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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감격시대` 조달환, 8회만 죽음하차 `아쉬워`
hook 추천 0 조회 485 14.02.21 12: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감격시대:투신의 탄생' 명품조연 조달환이 8회 만에 아쉬운 하차했다.

2월 6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감격시대:투신의 탄생'(극본 채승대 김진수 고영오 이윤환/연출 김정규 안준용) 8회에서

 풍차(조달환 분)는 신정태(김현중 분)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았다.

신정태는 신이치(조동혁 분)가 도비패를 접수하겠다며 도발하자 혼자 몸으로 일국회를 찾아가 결투신청에 응했다. 신정태가

 

일국회로 향하는 모습은 곧 도비패 수장 황봉식(양익준 분)과 풍차의 귀에도 들어갔다.


 

 


 

 

 

 

 

 

 

황봉식은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 신정태를 구하러 가려 했고, 이를 눈치 챈 풍차는 황봉식을 기절시킨 후 "형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

 이제 술 좀 그만 마시고 애들 그만 챙기고 장가 좀 가셔라"고 마지막 당부했다.

풍차는 일국회로 향해 이미 결투를 치르고 생사를 오가는 신정태를 보고 "어떻게든 내가 널 살린다. 끝까지 버텨라.

나 오늘 여기 죽으러 왔다"며 일국회원들을 물리쳤다. 풍차는 혼자 몸으로 십수명의 일국회원들을 물리쳤지만 결국 칼을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풍차는 신정태의 곁으로 기어가 "정태야. 집에 가자. 형이 데려다 줄게. 난 네가 너무 좋았다. 길거리에 시체가 썩어가도 본 체

만 체하는 세상에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는 네가 좋았다. 미안하다"고 유언했다.

풍차의 죽음에 감격한 테구치 가야(임수향 분)는 신이치에게 "넌 저런 죽음을 본 적 있냐. 나는 없다. 이만하면 됐다. 신정태를 끌고

가서 치료해줘라. 명령이다"고 일침 했다. 신정태에게 첫 롤모델이자 스승 풍차가 8회 만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시청자들은 방송 후 관련 게시판을 통해 "조달환 연기 장난 아니다. 미친 존재감 대박이다" "풍차 너무 일찍 죽은 거 아닌가.

아직 실력도 제대로 안 보여줬는데" "풍차가 죽다니 아쉽다" "신정태가 풍차 죽음을 계기로 더 강해지겠군" 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KBS 2TV 수목드라마 '감격시대:투신의 탄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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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조선의 주먹 황제, 시라소니 이성순. 

  알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테지만,

  낭만주먹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상 최강의 주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주먹왕은 김두한이라 알고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언제나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 다니길 즐겼고,

  상대가 몇 명이든, 어떤  무기를 들고 덤벼오든 오직 혼자서

  맨몸으로 싸웠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아무 조직도, 받쳐주는 이도 없었으면서

  홀로 당당하게 자유로운 행로를 걸었고, 그 누구도 감히

  가로 막지 못했다. 신마적과 상하이 박등 쟁쟁한 주먹들도 

그와의 대결을 피하기 바빳으며 김두한도 종로, 그것도 자신의 정식 나와바리 우미관에서

시라소니에게 아니키(형님)이라 부르며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그를 세계 최고의 주먹으로 또 큰 형님으로 여긴것이다.

 

 

낭만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이정재 사단의 집단린치 이후,

시라소니는 그 생애 단 한번의 패배 끝에 주먹계에서 은퇴하게 되지만, 이정재 사단의 오른팔 이었던

유지광은 훗날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를 아시아 최고의 주먹 황제라 칭한다.

 

홀홀 단신으로 만주와 북경 상하이 한반도를 휩쓸며 마적들과 왜병들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주먹 황제 시라소니.

 

풍문에 의하면 그는 앉은 자리에서 3미터를 뛰어넘고, 도움닫기로 밭 한고랑을 넘었으며

조그만 집이나 정자와 같은 건물을 가볍게 뛰어 넘어다녔다 한다.

시라소니는 6.25 당시 미군 특전부대에서 잠시 소속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군 한명이 사람 5명을 엎드리게 하고 그것을 뛰어넘자,

시라소니가 사람 9명을 세워놓고 거의 제자리에서 뛰어넘어 미군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의 대표적인 일화들은 여러가지가 있느나 그 모두가 감히 인간으로서 가능한 정도의 일들인가 싶을 정도의 것들이다

만주와 북경 상하이 등을 홀로 떠돌며 전설을 만들어 낸 그는 중국, 만주 일대의 모든 무술인,

야쿠자 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서 명실상부한 최강의 주먹이으로 인정받았다.

