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귀농의 풍속도가 농촌의 가치를 찾아
비어가는 가난한 마음대신
미래의 튼튼한 자원이 될 수 있는 임산물 쪽으로
관심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소박한 생활과 가난한 마음에 깃들지만
늘 우리의 선택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세월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6 년을 한결같이 땅과의 약속을 지키며
유기농 약초농사를 고집하다보니
뜻있는 한의사들과 교류도 이어지고
유기농 약초인증도 받게 되었고 이번에 귀농 지침서라는 책이 나오는데
한 부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써주었던 글입니다.
이제 책이 나올때가 된듯 합니다.
책에 낼 내용이라 글이 좀 길어도 지루함을 참아 주시면
약간의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질책 한마디씩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유기농 약초 농사 이야기 >
우리 가족이 2001년 3월초에 산좋고 물맑은 청정 봉화지역으로 귀농하여
어느덧 시골 생활 5년이 훌쩍넘어간다.
누구나 귀농의 설레임은 막연한 두려움을 동반하며 낯선지역에 들어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뿌리내리기에 최선을 다하게된다.
요즘처럼 정보의홍수 시대에 웬만한 귀농 이력쯤은 귀농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면
충분히 살펴볼수가 있으리라.
무얼 조심해야 되는지 어떤 방법이 더 좋을 것인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어디로 가야만 할는지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거의 완벽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불안감은 그치지 않고 갈곳 없는 마음은 다시 한번 귀농에 관련된 교육에 매달려도 보고
귀농도서들도 부지런히 훑어보고 선배 귀농인들을 찾아 동서남북을 헤매이게 된다.
물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처럼 충분한 준비를 하자는데 시비를 걸수는 없는 일이지만
손과 발이 하는 일을 머리와 가슴으로 미리 하려다 보니 금쪽같은 세월만 간다.
귀농은 낯선 일이 아니고 온전한 삶의 시작이다.
5년을 땅에 엎드리어 농사를 지으며 우리 가족은 후회없이 행복하였다.
유기농이란 무엇일까 ? 유기농 약초 농사는 어떤 것일까 ?
글줄깨나 쓸려면 이런 답 쯤이야 턱 하니 내놓아야 멋들어질 일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즐겁게 실행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 가족이 5년동안의 짧은 농사 경험담을 소개함으로써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귀농하기 오년전쯤에 우연히 자연식을 접하게 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속을 끓였던
큰애의 아토피를 식생활개선만으로 완벽히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하고
삶의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돈벌이에 좌지우지 되던 출세지향적인 모든 삶의 방식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잊고 살았던 땅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잡초로 여겼던 모든 풀들이 약초로 바뀌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달콤했던 인스턴트 식품들이 사람들이 먹을수 없는 음식으로 역겹게 바뀌어져 있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이 더 이상 나에게 유혹이 되지 못하고
까닭모를 그리움은 푸른 초원을 달려가곤 하였다.
본격적으로 건강과 자연 공부를 하다보니 그동안 어떻게 견뎌왔나 싶을 정도로
도시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건강한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고
드디어 신선한 먹거리를 내손으로 농사지어 먹고싶다는 소박한 일념 하나로
귀농을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급한 성격 덕분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바로 봉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무작정 귀농을 한 셈이지만 삶의 원칙만은 분명히 세워두고 싶었다.
우선 땅이 싫어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기로 하였다.
또 우리가 힘에 부치도록 무리한일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나머지는 서둘지 말고 천천히 배우면서 하기로 하였다.
시골생활의 좌우명을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을 하자로 정하였다.
모르면 배워야 되는 법이니 주변에서 농사짓는 시골 분들이 모두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
우리의 재미있고 파란만장한 농사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한정된 지면에 약초 이야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음이 아쉽긴 하지만
늘 글이라는게 어떤 목적을 띄고 있으니 할수 없는 일이다.
이곳 봉화지역은 1,000M 의 고산지대로 둘러쌓인 곳으로 평평해보여도
해발 500m 에 육박한 곳이 대부분이다.
