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이렇듯 몸을 내려 놓는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
힘도 깨달음도 모두 갖추신 여래...
그도 이와 같이 열반에 드시는구나.』
<대반 열반경 중에서>
새해들어 부쩍 절마실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는 조짐일까, 아니면 어떤 믿음의 대상이 비로소 절실해지는 걸까,
종교는 일단 죽음을 담보로 하는 최상위의 활동이다.
사후(死後)세계를 모른다는 인간 최대의 미스테리로 인한 불안감,
죽음이란, 아무도 비껴갈 수 없지만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하지만 가야만 하는 미지의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책으로
우리 인간은 불가침 종교라는 산물을 만들었을 터,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자그마한 산, 연화산(해발 304m)에 위치한
와우정사를 찾았다.
멀리서 부터 거대한 불두상(佛頭像)이 여기가 거기라고 자기 소개를 한다. 무려 높이만 8m, 앞으로 전신불(全身佛)로 완성할 게획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전장이 108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불상이 된단다. 와우정사는(臥牛精舍)는 1970년,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서 실향민인 해월 김해근(金海根)삼장법사가 창건했다.
그런데, 와우정사(臥牛精舍)? 소가 누워있는 집? 절 이름이 왜 이럴까? 부처님이 누워있는 데 소가 누워 있다고? 세상에 불경(不敬)도 이런 불경이 있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석가모니 부처의 속명(俗名)은 고타마 싯타르타이다. 성(姓)에 해당하는 고타마(Gotama)가 "가장 좋은 소", 혹은 "거룩한 소"라는 의미이며. 불교에서 추구하는 선(禪)의 가장 큰 목표는 "깨달음"인데, 곧잘 그 깨달음을 소<牛>에 비유를 한다. 사찰 법당의 내외벽에 흔히 보이는 소의 그림들은 깨달음을 찾아가는 이른바 심우도(尋牛圖)로서, 본성(本性) 즉 깨달음을 찾는 첫 단계를 심우(尋牛)라 하고, 본성을 발견하는 단계인 견우(見牛), 처음으로 깨달으면 득우(得牛), 깨달음에 몰입한 상태를 목우(牧牛)라 했다. 우리나라에 선종불교를 초래한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호(號)도 소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목우자(牧牛子)"였고, 경허 선사(1846~1912)의 호도 깨어있는 소라는 의미인 "성우(惺牛)", 그리고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집을 일러, 소를 찾는 곳이라 하여 "심우장(尋牛莊)"이라 했으니... 즉, 부처가 결국 깨달음이요, 그 깨달음이 바로 소이며 곧 부처가 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가 소가 될수 있다는 말. 절 이름 와우가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와우사(寺)가 되어야지... 정사(精舍)는 또 뭐란 말인가? 우리가 쓰는 절의 개념에는 다양한 어휘들이 있다. 일단 밀양 표충사(表忠祠-사명대사, 사찰인 표충사<表忠寺>와는 구분해서)나 혹은 진천의 길상사(吉祥祠-김유신 장군)같은 경우는 개인을 모신 사당이므로 불교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우리가 흔히 쓰는 "사(寺)"는 사찰(寺刹) 전체를 이르는 큰 의미의 말로 정착되었고, 절 중에서 특정 용도의 독립된 별사(別舍)를 "원(院)" 그리고 작은 규모의 절이나 토굴, 석굴중심의 절집을 일러 "암자(庵子)"혹은 "암(庵)"이라 부른다. 이런 암자의 개념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불교 형식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부터 사용된 사(寺)는 원래 불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사(寺)의 원래 개념은 중국 국가 소속의, 외래 손님을 재우던 일종의 영빈관 같은 곳, 인도에서 불법을 가지고 온 사신을 홍려사(鴻驢寺)에 머물게 된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사(精舍)는... 석가모니 부처가 최초의 설법을 했던 곳이 죽림정사(竹林精舍)였고, 45년간 불법을 전파하던 석가모니가 가장 오래 머문 숙소가 기원정사(祇園精舍)이며 결국 정사(精舍)는 "부처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곳"의 의미를 담고 있다. oo寺 보다는오히려 oo精舍가 본래의 취지에는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와우정사라는 절 이름...충분히 이해가 된다.