 

봉천에서 깡패 40명과 싸우기도 하고, 천진에서는 그 마을을 지배하고 횡포를 부리던 야쿠자 조직에게

 친구가 잡혀가자 혼자서 찾아가 조직하나를 박살내기도 했다. 그 강함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들 뿐이지만

그가 싸움을 정말 잘하긴 잘 햇엇나 보다.

 

김두한이 주먹을 떠나고 동대문은 전국을 통일할 생각으로 과거 김두한이 통일했던 지역의 70%

이상을 손에 쥐고 그 전성기를 떨치는데,  그와 유일하게 맞서고 있었던 곳이 바로 서북 청년 모임인 명동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낭만주먹의 계보를 지키고 있다 믿었기 때문에 정치권의 세력을 등에 업은동대문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그러나 숫적으로나 여러 모로 명동은 동대문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대문이 명동을 쳐들어 오지 못한것이

바로 시라소니의 존재 이유였다.

 

그 혼자서 명동의 전체 힘에 5할에 해당한다고 했을 정도...

시라소니가 있기에 동대문은 감히 명동에 선전포고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대문에서 시라소니를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시라소니가

집단 린치 이후에 국회의원조봉암씨의 보디가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조봉암씨는 자유당에 의해 심한 견제를 받았는데 그 선장이 동대문의 이정재였다.

이때도 역시  이정재가 조봉암이 연설하는 것을 방해하기위해 트럭 세대에 부하들을 실어 습격하기로 했는데

그 30~40명이 넘는 그 사람들이 조봉암 옆에 졸린 듯 서 잇는 시라소니를 보고 바로 습격을 포기한체 도망갓다고 한다.

린치 이후에도 그를 보고 도망?으니 그 강함은 진짜 였나 보다.






<결혼사진>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과연 말이냐 되느냐고

생각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별로 말이 안 될 것도 없다.

1대 다수의 싸움. 혼자서 30~40명씩을 상대하는 일.

 

이건 의외로 간단하다. 최대한 적게 맞으면서

단 한방씩만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면 된다.

인간의 몸이란 너무나 간단하여 급소를 제대로 한방만 맞으면 쓰러지게 되 있다.

그러니 그런 급소에 단 한방씩만 맞혀 쓰러트릴 수 있다면

일대 다수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의 일화는

모두 단 한방만으로, 또, 한번에 3~4명이 나가 떨어졌다는

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집 같은 건물을 훌쩍 뛰어 다닌다 했는데

이는 성룡의 영화를 보면 성룡이 높은 벽같은 곳도 훌쩍 넘어 다니는 걸 떠올리는 간단할 것이다.

시라소니의 전설과 같은 일화들은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되지만 불가능하다 매도할 일도 아니다.





참고로 난 이 시라소니 이성순님의 아들인 이의현 목사님이

만든 시라소니 홈페이지에도 가입해 제일 먼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인간을 신으로도 만들어 추앙 하는 건 바로 인간 스스로다.

요즘엔 이 시라소니를 추앙하는 이들이 역사에나 등장하는 관우와도 장비와도

싸워 이길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최배달과 또는 이소룡과 시라소니의 가상 대결을

그리며 논쟁을 토한다.

 

물론 나도 그것을 마음으로는 믿어 의심치는 않으나,

현실에서 그런 논쟁에 열을 올리고 싶지는 않다.

그 홈페이지엔 이런 논쟁들이 너무도 많아, 어느 순간부턴가 발길을 끊었지만

중요한건 어디까지나 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시라소니 일대기를 다룬 글을 첨부하여 올린다.

저글은 내가 아닌 다른 님이 쓰신 글로

이미 넷상에는 꽤 퍼졌을 듯한 글이다.








1916년

2월 29일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에서 출생

 

어린 이성순 미륵동 동네 신의주 정복기

보통학교 때부터 유난히도 일본 애들을 팼다

어린 나이에도 왜경의 감시를 받았다

1929년

불곰(친일파 긴상)과의 대결 승리





1932년

밀무역에 뛰어 듦

 

시라소니라는 이름

기차 - 밀수

 

배 - 거룻배 밀수

중국인 강도들과의 싸움

 

헌병대와의 싸움

 

명견 도비와의 싸움

1933년

정경봉(독종 꽈리 주둥이)과의 결투 승리

1934년

누님이 계신 상해를 다녀오다 - 술집 용심봉과의 싸움 승리

 

친구를 때린 진남포 깡패들과의 싸움 승리

백두산 훈련

호랑이와의 결투

1935년

도박장 습격

1936년

평양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찾아가 결투, 승리

평양의 이화룡

용강의 아오끼

1937년

신의주 청송회관 용심봉 장손과의 대결

신의주 도피생활

신의주 헌병대장

 

