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포럼 94회 포럼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의 <하나님의 날개아래> 독후감
제출자 : 곽은서
일시 : 2024년 3월 5일 (화)
들어가며
저자는 이 책에서 20편의 묵상을 소개합니다. 그는 영적 훈련의 방법으로 성경 묵상 또는 사색을 제안합니다. 성경 묵상을 실천하는 사람은 말씀을 심사숙고하고 깊이 따지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성경 구절을 되새김질하듯 곱씹어 거기서 나오는 즙을 삼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성경 묵상의 유익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일부 묵상 글은 성경 본문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 묵상의 주요한 이점 중 하나는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수준을 넘어 그 내용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우러나오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묵상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둘째, 성경을 묵상해야 하는 또 다른 합당한 이유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우리의 능력을 말씀 묵상을 통해 더욱 날카롭게 다듬을 때 우리가 적절한 대상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12:9). 셋째, 성경 묵상은 하나님 나라의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우리의 능력을 적절히 연마한다는 말의 명백한 의미입니다.
1. 하나님의 날개 아래 (시 91:1~16)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시 91: 4).
“그러나 그 날개는 단 한 번도 접힌 적이 없다.
그 날개는 십자가 위에 펼쳐져서
우리의 허물을 위해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했다.
깃털이 더 이상 나부끼지 않을 때,
우리는 고개를 내밀어 보고
유일하게 안전한 곳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28쪽)”
(1) 시편 91편의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위대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 주제와 함께 시편 91편 말씀(독수리 또는 암탉의 이미지), 시편 57편 말씀, 마태복음 11장 25절~30절 말씀, 마태복음 23장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임마누엘 되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했습니다(마 1장과 28장).
(2) 저자는 시편 91편을 통해 성경을 묵상할 때 시편 22편을 인용하며 믿음과 성경을 균형적으로 묵상해야함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믿음의 확신가운데 부를 수 있고, 절망감과 버림받은 느낌을 안고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절망과 경악 또한 자연스럽고 성경적인 반응입니다(27쪽). 저자는 성경의 이 두 증언을 함께 검토하며 어떤 최종적 악도 우리에게 닥치지 않으리라는 것이 시편 91편의 가르침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27쪽). 이 주제와 함께 시편 23편과 로마서 8장 35절~39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무엇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 앞에 감사드립니다.
2. 활보하시는 하나님 (막 5:1~20)
(1) 마가가 복음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활보하신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에서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하고, 예수님이 어떻게 그 문제의 답이 되시는지 말합니다. 저자는 도널드 주엘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린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려는 이유는 우리가 도망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탈주자, 가인, 요나, 탕자와 같습니다.
(2)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구원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 기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활보하실 때 사람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합니다.
(3) 마가복음의 세계에서 돼지는 부정합니다. 거라사 지방은 이방인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묘지는 시체로 가득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귀신 들린 사람은 귀신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예수님은 묘지에서 뒹구는 절망적인 사람을 구원하고자 기꺼이 부정해지십니다. 예수님은 일하실 때 손을 더럽히시는 황야의 구주십니다.
(4) 거라사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이 구원받은 것에 흥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물에 빠져 죽은 2000마리 돼지들에 대해서만 흥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키는데, 모두가 재산 손실과 생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사가 때로는 우리의 관심사와 다르며,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비상한 방법을 쓰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5) 우리가 활보하시는 하나님을 어느 거라사인 못지 않게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을 활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하고 참되지만, 그 사랑은 또한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고 우리의 새 자아를 소생시키러 나섭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죽기 전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위해 죽이십니다(39쪽).
이 주제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얻으시기 위해 날마다 활보하십니다. 우리가 순전한 영성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날마다 열심을 내십니다. 우리 안에서 활보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도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뢰하길 소원합니다(주님께 내려놓음과 주님의 뜻에 맡김). 주님께서 마음껏 역사(운행)하시도록 더욱 자기부인, 자아부정, 자아상실에 힘쓰겠습니다. 주님으로 덧입기 위해 채움의 훈련에 힘쓰겠습니다. 24년 2월 29일 목요예배 말씀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전율과 감사와 찬양, 마음을 확정함과 소망). 이 주제와 함께 누가복음 9장 23절 말씀,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말씀, 그리고 로마서 12장 1절~2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3. 네 지성을 다하여 (신 6:4~9, 마 22:34~40, 뜻을 다하여)
(1) 제2의 단순함은 복잡함 너머에 있고 복잡함을 아우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어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어른은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른들은 율법서와 선지서의 모든 가르침이 압축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2) 저자는 “네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 의미를 더 나은 여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학생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정말 관심을 갖는 학생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목할 만한 분이십니다.
