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욱과 송일곤 감독을 만난 날은 송일곤 감독의 <꽃섬>의 첫 프린트가 나온 날이었다. <꽃섬>의 베니스 영화제 출품 때문에 그는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했고 얼마 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돌아온 문승욱 감독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모습은 대조적이었으나 문승욱의 <나비>와 송일곤의 <꽃섬>은 빈곤의 징조를 보이는 작가영화의 또다른 도전이라는 점에서 한 배를 탔다. 기이하게도 태생부터 공통분모가 많다는 닮은꼴 감독들의 대화.
송일곤(이하 송): <나비>가 로카르노에서 떴다고?
문승욱(이하 문): 극단적으로 갈렸지 뭐. '이게 뭐냐'며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좋다고 울면서 쫓아온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송감독은 <칼>이라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어떻게 <꽃섬>을 먼저 만들었나?
송: 재작년 신문에 한 달 사이에 영아를 화장실에 유기했다는 기사가 세 번이나 실린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을 소재로 단편영화로 만들었는데 한 단체에서 전세계12명의 작가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영화였지. 시내 전광판 42곳에서 상영하기로 했지만 정작 상영을 할 때는 내 영화가 나오지 않은 거야. 알고 보니 등급위에서 상영 불가 판정을 내렸더라고. 감독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영화를 빼버린 거야. 정말 열받았지. 한 일간지 사회부 기자에게 "아이를 낙태하는 것을 진짜 찍었다는데 사실이냐? 그건 범죄다”라는 전화까지 받았으니까. 시나리오 써서 배우 데리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영환데 이런 소리를 듣고 보니 참...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가라는 회의가 밀려오더라고. 그러던 중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여성을 다룬 영화 말이야. 그런 생각으로 3일 만에 시나리오를 썼는데, 전에 한 달간 기거했던 ‘화도’라는 남해안의 섬과 길, 도시, 상처, 치유 등 몇 가지 단어로 시작하는 영화야. 그때는 영화를 안 찍으면 미쳐버릴 것 같더라고. 디지털로 찍은 것도 계기가 있지. <나비>에 출연한 강혜정씨와 단편영화를 찍다가 탈진한 배우의 얼굴이 나온 비디오에서 필름으로 잡을 수 없는 배우의 표정을 봤어. 그때 디지털 영화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우리 영화가 새로운 게 있나?"
문 : 디지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쇼킹한 경험이 있는데, 폴란드에서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을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 너무 통쾌하고 후련하더라고. 내가 폴란드 동료 감독들 영화 보고 구토하던 시절이었거든. 폴란드에서는 배우들이 완전히 카메라의 노예야.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을 찍기 위해서 광분하고 배우들은 카메라를 쫓아다니느라 쩔쩔매는 꼴이 어떤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 거야. 감독은 미장센의 노예가 되고 배우는 조명의 노예가 된 거지.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였어. 폴란드 영화학교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이 다큐멘터리 작업인데, 다큐를 하면서 느꼈던 진실의 힘을 <백치들>에서 느낀 거야. 그 길로 서울에 와서는 주저 없이 디지털로 바꿨지. 디지털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그린 콘티로는 도저히 못하겠더라. 재미가 없어서.
송 : 사실 디지털도 선택의 문제라고 봐. 난 디지털의 장점이라면 대상의 비밀이나 신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거지.
문 : 송감독도 그런 위대한 말을 했지만 (웃음) 디지털은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들, 조명이나 연기 등을 버려야 해. 내 것은 모두 버리고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아주 좋았어. 예상할 수 없는 것,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을 포착하는 것 말이지.
송 : 그렇다고 필름으로 만드는 것이 꼭 책상 위에서 하는 작업은 아니잖아. 우리는 아직 젊기 때문에 디지털은 더 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보면 될 것 같아. 찍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표현 도구에 불과하지 절대적인 게 아니잖아. 대상을 보는 방식이 중요하지 무엇으로 표현하는가는 이차적이니까. 키에슬롭스키 선생님도 말했잖아.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고. 선사시대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했고 백 년 뒤에 설령 영화가 없어지더라도 이야기는 여전히 남을 거야.
문: 그런 점에서 디지털이 대안의 형식이라는 것은 과장 같아. <꽃섬>이나 <나비>도 대안은 아니지. 현대 영화는 누벨바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 누벨바그 때 카메라가 가벼워지니까 감독들이 스튜디오에서 거리로 나온 것 아냐. 현대 영화도 미학적으로는 누벨바그와 차이가 없어. <꽃섬>이나 <나비>가 영화적으로 새로운 점이 있나?
송 : 당연히 없지. 그래도 영화 찍을 때는 힘들었어. 특히 스탭들. 임금은 반도 못 받는데 노동량은 서너 배가 되고. 정말 미안하고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 감독들은 돈 없으면 빌리고 달라고 하면 되는데 다음 작품 준비하고 생활도 해야 하는 스탭들은 그렇지가 않잖아. 그런 점에서는 저예산 영화가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아. 저예산에, 쉴 틈 없이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디지털 영화니까 더 힘들었겠지. (문승욱 감독을 보며) 그러니까 배우들이 도망가려고 하지.
