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선발님의 글을 읽고 생각을 해 보니.. 저도 어린시절 생각이 나서요^^
어린시절.. 특히나 스포츠의 경우에는 "관심이 집중된 경기"가 벌어질 때 즈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TV 앞에 다 모여앉았었죠.
뭐 당시에도 TV가 있는 집이 더 많기는 했었지만, 가난하던 시절이기도 하거니와 동네 주민들끼리 매우 친했던 지라..^^
"오늘 결승전은 OO네서 보자"하면 무슨 잔칫집마냥 그 집에 다 모여서 보곤 했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들께서 고생이 많으셨죠..^^
그렇게 모여서 TV를 켜면 예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복싱. 아니면 고교야구.
얼굴도 이젠 가물가물한 홍수환.. 정신없이 일어나라고 외쳐댔던 김득구..
뭐 장정구 유명우 이후로 복싱은 계속 내림세이지만 그때만큼은 최고의 스포츠였죠.
김득구 누운 이후로는 복싱경기를 보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이라.. "잔인한 스포츠"란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자연히 그때부턴 야구만 보게 되었던 듯 합니다.
여하튼... 당시에 세계타이틀매치나 청룡기 대붕기 봉황대기같은 야구대회중계하는 날만 되면
동네사람 다 모여서 난리가 아니었지요. 환경이 그렇다 보니 저도 야구 룰을 계속 배우게 되었고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지는 야구에 홀딱 빠진 게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합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죠ㅎㅎ
그렇게도 좋아하던 선린상고 박노준선수가 다쳤을 때,
그게 그렇게도 걱정되어서 어린 맘에 위로라도 해주겠다고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한국병원 2층까지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질질 짜는 누야들 틈에 낑겨만 있다가 얼굴도 못 보고 왔던 일도 있었고
삼십년 세월이 훌쩍 넘어서도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한대화선수의 스리런은
야구장에 갈 때면 언제나 [사진처럼 기억되는] 극적인 장면이었네요.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롯데자이언츠 어린이회원이 됐습니다.
원인은 한가지 노~상~수.
실업때부터 그는 좋은 공을 던졌었고, 무엇보다 폼이 독특해서 좋았습니다.
당시로는 사이드암 투수는 거의 눈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던 때였거든요.
실업롯데에서 자이언츠로 바꿔서 본다 생각하니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마 출범해에 탈삼진왕을 노상수선수가 했을 겁니다. 엄청 잡아댔죠.
제게 김용희는 "키만 겁나 큰 선수", 김용철은 "제일 많이 먹을 것 같은 선수"였고,
권두조는 "꼭 중요할 때 공 흘리는 선수"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롯데는 항상 5등이었구요..
삼미는 참 고마운 팀이었습니다. 적어도 꼴등이라고 놀림 안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제게 롯데는.. 그냥 "노상수"였습니다.
한 해가 지나 또 대사건이 벌어집니다. 당대최고의 투수 최동원이 롯데에 입단했으니까요.
어른들은 다들 "최동원이 왔으니 롯데가 우승하겠네~" 했고,
한 해가 지나고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한국시리즈 4승과 함께 팀의 우승을 만들어냅니다.
롯데 못한다고.. 똥팀이라고 놀리던 애들한테 "딱 한 해동안" 어깨에 힘주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명절이라고 본가(청주)에 내려갔는데, 할아버지께서 한마디 던지십니다.
"너도 이글스팬 해야지?"
"이글스가 뭔데요?"
"할아버지가 충청도에 야구팀 만들었어"
"어?? 충청도엔 오비 있잖아요!"
"오비 도망갔어. 걔들은 나쁜 애들이야~"
"어 정말?"
OB가 서울로 뜨자마자 빙그레이글스 창단이 확실해진 거죠.
그러시더니 커다란 팜플렛과 독수리인형, 독수리저금통을 주시는 겁니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빙그레아이스크림 총판을 하고 계시던지라, 고향팀에 직장까지 최고의 조합이었던~ㅋ)
팜플렛을 주루룩 읽어보고 조금 실망할 뻔했습니다.
