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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조개의 나이테
김영길
하사관 학교에 들어간 단풍하사 35번 후보생은 처음으로 내무반장의 부름을 받았다.
“35번 후보생! 내무반장실로 가!”
내무반장 후보생의 명에 의해 35번 후보생은 복장을 가다듬고 행정실 문 앞에 섰다. 호흡을 고른 후, 똑똑! 짧게 노크했다.
“들어왓!”
“충~성! 35번 후보생, 내무반장님의 부름을 받고……”
구호와 관등성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정반 하사의 구둣발과 훅이 배와 가슴을 냅다 후려쳤다. 순식간에 낙뢰가 신체를 관통했다. 본능적으로 아픈 배를 움켜쥐고 휘청거렸다.
“똑바로 못 서?”
“똑바로 서!”
35번 후보생은 온몸이 얼어붙는 한기를 느끼며 겨우겨우 부동자세로 섰다.
“행정반이 어떤 곳인지 아나? 그따위로 배웠단 말이지? 여기 들어올 때 보고도 제대로 못해? 다시 보고 햇!”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보고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넷! 35번 후보생……”
“어허, 이 자식 정신이 나갔구만! 필승 구호는 어디다 떼어 먹었나? 이 자식아! 배고파서 떼 먹었나? 여기는 떨어지는 낙엽도 동작 그만하면 그대로 공중에 멈추는 제2하교대다. 정신 똑 바로 차리고 다시!”
긴장감에 정신이 없다 보니 첫 번째 보고할 때는 하사관 학교 구호인 ‘필승’을 논산훈련소에서 배치 받기 전 수용연대에서 썼던 ‘충성’ 구호를 외쳐서 틀렸고, 두 번째 보고에서는 필승이라는 제2하사관 학교 구호를 빼먹어서 또 틀렸다. 주눅이드니 자꾸 틀릴 수밖에. 또 다시 몇 번을 반복하고 온몸을 구둣발로 채이고 또 채였다. 뼛속을 파고드는 것은 통증이 아니라, 자괴감의 아픔이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35번 후보생의 혈관 속에는 짜고 맑은 물이 성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행정반을 지나 내무반장실에 들어가니 내무반장이 웃고 있었다. 훈련할 때는 그렇게도 무서웠던 내무반장의 인상이 어쩌면 저토록 온화할 수 있단 말인가? 내무반장의 책상에는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효숙이가 누가?”
35번 후보생은 귀를 의심했다. 군에 입대하던 날, 마지막 뱃머리 바위에서 혼자 손을 흔들어 주던 사랑하는 애인 효숙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는가? 잠시 멈칫하다가
“넷! 누납니다!”
내무반장의 그 무섭던 얼굴은 어디 가고 따뜻하게 웃으며
“누나? 누나 좋아 한다 문디 짜석!”
내무반장은 편지봉투 한 장을 들어보였다. 이미 가위로 개봉이 된 봉투에는 언뜻 보아도 평소 익숙했던 효숙의 작고 예쁜 글씨가 박혀있었다. 내무반장은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위로의 말을 섞어, 훈련 잘 마치고 군 생활 열심히 잘 하라고 당부하며 35번 후보생에게 56통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하사관 학교의 군기는 온몸의 솜털이 얼어붙을 듯 군기가 엄했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했다가는 언제 어디서 주먹이나 발길질이 날아올지 짐작 못할 일이다. 한 번은 연병장 청소를 하다가 한 모금이라도 빨 수 있을 것 같은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감춰온 성냥으로 몰래 불을 붙여 담배를 빨다가 침투복을 입은 1기 선배인(일주일 먼저 하사관학교 입교한 생도) 86기 선배한테 들켰다.
“이 자식 고향가고 싶엇!”
번개 같은 수도가 목덜미를 강타했다.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 마신데다가 급소를 맞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정 볼 것 없이 몇 대를 더 흠씬 맞아야했다. 시정하겠다는 외침은 절규가 되고, 반복에 또 반복하고 나서야 다시 연병장 청소를 할 수 있었다. 군에서 선배를 판독하는 것은 명찰을 보면 아는데, 명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가는 언제 또 주먹이 올라올지 모를 일이고 우선 모든 선배는 눈동자로 파악이 된다. 선배 생도일수록 얼굴이 많이 검고 눈동자가 빛이 나며, 목소리가 쉬었으며 구호가 단 발음으로 짧고 강하다. 제2하사관 학교 구호인 ‘필승’도 강한 발음으로 하다 보니 ‘삘’인지 ‘필’인지 분간이 안 되며 ‘승’자는 아예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 후, 35번 후보생은 87기 전 후보생의 지도후보생으로 내무반장의 명을 받았다. 일종의 특혜였다. 내무반장과 조교들의 지시를 받아 후보생들의 훈련준비와 내무반 생활을 지도하는 직책을 맡아 생도시절을 다른 후보생들 보다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바로 효숙의 기도와 간절한 애정 덕분이었다. 효숙은 35번 후보생이 군에 입대한 후부터 매일매일 한 통씩 편지를 써 두었다가 56일 만에 알게 된 35번 후보생의 부대 주소로 한꺼번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효숙의 편지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군에 간 후, 하루하루의 일상과 여름밤 폭우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이 한 무리의 달맞이꽃으로 피어있었다. -가신지 이십이일 째 되는 날입니다.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 ‘영원과 사랑의 대화’ 어느 구도자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며 우리의 만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귀한 것이 사랑임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었습니다. 오늘은 멀리 원상리 마을로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언제가 함께 그쪽으로 심방 갔던 그 길입니다. 가는 길에 보슬비가 내렸습니다. 김 선생님이 무척 생각났습니다. 용감한 군인 아저씨를 그려봅니다.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강건하세요!- 35번 후보생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둠속을 더듬듯 효숙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1972년, 동균의 나이 스물한 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동균은 공부를 곧잘 했다. 고등학교 졸업이래야, 섬에서 몇 안 되는 부잣집 애들 마냥 목포나 광주, 서울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와, 산업화 바람타고 광주에서 고생고생하며 고학을 했던 것이다. 동균은 태권도가 2단일 정도로 운동도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태권도 부 사범으로 광주 사직공원 근처 창무관에서 청소를 하며, 초등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다행히 밥을 얻어먹고 기거를 할 수 있어서 따로 하숙비가 들어가지 않았다. 운동을 잘 하다 보니 건달 같은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동균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앗소를 먹여주고 그 대가로 송아지를 받으면 일소를 만들지 못하고 팔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 반복되는 가난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동균은 돈을 벌면 가뭄 때, 물꼬 싸움하지 않는 저수지 근처의 논을 넉넉히 장만하고, 쟁기질 잘하는 일소 한 마리를 아버지께 사 드리는 게 희망이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니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졸업하던 그해, 서울로 올라와 친척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취직해 일을 했다. 