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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모데나 시립극장 공연 / 180분 / 한글자막>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인간사를 관조하는 푸치니의 고백록
푸치니의 많은 오페라 명작들 가운데에서 숨은 명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일 트리티코>다. 이 작품은 푸치니의 다른 걸작들에 못지않은 서정성과 비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대중관객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그런 특성이 바로 이 작품의 장점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일 트리티코>란 '3개로 된 그림이나 작품'이라는 뜻으로, 중세 유럽에서 많이 쓰던 '3면의 제단화(祭壇畵)'를 주로 일컫는다. 즉 세 개의 그림이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페라 <일 트리티코> 역시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세 개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단막 오페라들이 나열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옴니버스 오페라이다.
제1부인 <외투>는 베리스모 스타일 오페라로서, 죽음을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2부 <수녀 안젤리카>는 여성들만이 출연하는 오페라 세리아로서, 죽음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그린다. 제3부인 <잔니 스키키>는 코미디 즉 오페라 부파로서, 죽음을 희화(戱畵)화 즉 블랙코미디로 묘사한다.
<일 트리티코>는 원래 하루에 한 자리에서 다 공연해야만, 이 오페라의 철학적인 의미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법이다. 원래 푸치니의 뜻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비록 단막이라고는 하지만 세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 성악적으로나 무대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하여 점점 하루에 다 올리는 것은 어려워졌고, 각 작품들은 각기 따로 공연되거나 다른 단막 작품들과 짝을 이루어 올려지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역시 한꺼번에 한 무대에서 연속으로 올려지는 것이 제 맛임은 분명하다. 이럴 경우 라 스칼라 극장의 유명한 무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 프로덕션은 세 명의 뛰어난 여가수들이 각기 한 작품씩을 맡아서 불렀다. 세 작품의 프리마 돈나들은 서로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즉 <외투>의 경우는 드라마틱 내지는 스핀토 소프라노가 부르고, <수녀 안젤리카>의 경우는 리릭 내지는 서정적인 스핀토 소프라노가, <잔니 스키키>는 코믹한 연기를 구사해야 한다. 따라서 세 명의 소프라노가 보통 나누어 부르게 된다.
이런 <일 트리티코>가 2007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인 모데나에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올려져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것은 모처럼 하루에 다 올려져서 원작의 의도를 그대로 살렸을 뿐 아니라, 세 프리마 돈나를 한 소프라노가 혼자서 다 불렀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 스타일이 다른 세 프리마 돈나를 하룻저녁에 홀로 소화하는 기염을 토한 여성은 당시에 아직 신인티를 벗지 못한 소프라노 아마릴리 니차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세 역할을 하룻저녁에 거의 완벽하게 열연하였고, 심지어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놀라운 해석까지 이루어내었다. 그녀의 성공은 바로 유럽에 화제가 되어서, 그 후로 그녀는 유럽의 여러 극장에서 이 역할들을 다시 불러야했다. 이렇게 한 소프라노에 의해 <일 트리티코>가 다시 살아나서 여기저기서 올려지는 작은 놀라움이 일어난 것이다.
역시 이탈리아의 젊은 바리톤 알베르토 마스트로마리노가 두 개의 역할을 열창하였으며, 지휘는 율리안 레이놀즈가 맡았다. 연출은 여성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촐라로서, 그녀는 특히 <수녀 안젤리카>와 <잔니 스키키>에서 탁월한 창의력을 보여,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살려내었다.
=== 작품해설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일 트리티코(3부작)
인간사를 관조하는 푸치니의 고백록
푸치니의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가장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오페라가 <일 트리티코>이다. 이 작품은 우리말로 <3부작>으로 번역되는데, 단막으로 된 세 개의 오페라가 나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각 작품들은 서로 내용이나 인물이나 스토리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서,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오페라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세 개 작품을 한 데에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푸치니의 유명 오페라들은 대부분 그의 초기의 작품들이다. 즉 푸치니가 자신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로 최초의 성공을 거둔 후, 잇달아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약간의 침체기를 겪으면서 앞의 작품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푸치니가 발표한 아주 독특한 걸작이 <3부작>이다. 그의 다음의 작품인 <투란도트>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난 것을 생각하면, <3부작>은 푸치니 자신이 완성시킨 마지막 오페라가 되는 셈이다.
