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서정춘에서 생긴 일
― 시집 『봄, 파르티잔』에 관한 한 잡문
이문재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침밥을 먹고 걸었고, 점심밥을 먹고 걸었으며, 저녁을 먹을 때까지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걸었고, 잠들 때까지 걸었다. 5월 좋은 날, 햇빛 좋아 좋은 날, 바람 좋아 좋은 날, 지리산 곁이어서 더욱 좋은 날들은 결국 걸어서 좋은 좋은 날들이었다(눈치채셨겠지만 이 서툰 문장은 서정춘 선생의 시 「성화」에 나오는 "별빛은 제일 많이 어두운 어두운 오두막 지붕 위에 뜨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30여 년 만에 걸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3일 이상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술만 처먹고 돌아다닐 때 역사를 생각하며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논산훈련소 시절에 걸었던가.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걸은 것이 아니고 국가가 걸은 것이고, 분단 상황이 걸은 것이었다. 80년대 중반, 월급쟁이가 된 이후, 나에게 걷기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걷지 않기 위해 죽도록 뛰어다녔다. 뛰어야만 먹고 사는 줄 았았다. 도시에서 벌어먹고 사는 나같은 존재에게 걷기는 버려야할 유물이거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지난 5월3일부터 18일까지, 16일 동안, 나는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주최한 '지리산 8백50리 도보 순례'에 참가했다. 이 도보 순례는, 생명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앞당기기 위해 범종교계와 1백90여 시민·환경 단체가 손잡고 마련한, 분단 이후 처음으로 거행되는 '지리산 위령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도보 순례 초입에서 나는 겁이 났다. 이 장정을 배겨낼 수 있을 것인가. 30년 넘게 걸어보지 않았고, 운동이라고는 1년에 대여섯 번 북한산에 오른 일밖에는 없지 않았는가. 게다가 지리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과거)도 버거웠고, 도보 순례가, 그러니까 지리산 위령제가 생태적 세계관(미래)을 모색하는 한 마당이라는 사실도 감당하기에는 무거웠다. 다만 나는 걷고 싶었다. 걷는 동안, 걷는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도대체 나는, 내가 지나온 삶은 집중과 그 집중의 지속이 전무했던 것이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을 기점으로, 지리산을 오른손 편에 두고 걷기 시작해, 엄천강, 경호강, 남강(이 세 강은 이름만 다를 뿐 한 물줄기다)을 따라가며 산청군으로 접어들었고, 하동으로 넘어가서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를 걸었다. 하지만 길은 내 몸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걷기 그 속으로 들어가 몸으로 명상하기가 어려웠다. 이른바 행선(行禪)으로서의 걷기는 아직도 나의 밖이었고, 그래서 나의 미래였다.
어쨌든 나는 지리산을 오른편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걸었다. 12시에서 3시 방향으로, 복잡한 마음으로 걸었고, 지친 몸으로 걸었고, 술 덜 깬 몸으로 걸었고, 3시에서 6시 사이를 후회하며 걸었고, 반성하며 걸었고, 참회하며 걸었고, 지리산을 보며 걸었고, 6시에서 9시 사이에는 섬진강을 보며 걸었고, 시계가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포크 레인을 보며 걸었고, 덤프 트럭을 보며 걸었고, 내 아이들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해달라며 걸었고, 좌우 이념 갈등이 사라지게 해달라며 걸었고, 생명의 위기에 대한 각성이 도처에서 일게 해달라며 걸었고, 틈틈이 시를 잘 쓰게 해달라며 걸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이 걷는 동안, 내가 걷는 몸으로 걸은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죽도록 걸었지만 나는 걷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게 걷다가 서정춘 선생의 「봄, 파르티잔」을 떠올렸다. 그 짧은 시! "꽃 그려 새 울려놓고/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소식". 불과 8단어, 3행,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절창을 지리산 골짜기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맥이 풀렸다. 두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죽편」 이후 긴장을 풀고 있던 나는 또 진 것이다. 시는 짧아야 한다. 너덜너덜한 살을 다 발라내든지, 아니면 육탈이 잘 될 때까지 기다리든지, 그 시작법이 어떻든지 간에, 시의 숙명은 짧은데 있다는 것이 내 시론의 최근이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존재가 아니라 짧은 시를 쓰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의 시작법으로는 저렇게 짧은, 짧아서 한없이 긴 시를 생산해낼 재간이 없었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 지리산 빗점골까지 올라가(이때는 도보 순례가 아니라 등반 순례였다) 순례자들이 위령제를 지냈는데, 저마다 묵념하고, 추도사를 낭독했지만, 그것들은 분량이 길다는 의미에서 「봄, 파르티잔」보다 짧았고, 언어들이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봄, 파르티잔」에 견주어 너무 장황했다. 나는 그 시린 물 쿵쾅거리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봄, 파르티잔」을 복기했다.