일 년 후에 징병 신체검사를 받으러 잠시 귀향하여 군 입대하기 전, 감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 놓고 가자고 생각한 것이 고향 임자면에 눌러있게 되었다. 임자면 문중 재각에서 동균이 책을 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웃동네 일 년 선배 누나가 결혼 한다고 어머니가 쌀과 계란을 가지고 다녀왔다. 그 동네 친구들이 오라고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전해 듣고, 결혼식이 끝난 그 누나네 집에 갔다. 선후배들 여럿이 모여 있는 사랑방에 초등학교 친구들 몇 명과 그 동네 여자들과 신랑 신부가 함께 있었다. 동균이 가지고 있던 파랑새 담배 한 대를 붙여 물었다. 옆에서 한 여자가 ‘큭’하며 웃음을 참는 것이 이상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동균은 슬그머니 담배를 비벼 껐다. 이내 곧 알았지만 거기에는 모두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었고, 교회 목사 내외도 있는 터라 담배를 피울 분위기가 아니었다.
잠시 후, 목사 내외가 나가고 동균을 제외한 선후배들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만 남게 되었다. 성경도 잘 모르는 동균이 갑자기 분위기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고 주워들은 성경 한 구절을 꺼내면서 거짓말이라고 부정을 했다. 그 말은 요한복음(19.34)에 나오는 “군인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 피와 물이 나왔다.”는 말은 아주 과학을 위장한 교묘한 성경구절이라며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옆에 듣고 있던 한 처녀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주일학교 선생들인데 동균 씨는 불리한 이야기를 꺼내시는 군요.”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동균은 알듯 말듯하여 친구에게 물어 그 여자가 일 년 선배인 김 조합장의 딸 효숙이라는 걸 알았다. 그날 자연스럽게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동균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어스름한 달빛에서도 일 년 선배 김효숙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누나, 방금은 잘 몰라봤습니다.”
옆에서 함께 걸으며 동균이 말을 건넸다. 달빛에 비친 보리밭은 눈에 덮인 채 차가웠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한 것처럼. 둘이는 그동안의 지나온 이야기를 하다가 효숙이 다음 주부터 교회 부흥 집회를 하는데 한 번 오라는 인사를 남기고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혼자 걷는 동안 동균은 교회 부흥 집회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였다. 대대로 유교 집안인지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늘 대화를 나눈 주일학교 반사들은 대체적으로 온후하고 좋았다. 시골에 잠시 내려와 있어보니 사실 동균에게 마땅한 대화 상대가 없었던 터였다.
교회 다니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맘에 걸렸다. 월요일이 되자 동균은 옷을 깨끗이 입고 저녁 여섯 시에 예배당에 갔다.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조용히 안내를 해주었다. 교회 마룻바닥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꿇어앉은 채 있으려니 교인 중에 방석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고,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경건하고 힘차게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곧 부흥 집회가 시작되려는 것 같았다. 교회는 삽자루를 치켜들고 물꼬 싸움하는 동네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그동안 동균이 전혀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사랑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날부터 동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흥집회에 참석을 했다. 등만 보이는 효숙의 모습도 보고, 앞에 나가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도 보았다. 금요일 날인가 잠시 짬을 낸 효숙이 동균에게 다가와 참석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효숙은 모두가 주님의 뜻이라며 말끝마다 “주여! 주여!”를 습관처럼 되 뇌였다. 부흥집회를 계기로 동균은 교회에 나가기로 작정하고 일요일을 기다렸다. 교회를 다니다 보니 동균과 효숙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 외에 다른 교인들과도 무척 가까워져 예배가 끝나고 나면 식사를 하거나 다과 장소에도 둘은 종종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느 날 효숙이 동균에게 저녁에 집으로 놀러오라는 말을 건넸다. 초대를 받아 기쁘기도 했지만, 섬이고 시골인지라 성숙한 남녀가 한 밤중에 단둘이 만난다는 것이 남의 눈을 의식 안할 수 없는 노릇이고 하여튼 좀 쑥스러운 일이었다. 동균은 누나라는 호칭보다 주일학교 반사인 효숙을 김 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동균의 또 다른 걱정은 효숙의 집에 가서 그녀를 어찌 불러낸단 말인가? 효숙의 방은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을 끼고, 담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창문이 있어서 길에서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들릴 수도 있었다. 언젠가 교인들과 효숙의 집에 갔을 때, 효숙의 방에 교인들과 들어가 본 적이 있어 위치를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마을에 전화기가 한 대 정도 있을까 말까 했을 때다. 보통의 집들은 전화기는커녕 호롱불을 켤 수 있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좀 있는 집은 남포등을 켰고, 바깥일을 할 때는 장명등을 켰다. 초저녁 어스름, 부엌일이 다 끝나갈 무렵 동균은 효숙의 집으로 향했다. 불 켜진 효숙의 방 앞에 가서 그냥 편안하게 “김 선생님!” 하고 부르자 금방 문을 열어 주면서 반겼다. 처음으로 단둘이 교회 이야기를 많이 했고,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 효숙은 동균에게 주일학교 반사를 제의했다. 주일학교 학생을 지도하려면 성경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섬에는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아서 동균에게 그 부탁을 하려고 만나자고 한 것 같았다. 성경에 대해서 잘 몰라서 어렵지 않겠느냐는 동균의 말에 차차 배우고 익혀서 가르치면 된다며 효숙이 용기를 주었다. 동균은 효숙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성경 공부를 빌미로 효숙이의 집에 자주 놀러가게 되었다. 둘은 아주 가까워졌으나 동균은 일 년 선배인 효숙에게 이성적인 감정은 갖지 않았다.