<3부작>은 각기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의 세 개의 단막 오페라로 이루어져 짔다. 세 작품들은 각기 연관성이 없는 스토리들인데, 이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는 단테의 <신곡>에서 얻었다. 물론 모두 <신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곡>에서 단테가 보여주는 그런 단계를 푸치니도 여기서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외투>는 지옥편, <수녀 안젤리카>는 연옥편, <잔니 스키키>는 천국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이 하나로 뭉쳐있는 것은 바로 소재와 주제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세 오페라는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다. <외투>에서는 인간의 처절한 인생과 애증 그리고 죽음을 그리고 있다. 외투란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때로는 즐거움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또 어떨 때는 괴로움을 달래주는 것"이지만, 또한 주검을 숨기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죽음을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처절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수녀 안젤리카>는 자신의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 수녀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죽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그녀는 죽은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정말 천국이든지 아니면 그녀의 환상이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연옥일 것이다. <잔니 스키키>는 한 노인의 죽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유가족들의 유산 다툼을 코믹한 필치로 그리고 있는 코미디이다. 인간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런들 또한 어떠냐?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천국은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3부작>에서 죽음을 그리고 있는 시선은 처음엔 처절하게 사실적으로, 다음에는 환상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에서 희화적으로 단계적인 발전을 거치면서 그리고 있다. 즉 이 오페라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인생을 바라보는 만년의 푸치니의 인생론이자 자신의 관조적인 철학을 보여주는 고백록이다. 그런 점에서 이 <3부작>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나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비견할 수 있는 위대한 걸작이다.
<일 트리티코>란 말은 원래 3면으로 된 제단화 또는 3폭 병풍을 의미한다. 유럽의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뒤에서 옷도 갈아입고 장식용으로도 쓰는 가리개를 일컫는다. 그 3폭 병풍에는 보통 세 가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당연히 그림들은 같은 소재를 가지거나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 <일 트리티코>도 이렇게 3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고, 우리는 한꺼번에 이 세 가지의 삽화들을 감상하는 것이다. 유명한 항(抗)우울제(우울증치료제) 가운데에 '일 트리티코'란 같은 이름의 약품이 있다. 세 개의 벤젠 링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 것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일 트리티코>도 힘든 우리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진정한 항우울제인 것이다.
<일 트리티코>의 세 오페라들은 모두 단막으로서 각기 1시간 남짓 하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푸치니는 당연히 이 오페라가 한꺼번에 공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18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초연되고 성공을 거둔 이후, 이 작품은 곧 세 오페라들이 각기 따로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푸치니는 그것을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사실 작품의 길이는 그렇게 긴 것이 아니지만 각 오페라의 구조적 형태와 음악적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서, 보통 극장이 하루 저녁에 세 작품을 한꺼번에 올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외투>는 전형적인 베리스모 오페라로서 베리스모를 소화할 수 있는 드라마탁한 테너와 소프라노와 바리톤을 필요로 한다. 반면 <수녀 안젤리카>는 오직 여성들만이 나오는 작품으로서 거의 10여 명의 여성 솔리스트들과 여성 합창만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잔니 스키키>는 코메디아 텔라르테 풍의 전형적인 오페라 부파로서 타이틀 롤을 맡을 뛰어난 바리토노 부포와 다양한 희극 가수들 그리고 리릭한 소프라노와 테너 한 사람까지 필요하다. 세 오페라는 당연히 무대와 의상도 다 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세 작품을 한꺼번에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요즘에는 현실적으로 세 작품들 중 한 두 작품 정도만 상연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짧은 오페라들 즉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풀랑의 <인간의 목소리>, 파야의 <허무한 인생>, 메노티의 <도둑과 노처녀> 등과 짝을 이루어 보통 가운데 휴식을 두고 두 개 만을 올리는 것이 더욱 보편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푸치니의 원래의 의도나 효과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를 위한 더욱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외투 Il Tabaro>
원작 디디에 골드의 희곡 <외투> / 대본 주세페 아다미 / 초연 19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배경 1910년, 황혼 무렵 파리 세느 강의 거룻배가 정박한 제방
등장인물
미켈레........바지선 선주이자 선장.....알베르토 마스트로마리노(바리톤)
조르제타.....미켈레의 젊은 아내........아마릴라 니차(소프라노)
루이지........부두하역부...................루벤스 펠리차리(테너)
그외 다수의 부두하역부 등
푸치니는 파리에 있는 동안 그랑 기뇰에서 디디에 골드의 연극 <외투>를 보았다. 그때의 연극도 3부작 형태로 상연되고 있었는데, 당시 파리의 유행이었다. 연극을 본 푸치니는 <3부작>을 만들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외투>를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하였다.
