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미 유크테스와르는 라히리 마하사야의 제자이다. 완벽주의자였던 유크테스와르는 제자들을 매우 엄하게 다루었다. ‘언어를 통한 생체 해부’라고 요가난다가 표현할 정도로 그는 한 치의 잘못도 용납하지 않고 즉석에서 경책했다. 동서양의 경전에 해박한 그는 무한한 지혜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얼음처럼 찬 영적인 수학자와 같은 태도를 견지했다. 요가난다는 그를 '지혜의 화신'이라 불렀다.
초월적 세계에 대한 논의를 달가워 하지 않았던 그는 실천적으로 그런 세계를 보여준다. 호흡은 물론 심장 박동까지 완전히 멈추어 절대 고요의 경지에 드는 모습,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몸을 순간 이동시키는 텔레포테이션, 그리고 사후에 부활하여 육신을 다시 나타내는 기적까지.
요가난다는 스승의 도움으로 마침내 우주의식을 체험하게 된다. 요가난다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깨달음을 인가하며 유크테스와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기적적인 힘을 소유하는 것이 신을 찾은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전 우주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해도 여전히 신을 놓칠 수 있다. 영적인 진보는 외적인 능력의 현시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명상 가운데 얻어지는 희열의 깊이로 측정되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기쁨이 신이다. 우리 내면에 샘솟는 항상 새로운 기쁨이 곧 신의 존재를 증거한다.”
라히리 마하사야
유크테스와르의 스승. 라히리 마하사야는 요가난다 부모의 스승이도 했다. 그의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 요가난다에게 영적인 축복을 내려주었다.
“당신의 아들은 요기가 될 것이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을 신의 왕국으로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유크테스와르와 요가난다가 모두 정식 출가한 스와미임에 비해 라히리 마하사야는 가정을 갖고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수행하는 재가(在家) 요기였다. 그의 삶은, 가족을 거느리고 세속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명상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온화한 사랑과 자비로 사람들을 제접하였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스승 바바지를 만나 크리야 요가를 배웠고 그 체계를 완성하여 세상에 가르치게 된다.
라히리 마하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명상하라. 그리하여 스스로가 모든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한한 본질임을 알도록 하라.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크리야의 신비한 열쇠를 사용하여 대령(大靈) 속으로 탈출하는 법을 배우라.”
요가난다는 그를 ‘요가의 화신’이라 불렀다. 그만큼 수행력이 깊은 도인이었던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내기도 하고, 사후에는 동시에 세 곳에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남으로써 생사를 자유자재 하는 요가의 깊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바바지
라히리 마하사야의 스승. 요가난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인도의 도인들 중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바바지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불사의 존재로, 아득한 과거로부터 육체를 유지한 채 히말라야에 은둔하며 인도의 요기와 스승들을 가르쳐 왔다. 그는 스와미 교단의 중창자인 샹카라와 중세의 스승 카비르에게 크리야 요가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일본 신지학의 아버지, 미우라 간죠는 바바지의 나이가 3천세라고 말한 바 있다. 바바지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많은 경우 20대나 30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크테스와르는 바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바바지의 영적인 단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 인간들의 왜소한 시각으로는 결코 그 ‘신성의 화신’의 영적인 성취 단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요가난다에 의하면 바바지와 같은 초인들은 역사상의 어떤 획기적인 사건보다는 여러 세기에 걸친 느릿느릿한 인간의 진화과정을 돌보는 일을 한다고 한다.
바바지는 라히리 마하사야를 히말라야 산 속의 한 동굴로 이끈 뒤 그에게 그 동안 맥이 끊어졌던 크리야 요가를 전수해 준다. 이 때 라히리 마하사야가 지닌 마지막 업보를 청산해 주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황금 궁전을 물질화시키는 기적을 행한다. 과거 어느 생에선가 황금 궁전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낸 제자의 업식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유크테스와르도 바바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동양과 서양은 마땅히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조화된 중도 철학을 수립해야 한다. 앞으로 너에게 서양에 요가를 전파할 한 사도를 보내줄 것이다.”
그가 약속한 사도가 바로 요가난다였다. 요가난다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바바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직접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너야말로 크리야 요가의 메시지를 서양에 전파하도록 내가 선택한 자이니라.”
동서양에 영성의 가교를 놓다
1920년 세계종교회의에 인도 대표로 미국에 건너간 요가난다는 여러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요가에 대한 대중 강연을 베풀었다. 이를 계기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 미국에 생기게 되었고 마침내 1925년, SRF(자아실현회)가 창설되었다. SRF는 크리야 요가의 보급을 위해 설립된 초종파적인 비영리 단체이다. 이 명상센터는 창설된 지 10년도 안 돼 수만 명의 사람들이 가입하며 번성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요가난다는 인도에도 크리야 요가를 가르치는 명상센타(YSSI)를 설립하였다.
세계종교회의에 참석한 요가난다
요가난다는 동양과 서양을 영성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는 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양에서는 물질적인 고통을, 서양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동양과 서양은 자신들이 가진 위대한 진리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빈곤과 영적 무지가 없는 세계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가난다는 고대 인도에서 발달된, 신과의 의식적 친교를 가질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인 크리야 요가를 서구에 보급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하사마디를 들기 직전의 요가난다
그는 1952년 로스엔스앤젤레스에서 인도 대사의 축하연을 베풀고는, 한 시간 뒤에 건강한 모습으로 마하사마디(열반)에 들었다. 사후에도 그의 육신은 부패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무한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SRF는 전 세계 각지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우편 통신강좌를 통해 크리야 요가를 활발히 보급하고 있다.
요가난다의 가르침은 SRF 외에도 그의 제자들이 창설한 여러 단체들(크리야난다의 아난다 공동체, 노먼 폴슨의 선버스트 공동체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