어느 날 효숙이 자기가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김형석 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에세이집을 빌려줬다. 이제 둘이는 책을 자주 빌려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독서에 대한 토론과 성경에 대한 이야기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해 나갔다. 수많은 책과 대화를 교환하는 중에서도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동균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마음에 와 닿는 신앙적인 말들이 더더욱 동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신이 목적이어서 살 때는 참다운 삶을 갖지 못한다. 자신보다 더 영원하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며 사명에서 사는 사람이 진실로 뜻있는 삶을 살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말들이 동균에게 실로 엄청난 울림을 주어 그 책을 읽고 또 읽게 했다. 효숙을 만난 동균은 학습되고 교회와 성경으로 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새벽 기도를 다니다 보니 주님의 실체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새벽 기도에 가면 의례히 효숙은 강댓상 바로 앞에 앉아서 기도하고 통곡을 할 때도 있었다. 시골 교회라 새벽 기도에 나오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장로님이 몸져누워 교회의 새벽종을 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동균이 자진해서 새벽종을 치겠다고 나섰다. 그때 동균은 교회에 매사 열심인 터였다. 그날부터 동균은 새벽 네 시가 되면 교회 종탑에 가서 종 줄을 잡아 당겼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의 맑은 밤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희망을 매달고 있었다. 그 별빛을 보며 종을 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고 천사들과 턱수염을 기른 예수님이 내려와 교회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동균은 군에 입대할 때까지 교회 종치는 사역을 하기로 작정했다. 이제 동균에게는 교회의 생활이 일상의 전부요, 하나님을 만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동균이 효숙의 집에 놀러갔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의 한 대목 중 “존재의 의미는 사랑이다.” 라는 소제목의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연 효숙이 동균에게
“김 선생은 귀여운 데가 참 많아!”
하면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동균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효숙의 볼을 꼬집으며
“김 선생님이 더 귀엽잖아요?”
라고 응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효숙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안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상황도 그렇고 남의 방에 혼자 있기 멋쩍어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그날따라 무심한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마치 살갗을 뚫어버릴 듯 비수처럼 내리 꽂혔다. 달빛조차 숨어버린 시골의 비 오는 밤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간혹 비가 오는 밤이면 효숙이 손전등을 빌려주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동균은 불같이 달아오르는 자신의 몸을 주체 할 수 없었다. 효숙에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미 동균의 몸은 뜨거운 혈류의 꼿꼿함에 금방이라도 폭발한 것만 같았다. 동균은 야수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속을 냅다 뛰었다. 동균의 눈앞을 가로 막는 것이 진정 어둠이었단 말인가!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효숙을 상상하며 마구 뒹굴었다. 동균은 비에 젖은 채 진흙으로 멱을 감았다. 고무신 한 짝도 온데간데없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동균은 효숙을 애무하듯 어둠을 더듬고 있었다.
비 오던 그날 밤, 그 감정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이 사랑인가? 동균은 그 후로 효숙의 집을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꼭 한 번은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예전과는 다르게 효숙을 떠올리면 온몸의 말초신경이 요동을 쳤다. 그때마다 효숙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교회 새벽종을 치고 예배를 보러 들어갔다. 그날따라 효숙의 “주여! 주여!”를 외치는 소리가 간절하게 들렸다. 예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다 동균과 효숙이 마주쳤다. 눈인사를 건넨 효숙이 동균에게 먼저 말했다.
“오늘 저녁 집에 놀러 오세요!”
“네!”
동균은 대답을 짧게 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저녁에 효숙의 집에 갔다. 효숙은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내왔다. 딱히 해야 할 어떤 행동이나 말이 궁색했기에 먹고만 있었다. 그때 효숙이
“김 선생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참 좋아!”