<외투>는 상당히 암울하고 음침한 작품으로서, 한 남자가 아내에 대한 질투로 살인을 하게 되는 짧은 몇 시간을 매우 빠른 진행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베리스모 오페라에 해당한다. 그래서 소재나 진행이나 공연 시간에서나 비슷한 세 작품들, 즉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그리고 푸치니의 <외투> 세 작품은 바로 베리스모 오페라의 가장 전형적인 3대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는 파리의 세느 강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거룻배들이 많이 있어서 강변을 따라서 짐을 나르곤 하였다. 그리고 가족 단위의 선원들은 배안에서 생활을 영위한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극인데, 젊은 아내 조르제타를 의심하는 선장 미켈레의 심정은 누가 보아도 <팔리아치>의 카니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는 밀회를 위해 자신의 아내를 찾아오는 부두 하역노동자 루이지를 우연히 마딱뜨리게 되고, 그 자리에서 그를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배경으로는 흔히 노트르담 성당을 보여주는데, 살인이 저질러져도 세느 강은 인생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모두 삼킨 채 계속 흘러가고, 성당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서 '외투'란 것은 우리가 흔히 입은 오버코트와는 좀 다르다. 과거 일제 때에 일본 유학생들이 입던 것이며 요즘의 사관학교 생도들이 입는 망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길고 넓은 천을 목 주위에 매다는 형태인 것이다. 이 외투의 구조는 두 사람을 능히 감싸 안을 수 있어서, 오페라 속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따뜻하게 해 주고, 인생의 고통을 가려주고, 심지어는 시체도 숨겨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외투는 이 오페라의 상징적인 소품이다.
음악은 상당히 근대적으로 얼핏 아리아의 구분 같은 것은 없다. 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악극의 영향이 짙은데, 불협화음과 조성의 잦은 변화를 사용하면서 어두운 음악은 파국을 향해서 거침없이 치닫는다.
<수녀 안젤리카 Suor Angelica>
원작 조바키노 포르차노의 희곡 <수녀 안젤리카> / 대본 조바키노 포르차노 / 초연 1918년 뉴욕 메트
배경 17세기 말엽 어느 봄날 저녁 이탈리아의 어느 수녀원
등장인물
안젤리카.....수녀...........................아마릴라 니차(소프라노)
공작부인.....안젤리카의 큰어머니.....안나마리아 치우리(콘트랄토)
그외 수녀원장, 주임수녀 등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서, 세 개 중에 가운데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푸치니는 <3부작>이 항상 한꺼번에 공연되기를 바랐었지만, 초연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작곡가의 의도는 지켜지지 않았다. 즉 세 작품이 필요에 따라 각각 공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럼으로써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이 바로 <수녀 안젤리카>이다. 즉 세 작품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고 공연의 빈도도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수녀 안젤리카>의 특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점이다. 이 작품은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나오는 사람들이 전원 여성들뿐으로 시종 여자들의 음성만 들린다. 게다가 배역들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녀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밋밋한 것이 사실이고 극적인 맛이나 긴박감이 가장 덜하다.