남한의 시베리아로 불릴 정도로 추운 곳이며 일교차가 커서
약초의 산지로서는 세계의 으뜸이라 할만하다.
귀농 첫해에 주변의 지역농사를 살펴보니 사과 과수원이 의외로 많이 산재해 있고
수만평을 기계로 밀어붙여 인력을 동원하여 배추 무우 농사도 짓고 논농사도 조금 하고
군데군데 담배나 특용작물도 더러 하고 있지만 젊은이가 부족한 산골마을에서
대부분 5천평 이내의 밭에서 감자와 콩 고추 그리고 약초를 매년 돌려가며 재배하는 실정이었다.
최근에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가는 비닐하우스는 이곳에도 넘쳐나는 정부 돈으로
또다른 문제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귀농 첫해 철저한 자급자족의 원칙아래 한눈팔지 않고 우리 먹거리 전량을 밭에 심기로 하였다.
쌀농사를 제외하고 맨땅에다 참 많이도 심은것 같다.
그러면서 천혜의 약초 산지다 보니 주변에서 약초농사를 짓는걸 일년동안 멀거니 구경을 하게되었다.
약초는 이른봄 찬바람속에 심고 늦가을 찬바람속에서 캔다.
신비스럽게만 생각했던 약초가 여기저기 밭에서 향기를 뿜으며 쑥쑥 자라고
가을에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뿌리째 캐어 며칠이고 흙을 털어 낙엽송으로 웅장하게 건조대를 만들어서
가득이 널어놓은 일련의 과정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귀농 첫해에 겁없이 토종벌을 시작하여 온갖 쇼를 다하며 고생하다 돈만 날리고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던 우리로선 약초농사는 시험삼아 몇뿌리씩만 얻어다 흉내만 내볼 심산이었다.
당귀의 어린 잎을 처음 먹어 보았을때의 향긋하고 달콤한 기억이 떠올라
동네어른들께 혹시 심고남는게 있으면 당귀모종을 조금만 얻고 싶다고 부탁드렸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강활이 아주조금 남았으니 갖다 심으랜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보니 웬걸 몇천 뿌리나 되었다.
지나가는 말들로 만종이니 이만종이니 하는 말들이 약초뿌리를 말하는 것인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조금 얻은게 몇천종이나 되었다.
시골생활에 절대 잊지말아야할 원칙은 절대로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
손사레 치는 어른 손에 시세대로 몇만원을 손에 쥐어드리고 우리밭으로 모시고 와
그 어른의 감독하에 퇴비도 없는 맨땅에 손쟁기로 골을 타고 심어두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강활을 심었으니 이번엔 당귀를 조금만 심어 보기로 하였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강활 사건(?)을 과장되게 설명하며
우리는 눈꼽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다짐을 해두었다.
다음날 저 윗밭 형님이 심다가 조금 남았으니 걱정말고 갖다 한쪽에 심으랜다.
이번에는 설마 하며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이럴수가
어제 돈을 치룬 강활양의 두배가 넘는다. 속모르는 그 형님은 어이가 없는 나에게 술까지 권하며
동생이 필요하대서 다른데 안팔고 일부러 남겨둔 거라며 생색까지 낸다.
꼼짝없이 두배의 돈을 치루고 투덜거리며 맨땅에 다시 쟁기로 줄긋고 당귀뿌리 놓고 흙덮어 두었다.
귀농 첫해 백년 가뭄을 만나고 그 다음해에 우리골이 생긴 이래 가장 큰 비를 만났으니
비닐도 깔지 않은 맨밭에 풀하고 얼마나 씨름을 했겠는가?
밭에 심어놓은 당귀와 강활은 저절로 야생이 되어가고 늦가을의 풀을 헤치고 약괭이로 캐어보니
어떤 것은 죽어있고 어떤 것은 자라다 말고 어떤 것은 그대로다. 기가 막혔다.
동네약초는 한뿌리가 팔뚝만한데 우리 자랑스런 유기농 야생약초는 엄지손가락만 했다.
어쨌든 싹싹 긁듯이 캐어서 남들 하듯이 건조대도 만들고 열심히 털어 말려 놓았다.