라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효숙이 다시 누구에게 말하는지, 독백인지, “믿는다. 지지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경외한다……. 어느 한마디 말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참의 침묵 후에 동균이
“제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어린 아이가 운동회 때 사탕을 사달라고 엄마나 누나의 치마폭을 잡고 조르는 정도의 감정이었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 두 사람의 감정을 서로 확인한 셈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빤히 쳐다보다가 침묵이 흐를 뿐 전처럼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동균이 나중에 선배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효숙과 동균이 동갑이라는 사실이었다. 효숙을 처음 보았을 때, 초등학교 일 년 선배이니 당연히 나이가 많을 걸로 알고 있었다. 언젠가 교회에서 동균과 효숙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던 한 선배누나가 동균 선생은 왜 김효숙 선생에게 누나라고 하고 김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하느냐, 김효숙 선생은 동균 선생을 동생처럼 대하냐, 둘은 동갑이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동균은 효숙이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늘 부르던 호칭이 쉽게 바뀌지도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할 말이 궁했던 동균은
“김효숙 선생님은 왜 저와 동갑인데 제가 누나라고 불러도 가만히 있었죠?”
“그냥 그렇게 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였어요.”
두 사람은 가끔 서로 손을 잡고 있다가 상대의 손에서 맥박이 크게 느껴지면 슬그머니 손을 뺐다. 그렇게 활발하게 했던 교회일이나 성경에 대한 토론도 줄어들었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문학과 철학적인 이야기는 효숙이 앞섰지만 자연에 대해서는 동균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교인들끼리 바다에 갯일을 하러 간 어느 날이었다. 갯일이란 바다에 나가 소라와 고동을 따는 일이다. 운이 좋은 날은 독살에서 큰 물고기를 잡기도 하여 가족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보통 초하루 물때와 보름 물때에 갯일을 간다. 초하루와 보름 때는 썰물 때로 갯벌이 바다 멀리까지 드러나서 갯일을 마음껏 해올 수 있다. 동균과 효숙이 태어난 임자도에는 소태이도가 인접해 있다. 물이 많이 빠질 때에도 물깊이가 배꼽이나 가슴까지만 올라오는 소태이도라는 무인도를 건너가면 갯것이 많이 나온다. 모세의 기적 같은 일이 이 섬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일어난다. 누가 해 놓았는지 모르지만 소태이도에는 독살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 썰물 때에 건너가 너나할 것 없이 숭어, 농어, 모치, 바닷장어 등을 잡아서 제사에 쓰기 위해 말리기도 하고, 식구들의 반찬으로 요긴하게 이용을 했다. 독살이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면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청년들이 가서 정비를 해 두었다.
바다는 참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바다를 벗하며 살아온 섬사람들은 태양보다는 달을 더 사랑했다. 그 사랑의 힘으로 달이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밀물과 썰물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한 달에 두 번, 그믐달과 보름달일 때만 하루에 두 번의 밀물과 썰물현상이 나타난다. 그때의 반나절 주기를 조간대라 하며, 조간대는 변증법으로 말하면 ‘경계의 미학’을 보여준다. 바다와 땅의 경계, 그러면서도 ‘들숨과 날숨’의 변화에 적응하며 독립된 세계를 꾸리는 곳이 조간대다. 조간대의 동식물에게 조석의 변화는 생존본능이다. 썰물 때는 육지 동물들이 퇴적물 속에 숨어 있는 먹이를 찾는데, 수많은 두루미, 백로, 해오라기 같은 조류가 갯지렁이나 고둥을 먹기 위해 날아든다. 그러나 밀물 때가 되면 육지동물들에게는 문이 닫히고 해양생물이 문을 열 차례가 온다. 밀물과 썰물은 얕은 해안에 사는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과 같다.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굶을 수밖에 없다. 조간대 생물체의 생존조건이 얼마나 각박한지 잘 알려주는 증거물로 조개껍질의 기록이 있다. 새조개, 바지락 같은 조개에도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는 식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개의 나이테는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여러 날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 서로 겹쳐 있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울퉁불퉁한 테두리를 성장륜이라고 하며 모든 조개는 성장륜을 갖는다. 조개껍질을 통해 나이인 연륜뿐 아니라 일륜, 즉 하루에 자란 길이도 알 수 있다. 물이 들어온 동안에는 물속의 먹이를 먹으며 자랄 수 있고, 물이 빠진 동안에는 먹이를 구할 수 없어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하루 동안의 자라고 자라지 못함이 성장선에 아로새겨 있다. 소태이도 바닷가에서는 유난히 물결무늬의 새조개가 많이 잡혔다.