석가모니 부처를 등진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소인국의 부처님들.
헤어스타일도 의상도 한결같이 똑 같다.
사계절 시들지 않는 꽃다발을 든 것도 똑 같고...
와우정사는 열반종의 총본산이다.
그래서 주 경전도 대반 열반경(大槃涅槃經)!
주불(主佛)은 석가모니 열반불, 그래서 와불상이 있는 것이다.
열반불의 종조(宗祖)는 고구려의 보덕화상(?~650?)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로 신라, 고려를 거치면서 정권의 부침이나
위정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불교는 항상 질과 양,
그리고 그 신앙의 원형질과 형태마저 수시로 바뀌어 왔다.
5교 9산으로 이어지던 불교의 종단이 고려 무신정권으로 선종불교로 갈아타더니
이조정권의 배불정책으로 축소 양분(선종과 교종)되고
일제 강점기에는 사찰 주지까지 정부에서 임명하는 웃지못할 지경이 되고마는데...
만신창이가 된 한국불교를 재건하고자
성찰과 반성의 일환으로 해방후(1962년),
바야흐로 선종 교종의 통합종단인 대한 불교 조계종이 탄생하는가 싶더니,
끝내 결혼만은 해야되겠다는 종단은 태고종을 차려서 딴 살림을 하게되고,
그러다가...
결국은 종단의 이해타산에다 반야심경의 글자수 만큼이나 다양한 구실들을 붙여서
새로운 종파를 발굴, 혹은 신설해서
지금은 대한 불교 연합회에 등록된 종단만 26개,
등록되지 않은 종단까지 계산하면 무려 200개도 더 된단다.
하긴 교회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한반도에 불교가 상륙한 이래 최대의 종파이다.
그것도 최근 50년 사이에 일어난 부처님 나눠먹기식 우후죽순의 현장,우리나라!
부처님과 하느님의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싯점이다.
와우정사는 유난히 외국 신도들의 참배가 많다.
그 까닭은 와우정사에 유독 세계각국에서 옮겨온 다채로운 불상들,
그리고 사연들이 모여있는 까닭이다.
각국에서 보내온 돌로 만든 돌탑들, 불상재료및 위령불상까지...
일본, 중국, 태국,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네팔....
소망과 기원도 나라 숫자 만큼 다양하고.
예쁜 그림에다 화가 뺨을 쳐도 좋을 만큼의 채색까지...
기발함과 정성들이 넘쳐 난다.
세계 각국의 돌들을 공수받아 쌓아 올렸다는 "통일의 탑".
세계의 통일, 인류의 통일, 그리고 남북의 통일...
백두산에서, 히말라야 산에서, 독일 베를린 장벽에서, 북극등에서
세계만방에서 가져온 돌로 쌓았으니 셰계의 통일은 될 듯한데
평양성의 돌이 빠졌으니 우리의 통일은 좀 더 있어야 할 듯.
와우정사는 다른 일반 사찰들과는 달리 아기자기함이 가득하다.
볼거리와 소품들이 구석구석에서 나그네의 발을 붙잡는다.
다른 천년 고찰들에 비해서 세월의 더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대신에 현재 진행형의 가꿈과 보탬의 흔적은 역력하다.
사람이나 종교나 초심으로 매진하면 그 끝은 심히 창대할 것이다.
석조 미륵 보살상...
석가모니 부처 사후에 세상에 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
그런데 그 시기가 너무 멀다, 부처님 사후 56억 7천 만년 후의 일이니....
조금 더 빨리 오시지, 지금도 구제 할 중생 너~무 많은데...
미륵은 성씨(姓氏)이고 이름은 아지타, 흔히 자씨보살(慈氏菩薩)로도 부른다.
청동 미륵 반가사유상, 청동으로는 세계 최대의 크기란다.
통일의 종...
88올림픽 때 남북 통일을 염원하며 타종을 했던 동종이다.
석조 십이지신 상...
각자 저마다의 상징물들을 들고 섰다.