제발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들러 한소리씩 하고간다.
내년에는 꼭 비료를 뿌리는 걸 절대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유기농 약초농사는 비싼 수업료만 치루고 경험에 만족해야 되었다.
귀농 이년차의 고비를 넘기고 귀농삼년차를 맞이하면서 약초농사의 전의를 다시 불태우게 되었다.
그동안 경험으로 약초농사의 성공여부는 약초모종에 달려있음을 알게되었다.
수십년 약초농사 전문가들도 온갖방법을 동원하여 모종값을 줄여보려 산에서 씨앗도 채취하고
밭에서 직접 씨를 받아 길러도 보지만 자칫 잘못하여 수컷으로 인한 추대가 많이 생기면
고스란히 일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작년의 실패아닌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미리 좋은 모종을 골고루 조금씩 얻어 두었다.
강활은 작년에 눈을 떼어 겨울에 묻어둔 종자가 있으니 우리걸로 충분했고
주변에서 당귀도 조금 천궁 방풍 고본 백지 종자도 얻고 바야흐로 약초 농사꾼이 되려는 순간이다.
틈틈이 손으로 밀가루 반죽하듯이 만들어놓은 양질의 퇴비를 아낌없이 밭에 깔고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시늉만 냈을 뿐이지만) 정성스레 골을 타고 배운대로 정확히 잘 심어두고
고추밭다음으로 일년내 매달리어 풀도 잘 매주었다.
특히 천궁과 고본의 향은 강렬하여 여름밤에 밭가를 산책하면 약초의 진한 향기는
여름밤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늦가을이 되자 이웃밭들은 여기저기 팔뚝만한 약초들을 캐느라 포크레인 소리 요란하다.
올해는 우리도 조금 낫겠지 하는 기대를 품으며 큰애와 괭이를 이용하여 조심스레 캐기 시작하였다.
역시 아직도 야생에 가깝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복잡한 심정으로 애써 즐거워하며
전부 캐어 일일이 흙을 털고 (이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
공들여 만들어 놓은 투명 건조장에 가리대를 설치하고 널어 놓았다.
3년째 농사를 지어보니 무언가 농사는 되는 것 같은데 아직 땅이 살아나지 않았는지
모든 농사가 시원찮았다. 그래도 객관적인 비교일뿐 우리 가족은 충분히 만족하였다.
건조되어가는 약초를 바라보며 장고에 들어갔다.
불과 몇십년전에 이곳 봉화 춘양 지역에서 약초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쌀이 무척 귀한 그시절에
약초 한다발 지고 장에 나가면 쌀을 한가마 지고 올수 있었을 만큼
약초는 그야말로 귀한 약초 대접을 받았다 한다. 그후 너도나도 장사꾼들의 투기 대상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한두사람의 대상이 몇십억을 동원하여 약초를 싹쓸이하여 가격을 장악하는 바람에
등락이 심하여 애꿎은 농민들만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해마다 손해를 거듭하며 점점 타산이 맞지않아 약초농사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자
금년에사 겨우 값이 조금 오르는 것 같다.
비싼 비료를 쏟아부어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놔도
장사꾼이 제 몫을 챙겨 가는건 갈수록 더하는것 같다.
시골에 들어왔으니 농사의 기본을 알기 위해서 한눈 팔지 않고 5년동안 땅에 엎드릴 각오를 하였지만
이후 산야초쪽으로 지평을 넓혀 건강한 삶을 이끌어 보고 싶은 목표가 있는 우리로서는
쉽게 약초 농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중간유통을 배제하고 유기농 약초를 인정해주고 써주는
의식있는 한의사를 찾아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섬주섬 샘플을 챙기고 며칠전에 친지를 통해 연락해둔 한의원을 운영하시며 대학교수로 재직하는
박사님을 만나뵈러 서울로 올라갔다.
무지렁이 시골촌놈이 한의학 박사님께 점심대접을 받으며 유기농약초 샘플을 내어 밀었다.
겸손하신 박사님께서 아 ! 당귀가 강활이 천궁이 백지가 고본이 방풍이 이렇게 생긴 거였군요
하시질 않는가? 처음 보시는 모양이다.