하지만 푸치니는 이 작품을 아주 좋아했다. 소재로서는 아마 <3부작>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해서 거의 몇 주 만에 작곡을 해치웠다고 한다. 그런 점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푸치니의 작곡 스타일로서는 드문 경우였다. 푸치니가 이것을 좋아한 것은 그 소재가 종교적이고 신비스럽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세속적인 연애이야기만 잔뜩 써왔던 푸치니는 이런 종교적인 소재의 신비스러운 음악을 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푸치니는 관객들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실컷 쏟아낸 것이다.
이 작품을 나쁘거나 지루하다고 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녀 안젤리카>만을 듣는다는 것은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만 계속 듣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2악장이 보통 가장 치밀하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대한 1악장과 호방한 3악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이 큰 임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녀 안젤리카>는 <외투>와 <잔니 스키키> 사이에서 전체적인 균형과 연결을 위해서, 보다 덜 극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 오페라를 전체 <3부작>과 연관시켜서 생각한다면 더욱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도 이 <수녀 안젤리카>를 볼 기회가 종종 있다. 남성가수가 전혀 나오지 않는 덕분에 여자대학 같은데서 학생들을 위한 작품으로 자주 올려지콘 하는 것이다.
<잔니 스키키 Gianni Schicchi>
원작 단테 <신곡>중 <지옥편>에 나오는 짧은 대목 / 대본 조바키노 포르차노 / 초연 1918년 뉴욕 메트
배경 1299년 피렌체 부오소 도나티의 집에서의 아침 무렵
등장인물
잔니 스키키.....피렌체의 시민..........................알베르토 마스트로마리노(바리톤)
라우레타.........잔니 스키키의 딸......................아마릴리 니차(소프라노)
치타...............부오조의 사촌..........................안나마리아 치우리(콘트랄토)
리누치오.........치타의 조카. 라우레타의 연인.....안드레아 조바니니(테너)
그외 부오조의 친척들, 의사, 공증인 등
푸치니의 <3부작>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나, 한달 후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에서 유럽 초연이 올려졌을 때나, 세 오페라 중에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것은 항상 마지막의 <잔니 스키키>였다. 물론 지금도 <3부작>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이 오페라이며 어떤 이들은 <3부작>은 물론이고, 푸치니의 모든 작품들을 통틀어 <잔니 스키키>를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한다.
<3부작>중 앞의 두 작품들은 오페라 세리아라고 할 수 있지만, <잔니 스키키>는 오페라 부파이다. 이것은 피렌체의 한 부자가 죽고 나서 그의 유산을 둘러싼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재산을 탐내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이태리의 전통적인 민중 희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스타일로 묘사하였다.
보통 원작이 단테의 <신곡>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곡>의 <지옥편>에는 잔니 스키키란 사람의 간단한 소개 정도만이 나와 있다. 즉 그 남자가 남의 유언장을 바꿔 써서 재산을 가로챘기 때문에 그 벌로 지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잔니 스키키는 피렌체에 실존했던 인물로 여겨지는데, 역시 피렌체 출신인 단테가 그의 에피소드를 자신의 작품에 담은 것이다. 즉 오페라에 나오는 부자 부오소 도나티란 사람은 바로 단테의 처가의 인물로서, 단테는 처가의 재산을 빼돌린 이 사내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엇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페라에서는 잔니 스키키가 바로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아를레키노에 해당하는 인물로 나오고 있다. 이 잔니 스키키란 인물의 장난과 해학은 마치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나오는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잔니 스키키>에서는 죽음을 둘러싼 인간들의 당연한 반응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7백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이나 현대인들의 심리와 별로 다르지 않아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관객의 동감을 얻어내는 명작인 것이다. 또한 작품이 아주 짧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아름다운 두 청춘남녀의 모습을 그려 넣어서 진흙탕 같은 세상에도 아름다운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청춘 남녀가 각각 아주 유명한 아리아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라우레타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리누치오의 아리아 <꽃피는 나무와 같은 피렌체>이다.