나그네는 자기 띠의 석상을 찾아 저마다의 소원들을 빌고
저 만큼의 면적에다 동전들을 내려 놓고 갔다.
그런데 500원 짜리 동전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무거워서 일까~?
와우정사의 절 이름이 비롯된 현장. 부처님의 열반상.
와불상은 목조 와상(木造臥像)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옮겨온 단 한그루의 향나무로 조각되었으며,
목불상으로는 세계 최대의 불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단다.
부처님의 신장이 무려 12m, 누우신 높이마저 3m.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열반경의 모훈>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돌탑들...
전국의 돌들이 모이고 수많은 신도들의 발품으로 조성되고 있다.
절의 한 쪽 담을 온통 채운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 여덟 폭 팔상벽화.
도솔천에서 흰코끼리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마야부인의 몸속에 잉태되는 석가모니의 모습.
벽화를 조성한지 불과 20여년이라고 하는데,
벌써 안료가 벗겨지고 색이 퇴락해서 여기 만큼은 천년고찰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가 처음으로 4대문을 나와 세상 구경을 하면서
비로소 인간의 생로병사를 눈으로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고.
번뇌하던 석가모니가 결국은 세상을 위한 구도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왕자(王子)의 자리도, 아내도, 자식마저도 다 버리고
오로지 마부 한사람만 데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를 감행한다.
그의 나이 29세.
보리수 아래에서 마구니들의 수 많은 유혹들을 물리치고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마침내 번뇌의 불을 끄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출가를 감행하고 고행에 든지 6년, 그의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그 이후 녹야원(죽림정사)에서 중생을 위해 최초의 설법을 하고,
사성체(四聖諦), 팔정도(八正道)및 12연기의 진리를 갈파하게 된다.
그로부터 45년간...
금강경,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화엄경등의 법문을 설파하시고...
인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숲에서 열반에 드신다.
보령 80세...
이때 마지막 강론인 대반열반경(大槃涅槃經)을 남기시는데,
바로 여기 와우정사의 근원이 되는 열반종의 모태, 주경전이 된다.
오백 나한상....
다들 이름표 하나씩을 붙이고 있다. 시주를 한 사람들의 이름표 인듯.
이름표가 없는 나한은 아마도 아직 분양(?)이 되지 않은 듯.
차라리 나한 고유의 이름을 붙이지, 아니면 뒷면에 수줍게 보이지 않게 붙여 두든가,
어디 예로 부터 나한이 한 사람 개인의 나한이던 시절이 있었던가 말이다.
나한(羅漢), 옛날부터 나한은 우리 민족의 기복 신앙과 친숙한 사이이다.
나한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일까?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다.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는 깨달음의 과정을 4가지로 정리하는데,
수다원(예류-預流)성자의 단계에 이미 들어서 다시는 중생으로 돌아가지 않는 분이고,
사다함(일래- 一來)는 번뇌가 남아서 한 번 더 사바세계에 와서 윤회를 마쳐야 하며,
아나함(불환-不還)은 이승을 마친 뒤 괴로움이 없는 극락에서 태어나는 분이며,
마지막으로 아라한(응공-應供)인데 이승에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더이상 배울 일도 없고<무학-無學>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하는<응공-應供>의
존재로서 모든 수행자의 목표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같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경우에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를 뛰어넘어 부처가 되는 이른바 성불(成佛)의 단계까지
깨달음의 목표가 상향 조정되어 있다.
그리고 소승불교에서는 나한의 깨달음을 부처님 수준과 거의 동일시 하는데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엄연한 차이를 두어 나한을 보살의 아래 단계로 본다.
그리고 보살은 부처의 또 다른 아래 계급으로 줄을 세워두고 있다.
16나한, 500나한, 1200나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16나한과 500나한을 모신다.
나한을 모신 전각을 나한전, 응진전, 혹은 영산전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삼성각을 두어서 산신, 칠성의 불교 외적 신앙과 같이 모시는
나반 존자도 나한의 한 사람이다.