그때 이석규, 천창호, 이광길을 롯데에서 데려왔다 했는데, 솔까 하나같이 별로 안좋아하는 선수들이었거든요.ㅋㅋ
근데 거기서 제 눈을 고정시킨 건 김우열과 김한근, 그리고 투수 한희민과 이상군..
(한희민도 "잘하는 언더스로"라 좋아했었다는..)
그렇게 쭈욱 읽고 있는데..
거기서 할아버지의 직격탄 한마디..
"빙그레 팬이 아니면 빙그레아이스크림 못먹는겨~
너 롯데 팬이면 나가서 롯데아이스크림 사먹어야 되능겨~"
그 말 한마디에 두손두발 다 들고 그날로 빙그레팬이 되었습니다.
비비빅과 투게더를 못먹는다는 건 제게는 고문이었으니까요.
근데 이상하죠?
그 독수리인형이 너무 귀엽고, 저금통이 너무 이쁜 겁니다.
동전이 꽉 차고 나서도
이듬해까지 꺼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쁜 아기독수리 배를 가를 수 없다는 그 이유 하나로.
(뭐 나중에 누나가 슬금슬금 다 빼가긴 했습니다만ㅋ)
첫해에 꼴등을 했죠.
근데 웬지 짜증이 나지 않는 겁니다.
웬지 주황색줄무늬 유니폼은 멋졌고,
독수리인형과 저금통은 변함없이 이뻤고,
가끔씩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 경기하는 걸 보는 건 그냥 좋았습니다.
삼성이 푸른피 어쩌고 하던데, 저는 원래 주황색이었나봅니다.
그로부터 삼십년이 지나고
그렇게도 좋아했던 당대의 그 스타들의 은퇴식을 하나 하나 보면서
저도 이제 사십대 아저씨가 된 지금
그때 팬들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이정훈선수, 강석천선수, 장종훈선수
"어린애가 참 잘도 던지네"하면서 봤지만 사실은 저보다 한참 형님이신 송진우선수^^
덕아웃에서, 훈련장에서 가끔 그분들의 모습이 잡힐 때면 저도 생각합니다.
"나도 나이 먹었구나^^"
하지만 그들 못지 않게 생각나는 건
민문식, 김상국, 이중화, 고원부, 이영일, 손문곤, 이동석, 조양근, 지연규, 김홍명, 정경훈, 김해님, 강인권..
당시부터 그라운드에서 보았던 모든 선수들입니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분들 모아서 이벤트성으로 기념경기같은 것도 해보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구요.
(문득 권근한선수가 생각나네요. 당시 팬북 맨 마지막 사진으로 들어가있던 선수라
또다른 신화를 기대하면서 "이 선수 꼭 1군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했었는데.. 안타까운 결말이었구요.)
지금 우리 팀 보고
사람들은 못한다 못한다 말 많이 하지만,
다른 팀 2군급이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덕아웃의 그분들이나 지금 뛰는 선수들이나 사랑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또다시 30년의 세월이 지나서 제가 2013년을 추억할 때
뭐 그때 가서 지금을"한화의 암흑기"라고 칭할진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보는 이 선수들이 생각날테니까요.
이 선수들 중에 누군가는 그때에도 그라운드에서 코치로, 혹은 감독으로 있을테고
또 누군가는 "뭘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는 그리움을 낳게 할 테니까요.
비와서 쌀쌀한 날
괜히 맘이 허전해서 두서없이 끄적거리고 갑니다.
오늘 야구 할까요? 많이 쌀쌀한데.. 선수들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글잘뵈았습니다ㆍ잊어져가는선수들다시금이름이새록새록나네요
글 잘 봤습니다^^
비비빅과 투게더때문에 이글스 팬이 되셨군요. ^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창단 시절에 어머니 손 잡고 동생이랑 같이 빙그레 이글스 회원이 되면서 였어요 ^^
저는 1989년에 친구들하고 팽이를 샀는데 거기에 빙그레 이글스가 적혀있어서 팬이됐다는 참 생뚱맞은 사연 근데 그때 삼성이었다면 집도 대군데 직장에서 환화팬이라면 이상한놈 취급함 왜 한화팬 됐냐고 물으면 창피해서 말도못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