥 자기 만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과 나를
일백퍼센트 동일화 시키고 있었으니까.
걷다가 한숨을 쉰 영상은 초점없는 눈으로 어느집 대문가에 앉았다. 갑갑해.. 이동하
고 싶다. 내가 즐겨 쓰는 판타지 세상으로... 거기서 강해지고 싶어... 세로운 세상에
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다. 검과 마법이 있고 아름다운 다른 종족과 멋진
로맨스가 있는 세상을 유랑하고 싶었다.
"..가자. 다른.. 다른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혀끝으로 말을 굴려본 영상은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부모한테 맞아 죽던가 트럭에 까려 쥐포가 되
야 이동이 가능한건가? 하여튼 이런 숨막히는 세상에서 살기는 싫었다. 그리고 철영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픈 마음도 없었다. 정말로 그는 일탈을 원했다.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날이 좀 어둑어둑해짐을 느낀 영상은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그가 서있는 곳은...
회색빛의 차갑고 거대한 성이 보이는.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농토 사이에 듬성
듬성 있는 농가.. 뭐 차원의 주인이나 염라대왕이 너 더 살어라! 하고 내려주는 멋진
패턴은 아니었으나 어디서 보던 패턴이었다.
"하...하...핫..."
처연한 웃음이 사람없는 공터를 울리기 시작했다. 웃음은 처연을 넘어 처절이라 해도
이상치 않을정도로 깊고 중량감 있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광소. 미친자의 발광이라
해도 믿길 광소가 계속되다 뚝 그쳤다.
"...이건, 강제 소환인가?"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영상은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 별로 납득이 가지않는
방법으로.. 정확히 무슨 세계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중세풍의 성이 있는것을 보아
영상은 판타지 세계라 확신해 버렸다. 자기가 쓰던.
하지만 영상은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자,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의 나뭇가지는 나뭇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들판의 밀은 다 베이고 쭉쩡이 하나 남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 겨울이다.
그는 한동안 기연없이 이런곳에 떨어지다니, 말..말도 안돼 소리나 지껄이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확인해 보았다. 연습장. 참고서, 책가방. 교과서. 필통. 호신용
잭나이프 하나. 그리고 하복. 영상이 넘어올때는 7월이었다. 북풍은 매서워 보잘것 없
는 그의 교복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추가로 버스표 몇장과 식권이 있었으나 이건 제
외 하자. 있어봐야 별 필요 없는 물건. 물건. 물건. 날씨는 해가 넘어갈수록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어 영상이 얼굴팔림을 무릅쓰고 온몸을 부둥켜 앉은채 근처의 농가...
아니 농가같이 생긴, .. 농가를 빙자한 움막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탕. 탕. 탕.
"...여... 열어주세요.. 추.. 춥거든요? ...제발 열어주세요.."
영상은 그리 염치가 없지 않았다. 밤에 누구집에 찾아간다는게 얼마나 실례인지 알았
고, 또 일면식도 없는 자기가 바람좀 피하고 불좀 쬐게 해달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안
되는 것인지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추웠다. 단지 하복. 여름에 바람 잘 통하고
시원하라 만든 옷을 입고 어찌 시월의 북풍에 견디겠는가? 단지 간절하게 빌 뿐이었다
. 판타지 세계에서의 무조건적 인간애를 기대하면서.
문이 열렸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키는 컷지만 안색이 창백한게 잘
먹고 지내는 것은 아닌듯한 다 떨어진 베옷을 입은 백인 남자였다. 그가 문을 열고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바람좀 피할..수 있을까요?"
영상의 기대를 무시하고, 말은 통하지 않았다. 백인 남자는 무슨 정신이상자를 보는
눈길로 그의 위 아래를 훓은 뒤에 알아들을수 없는 말과 함께 문을 쾅 닫았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후 양팔로 온몸을 붙잡고 덜덜 떨며 다른 농가를 빙자한 움막
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였다. 영상은, 이 세계로 넘어온지 두시간 남
짓만에 기대와 희망을 상실했다. 이젠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돌다 보니 처음 문을
두드렸던 움막이 보이기에 그 움막의 처마 밑에서 눈이나 피하기로 했다. 손가락에서
별다른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얼어버린것이다. 문득 그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맞벌이 하시느라 바쁘시고 집안의 빛을 갚아 나가시느라 평소에 대화도 별로 없었고,
또 용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왜 처음 군에 입대한 신병들이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철영이 왜 그를 경멸했는지 알수 있었다.