육당 최남선은 나한이 아니고 단군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그런데 중국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대형 식당의 입구에서 묘한 불상 하나를 만나는 경험을 많이 했을텐데...
백발의 수염에 눈썹이 유난히 긴 뚱뚱한 불상, 그 역시 16 나한의 한사람이다.
빈두루존자라는 나한이며 흔히 식탐가로 묘사되어 과식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이 빈두루존자가 바로 우리 사찰들에 흔히 있는 독성전의 주인공,
나반존자와 동일 인물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16 나한은 석가모니 부처의 유훈(遺訓)을 받으신 분들이고,
500 나한은 부처님 생전 사후에 그 불법을 이어받아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다.
그런데 나한 500분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대부분이 실존했던 인도인이며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혹시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인도인으로만 구성된 인도 500나한과는 달리 중국판 500나한에는 있다는 말이다.
인도. 중국을 제외하면 유일한 제3국인, 445번 째 나한,
정중무상대사(淨衆無相大師 서기684~762), 줄여서 무상대사이다.
중국불교의 정중종(淨衆宗)을 일으킨 고승이며,
티베트에 불교를 최초로 전파한,
신라 왕자출신(신라 성덕왕의 셋째 왕자)으로, 중국 선종 불교의 거대한 한 축을 맡고 있는,
오히려 중국에서 더욱 추앙받는 나한이다.
<자료사진-중국, 북경의 홍라사(紅螺寺)에 모셔져 있는 무상공 존자>
신라인 무상존자는...
지금도 중국의 각종 사찰에 그림으로, 나한 상으로 그 존경의 열기가 더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불교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
불교에서 나한의 자리가 과연 어떤 자리인가,
나한의 가장 큰 역할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이 땅에 오기 전까지
세상을 제도하는(무려 56억 7천 만년 동안)역할이니 그 위상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중국에 선종 불교를 전수(서기 520년)한 달마대사도 나한 서열307위이며,
중국 조계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육조 혜능(서기638~713)은
나한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다.
아직도 중화사상과 식민사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 땅의 불교 사학자들의 분발이 더욱 필요할 때다.
중국에 흩어져서 그 흔적들이 소멸되어가는 우리 선조 불교인들의
흔적을 지금이라도 더 발굴하고 더 고찰하여
이 땅으로 옮길 것은 옮기고 역사에 편입할 것은 과감히 편입시켜야 한다.
중국에는 아직도 더 연구하고 캐내어야 할 우리의 사료들이 너무 많다.
중국에서는 무상대사를 고승으로 당연히 서술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무상대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북경 홍라사에 있는 그의 불상에 기록된 이력을 보자.
무상공 존자는 당대 명승으로,
신라 왕자였고, 어릴 때 출가하여 승적에 들었으며,
김화상(金和尙)이라는 속명으로 불렸던 무상대사.
그는 서기 728년(그의 나이 44세 되던 해), 당나라에 와서 덕순사에서
처적대사(處寂大師)에게 법계를 받았으며
피난(안록산의 난, 755~763) 온 현종 황제를 만나기도...
그러다 79세(서기 762년)의 보령으로 입적.
지금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영국사 대웅전에는,
무상대사와 그의 스승 처적대사(處寂)대사, 그리고 그의 스승인
중국 선종의 창시자인 지선(智詵)선사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절에서 무상대사를 모시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사실 제대로 따지고 들면 우리에게 전래된 신라의 구산 선문의 불교교리가
그의 법일 수 도 있다는...
왜냐하면 우리에게 불교를 건네준 마조선사가 무상대사의 직계 제자라는 점에서.
이 땅에 수많은 불교 종파들이 생기는데 무상대사가 창종(創宗)한 종파는
차라리 권장해도 좋지 않을까...우리 선조의 종파이니
정중종(淨衆宗)!
오백 나한을 등지고 약사 여래불이 돌탑위에 앉았다.
왼손에 약합(藥盒)은 들었는데 오른 손은 비워두셨구나.
앉을 자리가 협소한 관계로 오늘은 좌우에 일광보살도 월광보살도 없이.
외롭게 불전함만 노려 보면서....
멀리서 물건너 오신 부처님...