2)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특성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3)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 외의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쁘게 행동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습니다. 하나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일단 하나님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4)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 나아가 하나님과 그분의 특성뿐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에도 관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창조세계의 모든 힘과 위엄을 말합니다.
5) 우리는 지성적 사랑에 이끌려 다른 사람들의 삶과 거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만 그들에게 선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사 1:17). 우리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모르게 어설픈 선, 위험한 선, 무자비한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에 선을 행해야 합니다.
6)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반지성주의, 이기적 지성주의, 세속적 지성주의, 그리고 모든 우상숭배적 지성주의를 물리쳐야 합니다.
7)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을 명령하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4.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마 11:1~6)
(1)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가까이 왔지만 아직 완전히 도착하지는 않았습니다. 복음이 걸림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자가 된다는 것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산다는 뜻입니다.
(2)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돌아설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이 장을 통해 이사야 55장 8절~9절 말씀과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과 뜻 안에서, 그리고 나의 소욕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의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바르게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기길 소원합니다(엡 1:17~19, 고전 2:10~13, 마 6:22~23, 눅 11:34, 히 5:13~14).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 더욱 영적 학습과 훈련에 힘쓰겠습니다.
5. 피할 수 없는 하나님 (시 139:1~24)
저자는 사생활의 부재는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둘러싸십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십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상태와 하나님이 그의 내면으로 뚫고 들어오신 일에 대한 어거스틴의 고백은 기독교 경건 문학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당신이 나를 한번 만져주시니 불붙은 나는 당신이 주시는 평안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고백록 10.17.38)
우리 비밀을 알아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의 비밀들을 알고도 변치 않고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 주제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의도를 밝힙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이 될 수 있고, 상상을 뛰어넘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지켜보는 이가 누구인가에 달려있다.”(72쪽)
이 주제를 통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이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확장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대적이고 상호적이고 개별적이고 특별한 관계로 바르게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시편 23편 말씀과 히브리서 4장 14절~16절 말씀과 로마서 8장 26절~30절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6.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십시오 (골 3:1~4, 12~14)
(1) 저자는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분노 조절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딱 맞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입는 가족 유니폼의 일부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받아야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벗고 입음의 원리(비우고 채움, 버리고 취함, 거절하고 수용함)를 묵상했습니다(엡 4:22~24).
(2) 바울이 오래 참음에 사용한 단어는 마크로티미아입니다. 마크로티미아가 있다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 생겨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그 일을 능히 받아 낼 역량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화를 내는 것이 옳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 먼저 내 안에서 오래참고, 그에 대해 오래 참는 원칙을 바르게 분별하고 적용해야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분노가 있을 때, 이 분노가 육체에서 나온 것인지 하나님께 나온 것인지 바르게 분별하고 적용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육체에서 나온 분노는 십자가에서 처리하고, 주님께서 주신 분노는 바르게 적용하여 불의에 대응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갈 6:1~5). 그리고 영혼을 얻어드리기 위해 주님께서 오래 참음의 옷을 덧입기를 원하시면 들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인내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하나님을 소망가운데 기다리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겠습니다. 나에 대해 상관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목적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영성인이 되길 소원합니다.
(3) 오래 참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지만 오래 참음은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오래 참음을 위해 4가지 길을 제안합니다.
첫째, 짜증나는 사람들을 상상력이 풍부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둘째, 시각을 넓혀야 합니다(골 3:1). 셋째, 오래 참는 사람들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구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주제를 통해 시편 73편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인내할 상황이 주어질 때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감당하게 하실 힘을 구하는 영성인이 되도록 더욱 훈련하겠습니다.
7. 그 동안에 (눅 21:25~36)
우리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주님의 날은 지금 임하고 있거나 아직 임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93쪽)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는 기다리고 소망합니다. 기다리면서 의를 위하여 일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일합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멘”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먼저 십자가를 기대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은혜의 중독자, 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복된 제자가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은혜의 목적에 합당한 제자의 삶).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에 율법주의와 세속주의가 복음의 본질을 변질시키기에 복음의 본질과 하늘을 추구하는 자가 되도록 더욱 추구하겠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대망을 간절히 기다리며(주기도문, 천년왕국과 영원천국), 등을 밝히는 슬기로운 영성인이 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마 25장 1절~13절).
8. 만약의 경우를 위한 신 (출 32:1~8, 30~35)
(1) 성경에서 우상숭배는 일종의 간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신성한 관계 안에 경쟁자를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 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하나님은 결혼으로 비유하심).