문 : <꽃섬>은 배우가 동상에 걸렸다고 하던데? 송감독은 몰랐지?
송 : 알고도 모른 척했지.
문 : 긴장의 정도는 디지털이 필름의 열 배는 되는 것 같아. ‘이 영화를 스탭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정도니까. 그때 배우만 도망가려고 했던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송감독은 아예 섬에서 찍었잖아. (웃음)
송: 우리는 갇혀 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었지. (웃음) 강원도 산 속, 섬에서 찍었으니까. 배 타면 멀미하지, 추우면 동상 걸리지, 섬에 가면 바람 불지.
문 : 스탭들은 콘티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을 거야. 익숙지 않은 다큐의 방식을 썼으니까.
"난 타고난 유목민"
송 : 다큐 하면 <인간시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잖아. 가장 짜증나는 다큐가 책임지지도 못할 사람을 울리고 그걸 찍어서 보여주는 거. 카메라 들고 하루 나가서 우는 것 찍어 그냥 내보내는 거야. 방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접근은 윤리적으로 아주 위험해.
문 : 그런 경우는 인간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인간이 벌이는 ‘이벤트’에 관심이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송 : 키에슬롭스키가 다큐를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병원에서 우는 여자를 찍었는데 나중에 그 장면을 보니까 진실처럼 보이지 않더라는 거야.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그 여자가 오버해서 눈물을 흘린 거야. 그걸 보고 키에슬롭스키는 카메라의 진실성에 회의를 느끼고 다큐를 떠났다는 전설이야.
문: <이방인>은 극영화로 찍기 전에 다큐로 만들었는데 그때 모델이 됐던 태권도 사범이 자신을 너무 비참하게 그렸다면서 나를 고소했잖아. 그래서 <나비>는 찍기 전에 배우들과 묵시적인 계약을 했지. 내가 배우인 당신의 내면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계약. 배우는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마음이 강한데 <꽃섬>이나 <나비>의 배우들은 반대였지.
송 : 그런 모습은 연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 모습일 수도 있는 거야.
문 : 설계된 연기와 실제 모습이 겹쳐 있다고 봐야겠지. 디지털에 미학이 있다면 그런 것 아닐까?
송: 김호정씨나 강혜정씨는 정말 잘한 것 같지?
문 : <꽃섬>의 유진 역을 한 친구도 연기한 것처럼 보이지 않던데. 촬영하면서 겪은 중압감과 찌든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찍혀 있더라고.
송 : 그건 좀 과장이고. 내가 연기를 못 하게 했지. 연기를 안 했던 친구니까.
문 : 태권도 사범과 다른 점은 그 친구는 송일곤을 고소할 수 없다는 거지. (웃음)
송 : <나비>에서 추운 1월에 바다에 들어가서 애를 낳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나왔어. 안 죽은 게 다행이야. 잘못 하면 죽을 수도 있었어.
문 : 난 영화 찍으면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래서 호정씨가 요즘 머리가 빠지나? (웃음)
송 : 그런 면에서 우리 둘은 닮았지.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문 : 그 결과는?
송 : 망가지는 거. 막사는 거. (웃음)
문 : 송감독과 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잖아. 머리. (웃음)
송 : 난 아직 괜찮아. 과장하지 마. 태생이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성격이잖아. 성격이 유목민적이기도 하지만 이런 성격은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폴란드에 가기 전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는 모델을 찾기 힘들었잖아. 자연히 유럽이나 제3세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 영화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자체가 과거와 단절의 골이 깊었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어. 그런 뿌리뽑힌 자의 정서, 정착하지 못하는 유랑자 의식이 짙게 배어 있었어. 여기서 찾기 힘드니까 외국의 것을 찾게 되고 유학도 가게 된 거지. 한국은 남성 지배 의식이 팽배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이런 모순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들 영화에서 보여질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문감독과 내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지금도 그 뿌리를 찾아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리얼리즘이 아니야"
문 : 넓게 얘기하면 아버지가 없는 것 아닐까. 아버지의 권위도 없지만 권위를 세울 만한 토대도 없잖아. 사생아나 다름이 없는 거지.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증오와 원망을 쌓아가다보니 여성 또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려는 것이고. <나비>나 <꽃섬>이 여성 캐릭터에 몰두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 한국의 정체성이 묻어 있는 거지. 유럽은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부권이 강한 나라잖아. 유럽의 예술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항의 반복이니까. 우리는 도전할 권위조차 없어.
송 : 그러니까 영화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이 되는 것 같아. 하지만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아. 100명 중 99명이 리얼리즘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10명쯤은 다른 이야기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나는 그 10명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잖아. 첫번째는 만든 사람 자체가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지. 난 일상, 현실, 리얼리즘, 구체성 등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어. 왜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것을 일탈이라고 얘기할까.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폭은 많이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해. 리얼리즘에 경도돼 있지만 판타지의 상상력을 교육하는 경우는 전무하지.