노련한 어부는 언제나 월령(달의 나이)을 염두에 두고 고기잡이를 나간다. 어떤 고기는 보름에 잘 잡히고, 어떤 고기는 상현·하현에 잘 잡힌다. ‘사리’와 ‘조금’ 같은 물때의 변화는 어류에 영향을 주고, 어업이 다시 이들 변화에 의존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성적 충동이 만월(보름달)과 신월(초승달) 때 이상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고기잡이가 적당할 때를 찾는 데도 밀물과 썰물현상은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보통 초승달·보름달 시기와 상현달·하현달 시기에 물고기 잡이가 좋다. 더욱이 조수의 상태와 잡히는 물고기 종류, 어법은 계절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조수와 어로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민속지식은 얼핏 보기에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개별 어류에 대한 지식이 쌓였을 때, 비로소 어부들의 해양생물에 대한 자연력은 힘을 발휘한다. 자연과 우주의 변화는 만유일체로서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자연 기초 과학을 섬사람들은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밀물과 썰물에 생기는 바닷물의 변화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갯벌과 바다 생태계에 대한 지식을 체득한다. 이곳 섬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을 ‘물때’라는 말로 표현한다. 물때는 조류의 세기를 숫자로 등급화한 것으로써, 조석현상을 하루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반달주기로 파악하는 것이다. 물때는 보름을 주기로 한 달에 두 번 순환하는데, 각각의 주기에는 ‘조금’과 ‘사리’가 한 번씩 들어 있다. ‘조금’은 간만의 차가 가장 적게 나타나는 때이자 물이 가장 적은 시점이고, ‘사리’는 간만의 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때이자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점이다. 조석현상은 달의 주기에 맞춰 순환하므로 물때도 양력으로는 나타낼 수 없고 음력으로만 알 수 있다. 물의 양이 변함에 따라 섬사람들의 시간관념은 다르다. 물때에 대한 섬 어민들의 지혜, 물때를 통해 이곳 섬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생태 민속경영을 해왔다. 즉 어민들은 물때에 맞추어 다양한 어법을 개발하였으며, 그 어법은 자신들의 오랜 축적물인 민속지식을 기반으로 한 자연친화 생태어법을 터득했다. 자연력에 따라 기다릴 줄 알았던 우리 섬 어민들의 생태적 지혜를 미개시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이 시대의 화두, 생태를 몸으로 실천했던 우리 선조들의 전통이론은 참으로 놀랍다. 섬에서 자란 동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어 가끔 효숙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날의 갯일은 보름달이 바닷물을 몽땅 삼켜버린 보름 썰물 때를 이용하기로 했다. 갯일은 보통 섬 아낙들의 몫이나 가끔 남정네들도 같이 한다. 갯일을 하러 모인 교인들은 여섯 명이었다. 모두가 여자들이고 동균만 남자였다. 동균이 아낙네들에게 보호자가 된 셈이다. 동균은 그날 게를 잡으려고 바구니와 낚시를 준비했다. 낚시래야 아주 간단했다. 단단한 끈 5~6미터에 40센티 간격으로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아서 개구리는 뒷다리나 미꾸라지를 두 동강이 내서 실에 묶고, 사이사이 엄지손가락 굵기의 가벼운 마른 나무토막을 15센티 정도 크기로 잘라 묶어 두면 이것이 부레 찌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소도구는 뜰채를 가지고 가면 된다. 뜰채래야 인근 하우리 포구나 전장포 포구에 가서 새우잡이 그물 조각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잘 휘어지는 나무나 연필 굵기의 철사로 동그랗게 만들어 실로 꿰매어 섬에서 흔한 장대에 매달은 게 전부다. 게 잡이의 재미도 쏠쏠하다. 바닷가 편안한 바위에 앉아 낚시를 던져 놓고 기다리다가 부레 찌가 보일 듯 말 듯 가라앉으면 얼른 장대로 들어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게들이 주렁주렁 낚싯밥을 물고 달려 있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물속으로 떨어지려는 게들을 중간에 뜰채로 받아 바구니에 담으면 그만이다. 여자들은 그저 바구니 하나만 가지고 소라나 고동이나 물고기를 잡아 오는 것이다. 장갑이 있으면 좋겠지만 섬 아낙네들한테는 사치다. 맨손으로 고기 지느러미에 찔리기도 하고, 물리기도 하고, 굴 껍데기에 베이기도 한다. 섬 아낙들의 손은 그래서 거칠 수밖에 없다.
요기를 하고 썰물 때를 맞춰 바다로 나갔다.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물이 더 내려갈 것 같아 나무 그늘에 앉아 찬송가를 부르며 이야기를 하다가 무인도인 소태이도를 건너갈 심산이었다. 물살이 좀 센 곳과 느린 곳을 가려 물길을 어림하여 건너야 하는데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는 일이라 조심해야하고 여자들이 그냥 가기엔 위험한 일이라 동균이 여자들을 등에 업고 건너 주기로 했다. 물이 많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는 갯일 할 시간이 줄어들기에 깊지만 좀 더 일찍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여자들에게 배꼽과 가슴 사이까지 물이 찬 곳을 건너기란 겁이 나는 일이었다. 동균은 아낙들을 한사람씩 차례차례 업어 건너갈 때, 효숙은 혼자서 물길을 빠져 건너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소리를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넜다. 다행히 잘 건너기는 했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효숙은 다른 아낙들과는 다르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목포로 유학을 가서 M여고를 다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바다 갯일에 이력이 난 아낙들도 업혀 건너는 물길을 혼자 건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효숙을 제외한 네 명의 아낙들은 동균의 등에 업혀 물길을 건너 소태이도로 들어갔다. 소태이도에 들어가 한 시간 반 정도로 갯일을 하고는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밀물이 되어 섬에 갇혀버리고 만다. 동균은 전부터 게가 잘 잡히는 포인트로 갔고, 효숙과 다른 아낙들은 독살이 있고 갯일거리가 많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일을 시작했다. 동균이 미꾸라지를 매달은 낚시 줄을 넣자 손바닥 보다 더 큰 꽃게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바구니에 반 정도 꽃게를 잡았을 때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랐다. 아낙들과 반대 방향에 있어야할 효숙이 동균이 쪽으로 와버린 것이다.
“많이 잡았어?”
“응! 뭐 좀 땃어?”
“ 별로!”
어느새 두 사람의 어투가 변해가고 있었다. 효숙의 바구니에는 큰 새조개 하나뿐이었다.
“게 잡아서 내 바구니 채워줘! 내가 잡았다고 해야 해?”
효숙은 사실 갯일을 잘 하지 못했다. 게를 잡아 채워줘도 금방 탄로 날 일 이었다
“방금 왜 내 등에 업히지 않고 그냥 갔어?”