기차도주 때 일본 헌병 때려뉘다

 

7월7일 대동아 전쟁

 

군부반장 하야시(검도3단)와의 대결 - 결투의 의미

 

4개월후 신의주 일시귀국 어련공판장 중개인 보스와 시비, 항복 받아 냄

1938년

외환 관리법 사건(돈배)
6월 천진 도박장 도미나 까페에서 일본헌병 3명을 때려뉘다

8월 신마적과의 대결 승리

마약장사 야마모토 사건과 18기의 명인 북경의 마오와 대결 승리
중국의 천하장사 무송과 대결 승리

1939년

상하이 까페에서 헌병대장과 대결 승리

새끼 손가락 사건

이상대와의 대결 승리

시라소니의 박치기에 하얼빈의 주먹짱 만가희의 얼굴전체가 함몰되다

상해 헌병대장 요시무라가 박치기를 맞고 병원에 실려가 3일만에 겨우 깨어남

중국 거지패 오야붕 마차오
일조삼
모일화
고여장

1940년

국제 도박장사건

상해 프랑스 조계지 미국인 탈영병과의 격투
러시아 조계지 소련인 두목과 결투 승리
영국 조계지


11개 조계지 정복사
("영국/러시아 - 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 - 오스티라아/일본"을 포함한 8개국에 "벨기에/스페인/네덜란드"를 더한 11개국)11개국 28개 조계지 최고 주먹들 장악사

1941년

북경 일번지 까페에서 일본여인 지혜꼬에 관한 사건
마적단 소굴로 들어가 마적단 초토화

1942년

개봉 용정유원지에서 일본 특무 대원과의 결투

1943년

친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

일본 꼬구라 형무소수감 중 일본 최고의 주먹 이즈마 누임

1945년

7월 해방 15일전 천지외교 공장에서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대결 승리

8월 15일 해방
이북생활
권총을 든 러시아 대장 총성과 박치기의 대결

1946년

1월 남하 개성당도

2월 종로 우미관에서 최고의 주먹 김두한과 만남

      명동파 행동대장 무억을 누름

3월 인천행 인천주먹들 정복사 - 지금도 "시라소니 떴다"라는 소문에 우는 아이들도 조용

11월 서북청년단이 조직 됨

1948년

봄 인천떠나 서울도착 서북 청년단 감찰부장이 되다

       10월 동국대부근 일본인 아파트

1949년

이진옥과의 결혼

백범김구 당시 국군 장교이던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

1950년

6월 25일 전쟁(아내 임신4개월)

호림부대(비 정규부대)창설

9월 대원활약 15일 인천 상륙 작전
HID 대원, 북상하는 아군부대의 최 선방에서 활약

10월 묵호산간 대관령 적군 30명 기습섬멸 함흥까지 북진

11월 26일 중공군 대공세

1951년

1.4후퇴

봄 부산에서 10명패거리에 매맞는 이정재 구해줌
이정재가 이권 도움을 청하고 도와줌으로 린치사건 전까지 생활비를 댐

1952년

김일환과 만나 제주도로 장도영 만남

조봉암 선거 개입 땃벌 때 물리 침

아내와의 재회

1952년

8월 4일 오후 조봉암 김성주와 헤어짐

황병관 살해한 마사이찌 혼냄

3.1부대창설(현공수부대) 부부대장으로 활약 미군장교와의 대결

1953년

이정재와의 사건(린치)

종로5가 보령약국자리 반도병원-필동단칸 집-백병원 입원

1954년

초봄 백병원 나섬

북쪽으로 발길 옮김 팔당 산기슭에서 복수를 준비(칼쓰기, 사격연습, 무술연마)

몇번이나 저격권안에 들어온 이정재, 하나님이 살려 줌(HID 김일환, 내무부장관 한신)

1955년

인천행 질서 부두를 바로잡다

1956년

신익희 선거운동 / 장면 박사로부터 편지 옛 소공동에서 자리잡은 경향신문 사옥에서 만남 선거운동
4월 인천유세 3트럭의 인천 정야원(상이군인들)

당선 후 헤어짐

1958년

조병옥 선거운동

1960년

2월2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 서거

이승만 3월의 대통령과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대통령 입후보자인 조병옥이 병으로 죽음으로써 쉽게 당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데모

4월 19일 4.19의거

4월 21일 전 국무위원 사표 제출

4월 25일 대학 교수단 데모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발표

4월 27일 이승만대통령 국회에 사표 제출

4월 28일 과도 내각 수립, 4월 28일 이기붕 일가 자살

5월 29일 이승만 대통령 망명으로 끝나게 된다.