(2) 이스라엘은 홍해를 통해 몸 밖에서는 애굽을 버렸지만, 광야에서는 그들 마음 안에 있는 애굽을 몰아낼 수 없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무엇이든 우리 마음이 집착하는 것이 우리의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시고 사람이 목적이 되거나 어떤 것이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수단이 되면 이것이 우상이 됨을 묵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그리고 사사시대에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고전 10장 1절~12절). 둘째, 빌립보서 3장 18절~21절 말씀을 통해 우상을 묵상했고, 셋째, 팀 켈러가 쓴 <내가 만든 신>을 통해 내가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순종)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두 우상이 됨을 묵상했습니다.
(3) 이 이야기의 전체 핵심은 두 신을 예배하면 결국 예배자가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하나님은 결국 반역자들뿐만 아니라 바보들도 기꺼이 참아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바보가 죽어야 했고 중보자 모세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위험하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드러나십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려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지만 그 대가는 어마어마합니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9. 높이 들린 그리스도 (요 3:1~17)
우리가 눈을 들어 도움의 원천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에 함께 하시는 분이고 따라서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백신입니다.
이 주제와 함께 히브리서 3장 1절, 히브리서 4장 14절~16절, 히브리서 12장 1절~3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10. 받는 쪽 (눅 18:9~17)
예수님께서 한 아기를 축복하실 때(누가는 이 대목에서 아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주목하신 것은 필요한 것투성이라는 아이의 특성이었습니다. 아기는 보살펴 줘야할 존재입니다. 그래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의 지위는 아주 낮았습니다. 아기들은 바로 앞 9~14절의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 나오는 세리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들을 거론하신 이유는 그들이 멋지게 잘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와 함께 마태복음 11장 25절~30절 말씀과 누가복음 18장 9절~17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will not receive, 눅 11:17). 예수님은 어리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신령한 젖인 주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잘 받아들이는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잘 받아들이도록 힘쓰고, 어린아이처럼 날마다 성령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겠습니다(히 5:12~14, 벧전 2:1~3, 벧후 3:18).
11. 가인의 표 (창 4:1~16)
살인자들의 땅에서 가인의 목숨을 지켜 준 그 표가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역사의 서두에서 하나님이 살인자에게 주신 표는 수치의 표이자 은혜의 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를 가리지 않고 구원하러 나서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가인처럼 죄인인 우리도, 믿음으로 아벨처럼 죄 없게 된 우리도 모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히 11:4).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 안에 거하며 그 은혜에 반응하여 은혜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는 예배자가 되길 소원합니다(갈라디아서 1장 15절~16절, 고린도전서 15장 9절~10절, 고린도후서 5장 9절~10절, 무익한 종 누가복음 17장 10절,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일꾼).
12. 자기기만 (요일 1:5~2:2)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요일 1:8, 새번역)
자기기만은 우리가 스스로를 상대로 벌이는 어두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진실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선 너무나 겁이 납니다. 자기기만의 정말 무서운 점은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고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기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무서운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정기적인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기 점검은 경계합니다. 이는 신경과민 증세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이 주제와 함께 요한일서 1장 8절~9절 말씀,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말씀,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말씀, 갈라디아서 6장 3절과 7절 말씀과 디모데전서 1장 15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성령의 조명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거울, 고전 10:6, 11, 히 4:12~13) 저 자신을 바르게, 정직하게 발견하고 하나님께 자백하고 바르게 단장하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영의 기능을 통해, 영적 성장을 통해, 영적 지각을 통해, 영적 가치관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부정하고 성령을 좇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복된 종이 되길 소망합니다(갈 5:16~18, 요 15:4~5).
13. 풀의 광채 (시 103:1~22)
첫째, 인생의 헛됨과 주님의 은혜를 함께 묵상했습니다(151쪽). 즉 인생의 덧없음과 하나님 사랑의 영원함을 묵상했습니다(153쪽). 짧은 인생가운데 오늘을 선물하신 주님께서 저를 아신 것으로 늘 충분하다 고백하며 살길 소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묵상했습니다. 저자는 우리 인생에 유일한 의미는 하나님의 이 영원한 사랑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갖는다면 그 의미는 하나님이 귀중하게 여기신다는 데 있고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날마다 이 사랑 안에 거하며 이 사랑 안에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1절~3절 말씀과 시편 103편 1절 말씀과 이사야 43장 21절 말씀과 창세기 1장 26절~31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셋째,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154쪽). 이 주제와 함께 로마서 5장 8절 말씀과 요한일서 2장 15절~17절 말씀과 요한복음 14장 1절~3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14. 부활을 두려워하는 이유 (마 28:1~10)
(1)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마 28:8)” 두려움과 큰 기쁨.