“쑥스럽지 뭐!”
참게가 의외로 많이 잡혀 동균이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효숙에게도 반 바구니 넘게 줄 수 있었다. 바구니에 있는 참게를 만지던 효숙이 소리를 질렀다.
“나 좀 살려줘!”
낚시를 팽개치고 가보니 참게가 효숙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꽉 물고 매달려 있었다. 참게를 떼 내겠다고 발버둥을 치니 참게는 더 세게 효숙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동균은 침착하게 효숙의 손목을 물속에 넣었다. 참게는 물었던 손가락을 놓고 물속으로 달아났다. 거친 일을 하지 않았던 효숙의 부드러운 손이 게에게 물린 것이다.
어느 때 쯤 지났을까? 멀리서 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균은 아차 싶었다. 벌써 물이 많이 들었다. 물길은 길고 깊어져 이제 본섬으로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일행 아낙들은 이미 건너편 쪽에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파도는 점점 소리를 삼켰다. 소태이도엔 이제 두 사람 뿐이다. 효숙은 갯일 경험이 없어 물때를 생각하지 못했고, 동균은 게를 잡는 재미와 효숙과 이야기에 빠져 물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미 물은 많이 불어서 도저히 건너갈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두 사람이 섬에 갇혔다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효숙의 커다란 눈이 더 커져 있었다. 건너편 쪽 아낙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동균이 바닷가 백사장으로 나가 이미 백여 미터가 벌어진 물 건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걱정 말고 먼저 가세요! 내일 새벽 물에 나갈게요! 새벽 종 좀 부탁해요!”
건너편 쪽에서 답이 왔다.
“알았어요. 조심해요! 먼저 가요!”
어쩔 수 없이 소태이도에서 12시간을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물가에서 돌아온 동균은 효숙을 안심 시키고, 우선 일몰 후의 추위를 피할 궁리를 했다.
“김 선생님! 걱정 마세요! 내일 새벽 물때에 나가면 돼요.”
추위와 배고픔과 잠자리가 문제였다. 우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자리와, 땔나무가 필요했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 섬까지 땔나무를 해버려 잔가지나무도 그리 쉽게 모아지지 않았다. 마침 난파당한 폐선 조각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소금물을 잔뜩 먹어 불에 잘 타지 않을 것 같았지만, 동균은 힘들게 그것을 끌어다 불 위에 올렸다. 잘 타지 않더라도 밤새껏 천천히 불을 지피리라 마음먹었다. 효숙이도 말없이 나무를 했다. 땅 아래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한기를 막기 위해 부드러운 나뭇잎도 모아서 깔았다. 한참 후에야 폐선 조각에 불이 붙었다. 둘은 불 가까이에 나란히 앉았다. 월하지 잔등에서 보름달이 올라오고 별은 총총했다. 파도소리는 싸륵싸륵 가까워지고 있었다. 효숙은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동균도 두 손을 모았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무 일 없이 이 밤을 잘 지내게 해주시고…… 우리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가족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 도 하옵나이다! 아멘!”
짧지 않은 기도였다. 바구니에 든 게들이 사그락 거리며 거품을 만들었다. 동균은 참게 몇 마리를 구워서 효숙이에게 먼저 권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두 사람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균과 효숙은 서로 손을 잡았다. 둘의 맥박이 크게 느껴졌다. 모닥불은 조용히 두 사람을 비추고 보름달과 별들은 더 가까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균은 효숙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동균이 갑자기 성난 수소 마냥 덤벼들었다. 효숙이 ‘주여, 주여!’를 작고 단호하게 외치며 동균의 단단한 가슴을 몇 번이고 밀쳐냈다. 동균의 닳아 오르는 욕정은 허사였고,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것뿐이었다. 효숙의 ‘주여, 주여!’는 달과 별이 떠있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부르는 주술 같았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을 맞았다. 파도 소리는 멀어져 있었다. 동균과 효숙은 이웃하고 있는 동네에 ‘어떤 소문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썰물이 되자 바구니를 들은 효숙이 동균의 등에 업혀 물을 건넜다. 그 후에도 동네 간에는 아무런 소문도 돌리지 않았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인들만의 묵인이었고 그 뒤로도 두 사람 사이를 이상하게 보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 예배가 끝나면 동균은 소를 몰고 산에 올랐다. 소는 깊은 산속에 두면 알아서 배를 채우고 내려갈 때 끌고 가면 그만이다. 그날도 소를 몰고 산에 오르는데 옆 동네 비탈 밭에 어렴풋이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효숙이었다. 김을 매고 있는 듯 했다. 동균이 효숙에게 다가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로도 효숙은 비탈 밭에 자주 있었고, 동균도 그쪽 산으로 소를 몰고 다녔다. 동균은 가끔 효숙에게 산딸기를 따주거나 들꽃을 꺾어 주기도 했다. 