이 땅의 한의사들은 불행히도 약초의 모양을 모르는 채 병원의사들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옛날 우리의 삶이 소중했던 시절 의원들은 좋은 약초가 있으면
백리길이라도 달려가 약초를 구해와 지성으로 달여 환자들을 구원하지 않았던가?
이땅의 참다운 의원들이 너무도 편리해진 세상앞에 장사꾼들과 웃으며 만나다보니
야생약초도 사라지고 유기농약초도 발붙일 틈이 없었다.
비료로 덩치만 키운 국내산 약초들과 방부제 범벅이 된 수입 약초들로 환자들에게 처방해야하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바로잡기에는 삶과 교육이 철저히 분리된 현실이 주는 낭패감과
도시의 온갖 편리가 맞물려 되돌리기 힘든 현실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약초 시장의 약재상을 소개시켜 주길래 가서 알아보니
유기농약초의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유기농 약초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약초 대접을 받기에는
이 사회의 고질적인 자본의 병폐가 너무 깊었다.
그래도 희망을 일구는 이들이 있어 몇사람의 노력으로 우리 약초를 살리고 싶은
뜻 있는 젊은 한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아침마다 푸른 하늘과 맑은 숲을 쳐다보며 눈청소를 하며 맑은 눈으로 환자들을 대한다는
젊은 한의사의 순수한 열정속에 비료로 덩치만 키우고 온갖 방부제로 범벅이 된
수입 약재들의 폐해를 통감하며 아직은 한약재 시장이 유기농 약초를 전혀 쓰지 않다 보니
가격부담이 되지만 사비를 털어서라도 유기농 약재를 지켜가자는 고마운 격려를 받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올해 농사지은 유기농 야생약초를 내려놓고 내년 약초 농사를 기약하게 되었다.
그 후 여름이면 뜻있는 한의사들이 우리 밭에 들러 현장 견학도 하고
농촌의 현실도 듣고 정을 나누며 약초 얘기도 하고 겨울이면 약초를 싣고 서울로 올라가
함께 모여 망년회도 하며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될 약초에 대해서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아직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차근차근히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하다보면
차츰차츰 저변 확대가 이루어 지리라 기대하며 노력중이다.
이제 땅도 5년차가 되고 보니 작년부터 잘되기 시작하여
금년엔 어려운 한해 속에서도 모든 농사가 제법 잘 되었다.
해마다 퇴비의 양을 늘려나가니 유기농 야생약초도 덩달아 모양을 잡아가게되어
비로소 야생을 탈피하고 유기농 약초가 되었다...^^
서로 유기농 약초를 살리기 위해서 우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약초를 살리는 노력을 해야됨은 물론
참으로 어려운 유기농 농가들의 여건 속에서 그나마 부족한 유기농 약초 농가들의 저변확대에
막중한 임무가 달려있다. 결국에는 기존 전문 농사꾼들을 흡수하여 비료와 농약을 금지하고
좋은 약초를 생산해야 하는데 모범을 보이며 이끌어 갈 수 있는
의식있는 유기농 약초 농사꾼들이 앞장을 서야한다.
요즘 시골도 친환경으로 옷을 바꿔입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없는 세상이 되었다.
정부에서도 뜻있는 한의사들의 노력으로 약초농사에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중국이 우리나라 몇배의 넓은 땅에서 유기농 약초 농사를 한다지만
사계절의 기후 편차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약초의 효능 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커야만 좋은 약초가 나올 수 있고 보니
이곳 봉화나 강원도 등 천혜의 약초 산지를 잘 살려 나가면 미래의 농촌에 희망이 될 수 있다.
또 한가지 반가운 점은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약초뿐만이 아니라 온갖 잡초와 풀들을 비롯하여
우리가 항상 먹는 음식물들도 모두 훌륭한 약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널리 알리기 시작하고 있으니
머지 않아 유기농 약초시장이 유기농가들의 긴밀한 관계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아나가게 될 것이다.