(2) 우리의 기쁨은 두려움보다 커야 합니다. 기쁨이 두려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곁에 아주 가까이 머무는 것입니다. 신실함의 90퍼센트는 자리를 지키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힘들어도 계속 해나가는 일로 이루어집니다(본문의 두 마리아).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활보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안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믿음만 원하시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전 존재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두려움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큰 기쁨도.
15. 이웃 사랑 (레 19:9~18, 마 22:34~40)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비슷할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데 있어서 우리의 폐는 용량이 작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속 숨을 불어넣으신다면 우리는 적어도 이웃 중 일부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습니다.
16. 영적 가속도 (막 4:21~25)
(1) 있는 자, 얻는 자, 가진 자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얻는 자가 되고 가진 자가 되어야함을 묵상했습니다(빌 3:8~9). 그리고 더하기 원칙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더해짐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소원합니다.
(2)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말씀과 에베소서 4장 11절~16절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길 소원합니다. 주님과 깊은 사귐을 통해 더욱 주님을 알고 얻고 소유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복된 종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이기 때문입니다(요 15:4~5).
(3) 우리에게 좋은 흐름이 있든, 나쁜 흐름이 있듯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날마다 더욱 성장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에서 보여주신 모습처럼 주님께 날마다 배움으로 말미암아 쉽고 가벼운 복된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마 11:30). “통합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처럼 순례자로서 바르게 생명의 길, 영광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당신의 말씀과 뜻 안에서 우리를 세우소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심으시고 기르시고 돌보시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라고 꽃피게 하소서. 아멘”(188쪽)
17. 겸손으로 옷 입으십시오(골 3:1~4, 12~14)
(1) 저자는 골로새서 3장을 통해 참된 겸손을, 골로새서 2장 18절과 23절을 통해 거짓 겸손을 말합니다.
저자는 진짜 겸손한 사람은 현실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부풀리지 않습니다. 잘난 체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상황과 사람들과 자신을 현실적으로 바라봅니다.
겸손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을 상대하게 하는 지혜의 일종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보다 높은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합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 동료, 길동무로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들 및 그들의 삶에 따뜻한 관심을 갖습니다.
(2) 겸손과 관련된 또 다른 혼란인 굴욕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동네북이 아닌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원하는 우리는 둘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3) 저자는 교만한 사람의 특징에 대해 설명합니다(193쪽).
(4) 저자는 겸손한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을 제시합니다(194쪽~196쪽).
겸손한 사람은 현실을 수용할 뿐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동등한 존재로 수용할 뿐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높은 위엄을 수용할 뿐 그분을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들지 않습니다.
18.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행 2:1~4, 14~24, 36~42)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행 2:39, 새번역)
누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구절에서 ‘마크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눅 15:10)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눅 18:13)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에서 베드로가 멀리 떨어진 채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그 약속이 누구보다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부인했던 그였기에 아는 것입니다. 은혜의 약속은 우리와 우리 자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은혜 안에서 남은 나날 동안 계속 구원을 누리고 구원을 이루고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고전 15:9~10, 고후 6:1~2). 그리고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19. 환대를 실천하십시오 (롬 12:9~13)
(1)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훈련이 되고, 훈련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의 일부로 자리 잡고, 인격은 운명의 일부가 됩니다. 이것은 인생이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환대의 덕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살 만한 공동체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특히 낯선 이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공동체 말입니다.
(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도움으로써 성장합니다(엡 4:11~16).
(3)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환대에 관한 한 누구도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고 그런 시도를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타인을 수용하는 우리의 역량은 상당히 쉽게 한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4) 심판의 날은 우리가 환대를 실천했는지 여부를 놓고 심문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고린도후서 5장 9절~10절 말씀,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 그리고 전도서 3장 12절~13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일상의 누림과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복된 삶의 균형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날마다 이 균형 안에서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복된 종이 되길 소망합니다.
20. 만일 누군가가 (욥 9:1~14, 32~35)
(1) 욥은 고통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없지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없습니다. 욥기의 끝에 가서도 욥은 하나님의 설명을 듣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비와 그분의 임재에 압도됩니다. 그러나 원하는 답을 다 얻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가 얻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2) 욥은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재자가 있어서 한 손은 하나님의 어깨에 다른 손은 자기 어깨에 얹어 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욥 9:22~23).
(3) 저자는 욥의 시대에는 불가능했지만 복음의 시대에는 우리와 하나님께 손을 얹어 줄 중재자가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못 박힌 한 손은 저기 쓰레기더미 위 부서진 인간에게, 그리고 엉망이 된 다른 손은 하늘의 왕께.”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6~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1~2)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제뿐 아니라 화목제도 드리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다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복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