이제는 동균도 터놓고 효숙이의 집에 가기를 꺼렸다. 어쩌다 가야할 때는 불이 켜진 효숙의 창문에 작은 돌을 던져놓고 인기척을 기다렸다가 효숙이 문을 열어주면 살그머니 들락거렸다. 여전히 둘은 성경이야기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어느 날, 효숙의 어머니가 동균과 함께 있는 효숙의 방에 들어와 동성동본이니 다른 생각은 말라고 당부했다. 김효숙과 김동균은 종파가 다를 뿐 같인 김해 김 씨였다. 동네를 이웃하고 있어도 일가는 아니지만 같은 김 씨이다 보니 혼사를 한 예는 없었다. 마을에선 쉬쉬했지만, 효숙의 집안 한 남자와 동균네 오촌 고모 한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결혼을 못하고, 동네서 살지도 못하고 멀리 부산으로 도망 간 일은 있었다. 그들은 다시 섬에 돌아오지 않았다. 입영통지로 모든 희망이 꺾여버린 동균에게 효숙의 존재는 새로운 희망과 부쩍 어른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 할 수 없다는 아픔을 삼켜야만 했다. 군 입대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효숙과 함께 지낸 싱그러운 날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1974년 7월 23일, 입대하기 전날 밤이었다. 누가 입대하든 간에 각 동네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송별회를 치른다. 동균네 동네에서는 동균이 혼자였지만 임자면에서는 모두 여덟 명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송별회 날이면 군에 먼저 다녀온 선배들이 동네 회관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떡과 술, 물고기를 잡아 푸짐하게 준비하여 후배들을 격려한다. 즉석 개그도 있고 노래도 부르며 여흥을 섞어 위로잔치를 벌인다. 그날 밤 동균은 술을 조금 마셨다. 밤 열두시가 넘어서자 술에 취해 놀고 있는 동네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효숙의 동네가 있는 저수지 둑방길을 걸었다. 그때 효숙이 나타났다. 계란 한 꾸러미와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박카스 한 병을 건네줬다. 동균은 효숙을 힘껏 끌어안았다. 동균의 욕정이 효숙의 그곳에 닿았다. 불덩이 같은 동균의 입술이 떨리는 효숙의 입술을 거세게 물고 있었다. 동균은 으스러지게 포옹하며 쓰러졌다. 한참을 몸부림 하던 효숙이 동균의 두 손을 모아 쥐며 주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주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통곡에 가까웠다. 동균은 효숙의 뜨거운 눈물을 보았다. 효숙의 눈물이 동균의 가슴을 적시며 살 속을 파고들었다. 다시 둘은 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뱃머리에 안 나갈 거예요! 친척도 아니고 교회 사람들 보기도 민망하고…….”
효숙은 소리 내어 울고 싶은 감정을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듯 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동균이 단호하게 말했다.
“김 선생님, 저 군대 생활 하는 동안이라도 결혼하게 되면 결혼 하시오. 다만 저한테 결혼 전에 결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하시오!”
그 말은 두 사람이 결혼 할 수 없음과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좋다는 승낙이었다. 이제는 동균도 집에 가서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다. 군 입대자가 가지고 갈 것은 없었다. 그러나 효숙이 준 계란 꾸러미는 집에 두고 박카스 한 병과 돈 오백 원은 챙겨 넣었다. 그때 박카스는 섬에서는 자주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주 귀한 것이었다. 지폐 오백 원짜리도 그 섬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입대를 하게 되면 친인척들이나 교인들과 같은 지인들이 섬에서 육지로 나가는 여객선을 타고 떠나가는 입대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뱃머리까지 전송을 한다. 이날 여객선은 이별의 노래를 크게 틀어주고,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선창가를 크게 한 바퀴 돌아 서서히 출발하며 푸근한 고향 품의 여운을 만들어준다.
뱃머리에는 군 입대자의 가족과 친인척으로 북적거렸다. 동균은 일가친척들과 교회목사님과 교인들, 선후배들까지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고 배에 올랐다. 동균은 운동도 잘 했지만, 면내에 젊은 선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환송해 주었다. 효숙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배가 천천히 선창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잔잔한 파도를 그리며 구슬피 울려 퍼졌다. 뱃전에 나와서 헤어져야하는 친지들과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갈 무렵이었다. 선창에서 다소 떨어진 산모롱이 바위에서 혼자 손을 흔드는 이가 있었다. 윗옷까지 벗어서 흔들고 있는 한 사람, 바로 효숙이었다. 뱃머리에 오지 않겠다고 해놓고 그래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는지 혼자서 외떨어진 바위 위에서 옷을 흔들고 있지 않은가! 동균도 옷을 벗어 흔들었지만 배는 점점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효숙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옷을 흔들던 동균은 ‘나 외엔 어느 누구와도 결혼하지 말라고 할 것을’ 결혼하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있었다. 목울대의 뻐근함이 동공까지 차올랐다.