공식 국교(敎國)가 불교인 유일한 나라, 태국산 부처님이시다.
태국 왕실에서 6.25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태국 병사 133명을
위령하기 위해 와우정사에 기증한 금동 부처,
말은 비록 통하지 않고 얼굴 표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불심은 한결같이 하나일 것~!
와우정사에 유독 태국 신도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에서 옮겨온 불상들, 소품 불상에서 골동품 불상에 이르기까지...
원래 현존했던 석가모니 부처는 한 사람이었을텐데
각양 각색이고 천불 천색이다, 지금의 한국 불교 종단 나누기 처럼...
불교가 도입되는 나라마다 자기네들의 모습으로 부처를 빚었으므로.
아프리카에 불교가 유입되면 흑인 부처가 탄생하게 될까?
세계각국의 부처가 모이다 보니
우리 제주땅 하루방 가족도 슬며시 끼어 앉아서 시치미를 떼고.
그래도 하루방 앞에 불전함은 없다.
대한 불교 열반종의 본산, 와우정사.
열반(涅槃)이란 무엇인가?
열반은 범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왔다.
"불어서 끈다"라는 말이다. 무엇을?
탐욕과 번뇌, 그리고 욕망의 불꽃을 불어서 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어서 끌 수 있는 불은 그나마 다행이다.
입으로 불어서 끌 수 없는 불은 어쩔 수 없이 소화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 크게 되면 소방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더 크기 전에 부피도 무게도 그리고 마음의 소리도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떠날 때 무겁지 않을 것이다.
가벼워야만 가고싶은 곳으로 훨훨날아서
마음 껏 갈 수 있기에...
힘들겠지만...
조금씩 내려 놓자,
부처님의 크기도 줄이고,불전함의 크기도 줄이고
그리고 맞잡은 내 두 손안의 소망까지도
조금씩 줄이자.
첫댓글 더 줄이십시오, 세월이 만든 허리띠를....
더 낮추십시오. 습관이 만든 피의 수치를....
내려 놓으십시오. 입으로 쌓은 살들의 무게를....ㅎ
그렇게 하면 성불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성불이 힘들 듯 합니다. ㅜㅜ
그게 아닌데...불상들을 보면...허리와 피수치(요건 확인곤란) 그리고 살들이 풍만한데..결국 김작가님은 이미 성불(?)한게 아닐까...합니다만....ㅎ
인천분님!!!!!!!!!!!!!!!!!!!!!!!!!!!!!!!!!! (>o<)
김작가님께서 사찰 순례를 많이 하시더니 이제 포교사 수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미 수다원 과를 증득하신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조계종에서는 만 50세까지
수행자로 받아 줍니다. 뜻이 있으시면 출가도 한번 고려해 보심이 어떠실런지...
와우정사 한 곳을 소개하면서 불교의 역사와 불교 교리를 상세하게 해설까지
하시니 그 공덕은 수미산 보다 높을 것이옵니다. 부디 성불하시길 서원합니다.
50세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심각하게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냥 간단히 보고 갈려다가 발목을 잡힌 기분...하지만 온 몸 가득 차오르는 충만감...
들어오실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가실 땐 마음대로 못 나가십니다. ㅎㅎㅎ
몇년전 용인의 와우정사에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와불이 특별하지요
촛불도 키고 마음을 맑히고 왔답니다..
산책하며 둘러보니 여러가지 볼거리가 풍성하더라구요~^^
마음을 씻고 올 수 있는 정사가 저희 집 가까이에도 있다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많은 글을 보아 왔지만 .
오늘은 문득 생각이 납니다 .
단련.
천일을 연습하면 단이라 하고
만일을 연습하면 련이라 고....하나 하나 여행과 글을 쓰면서 .어쩌면 김작님이 단련하고 있는 모습이 그와 같다는 생각이....나중에 혹....아니....꼭 책이 나오시면 꼭 하나 받고 싶군요
단련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연습한지 아직 천일도 안되는 터라 좀 더 갈고 닦아 제대로 단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책 낸다면 불철주야 응원해주신 어라연님께 꼭 한권 드리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