아직은 막연한 호기심만 가지고 덤비기에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진정으로 땅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약초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이라는 사명감에서 출발해야 될 일이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농가의 생계문제가 시급하고
기술적으로 지역의 특성에 맞는 약초를 확산시키는 일등 기후조건에 따라 지역 편차가 아주 심하므로
함부로 의지만 갖고 덤비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높기만 하다.
그러나 약초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눈앞의 소득작목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농촌의 현 실정이지만 약초를 살리면 생명이 살고
우리모두가 살 수 있다.
그럼 유기농 약초 농사는 일반 농사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약초 종류와 재배 방법에 대하여
우리 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몇가지를 예로 들어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약초의 포괄적인 개념은 꼬집어 이거다 라고 규정짓기가 매우 힘들다.
모든 식물을 비롯하여 동물들과 바닷가의 생선 심지어 광물질까지 약성의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생명이 녹아 있음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산야초로 국한을 시켜봐도 그 종류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원래 한의학이라 함은 옛 선인들의 민간 요법을 집대성한 학문이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도 조상들은 용케도 먹을 것 못 먹을 것 약이 되는 것을
신통하게 구별하여 자연과 일체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서양의 근대문물이 유입되면서 서양의학의 지나친 맹신으로
차츰차츰 조상의 슬기로운 지혜들이 자본의 덫에 걸려 농약과 비료속에
온 산천에 널린 비닐 속에 묻혀져 왔다. 최근들어 서서히 도시문화의 폐해가 드러나고
서양의학의 한계가 밝혀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동양의학의 신비를 다시 찾게 되니
약초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덩달아 약초시장이 급속히 퍼지게 될 전망이다.
시골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젊은 시절 한 때 이런저런 야생약초들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후 자식들을 도시로 올려 보내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며
산과 들을 돌아다닐 시간에 악착같이 조금이라도 더 농사지어 돈을 마련하려다 보니
약초와 함께했던 우리네 삶들이 철저히 농사로 분리되어 버렸다 할 수 있다.
수익 작물에 기대어 온 힘을 쏟다가 몸이 아프면 얼른 병원에만 달려가다 보니
약초도 이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약초농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제 다시 우리약초 살리기 운동이 뜻있는 한의사들을 주축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으니
함께 노력하다 보면 좋은 결실이 돌아 오리라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 지역에서 약초 농사가 되어버린 같은 미나리과 약재인
당귀 강활 백지 방풍 고본을 비롯하여 천궁정도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당귀는 가장 널리 쓰이고 많이 재배하는데 참당귀로도 불리우는 토당귀와 일당귀가 있다.
병해를 많이 타는 일당귀를 농민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주로 토당귀를 많이 심는다.
일부에서는 조혈작용이 뛰어난 일당귀로 바꿔 보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으나
아직도 대부분의 농민들은 토당귀를 재배 한다.
당귀의 뿌리 부분은 치질 빈혈 산후 진정 통경 익정 강장 진통 이뇨 간질 정혈 치통등
한방 치료약으로 널리 쓰이고 어린 잎은 나물로 식용하고 생뿌리로 술을 담기도 하고
잘게 썰어 대추와 함께 차를 만들어 놓으면 향긋한 건강 한방차가 된다.
오가피나 엄나무등 손쉽게 구할수 있는 약재들과 당귀를 넣어
가마솥에 오리나 닭을이용 하여 탕을 끓이면 두말할 필요없는 강장보양탕이 된다.
주로 일교차가 큰 중북부의 산간 고랭지의 물빠짐이 좋은 모래찰흙에서 재배한다.
따뜻한 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나 꽃대가 많이 생기고 양질의 당귀를 생산하기 어렵다.
이어짓기를 하면 병충해가 많아지고 수량이 현저히 낮아짐으로
콩이나 감자등 화본과 식물과 돌려짓기를 해야 된다.
가을또는 이른봄 노지에 두둑이나 모판을 만들어 5cm간격으로 파종하여
일년간 육묘한후 정식은 다음해 4월 상순에서 하순사이 이식하여
가을에 약재를 수확한다. 파종시 땅이 얼기전 가을에 파종하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발아가 촉진되어 모종형성이 잘된다.