하사관 학교 훈련을 마치고 논산훈련소 조교로 배치 받은 동균은 논산 훈련소 태권도 측정반 파견 근무와 연대 배구 선수로 태권도와 배구만 하는 것이 군 생활의 전부였다. 가끔 사격이나 각개전투 등 중요한 훈련병 교육에만 참여할 뿐이었다. 동균은 삼 년 동안 군대에서 썩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보충대에서 훈련병을 데려올 때, S대 Y대 혹은 K대 출신이나 재학생인 학생들을 각 내무반에 두 명씩 배치하여 불침번을 열외를 시키고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치게 했다. 매 기수 훈련병마다 그렇게 하여 삼년동안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앙생활도 잘 해나갔다. 언젠가 효숙이 부쳐준 가죽표지의 포켓용 성경을 몇 번이고 음미했다. 1977년 제대를 앞두고 있는 3월1일 쉬는 날이었다. 그날은 월드컵 예선 축구 아시아 주 예선으로 한국과 이란이 맞대결을 하는 날로 갈색 폭격기로 불리던 차범근 선수가 출전하는 날이었다. 전반전을 보며 한참 응원을 하고 있는 동균에게 논산 훈련소 정문 경비소에 누군가 면회를 왔다는 전갈이 왔다. 면회자는 효숙이었다. 신안군 임자도에서 면회를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균의 집에서도 제대 말년까지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면회를 할 수 없었다. 훈련소뿐만 아니라 전군이 그 전 해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비상사태(데프콘3-전군의 휴가와 외출 금지)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균은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동균은 태권도 측정반으로 친분을 쌓아둔 헌병대를 떠올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백 하사가 당직하사였다. 백 하사에게 부탁하여 우선 헌병대 백차로 효숙을 여관에 안내하고 나중에 백차가 다시 와서 동균을 싣고 여관으로 가는 작전이었다. 동균은 다음날 새벽까지 복귀하면 된다. 여관에서 만난 효숙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휴가 가서 가끔 저녁에 만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나니 설레고 새로웠다. 여태껏 지내온 이야기도 하고, 교회 이야기와 고향 이야기를 나눴다. 효숙은 고향에서는 드문 보온병에 커피를 타고 콩을 많이 넣은 백설기까지 만들어 왔다. 이야기 도중 효숙이 맞선을 봤다는 말을 했다. 상대는 기독교 집안이며 고향 남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효숙의 집은 남초등학교에서 오십 보 정도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아마도 집으로 오며가며 그 선생과 눈이 맞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발정기 짐승의 체취처럼 비릿한 비 냄새와 둘만의 공간이 은밀했다. 동균은 이번만큼은 효숙을 향해 자신의 모든 욕정을 불사르고 싶었다. 효숙의 볼을 부비며 눈빛을 맞췄다. 동균의 거친 숨소리가 자신의 심장에 방망이질을 해댔다. 뿌리치는 효숙의 입술을 거세게 흡입했다. 동균의 손이 효숙의 목과 가슴을 지나자 효숙이 처절히 외쳤다.
“주여, 주여!”
효숙은 동균의 두 손을 꼭 움켜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처절히 절규하는 듯한 기도는 한 시간도 넘게 이어졌다. 헤어져야하는 새벽이 되었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동균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동균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고 지나간 것은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어찌할 수 없는 욕정의 쓰나미였다. 폐허가 된 동균의 마음에 잠시 뒤, 평화가 찾아왔다. 효숙은 예쁘게 접은 쪽지를 주며 부대 가서 읽어 보라 했다. 그 만남이 영원한 이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동균은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3월 12일에 효숙이 결혼 했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동균은 효숙의 결혼 소식을 듣고 사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의욕도 상실했다. 마침 하사관 학교 출신을 대상으로 단기 사관 장교를 선발한다는 것을 알고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장교가 되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러 12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고 고향에 가서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한 달간의 훈련을 마치면 소위로 임관하며, 삼년동안 근무를 하면 제대도 할 수 있고, 제대하면 예비군 중대장을 할 수도 있다. 제대가 싫으면 군 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동균의 부모님과 형은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뭐가 아쉬워 가족들과 헤어져 군대에 말뚝을 박으려 하느냐며 형의 반대가 가장 심했다. 결국 동균은 서류를 만들어 가지 않고 그냥 귀대했다. 연대 인사과장은 서류를 해오지 않은 동균을 침대 마후라로 20대의 빳다를 쳤다. 동균은 몸보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동균은 그해 7월에 전역했다. 고향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가끔 고향에 다니러 오면 ‘혹시나 효숙을 만날까’ 여객선 안을 두리번거렸으나 한 번도 본적은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딱 한 번 같은 배를 타고 간 적이 있었으나, 여객선 내에서 서로 보지 못하고 남을 통해 같은 배를 탔었다는 말만 들었다. 결혼한 효숙은 아들 둘을 낳았고, 광주에서 살고 있다는 말만 들려올 뿐이다. 동균도 결혼을 하여 아들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성실한 중년의 가장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며,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동균은 지금도 가끔씩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한다. 그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했던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책을 떠올린다. ‘그 책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감흥이 있을까’ 생각만 하다가 절판된 도서라는 걸 알았다. 아쉬운 마음에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조금 다르게 재판이 된 적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절판이라는 소식에 안타까움만 커져가고 있었다. 젊은 날, 연둣빛이 싱그럽던 책속의 추억이 인터넷을 탐독하게 했다. 어렵디 어렵게 중고 책을 소장한 사람에게 연락이 닿았다. 중년의 동균을 여전히 가슴 뛰게 하는 그 책속에는 동균의 청춘을 푸르게 물들였던 효숙과의 달달한 추억이 책갈피마다 꽃으로 피어있다. 활자도 종이의 향도 달콤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균의 책상머리엔 “사람의 모든 문제는 인격의 조화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해결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생활이란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다. 위로 밀어 올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흐르는 냇물의 한 부분을 아직 도달하지도 못한 어떤 장소로 이끌어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 효숙이 면회 와서 건네준 편지 속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한 구절이다. 동균은 그 글을 보노라면 물결무늬의 나이테가 예쁜, 바구니 속의 새조개와 갯일의 추억을 겹쳐 떠올린다. 동균은 오늘도 책꽂이를 바라보며 새벽녘의 명상과 사색을 즐긴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듯, 글과 문학이 번지는 사유를 만끽하려는 연둣빛 젊은 새벽이 서재를 노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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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절묘한 좋은 구절이 많네요~~
중반부까지 좀 장황하기는 해도~~
끝 부분도 좋구요~~
애 많이 쓰셨습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 책도 보고 싶어지고요~~ㅎ
좋은 대목을 복사하여 붙여 놓으려 해도 복사금지가 방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