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000년경 처음 등장한 장식적인 용도의 아마포(리넨 소재) 케이프는 중세 남성들의 방한용 외투를 거쳐 19세기에는 퍼와 벨벳 등을 이용한 여성들의 화려한 방한복으로 진화되었던, 역사가 매우 긴 패션 아이템 중 하나다. 그 후 잠시 사라졌던 이 케이프는 1940년대 뉴 룩의 등장과 함께 플란넬 소재의 서큘라 케이프와 케이프 칼라가 달린 코트 등 보다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고, 연이어 50년대에 등장한 케이프 룩은 마치 최근의 컬렉션을 보는 것처럼 매우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하이 웨이스트 라인의 타이트 스커트와 짝을 이룬 트위드 소재의 케이프에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장갑을 매치한 매우 시크한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말이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줄무늬 셔츠에 스키니한 블랙 팬츠, 팬츠 위로 바짝 올려 신은 꼭 끼는 롱부츠와 발렌시아가의 라리앗 백, 여기에 몸을 푹 감싸주는 커다란 케이프를 두른 가냘픈 금발의 여인이 눈에 띈다.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이 룩의 주인공은 바로 케이트 모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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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힌 케이트의 이 세련된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저렇게 한번 입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분명 ‘케이프를 아무나 입나’ 하는 생각에 이내 포기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고정관념 속의 케이프는 스타일링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살짝 민망하기도 한 그런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이유로 선뜻 케이프를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이번 시즌 트렌드 리스트에 케이프가 속해 있으며 그 형태와 느낌이 매우 다양해 레이디라이크 룩이나 걸리시 룩 혹은 보이시 룩 등 어떤 스타일로든 매우 트렌디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컬러의 새로운 케이프를 다량으로 선보인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스타일링에도 꽤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패셔니스타들의 케이프 스타일링에 주목해본다면, 분명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된 연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케이프의 느낌을 규정짓는 것은 길이와 실루엣이다. 언뜻 풍성하고 길게 늘어지는 케이프는 클래식하거나 시크한 룩에, 슬림하고 길이가 짧은 것은 걸리시하거나 캐주얼한 룩에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분류해버릴지 모르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그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는 것이 좋을 듯. 발렌티노는 몸에 꼭 맞는 팬츠와 뉴스보이 캡에 날렵한 디자인의 긴 케이프를 블랙과 레드, 베이지 등 절제된 컬러 매치로 선보여 도회적인 보이시 룩을 연출했으며, 랄프 로렌은 허리선이 높은 스커트에 후드가 달린 케이프와 기다란 가죽 장갑을 매치함으로써 우아하고 복고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또한 프로엔자 슐러는 시퀸 장식의 화려한 미니스커트에 녹색 톤의 톱과 벨트를 매치한 후 갈색 헤링본 케이프를 둘러 소재와 컬러의 시크한 조화를 시도했고, 도나 카란은 커다란 검정 케이프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아웃핏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또한 망토 스타일의 기다란 케이프가 걸리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블루걸과 폴 스미스의 컬렉션 역시 주목할 만하다. 블루걸은 미니 원피스와 니트 장갑, 그리고 플랫 롱부츠에 스커트와 길이가 비슷한 심플한 디자인의 후드가 달린 케이프를 매치하고, 폴 스미스는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패턴을 믹스&매치해 트렌치코트를 변형한 듯한 롱 케이프들을 위트 있게 풀어냈다. 가을이 되면 기다란 케이프를 멋지게 입고 다니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에게 이 아이템을 왜 좋아하는지 묻자, 그녀는 “케이프, 정말 드라마틱하죠. 귀족적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손놀림도 자유롭고 얼마나 따뜻한데요. 좀 무겁고 가끔 뒤로 넘어갈 때면 목이 조여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전 정말 케이프를 즐겨 입는답니다. 케이프,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아이템이 아니에요. 이번 시즌 발렌티노가 선보인 아가일 프린트의 베이지색 케이프 있잖아요. 여기에 데님 크롭트 팬츠와 클로에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롱부츠만 매치해도 훌륭한 스타일링이 완성되죠. 라코스떼의 작은 챙이 달린 털모자를 쓴다면 더 좋겠네요. 좀더 우아한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성장해야 하는 자리라면, 줄리앙 맥도널드의 블랙&화이트 체크 케이프는 어떨까요. 여기에는 당연히 무릎 아래 길이의 검은색 H라인 스커트와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가 필수죠. 신발은 복고적인 느낌의 메리제인 슈즈를 신어주세요. 셀린의 롱 장갑과 베레모를 매치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이 아름다운 착장의 마무리는 귀밑에서 딸랑거리는 진주 귀고리라는 것도요”라고 스타일링 노하우를 전수하며, ‘케이프를 입을 때는 항상 장갑과 베레모를 매치해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했다. |
룩보다는 좀 걸리시한 빈티지 룩을 즐기는 저는 이런 짧은 케이프에 심플한 원피스를 매치하죠. 케이프는 평범한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장식이 너무 많은 것들과 매치하는 것은 좀 위험해요. 차라리 심플한 원피스와 함께 입은 후 재미있는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버버리 프로섬의 줄무늬 목도리와 소니아 리키엘의 챙이 넓은 모자처럼 독특한 액세서리를 더해준다면 케이프를 더 재미있게 입을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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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길이가 짧은 케이프의 경우에는 소재에 그다지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허리선 아래로 내려가는 기다란 케이프의 경우 부피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플란넬이나 니트 정도로 제한될 수 있겠지만, 짧은 케이프의 경우에는 울이나 퍼, 니트나 레이스까지 다양한 소재로 디자인이 가능하다. 어깨만 덮을 정도의 짧은 퍼 케이프를 데님 쇼츠와 재킷 위에 매치해 웨스턴 룩으로 풀어낸 디젤이나, 꽃무늬 시폰과 니트를 믹스한 케이프와 빈티지풍 꽃무늬 자수의 울 케이프를 가느다란 머리띠와 함께 연출해 히피 룩을 제시한 겐조는 소재에 구애받지 않는 짧은 케이프의 매력을 잘 부각시켰다. 또한 멋진 롱 케이프들로 주목받은 발렌티노는 같은 컬렉션에서 아이보리색 퍼 소재의 작은 케이프를 레이스업 뷔스티에와 엠브로이더리 스커트에 매치하거나 흰색 시스루 레이스 블라우스에 검은색 레이스 케이프를 매치하는 등 매우 여성스럽고 드레시한 룩에 어울릴 만한 짧은 케이프에도 관심을 보였다. 짧은 케이프가 가진 전형적 이미지인 걸리시함을 강조한 블루마린이나 모스키노 칩&시크뿐 아니라, 낡은 데님 팬츠에 케이프 재킷을 시크하게 매치한 줄리앙 맥도널드와 클로에 컬렉션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시즌 최고의 스타일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된 케이프 룩을 제안한 클로에는 줄무늬 새틴 블라우스에 보이시한 퀼로트, 그리고 두 번을 돌려 감아도 땅에 끌릴 만큼 기다란 목도리와 앞코가 둥근 미니멀한 갈색 롱부츠에 매치한 심플한 디자인의 아이보리색 케이프를 매치해, 케이프가 그 어떤 가을 아우터 못지않게 유혹적인 아이템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러브 스토리>의 사랑스러운 알리 맥 그로와 우아한 레이디라이크 룩의 그레이스 켈리, 그리고 늘 꾸미지 않은 듯 시크한 룩을 연출하는 케이트 모스. 여기, 케이프를 입은 세 여인이 있다면 이번 시즌 당신의 선택은?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