=== 작품 해설 === <2012년 5월 29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푸치니, 잔니 스키키
희극 오페라는 대체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상다반사를 다루면서 세태를 반영해왔습니다. 구두쇠 노총각 소재를 즐겨 다룬 초기 오페라 부파 시대부터 계속된 전통이죠. 희극 오페라의 가장 빈번한 단골 소재는 역시 결혼인데요,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반대를 젊은 주인공들이 기지와 속임수로 극복하는 스토리가 일반적입니다. 이 기본 소재에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벌이는 친척들 간의 싸움을 조합한 이야기가 바로 [자니 스키키 Gianni Schicchi]랍니다. 평생 비극 오페라로 관객을 울렸던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가 말년에 시도해본 희극이어서, 베르디 최후의 희극 [팔스타프]나 바그너의 거의 유일한 희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와도 비교되는 작품이지요.
1918년 12월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초연된 이 푸치니의 걸작은 [외투 Il Tabarro], [수녀 안젤리카 Suor Angelica]와 함께 [일 트리티코 Il Trittico](3부작)로 함께 선보였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3부작 모두가 ‘죄와 죽음’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외투]와 [수녀 안젤리카]가 처절한 비극인 것과는 달리 [자니 스키키]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즐거운 희극입니다.
유산상속에 목숨 건 군상을 그린 단테의 원작
이야기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7백여 년 전인 1299년 이탈리아 피렌체. 죽음을 코앞에 둔 돈 많은 부오소 도나티의 침대를 둘러싸고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듯이 울고들 있지만, 모두의 관심은 어서 부오소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 유산을 받게 되는 것뿐이기 때문이죠. 마침내 부오소가 숨을 거두자마자 다들 유언장을 찾느라고 야단들인데요, 온 집안을 발칵 뒤엎어 겨우 찾아낸 유언장에는 “전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친척들은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망연자실이죠. 이 세상에 종말이라도 찾아온 듯한 얼굴들입니다. 유산을 상속받아 결혼하려고 5월 1일로 날짜까지 잡아둔 리누치오는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 라우레타!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절박하게 외칩니다.
부모 대신 리누치오를 청년이 될 때까지 키운 숙모 치타는 처음엔 신이 나서 “유산만 많이 받는다면 네가 악마의 딸과 결혼한대도 상관없다”고 하더니, 유산을 한 푼도 못 받게 되자 “이렇게 된 마당에, 지참금도 없는 가난한 라우레타랑 결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결혼을 목숨 걸고 반대합니다. 그러자 마음이 다급해진 리누치오는 친척 아이를 시켜 자신의 장인이 될 라우레타의 아버지 자니 스키키를 모셔오게 하죠. 법률에 정통해 있고 두뇌회전이 민첩한 자니 스키키가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숙모를 비롯한 오만한 친척들은 피렌체 출신이 아닌 시골뜨기라며 스키키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스키키와 사돈을 맺는 것은 가문의 망신이라고 떠들어대죠. 하지만 리누치오는 자니 스키키가 얼마나 영리하고 물정에 밝은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나서, 예술과 학문의 도시이자 번영의 상징인 피렌체를 예찬하는 노래 ‘피렌체는 꽃피는 나무 같아 Firenze e come un albero fiorito’를 부릅니다.