봄에 파종할때는 3월 말경 흐르는 물에 삼일이상 담가두어
종자를 둘러싸고 있는 발아 억제물을 제거한 후 마르지 않게 보관했다가
칠일 이내 파종한다. 이때 거름을 많이 주면
강한 모종이 약한 모종을 죽이는 현상이 발생함으로 거름을 많이 주지 않는다.
봄에 이식할 때 너무 큰 모는 꽃대가 올라올 가능성이 많으므로 심지않고 버린다.
모종을 심는 방법은 45cm 정도의 이랑을 만들고 18cm 정도의 간격으로 모를 놓고
뇌두가 덮일 정도로 흙을 긁어 올려 덮어준다.
약초는 대개 병에 강하므로 일체의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엄금하고
풀메는 시점을 잘 맞추어 부지런히 풀을 매준다.
퇴비의 양은 심기 보름전에 듬뿍넣어 갈아주고 어느정도 생육이 되고나면 웃거름을 준다.
가을에 잎이 누렇게 시들면 뿌리째 캐어 뿌리 윗부분을 잘라내고
흙을 잘 털어 물로 깨끗이 씻은후 미리 만들어둔 건조대에 모양을 잘 잡아 널어두면
두달이내에 건조가 완료된다.
보통 이 상태로 팔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절단기를 이용하여 잘게 썰어 파는 경우도 있다.
파종하고 2년이 지나면 수확하는데 그대로 놔둘 경우
3년째가 되면 거의 꽃대가 올라와 약으로 쓸수 없게 된다.
그러나 2년째 꽃대에서 채취한 종자는 꽃대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3년째 꽃대에서 채종 하면 거의 꽃대가 올라오지 않는다.
나머지 약초들도 파종과 재배법이 비슷하다.
강활은 남강활 과 북강활로 나뉘는데
남강활로 불리우는 것은 재래종 토강활이고 북강활은 개량종이다.
남강활은 만져보면 단단하고 몸통이 작으며 발이많다.
북강활은 질이 무르고 몸통이 커서 당연히 수확량도 많다.
흔히 강활은 발이 약이라 한다.
그러나 남강활은 농민들의 기피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북강활은 여름을 지나며 색깔이 변색되는 단점이 있는데도
우선 수량이 풍부한 북강활만 하려드는 농민들탓만 할 수는 없다.
강활의 모종 채취는 당귀와 달라 전년 가을에 강활의 몸통에 붙어있는 눈을 떼내어
겨우내 땅에 묻어 놓으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봄에 조금 싹이 나온다.
심고 키우는 요령은 당귀와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꽃대가 올라오지 않는 것의 뿌리만 약재로 쓰며 습기가 많은 땅에 잘 자란다.
강활은 정유를 함유 하고 있으며 주로 감기약으로 쓰이는데
해열 진통 진경 백절풍 중풍 치통 신경통 두통 등의 약재로 쓰인다.
독성이 강해 당귀처럼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천궁도 토천궁과 일천궁으로 나뉘는데 토천궁은 경북 일원에서 일부 재배 됐는데
수량이 적어 대신 병해는 많지만 수확량이 많은 일천궁을 많이 재배한다.
천궁도 강활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눈을 떼어 겨우내 땅에 묻어두고
이른봄에 꺼내어 비슷한 방법으로 심는데 당귀와 강활보다 촘촘이 심는다.
토천궁은 어느 약재 보다도 그 향기가 아름답고 강하여 방향재로도 쓰인다.
캐어 보면 우툴두툴한 토란 크기의 괴경에 잔뿌리가 산지 사방으로 뻗어있다.
건조할때는 잔뿌리를 모두 제거하여 건조 하는데
보통 시골에서는 사람이 잘다니는 처마밑에 천궁을 쭈욱 깔고
틈나는 대로 날마다 밟아주어 모양을 내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천궁은 강활과 달리 습기가 많으면 뿌리가 잘 썩는다.
대신 수컷의 꽃대와 상관없이 전부의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다.
