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好意)삼조(三條)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지켜야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나 또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 때 이러한 세 조건을 호의 삼조라 부르고 원조(願條)와 시조(時條) 그리고 은조(隱條)가 그것이다.
첫째 원조는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으로 목이 마른 사람에겐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줘야하는 이치와 같다.
둘째 시조는 도움의 타이밍으로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 많이 도와줄 수 없어 좀 더 넉넉해지면 도와주려고 미루다보면 이미 상대는 죽고 없어 내 도움이 필요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도움이란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으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때를 놓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은조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은밀히 도와주는 것을 얘기한다. 불교에 삼무보시란 말이 있다. 남에게 무엇을 주는 보시를 할 때는 준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고, 주고받은 물건도 없다는 마음으로 도와줘야 올바른 보시라는 뜻이다.
기독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가르침이 성경에 쓰여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도 자존심때문에 공개적인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도움을 줄 때 남이 모르게 은밀히 도와주는 은조야말로 호의 삼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누군가를 도와줄 일이 있다면 주고도 욕을 듣지 않도록 호의 삼조를 잘 지키기 바랍니다. ㅡ옮긴 글ㅡ
♡ 산청 할아버지와 사형수 이철 ♡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장기 집권한 독재자로만 알고 있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권력욕에 가득찬 인물로 알고 있었다.
1979년 10월26일 김재규가 쏜 흉탄에 유명을 달리하고 이듬해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다. 민주화가 되면 모두가 행복한 내일이 열릴 줄 알았다.
1980년 봄 계엄령과 함께 휴교령이 내려졌을 때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구미 상모동 박대통령 생가에 들렀다. 그 전부터 꼭 한번은 들러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 당시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지막한 초가지붕의 토담집이었다.
집도 마당도 넓지 않았다.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주변 산천을 둘러 보더니 “산세가 빼어난 것을 보니 과연 큰 인물이 나올 만하다“고 했다.
등에는 배낭을 짊어졌고 손에는 우산을 쥐고 있었다.
”할아버지 맑은 날에 왜 우산을 갖고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의 지난 날을 털어놨다.
경남 산청이 고향으로 큰 지주의 아들이라고 했다.
10대 때 일본 유학길에 올라 공부한 인텔리였다.
20대 초반 집에선 장가를 가라며 혼사를 서두르고 있었는데 넓적 다리에 가려운 증상이 생겼고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병이었다.
당시엔 불치병이었다. 그것으로 혼사고 뭐고 다 파탄이 나고 나환자 시설과 산천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
고향을 떠나기 전 토지를 소작농과 머슴들에게 나눠 주고, 노비문서를 불살라 신분을 해방시켰다고 했다.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숙박시설에선 나환자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비가 오면 다리 밑이든 어디서든 비를 피하려 한다고 했다.
“박대통령 생가엔 어인 일로 들리셨냐”고 물었더니 “고마워서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육영수 여사 생전에 청와대로 여러번 편지를 썼는데 꼭 답장이 왔으며 나환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해줘서 너무나 고마웠다고 했다.
산청 할아버지는 배낭에 공책이랑 연필을 한아름 담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눠주고 격려해 주는 산타 할아버지였다.
토지든 학용품이든 나눔 속에 기쁨과 사랑과 공동체의 건강한 내일이 깃들어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1990년대 초 국회 출입기자로서 여러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흥미있는 기사를 봤다. 박대통령 집권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철 의원이 10.26 때가 되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박대통령 묘소에 참배한다는 것이었다.
이철 의원을 만났을 때 물어봤다.
“박대통령 묘소에 빠지지 않고 참배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좀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신 일이 참으로 크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돼서 나라가 돌아가는 내막을 속속들이 들여다 본 다음 박대통령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국회를 들여다 보고서야 비로소 박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박대통령이 왜 김영삼 김대중 등 이른바 민주화를 입에 달고 선 야당 정치인들을 경멸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는지를. 그들에게 정치자금 이권 지역개발 예산을 집어주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었고 아무도 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상황이 그러했으니 1960~1970년대는 어땠을지 안 봐도 훤하다.
YS와 DJ의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했으나 맹탕이었다.
민주화란 간판을 내걸고 권력을 쟁취하려 투쟁한 싸움꾼에 불과했다. 공천헌금이란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국회의원 자리를 매관매직한 민주화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다. 생산적인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과 안목이 그 정도였으니 훗날 대통령이 된 다음 한 일은 외환위기로 전국민으로 하여금 금붙이를 내다팔게 하거나, 김정일에게 핵개발 자금을 대주고 노벨상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고작이었다.
생각해보면 꿈만 같은 일이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삶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이렇게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것은. “한국이 제철소를 짓겠다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비웃었던 서방세계 사람들을 이제는 우리가 비웃으며 선박과 자동차와 가전제품과 반도체를 보란듯이 전세계로 팔고 있다는 사실은.
나라의 팔자를, 운명을 이렇게 단시간에 바꿔낸 인물은 세계역사를 통털어서도 드물다.
차가운 겨울이 되어서 모든 나무가 잎을 잃을 때 사람들이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른 진가를 알아보듯이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다.
뒤를 이은 대통령들이 죽을 쑤는 것을 보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박대통령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을 마실 땐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도리란 말이 있다.
얼마전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일대기와 업적을 기린 영화 ”건국 대통령“과 ”기적의 시작“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선각자를 만난 덕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올 봄엔 이장호 감독이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한꺼번에 그린 영화를 개봉한다고 하니 극장에 가서 꼭 가봐야겠다.
늘샬롬!
●한국인은 왜 어리석은가?