1960년

7월 21일 아들 이의현 태어나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한 군인들이 반공과 부패, 부정의 일소 및 국가 재건을 내세우며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혁명
이정재와의 만남 - 무릎꿇고 빎과 용서

5월 21일 이정재 등 깡패 200여명, 서울 시내 가두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명현 교회 나가 이장수 목사님에게 권총과 칼을 바침

5월 22일 최고회의, 용공분자 2천여명, 깡패 4천2백여명 검거 발표
6월 4일 깡패 965명, 국토개발사업장에 작업 동원

8월 17일 이정재(李丁載)에게 사형이 선고되다.
사형은 9월 19일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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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25일 시라소니 이성순님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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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시대', 왜 김두한이 아닌 시라소니일까

 

다시 낭만 주먹이다. 정치주먹 유지광과 이정재를 다뤘던 < 무풍지대(1989) > , 거지 왕 김춘삼을 다뤘던 < 왕초(1999) > ,

 김두한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먹들을 다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 야인시대(2002) > 에 이어 이번에는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 감격시대:투신의 탄생 > 이다.

 

 



 

 

 

 

정치주먹이 등장하는 < 무풍지대 > 는 시대적으로 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만, < 왕초 > 나 < 야인시대 > 는 < 감격시대 > 와 함께 같은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겹칠 수밖에 없다. 이들 작품에는 그래서 모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등장하며 그 외에도 이미 한 몫씩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반가운 주먹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 왕초 > 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주인공인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은 물론이고 최고의 캐릭터라 찬사를 받은 맨발 윤태영, 섬뜩한 악역을 선보인 발가락 허준호가 주목을 받았다. 거지왕 김춘삼을 주인공을 삼았기 때문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주변인물로 처리되었다. 김두한 역할은 이훈이 연기했고 시라소니는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 시라소니는 그다지 주목되는 역할이 아니었다.

< 야인시대 > 에서 시라소니는 < 이장호의 외인구단 > 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조상구가 연기했다. < 야인시대 > 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들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마치 대결을 벌일 듯한 장면에서 시청률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 야인시대 > 에서 두 사람은 대결하지 않는데 이것은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김두한이 화통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양자가 모두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직을 갖고 있는 김두한이 늘 혼자 다니는 시라소니와 대결해서 얻을 게 없었다는 판단이다. 무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자와 홀로 다니는 호랑이로 비교되던 이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후에도 두고두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라소니는 물론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지만 김두한에 비해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던 소재였다. 물론 1985년 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 원작의 동명의 만화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방학기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방학기는 최영의를 소재로 다룬 < 바람의 파이터 > 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격투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대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이번 < 감격시대 > 에서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신정태(김현중)가 도비패에 들어가 하는 첫 번째 미션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방학기 원작의 만화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 거의 바닥에 몸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젖히고 발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차츰 몸이 세워지면 달리는 동작은 물론 만화적인 각색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시라소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단박에 만들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 감격시대 > 에서 이런 세세한 연출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1930년대 이북 지역을 평정하고 상하이까지 이름을 날렸다는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연의 역할이었지 이번처럼 주연인 경우는 < 감격시대 > 가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된 데는 낭만 주먹에서부터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김두한의 이야기에 비해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다소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니는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김두한처럼 무수한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없기 마련이다.

< 감격시대 > 가 시라소니를 다루면서도 신정태라는 새로운 인물을 재창조한 데는 이런 한계점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낭만 주먹을 다루는 것이니 주먹들의 일 대 일 대결은 가장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남성 드라마를 주창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여성 시청자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감격시대 > 가 주먹 이야기 이외에도 멜로를 동시에 집어넣고, 액션에도 잘 어울리지만 멜로 또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중을 세운 데는 그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김두한의 이야기가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시라소니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두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다뤄졌다. < 감격시대 > 를 < 야인시대 > 의 리메이크 정도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김두한만큼 주목을 끄는 인물인 시라소니를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인물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을 게다.


여담이지만 김두한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김두한은 훗날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분뇨 투척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일을 촉발시킨 사카린 밀수사건에는 당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들어 있었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김두한은 국회에 분뇨를 뿌리며 신랄하게 재벌과 정권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거 < 야인시대 > 에서도 다뤄졌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요즘처럼 남성들이 위축되는 시기에 낭만 주먹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거의가 여성 시청자들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 받거나 아니면 예능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체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주도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여성들의 판타지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 감격시대 >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드라마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없을 수 없다. 물론 < 별에서 온 그대 > 같은 여성 시청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판타지가 더 클 수밖에 없겠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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