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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인터뷰] 베를린영화제 초대된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프레시안
남궁효 추천 0 조회 141 10.12.12 13: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청계천 기계들, 이명박, 이건희, 그리고 우리들

[인터뷰] 베를린영화제 초대된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

기사입력 2010-12-12 오후 12:14:47

서울독립영화제(2010.12.9~17)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보기란, 멀티플렉스에서 흥행이 저조한 한국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발, 퍼블릭액세스와 함께 독립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귀한 자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삶과 세상에 대해 뜨겁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기록한 영화들의 성찬이 준비되어 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살짝 얹으면 된다. 어떤 걸 맛보더라도 다 괜찮을 테지만 올해는 특히 입맛 당기는 영화가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실험 다큐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벌써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대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청계천 메들리>(박경근 감독)'이다.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아야 인정해주는 사대주의 풍토를 비판하는 처지이지만, 한국의 고독한 다큐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건 어쨌든 기쁜 일이다.

해외영화제에서 우리 영화가 인정받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보편적이거나 특수하거나. 특수함은 호기심으로, 보편은 공감으로 반응한다. <청계천 메들리>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청계천'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근대화와 문명, 주관과 객관, 자아와 같은 인간 모두에게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표현 방식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서양에서는 익숙한 미디어아트라는 방식이다. 어떤 이는 이 새로운 형식과 도전에 끌리고, 어떤 이는 이 영화가 천착하는 문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공감한다.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영세공장들을 다룬 <청계천 메들리>

베를린영화제 측이 이 영화의 초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무렵 박경근 감독을 만났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지만, 비디오 아티스트이고 조각가이며, 사진가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해외를 돌아다녔고,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수학한 재원이며, 예술가들의 세계적 집합소인 뉴욕에서도 촉망받는 이른바 '엄친아'였다.

그런 그가 왜 하필 이제 근대의 기억마저 사라진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영세공장들에 천착했을까 궁금했다. <청계천 메들리>라는 제목도 독특했다. 청계천의 인공 복원 공사를 반대하는 생태다큐이거나, 개발로 밀려난 도시빈민들의 얘기려니 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래서 호기심은 더 커졌다.

▲ <청계천 메들리> 스틸컷. ⓒ이선옥

무릇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과 표상이 담겨 있는 법이고, 내게 청계천은 이명박과 전태일이라는 양극단의 인물이 떠오르는 공간이다. <청계천 메들리>라는 영화에 전태일은 전혀 없지만, 나는 오히려 이 영화에서 전태일을 느꼈다. 그래서 감독에게 혹시 전태일을 아는지 물었다.

"2004년에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 씨가 하는 공장을 가봤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5·18재단에서 아시아인권학교라고 해외교포 대상으로 사업을 했다. 비행기 값을 절반 대준다고 해서 통역으로 일했다. 그 인연으로 5·18재단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청계천 일대를 다니기도 했고, 전태일도 알게 됐다."

그는 물론 전태일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쇠로 표현되는 물질문명과 산업화가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던 전태일의 그것과 닮았다. 영화에 나오는 청계천 뒷골목의 철공소와 주물 공장, 금형 공장에는 여러 기계가 있고, 그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음이 있다. 감독은 자신의 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쇠의 표면, 제련될 때 나는 소름 돋는 소리를 청계천의 공장에서 재현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 고물상을 했다는 할아버지를 통해 그 악몽의 정체를 파고든다. 그는 자신의 악몽이 급변의 시기를 겪은 지난 세대의 충격적 경험이 꿈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전승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 되듯, 그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대학 졸업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런 할아버지가 꿈에 등장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 몸이 도서관처럼 기억을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논리적인 인과관계로는 안 맞지만 기억이란 게 유전자나 대를 이어서 내려올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몸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정보들이 툭툭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주로 꿈을 통해 나오는 것 같다. 반복되는 꿈을 보면서 얼핏 지금 내 기억과 관심이 할아버지를 통해 내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리얼리즘을 안 믿는다. 모든 게 다 재현이다. 소재 자체에 진실이 담겨있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 주관을 통해서 설명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리얼리즘과 내 감각은 다르다. 유물적인 사고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 않나. 모든 일이 물질을 통해 드러나는데 사실 물질도 가만히 30분만 보고 있으면 묘한 신비로움이 있다.