'꽃 그려 새 울려놓고'에서 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리산으로 떠난 빨치산의 꿈이 아니던가. 인간이 인간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설계도. 그 설계도를 보고 '새'는 울었다. 그 새는 연인이거나 부모 형제거나 친구거나 상관이 없다. 어쨌든 시 속의 그 누군가는 봄날,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봄날, 응달에 진달래 피고, 신록을 쥐어뜯으며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 들릴 적이면, 봄소식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 시의 공간은 의외로 넓다. 새를 울린 곳과 지리산 골짜기 사이의 거리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다. 한국 좌익 운동사가 들어서도 남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다. '떠났다는 소식'에서 '떠났다는'에 주목하면 시간의 폭 또한 만만치 않다. '그'가 빨치산이 되어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시간과, 실제로 '그'가 지리산으로 들어간 시간과의 사이에 또 시계로 재기 어려운 시간이 자리잡고 있다. 저 소식은 빨치산이 궤멸된 이후에 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식은 뉴스가 아니어서,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뒤늦게 들을 수도 있는 법. 8개의 낱말,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시가 거느리는 시공간은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남부군의 전설적 지도자가 최후를 맞이한 지리산 빗점골에서 「봄, 파르티잔」을 떠올린 이후, 나는 지리산에서 벌어진 민족사의 비극을 몇 개의 언어로 압축하려는 문학적 욕망을 폐기처분했다(잠깐 빗나가는 얘기지만,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한 방식이 의인화이거니와, 이 의인화가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중심주의의 대표적 소프트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에 지리산 언저리를 걸으면서 한 적이 있다. 정색을 하고 의인화를 성찰할 일이다). 지리산 얘기가 길어졌다. 각설하고, 무대를 서울 인사동, 아니 경기도 양평의 한 저수지로 옮긴다.
지난 4월 어느 날 저녁, 인사동 이모집에서 무슨 모임이 있었다. 아, 생각났다. 은희경씨 소설 출판기념회. 평소 가까이 지내는 마흔 전후의 글쟁이들이 김화영 선생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김화영 선생은 전작이 있으셨는지,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김화영 선생은 그 좋은 낯빛과 윤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야, 이문재! 너 이 시 봤어?". 그러시며 탁자 밑에서 자랑삼아 꺼내는 시집이 『봄, 파르티잔』이었다. 선생은 즉석에서 시집에 실린 시 「저수지에서 생긴 일」을, 오른손 둘째 손가락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어 내리셨다. "아, 좋다! 요즘 이런 시가 있다니. 내가 지난 몇 년 간 시를 안읽었는데, 이젠 읽어야겠어". 나는 선생과 건배하며 벌컥 마셨고, 조금 있다가 혼자 가만히 한 잔 더 따라마셨다. 나는 「저수지에서 생긴 일」이 쓰여진 그 저수지에 간 적이 있었다. 그것도 서정춘 선생을 따라서.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는 결코 숨가쁜 잠행 끝에 한 번쯤 자기 힘을 수면 위로 뿜어 내보인 것인데 그것도 한 순간에 큰맘 먹고 벌이는 결행 같은 일이기도 하다
「저수지에서 생긴 일」 전문이다.
3년 전이던가. 난생 처음 민물고기 낚시에 따라 나선 적이 있다. 상도 터널 입구에서 서정춘, 김형영 선생과 접선한 뒤, 풍납동으로 달려가 백혈병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 김춘추 박사와 합류했다. 참, 박사가 아니다, 여기서는 시인이다. 서정춘, 김형영 선생의 '후배 시인'이자 친구인 김춘추 선생이 자주 가는 낚시터로 향했다. 손바닥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커다란 저수지도 아니었다. 저수지 낚시를 어항 낚시라고 이해하던 나에게 그날 밤은 신선했다. 그날 밤, 알았다. 낚시는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피라미 서너 마리를 낚아올렸을 뿐인데, 어느 틈에 먼동이 트는 것이었다. 낚시의 본질은 손맛이 아니라 시간 죽이기에 있었다. 찌는 블랙홀이었다. 그 속으로 시간은 과속으로 입수했다.