아직 그를 비롯한 학생은 세상과 직접 대면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 세상이 판
타지건 현실이건 간에.
감각을 상실한 볼 위로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볼을타고 흘러내렸다
. 영상의 입술이 소리없이 열렸다.
"엄마..."
부모님은 지금쯤 어떻게 하고 계실까? 아직은 학원에 가있을 시간이니 모르고 계실수
도 있겠지. 아니다. 학원에서 연락을 해올것이다. 우영상 안왔다고. 학교서도, 친구들
끼리에서도 영상이가 어디갔는지 모른다고 한다면 부모님은 어떻게 하실까? 불쌍한
우리아빠. 불쌍한 우리엄마. 내성적인 아들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몹시 졸려웠다. 어느 틈엔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
다.
"..폭설인데."
영상은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점심과 저녁을 굶었기 때문인지 온몸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싱황에도 잠은 왔다. 자고싶었다. 하지만 영상의 뇌리엔 어느
새 TV에서 봤던 드라마가 떠올랐다. 무슨 등반대가 눈오는날 산에서 고립됬다는 이야
기인데.. 하여간 그때 안 사실이 있었다. 이런 추위에서 자면 얼어죽는다. 죽기는..
싫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일만 있으면 그것이 인생일까. 어느새 영상의 눈은
무력하게 감기웠다.
문이 열렸다. 붉은 머리를 양갈래로 묵은 꾀죄죄한 몰골의 소녀가. 아니 꼬마 계집에
가 머리를 내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마 밑에서 자꾸 무슨 소리가 났기 때문일까?
아이는 영상을 발견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후 다시 나온 남자는 한동안
계속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머리 계집애가 남자의 다리를 붙들고 애처롭게
바라보자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영상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아이
와 함께 움막으로 들어갔다.
나디아를 위하여! 축배를 듭시다. 저는 나디아를 무척 좋아합니다. 왕립우주군, 오미
아네스의 날게(맞나?)로 뼈아픈 참패를 격은뒤 안노감독을 주축으로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이낙스의 작품이죠. 이래뵈도 어지간한 애니는 거의 보았다고 자부하는
저인지라 그안에 담긴 패러디와 오마쥬를 보며 전율을 느끼지요.
저는 강제 고교생 소환 깽판 판타지도 좋아합니다. 나디아나 에반겔리온만큼은 아니
지만 다른 분들이 욕하셔도 재미있는건 재미있는겁니다. 참신한건 참신한거고. 다만
드래곤류가 유입된 이후로 정형화된거는 저도 이견이 많습니다만. 사이케델리아는 2부
까지 무척 재미있게 보았지요. 드래곤 라자로 판타지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랄까요?
몇달전 친구에게서 나디아 애니 시디를 다시 빌려서 엔딩까지 보고, 또 라니안 잡담란
에서 이계 깽판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날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나디아는 패러디의 극치임에도 명작소리를 듣는다. 이렇듯 고교생 이계판타지를 쓰긴
쓰되 식상해진 기존 관습을 한번 뒤집어 보면 재미있을지 않을까?.. 라는 거죠.
쓸까 말까 하다가 기어코 쓰고 말았습니다.
어디 끝까지 가보긴 해야하겠죠... 이게 나디아같은 잘만들어진 작품이 될지 안될지는
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존 이계 판타지를 사랑하시는 분들도 이거 보시곘죠? 보고 욕만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심장이 약해서리... 욕이 아닌 비평은 대 환영입니다. 덧글도 달아
주시구요, 멜도 주세요. 뭐가 좀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중이라.. 비평이 없으면 또 못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작품내에서 쓰레기 타자라고 스스로를 혹평한 케에이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