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친환경 앞장선 독일
천연가스 55% 러시아 의존
우크라 사태 후 공급 막히자
가스가격 폭등·유로화 급락
대비책 없어 경제전반 타격
車·2차전지 등 韓 주력 사업
원재료 中의존 과도한 수준
공급망 다변화로 대란 막아야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지난 2일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노르드스트림 1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르드스트림 1은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한 가스관으로 연간 550억㎡의 가스를 독일 등 유럽으로 공급해왔다. 가스프롬은 정기 점검 중 발견된 가스 누출이 공급 중단의 원인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같은 날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합의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6월부터 노르드스트림 1의 정기 점검을 이유로 가스 공급량을 정상 물량의 40%, 30%, 20%로 순차적으로 감축해왔는데, 이번에 완전히 공급을 중단한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의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에 보복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차단이 알려지면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고, 천연가스 가격은 30% 이상 폭등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은 독일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연방은행은 천연가스 부족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독일 국내총생산(GDP)이 향후 2~3년간 2~3%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대비해 지난 3월부터 가스 공급 조기경보를 발령하고 수급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해왔다. 카타르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석탄 화력발전소를 더 가동하고 있고 올해 말 폐쇄 예정인 원자로 3기의 연장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 또 공공건물의 난방 온도를 제한하고 광고판 조명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 천연가스의 수요 감축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화학회사 바스프(BASF)의 마르틴 브루더뮐러 최고경영자(CEO)는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로 독일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과도한 수입의존도 때문이다. 2020년 독일은 전체 천연가스 중 55%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독일의 러시아 천연가스 '중독'은 지난 50여 년간 독일이 펼쳐온 외교·경제·환경 정책의 복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주창한 동방정책(Ostpolitik)은 같은 해에 서독과 소련이 체결한 천연가스 장기 공급 계약의 초석이 됐다. 동방정책의 핵심은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로서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교류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아가 러시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독일에 가스를 판매하면서 얻은 수익에 의존하게 되면 독일은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적으로도 독일은 당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르웨이나 중동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된 러시아 가스는 독일의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고 기업의 원가경쟁력에도 공헌했다. 특히 1차 오일쇼크 이후 독일에 러시아는 중동보다 더욱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들어 독일 정부가 온실가스를 절감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석유와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중간적인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독일이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는데 독일은 어떤 위험 관리 정책을 수립했나. 작년 12월 취임한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장관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중단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완전히 끔찍한 무력함"이라고 표현했다. 독일의 대표적 시사지 슈피겔은 독일의 이러한 착각이 독일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즉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독일에 판매하면서 얻은 경제적 수익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독일을 천연가스로 압박할 수 없다는 착각이다.
이런 생각은 1970~1980년대까지는 타당해 보인다. 독일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당시 10~15%로 유지되고 있었고 러시아는 독일에서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거래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러시아의 가스 개발 협력이 가속화되고 독일의 에너지 정책이 친환경으로 전환되면서 독일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급속하게 증가해 작년에는 55%에 육박했다. 또 러시아 가스프롬이 독일 내 가스 운송, 도매거래, 가스 판매에 진출하면서 러시아가 거래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다. 지난 2월 가스프롬은 독일 내에서 관리하는 가스 저장 탱크를 의도적으로 비워 독일의 천연가스 가격을 상승시키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 냉전 시대에 닫힌 소련의 문을 열기 위해 독일이 천연가스 무역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해 독일을 압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독일의 천연가스 대란은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 주력 산업은 원재료의 중국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자동차용 강판과 전자제품의 필수 재료인 마그네슘은 중국에서 100% 수입한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은 84%, 코발트는 81%, 천연흑연은 89%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전기차의 구동 모터에 들어가는 희토류 네오디뮴은 중국에서 88%를 수입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오히려 이제까지 쌓아온 협력관계를 저해할 수 있다. 중국의 시장지배력이 커지고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원재료 공급망을 다원화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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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