한방에서는 보혈 활혈 정혈제로 부인병에 많이 쓰이는 약재인데
어지럼증 빈혈등에 쓰고 강장약으로도 효과가 뛰어나다.
또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는 약으로 체내에 있는 악혈을 빨리 운반해서 없애고
강한 살균작용으로 외과 질환도 빨리 치료하며 자궁수축 작용으로 산후에 피를 멎게 한다.
민간요법으로는 티눈이나 사마귀를 없애는데
천궁을 3mm 정도 썰어서 붙여두면 말끔히 없어진다.
치질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입에서 냄새가 심한 구취에도 천궁을 잘게 썰어서 항상 입에 넣고 있으면
냄새가 일시적으로 없어진다고 한다.
백지는 깊은 산에서 대할 수 있는 구릿대의 뿌리이다.
다른 약재에 비해 뿌리가 훨씬 튼실하고 향기도 좋은 발산풍 한약에 속한다.
감기약으로도 쓰이며 부인 대하나 축농증
두통 어지럼증 치통 안면 신경통 마비 종기등에도 두루 사용된다.
또한 이를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어 쓰면
얼굴빛을 곱게하며 얼굴에 잡티와 흉터를 없앤다고 한다.
피부를 곱고 아름답게 해주는 여러 처방중에 실제로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대표적 우리 약초 이다.
잎줄기의 생육도 워낙 좋고 뿌리도 튼실하여 강한힘이 느껴지는 만큼 건조 절단 과정도 그만큼 어렵다.
재배 방법은 당귀와 비슷하다.
고본은 잎모양이 코스모스와 닮아 삐죽하다.
갓캐낸 뿌리의 향기도 특히 강하고 말린후에도 천궁 못지않은 향이 있다.
봄을 지나고 여름이 되어 줄기와 잎이 번성하는 모습도
천궁처럼 여러줄기가 폭을 이루기 보다는 단 하나의 줄기가 솟고
활처럼 옆으로 퍼지기 보다는 위를 향해 그리 굵지않은 줄기를 솟구쳐 낸다.
유일하게 생채일 때 물이 닿아도 변질되지 않는 미나리과의 약재이다.
고본도 천궁과 마찬가지로 꽃대와 상관없이 전체의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두통 관절통 치통 복통 설사 습진등에 처방한다.
방풍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서 어린 식물일때는 맛과 향기가 좋아
잎과 줄기를 방풍나물이라 하며 산채 나물로써도 이용가치가 높다.
중국산 방풍을 원방풍이라 하고 한국산 방풍을 식방풍이라 한다.
재배는 비교적 서늘한 곳으로써 물빠짐이 잘되는 모래 찰흙이 좋으며
약용 부위는 뿌리로서 현대 성인병의 하나인
고혈압 또는 뇌졸중으로 발병되는 중풍병의 주된 약재로 처방되어 왔고
해독등의 효능이 있어 감기 풍병 신경통 관절염등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강활 당귀 백지와 마찬가지로 꽃대가 서지않은 것의 뿌리만 채취하여 약재로 사용할수 있다.
대충 살펴보았다. 약초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고 싶으면
시골로 들어가 훌륭한 스승들인 시골 노인들에게 모든걸 제대로 배울수 있다.
하루 빨리 우리의 삶속으로 약초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병이 있으면 약도 있다.
첫댓글 제방으로 글 옮깁니다. 처음 접한 시골 생활에 많은 귀감이 되는 글이므로 ....고생 많이 하셨네요. 지금은 제가 많이 부러움 삶을 사시고 계시잖아요.
여름 향기님도 이제 시작하셨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의 위로를 마음껏 받으시길 바랍니다...
기후 차가 심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면 약초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움이 되는 글 고맙습니다 이곳에는 언제나 한가지이상 알고 돌아가는가는 즐거움이 있는곳이지요
풀천지에 정을 흠뻑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방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좋은 정보 말슴 감사합니다.
제가 귀농 길잡이 책을 봤는데 선생님께서 쓰신 글이군요. 자연을 사랑하는 흙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께집니다.
언젠가 님의 가신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수고 많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