영화 제목도 노래방 가면 '뽕짝 메들리'가 있듯이 이어달리기 식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표현하려 했다. 기승전결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끝이 나서 새로운 시작이 되는 그런 구조. 영화를 찍은 곳이 청계천 근처의 입정동이라는 곳이다. 처음에는 '입정동 메들리'였는데 친구가 입정동은 아무도 모른다 해서 청계천으로 바꿨다(웃음)."


청계천의 개발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의 영화에서 보이듯 쇠로 대표되는 기계문명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도 했지만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게도 만들고 있다. 개발이라는 단어만큼 극단의 반응을 가진 단어도 없을 젓이다. 저주와 찬양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반응.

"기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야한다. 모든 삶을 기계가 바꿔 놓지 않았나. 기계가 만든 미디어가 우리의 삶을 확 바꿔 놓았다. 운전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 무의식적인 감각이 바퀴 앞까지 연결 되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고 결국 차와 내가 일체가 되어 움직이지 않나. 그처럼 인간과 기계가 일체가 되면서 기계나 미디어들이 인간의 본디 감각을 둔화시켰다고 본다. 폭력과 전쟁의 역사들이 다 그렇다. 미디어가 굉장히 폭력적인데 인간의 감각이 그런 것에 막혀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영화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곳에서 일하려면 쇳소리가 엄청 시끄럽다. 일하려면 이걸 견디고 감각을 다 닫아야 한다.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어떤 사장님은 청계천에 들어오면서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특히 한국은 근대적인 사회에서 말하는 자아라는 개념이 성립이 안 된 상태다.

자아라는 걸 나는 안 믿지만 일단 감각이든 뭐든 인지하는 게 자아라고 할 때, 닫힌 눈과 귀와 감각, 맛,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걸 안 믿는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시간도 없다.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기계화된 문명이 인간을 야만으로 만드는 거다."


기계문영, 쇠, 인간의 원형, 이야기 등 말하고 싶은 게 많은 감독

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개인들, 즉 근대적인 자아가 없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국가보안법 같은 반이성적인 법은 이미 없어졌겠지. 교사나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면 안 된다는 법이 생겨날 리도 만무하고, 동성애자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보면 내 아들이 동성애자가 되어 에이즈에 걸린다는 주장이 시민운동의 외피를 쓰고 춤추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근대라 하기에도 뭔가 애매한 사회에 탈근대 바람이 분 것도 사실 우스운 일이다. 감독은 그런 문제들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기계문명, 쇠, 인간의 원형, 이야기, 남성, 그리고 여성까지 말하고 싶은 게 많았다.

"영화에 철공소 아저씨들이 모여 개불을 먹는 장면이 있다. 개불의 내장을 긁어내고 이를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을 길게 담았다. 남자 성기를 닮은 개불 모양을 보고 저급한 농담도 섞인다. 이미지만으로도 성적이고, 강렬하고, 역겹다. 기계의 움직임을 보면 원재료를 가공해서 완제품을 뱉어낸다. 뭔가를 먹고 뱉어내는 그게 개불과 닮았다.

이질적인데 어울리는 그런 묘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그 장면을 두고 페미니스트들이 이건 남성 성기 영화라고 했다. 청계천은 지역 자체가 굉장히 남성적이다. 중간 중간에 다방들이 있고, 레지들과 아저씨들이 수다 떠는 장면들을 보면 공간 자체가 남성적인 느낌이다. 개불도 성기처럼 보이니까 한국사회가 남성 시스템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느낌도 컸다. 아저씨들은 왜 이럴까. 한국 남성에 대한 정체성이랄까 뭐 그런 것들."

그의 영화는 우선 이미지로 강렬한 느낌을 주고 이를 통해 전달받는 느낌을 사유하게 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한 다큐멘터리의 작동방식과는 다르다. 기계로 대변되는 온갖 문명들이 파괴해 놓은, 그리고 기계를 조종하고 제어해야 할 인간들이 오히려 기계의 일부가 된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더 본질적인 인간화 투쟁이기도 한다. 하지만 투쟁해야 할 현실이 산적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유조차 한가한 물음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는 이른바 민중운동 진영인 곳과 문화예술인들이 서로가 더 발전하려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물음을 사치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예술인들이 용산이나 두리반 같은 현장에서 기타 한 번 치고 자위하는 거 아니냐고 조롱할 수도 있다.