그 저수지에 다녀온 뒤, 나는 짧게 쓴 것이라며 시 한 편을 써서 발표했다. 자랑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처지는 것도 아니어서, 이 다음에 시집낼 때 버리지는 않아도 되겠거니, 하고, 어디서 공돈이 생긴 듯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김화영 선생의 육성으로 「저수지에서 생긴 일」을 접하는 순간, 서정춘 선생과 바로 그 저수지에 갔던 일이며, 거기에 다녀와서 내가 발표한 시가 떠올라 남모르게 얼굴이 홧홧했던 것이다.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냅다 들었다 놓은 순간은, 오직 서정춘 시인만이 나꿔챈 순간이다. 지리산에서 「봄, 파르티잔」을 복기하기 전, 인사동 봄밤 속에서 나는 저수지에 졌던 것이다(시의 품격과 경지를 지고 이기는 저급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이 후학의 천박함을 헤아려주시길). 그것은 일대 전환이었다. 저수지와 물고기라는 주종관계를 뒤엎어버리는, 그야말로 결행이었다. 장엄이었다.
지리산에서 돌아와 『봄, 파르티잔』을 다시 펼쳐들었다. 서울로 복귀한 지 채 닷새도 지나지 않아 내 몸은 '걷기의 관성'을 완벽하게 망각하고 있었다. 구두굽이 그렇게 낯설었는데(보름 동안, 쿠션이 있는 비싼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내 걸음걸이는 시멘트 위에서, 그리고 구두굽 위에서 불편해하지 않았다.
몸은 거룩하지만 간사하기도 했다. 마음이 그렇듯이 몸도 끊임없이 감시해야 했다. 마음도 내 것이 아니고 몸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또다른 나의 하수인이었으니, 하수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저 또다른 나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이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이 바로 밥과 똥이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보름 가까이 유지되던 밥의 내용과 형식이 헝클어졌고, 결국 똥의 윤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시 속으로 완벽하게 귀환한 것이다.
「봄, 파르티잔」에는 두 개의 똥이 등장하거니와, 하나는 말이 싸는 푸른 말똥(「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이고, 또 다른 하나의 똥은 절간 해우소에서 누는 '깊은 똥'이다. 앞의 똥은 아버지와 고향, 그리하여 개인사를 반추하게 하는 매개로서의 똥이다. 이 똥은 음식처럼 숭고한 똥이었으니, 시인이 열 살 생일날 일기장에 "침발린 연필 글씨로" 쓴 그 푸른 말똥은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은 것이었다. 오늘, 환갑이 가까운 시인이 그리워하는 말똥은 요즘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보다 깨끗한 풀빵인 것이다. 풀빵, 풀(草)로 만든 빵이 있는 세계는 생태적으로 결함이 거의 없던 세계였다. 풀을 먹고 풀빵을 만들어내는 순환하는 세계, 재생이 가능한 세계였다.
밥이 우주라면, 똥 역시 우주다. 밥이 병들었다면, 똥 또한 그 즉시 병든다. 밥이 오는 길이 보이지 않게 되었듯이, 오늘, 우리가 눈 똥이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밥이 오는 길에는 자본의 톨게이트가 있고, 똥이 가는 길에는 권력과 체제의 '정화조'가 있다. 밥과 똥이 기형적으로 얽히고 설킨다는 것, 이것이 생태 환경 문제의 본질이다. 똥을 보면 인간과 생명이, 자연과 우주가 보인다. 그러므로 똥은 용맹정진해야 할 화두다.
푸른 말똥이 절간 해우소에 갔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 「낙차」에서 똥은 보통 똥이 아니어서 동백꽃을 거쳐 노스님을 지나, 마침내 깨달음 이후까지 달려가 있다. "마음놓고 듣네//나 똥 떨어지는 소리"는 시의 화자가 이미 마음 다스리기에서 어떤 경지에 당도해 있음을 암시한다. 마음 다스리기에 성공해, 맑고 깨끗한 몸의 똥을 쌀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똥은, 오염물질로서의 배설물이 아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몸, 몸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만이 마음놓고 쏟아낼 수 있는 똥이다. 이때의 똥은 자연의 순환 과정에 고스란히 동참하는 똥이자, 몸과 마음과 연결된 순결한 존재이다. 그러니 똥이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그윽할 것인가.
순환하는 존재, 순환하는 과정으로서의 인간의 똥은, 동백꽃 떨어지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3연에서 나의 똥이 동백꽃과 하나가 되는 '우주적 연유'가 여기에 있다. "노스님 주장자가 텅텅 바닥을 치는 소리" 또한 인간의 똥이나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와 무에 다르단 말인가. 이 세 가지 소리에는 낙차가 없다. 그러니, 마지막 제 5연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는 게송이 아닐 수 없다.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를 들은 수 있다면, 무슨 소리를, 무슨 소식을 들을 수 없단 말인가.
아주 좋은 좋은 시는 좋은 시인의 좋은 몸과 마음 속으로, 해우소의 좋은 똥처럼 떨어진다. 귀뚜리가 "제일 많이 어두운 어두운 오두막 부엌에서 울"드키 말이다. (*)
*시집 『봄, 파르티잔』은 2001년 3월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