이 집에 도착해 유산상속의 속사정을 알게 된 스키키는 부오소 친척들의 멸시에 분노하며 딸 라우레타의 손을 잡아끌고 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빨리 결혼하고 싶어 속이 타는 라우레타와 리누치오는 꾀 많기로 소문난 스키키에게 어서 묘안을 생각해 보라고 끈질기게 졸라댑니다. “이런 인간들을 위해 나더러 지혜를 짜내라고? 천만에, 그러고 싶지 않아!” 이렇게 계속 거절하는 아버지 스키키에게 마침내 최후통첩을 하는 라우레타. “아빠, 저희는 결혼반지를 사러 가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리누치오와 결혼할 수 없다면 저는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 아르노 강에 빠져 죽어버릴 거예요. 그러니 아빠,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영화에도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라우레타의 이 유명한 아리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이처럼 사랑에 빠진 철없는 딸이 아버지에게 애원 반 협박 반으로 매달리는 노래랍니다. 이 매혹적인 선율은 리누치오가 피렌체를 찬미할 때부터 배경에 우아하게 깔리죠.
딸을 결혼시킬 돈은 없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딸을 물귀신 만들 수도 없고... 잠시 고민하는 스키키. 곧 머리에 전구가 반짝 켜집니다. 부오소가 죽었다는 사실을 방안에 있는 친척들 말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해 사기극을 벌이기로 작정한 것이죠. 그는 친척들에게 부오소의 시신을 숨기게 하고는 그의 병상에 자기가 대신 환자로 꾸미고 눕는답니다.
성대모사의 달인이기도 한 스키키는 병세를 살피러 찾아온 의사를 부오소인 척하며 근사하게 따돌립니다. 친척들은 이제 스키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그에게 있는 대로 아부를 하면서, 스키키가 시키는 대로 새 유언장을 작성할 공증인을 불러옵니다. 그런데 공증인이 오기 전에 스키키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법률 상식을 알려 잔뜩 겁을 주죠. “유언장을 위조한 사실이 발각될 경우, 위조범과 공범들은 모두 한쪽 손을 잘린 채 피렌체에서 영원히 추방됩니다.” 탐욕스러운 친척들은 각각 은밀히 자니 스키키에게 자기들이 상속받고 싶은 유산의 내역을 귀띔합니다.
공증인이 오자 친척들은 기대에 부풀어 스키키의 입만 쳐다봅니다. 그러나 스키키는 부오소가 남긴 현금과 자질구레한 세간살이를 친척들에게 골고루 분배한 다음, 정작 다들 군침을 삼키던 부오소의 저택과 물방앗간과 노새는 “헌신적인 친구 자니 스키키에게 상속한다”라고 선언합니다. 가장 덩어리가 큰 중요한 유산은 자기 혼자 챙긴 것이죠.
공증인이 돌아간 뒤 기가 막혀 고함을 지르며 아우성치는 부오소의 친척들에게 스키키는 유언장 위조 공범이 받게 될 끔찍한 처벌을 다시 일깨우며 그들을 집밖으로 몰아내 버립니다. 드디어 결혼할 수 있게 된 딸과 사윗감이 기쁨에 넘쳐 사랑스러운 이중창 ‘나의 라우레타Lauretta mia’를 부르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스키키. 그는 관객을 향해 “부오소의 재산이 이보다 더 훌륭하게 분배될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라고 물으며 박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음악
단테 알레기에리(1265-1321)의 [신곡 Divina Commedia] 중 ‘지옥편’의 한 부분을 바탕으로 한 [자니 스키키]의 주인공 스키키는 단테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입니다. 단테의 아내 젬마(Gemma)는 바로 이야기 속 부오소의 집안인 도나티 가문의 딸이었다는 군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이성을 잃고 가족끼리도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고 마는 사람들, 내세의 보상을 내걸고 사람들을 유혹해 부를 축적했던 세속화된 중세의 가톨릭 교회. 이들을 비판한 대본작가 조바키노 포르차노의 재치 있고 감칠맛 나는 대사가 관객을 사로잡는 작품이 [자니 스키키]입니다.