실제 그들 자신도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예술가가 참여하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지 않나.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걸 예술가들은 잘 못하니까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지금 프로듀서를 만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혼자 있으면 못하는 일을 같이 있기 때문에 베를린에 초청도 받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용산의 문제 같은 것도 합리적인 시스템이 없으니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 사회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나.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서로 보완해야 한다."

곁에 있던 프로듀서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그거라고 했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행동양식과 다르지만, 창작물을 보면 같은 문제의식을 관통하고 있는 것. 그러나 대상을 언제까지 타자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우려도 든다고 했다.

"세상엔 결국 어떤 타자도 없다. 사회가 다 만들어내는 거다. 나를 통해야만 객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객관과 주관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 지식이란 것도 다 경계를 나누려고 한다. 너는 어디 속해있나 물으면서. 그런 걸 인위적으로 만들어놓는 게 되게 웃기다. 다빈치는 화가이고 수학자이고 과학자였다.

그런데 오늘 날 사회는 너는 영화 하니까 미술은 못해, 너는 충무로에서 없었으니까 영화는 못해 하면서 자꾸 경계를 나누고 타자를 만든다. 사실 들어가 보면 자본이 다 갈라놓는 거다. 내 인생의 절반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사람들이 너는 미국 놈이냐 한국 놈이냐 많이 물어본다. 그런 물음이 웃기다. 내 정체성을 그런 것에 안 둬도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오히려 그렇게 살아가야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는 그에게 어쨌든 그런 사유가 가능한 것은 당신이 가진 배경 때문이라고 조금 모진 소리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바쁘고 우리 삶은 힘겹다. 당신이 돈에 여유 있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이런 성찰도 하는 것 아닌가.

▲ 박경근 감독. ⓒ이선옥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다(웃음).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었다. 70년대 박정희가 군인들을 각 분야로 배치했을 때 외교부로 들어오신 분인데, 리까지 들어가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원리원칙 주의자여서 잔머리 굴려 재산 불리는 거 잘 못했다. 어릴 때 주공아파트에 살았는데 아궁이가 있었다.

외환위기 때도 외교관 집안인데 집에 내 방이 없었다. 아버님 말씀이 은퇴하고 30년 일한 것보다 3년 재테크해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한다(웃음). 계급으로 나를 볼 때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이나 상류층까지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것도 아니고, 해외 나가봐도 그것도 아니고, 정체불명인 것 같다.

미국에서 한국 부르주아들을 보면서 참 불쌍했다. 일단 감각이 없으니까 투박하고 촌스럽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부자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크니까 힘들어한다. 아무리 한국에서 부자라 해도 '어퍼이스트(뉴욕의 부촌)'에서 천만 원짜리 와인 먹는 사람과 벌써 격차가 있는 거다.

부르주아란 개념도 우리나라는 안 맞는 거 같다. 이건희 집안도 3대밖에 안 되고 아직 근대적인 개념의 전통이 없다. 부르주아들이 예술가를 먹여 살리는데 한국 부자들은 그런데 관심도 없다(웃음). 한국 부자 3세들이 좀 더 자기 삶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감옥 같은 강남의 아파트에서 사는지…."

나는 인문학이 필요한 건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인간에 대한, 물질문명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사실 기계의 노예처럼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노동자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다큐멘터리이고, 또 실험영화라 친절하지 않다. 지식인들의 취향에 맞춘 영화로 규정되고, 결국 지식인들의 입에서 상찬되다가 끝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노동자들이 보면 이게 뭔지 모르지 않을까 하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사실 관객들의 수준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부산영화제에서 보니 영혼이 없는 쇠라는 거, 그걸 관객들이 뜻밖에 다 이해하더라.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해서 놀랐다. 아마도 머리로는 이해 안 되는데 감각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일 거다.

노동자들이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히려 그런 감각과 능력을 단순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상업 영화인 것 같다. 물론 내 영화가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읽어낼 수 있는 사람,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걸로 좋다."