한국은 20세기 기적의 나라이다. 1990년대 세계학계는 북-중-러의 위협과 자원빈곤이란 최악의 상황에서 건국, 호국,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의 위대한 성공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국은 동시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성장과 질서는 사라지고 대신 무질서와 침체가 대체되었다.민주화 10년만에 IMF를 겪고 연속적인 종북정권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한국은 내전이 일상화되고 최빈국 북한에 끌려다니는 한심한 나라로 전락했다. 겉은 선진국이나 국가정체성과 역사 마저 모르는 불가촉 천민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 및 세계의 지성(학계)계는 한국의 미래를 암담하게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치료불가의 집단적 어리석음이다.흔히 한국인들은 집단지성이 결여된 민족으로 불리운다.
개인적으로 IQ는 높으나 집단으로는 크게 낮아지며 국가단위로는 치명적으로 낮아진다. 대표적 예는 지도자의 평가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자유민주주의 대원칙에 대한 무개념을 들 수 있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이대통령의 90 평생은, 망국 조선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깨닫고 독립정신을 쓴 이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다.그의 초인적 헌신과 위대함은 한반도의 대미정책을 변화시켰고, 또 유엔에 의한 단독정부를 가능케했다. 건국과정의 지난한 역할은 6.25도 극복했고 한미동맹으로 결실을 맺었다. 전쟁복구와 조국미래를 위해 교육과 과학입국의 기반을 조성한 것은 가히 미국의 건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비해 백배, 천배 위대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은 전쟁복구에 머물지 않고, 민족중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다. 박대통령의 위대한 점은 자신의 비전에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최형섭(과학), 신격호(롯데), 박태준 등 기업가, 과학자, 군인, 관료마저 동참시킨 위대한 팀빌더였다. 집권 18년동안 한국은 산업화의 초석을 다져 10년후 산업화에 성공한 것이다. 전후 100여개 국가에서 군사혁명이 발발했으나 산업화에 성공한 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위대한 지도자들을 기념하는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자국의 역사를 무시하고 폄훼하는 어리석음의 극치임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 및 역사에 대한 인식마저 결여된 것은 민주사회의 전제 조건이나 대원칙마저 배제되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인문학적 교양이 배제된 반지성이다. 흔히 국제사회에 진정한 선진국의 지표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국민교양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선진국들의 교육은 여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즉, 역사, 문학, 철학, 문화, 체육 등 전인고육에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한 독서가 강조되고 있다.
일찌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현대의 문맹은 문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 일상화되지 못하고 문화적 교양이 결여된 것이라 말한바 있다. 그가 반교양으로 지적한 단편적, 저차원적 지식인, 소위 무용지식이 범람하고 있는 한국을 보면 어떻게 지적할까. 한국은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역사 뿐 아니라 세계사, 문학, 철학 등 소위 문화코드 자체가 결여된 불가촉 천민국인 것이다.
셋째,
사회규범에 대한 기본적 소양도 결여되어 있다. 사회규범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소양(관념)이자 제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한편으로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 등 전혀 상이한 요소의 결합이다. 그리고 규율의 관건이 바로 사회규범 (social norms)인 것이다.
흔히 사회규범은 도덕, 관습, 법이란 계층을 갖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작위와 부작위에 대한 명령과 제재를 갖는다. 도덕의 경우 양심에 국한되나, 관습은 추방 등으로, 법을 어길 경우 사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교양사회에서 사회지도층은 일반인에 비해 더 큰 제재를 당하게 된다. 소위 노블레스 오빌리지인 것이다.
중략~
하지만 교양이 결여된 한국은 제대로된 헌법학자, 구국을 위해 목숨을 건 제대로된 군인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반역이 그것도 최고권자의 반역이 용납되는 사회는 이미 제대로된 나라도 정치체제도 아닌 것이다.
넷째,
전략적 사고가 결여되어 있다.지정학적 위치로 외침이 잦았던 한반도에는 역사적으로 국난을 극복한 위대한 장군들이 있었다. 을지문덕 (고구려), 강감찬 (고려), 이순신 (조선)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외교권을 중국에 넘긴 조선왕조는 500년을 전쟁, 자주권을 포기한 나라였다.
성리학(주자학)은 문약한 송나라의 국기로 조선왕조에 수입되어 전략이 사리지게 하였다. 그 결과 임진왜란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을 자초했으며 결국 일본식민지로 전락했던 것이다.
문제는 역사와 인문학적 교양이 결여된 어리석은 한국인들은 민주화를 무전략으로 이해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인 규율은 한편으로 대외적으로 군사적 측면과 전쟁의 가능성에 기반한다.
오늘날 자유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유일패권국 미국은 한편으로 세계최강의 군사국인 것이다.
1980년대 일본과 독일에 의해 미국의 주도권이 위협받자 미국은 전략경영을 도입했다. 역사와 위기의식을 결합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경영자들은 손자병법, 전쟁론 (클라우제비츠), 오륜서 (미야모토 무사시) 3대 전략서를 필수도서로 받아 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투키디데스의 책을 든 한동훈 위원장을 폄하했다.
오늘날 전략과 전략적 사고가 결정적인 것은 변화와 혁신의 사이클이 너무나 짧은 4차산업혁명, 지적 혁신 나아가 AI와 로봇의 결합 등이 가져올 영항력 때문이다.
교양이 과학과 결합하고, 과거(경험, 자산)와 현재(방향)가 결합하는 시대에는 단순히 시간을 의미하는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것이다. 즉,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결합인 것이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와 과거를 잊는 어리석음에서 한시 바삐 깨어나 민족자부심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견인하는 역량을 찾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시작은 우리의 역사를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양과 사회규범의 중요성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2024.2.12
하봉규 명예교수 (부경대학교, 유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