문 :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리얼리즘적인 이야기가 아냐. ‘아라비안 나이트’ ‘오디세이’ ‘돈키호테’를 보면 알 수 있잖아.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실적이지 않지. 우리가 알고 있는 리얼리즘은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없어. 그냥 에세이지.
송 : 이창동 감독 세대까지 주류로 인정받았던 리얼리즘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어.
문 : 홍상수 감독도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없어. 홍감독 영화는 나중에 가면 묘하게 환상으로 변하잖아. 지금 영화를 배우는 친구들은 이를 곡해해서 사실적인 대화나 상황을 리얼리즘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
송 : 문화가 다양해져야 영양분을 많이 섭취할 수 있으니까 <꽃섬>이나 <나비> 같은 영화가 그런 다른 영양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
문: 한국처럼 산업적으로 영화가 부흥하는 나라는 상업영화가 지배하게 돼 있어. 우리가 떠날 때 폴란드도 비슷했잖아.
송 : 완전히 망가졌지.
문: 좋은 점도 있어. 산업화가 되면 영화 하는 사람이 먹고살 수 있으니까. 모두 예술영화 찍으면 굶어 죽지. 스탭들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산업은 커질수록 좋아.
송 : 산업과 예술은 같이 가는 거지, 예술영화나 상업영화 어느 한쪽만 번성한 시기는 없었어. 예술영화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은 경제적인 중흥이 선행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아. 그런 면에서 미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야. 인디 감독들이 아무리 탁월한 영화를 만들어도 99퍼센트가 블록버스터를 보고 만드는 상황에서 미국영화는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아.
문 :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니까 자본주의에 철저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있어야 안티 자본주의도 있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부정할 수는 없어. 나는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극단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해. 극단으로 갈수록 할 이야기는 많아지겠지.
송 :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폴란드에서 배운 게 참 많았던 것 같아. 폴란드에서 나는 한국에서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 시작했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영화의 기초부터 가르치기 때문이야. 그런 기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한국에서의 영화교육은 영화의 언어를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어.
"내 영화, 3천 명은 넘어야지"
문 : 한국과 폴란드의 영화학교는 차이가 있지. 폴란드에는 영화학교가 하나지만 50년 동안 교육해온 노하우가 있으니까.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뛰기를 강요하는 것이 한국이고 폴란드는 걸음마부터 가르치지.
송 : 난 이 좁은 나라에 영화학교만 30개가 있다는 현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쁜 놈들이지. 요즘 전문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영화과들을 보면 비디오 카메라 몇 대 갖다놓고 영화를 가르친다는 거야. 결국 돈 벌겠다는 뜻이지 뭐겠어. 그거 완전히 사기야.
문 : 그래도 한국에서는 폴란드 영화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걸. 갔다 오기만 하면 어려운 영화를 만드니까. (웃음)
송 : 지금은 ‘폴란드 한국 국립영화학교’로 이름을 바꿔도 될 거야. (웃음) 그 정도로 한국 유학생이 많으니까. 전체 외국 학생 중 절반이 한국 학생이잖아.
문 : 또 한국 애들이 잘하니까. 제일 잘하는 것 같던데. 물 만난 것처럼. 송감독도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잘했지만 지금 후배들도 거의 날아다니는 것 같아. 예전에 혼란스럽게 배웠던 것이 정리되니까 제 능력이 나오는 거지.
송 : 폴란드 유학생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까 영화만 붙들고 사는 것 같아. 공장지대에 갈 데도 없는데 뭘 하겠나. 술 먹고, 영화 보고, 영화 찍고, 영화 얘기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야. 영화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문 : 영화에는 할 일이 많아. 다음에는 내러티브의 힘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 더 재미있는 이야기, 더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이야기.
송 : 난 지금 <꽃섬>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서 관객의 반응이 몹시 궁금해. 평론이나 외적인 것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데 관객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가 제일 겁나.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지도 불투명하잖아. <꽃섬>이 한 3천 명 들면 다음 영화 못 찍으니까. (웃음) 지금은 영화 생각은 접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보고 싶어.
문 : 또 있잖아?
송 : 농사짓는 거? 농사도 짓고 싶고. 그래도 관객이 3천 명은 넘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웃음)
필모그래피
송일곤
1971년 출생
1994년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졸업
1995년 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우쯔 입학. 현재 4학년 재학중
1997년 단편 <광대들의 꿈>, 3회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
1998년 단편 <간과 감자>, 4회 서울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관객상
1999년 단편 <소풍>, 52회 칸 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
2001년 단편 <플러시>
2001년 장편 데뷔작 <꽃섬>, 58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문승욱
1968년 출생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신문방송학고 수료
1998년 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우쯔 졸업
1994년 단편 <어머니>, 1회 서울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예술공헌상
1995년 단편 <오래된 비행기>, 2회 서울단편영화제 예술공헌상
1997년 장편 데뷔작 <이방인>
2001년 장편 <나비>, 로카르노 영화제 청년비평가상, 여우주연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