노동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때 자본주의는 균열이 올 것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그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게 무엇이고, 인간에게서 인간다움을 앗아간 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가인 자신의 처지에서 그 고민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이며 나름 치열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예술 하는 자의 고민은 사치요, 투쟁하는 자의 고민만이 진짜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짜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군대에서 보니 90%가 아니더라. 만약에 이들이 다 자아실현을 하면 그건 혁명이다.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사회가 바뀐다. 개인적인 혁명이 곧 사회적인 혁명이 되는 거다. 친구들 중에 잘 사는 사람 많다. 금융회사 다니고 연봉 높아도 하나도 안 부럽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부자를 보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희망을 가져야 할 텐데,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이건희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이건희라는 컨셉, 파워를 욕망한다. 불행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내가 어떤 장소를 정해서 묘사를 하라는 과제를 준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모든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게 한다. 근데 애들이 당황하면서 예를 보여 달라고 한다. 네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해봐라 하면 못한다. 충격이었다. 더한 충격은 나한테 혼날까봐 못한다는 거다. 그런 현실이 우울하고 슬프다.


하지만 네가 느낀 게 맞다, 미학의 기본은 네가 보고 네가 느끼는 게 다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조금씩 변한다. 항상 아시아의 문제는 남이 보고 남이 느낀 걸 제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이런 데서 커피 마시고 앉아 있어야 우아한 줄 아는 거. 이런 냄새를 좋아하는 게 과연 나인가? 정말 나인가? 내가, 내가 아닌 거다."

개인들이 다 자아실현을 하면 그게 혁명이란 말에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회색작업복을 입고 회색공장에 들어가 밤낮으로 일하고, 휴일에도 잔업, 특근으로 밀린 잠을 자는 게 전부인 삶. 그런 노동자들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 자본주의는 바로 균열이 올 것이다.

"백남준 선생이 말하길 '내가 미디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기술을 더 혐오하기 위해서'라 했다. 기계를 싫어하면서도 쓰는 이유는 이걸 벗어난 삶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뭔가 카타르시스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나를 가리키며) 지금 인터뷰어가 노트북을 이용해 글을 쓰듯, 미디어를 잘 이용하면 글로벌적인 의식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많은 걸 알게 해주고, 우리가 따로 있지 않고 늘 같이 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미디어아트가 무엇이냐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예술이다. 더 가볍고 더 감각적이고. 내가 어떤 친구에 대한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친구한테 문자가 와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랄까.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미디어가 나타내 주니까. 그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 구현되는 건 결국 미디어를 통해서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아트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청계 천 메들리 스틸컷. ⓒ이선옥

이 영화를 프로듀싱한 김경미 프로듀서는 <청계천 메들리>가 한국 다큐의 지형을 좀 더 다양하게 넓히는 데 기여하길 원했다. 다큐멘터리 하면 운동권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영화가 존재감이 있길 바라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것도 그런 면에서 기쁘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국 사회가 아직은 권위를 가진 존재가 인정해야 비로소 진지하게 봐주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만날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설레고 있는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다음 작품에 대해 물었다.

"군대이야기를 하고 싶다. 군대와 우울증에 대한 얘기. 또 하나는 철의 연작형태로 규모를 크게 해서 조선소를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미디어아트가 아닌 다른 형태로 청계천에서도 직접 만지는 걸 해 보고 싶다. 멀티미디어아트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다큐를 포맷으로 하는 미디어아트를 할 계획도 있다. 극영화는 내 인생에 별 드라마가 없기 때문에(웃음) 아직이다.

이 영화를 만들 때도 플라잉시티라는 예술가 그룹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서 그 지원과 알바로 해결했다. 다음 작품은 영화제 통해 작품이 팔리거나 배급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고 싶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그렇다."

노동의 결과물이면서 자신의 작품인 영화를 팔아 그 다음 노동을 이어가고 싶은 소박한 바람.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예술가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그 역시 똑같이 하고 있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사유하고 있지만, 사유를 표현하는 몸뚱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서 부대끼고 있는 모습. 기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에 묻혀 허우적대는 근대화된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과 어쩌면 닮아있다.

/이선옥 르포 작가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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