푸치니는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적인 선율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은 작곡가였지만, 그런 그의 센티멘털리즘은 이 작품 [자니 스키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후반부 사랑의 이중창을 제외하면 [라보엠]이나 [나비부인]을 휘감고 있던 그 ‘마법의 멜로디’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원래의 목소리로(con voce naturale, 또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라는 지문대로, 등장인물들은 오케스트라 음악 위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낭송조의 대사를 들려줍니다.
한 시간 남짓한 이 단막극에서는 열댓 명이나 되는 등장인물 중 열 명 정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친척들은 경우에 따라 개개인으로 움직이며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주지만, 다 함께 의견의 일치를 보거나 공동의 적(스키키)에게 대항할 때는 음악적으로도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단체행동’을 보여줍니다. 리누치오의 ‘피렌체 찬가’ 중간에 갑자기 오케스트라가 박자를 전환하며 O mio babbino caro의 모티프를 연주하고 극의 끝부분에서 다시 이 선율이 스쳐가는 것도 이 작품에서 푸치니가 추구한 음악적 통일성의 좋은 예입니다.
푸치니 음악의 획기적 발전은 다음과 같은 예로도 드러납니다. 첫 장면에서 부오소의 죽음에 친척들이 슬퍼하는 척할 때, 음악은 작은북이 조용히 연주하는 장송행진곡의 리듬을 바탕에 깔아둔 채 그 위로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한 울음소리를 펼치는데, 곧 이 음악은 유산을 소재로 한 오페라 부파 특유의 가볍고 빠른 대사로 넘어가죠. 이런 기법은 친척들의 눈물과 그들의 속마음이 철저히 이중적임을 드러내 주기 위한 음악적 장치로, 이 부분에서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하향 오스티나토(일정한 음형을 같은 성부에서 같은 음고(音高)로 끊임없이 반복) 역시 친척들의 애도가 거짓임을 비웃듯이 보여줍니다. 또 자니 스키키가 유언장 위조 계획을 설명하고 부오소의 침대에 누워 공증인에게 유언장 내용을 불러줄 때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춤곡 폭스트로트가 잠재적으로 깔리는데, 이는 단테의 시대 못지않게 푸치니 시대도 사기와 거짓말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이 작품의 희극성은 주인공 자니 스키키가 펼치는 사기행각이 이중적이라는 데에도 있습니다. 서울에 상경해 겨우 자리 잡고 '촌뜨기' 취급받는 가난한 스키키가 ‘뼈대 있는 가문의 서울내기들’의 의뢰로 법률가인 공증인 앞에서 보란 듯이 사기극을 펼치는데, 그 사기극 자체가 ‘의뢰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신과 딸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신분과 가문을 뽐내는 지배계층에게 평범한 주인공이 지혜로 한 방 먹임으로써 관객에게 유쾌하고 통쾌한 기분을 선사하는 작품이죠. 자니 스키키 역은 티토 곱비, 레오 누치, 알레산드로 코르벨리 등의 저음 가수가 풍자와 익살 가득한 연기로 탁월하게 표현해왔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음반] 일레나 코트루바스/플라시도 도밍고/티토 곱비 등, 로린 마젤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암브로시안 오페라 합창단, 1977년 녹음
[음반] 미렐라 프레니/로베르토 알라냐/레오 누치 등, 브루노 바르톨레티 지휘, 피렌체 오월음악제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91년 녹음
[DVD] 아마릴리 니차/안드레아 조바니니/알베르토 마스트로마리노 등, 줄리언 레이놀즈 지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재단 오케스트라, 리리코 아마데우스 합창단, 크리스티나 페촐리 연출, 2007년 모데나 시립극장 실황(한글자막)
[DVD] 샐리 매튜스/마시모 조르다노/알레산드로 코르벨리 등,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지휘, 애너벨 아든 연출, 2004년 글라인드본 오페라하우스 실황
[네이버 지식백과] 푸치니, 자니 스키키 [Puccini, Gianni Schicchi]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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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2월 8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엄마도 없이
푸치니 <수녀 안젤리카>
이 오페라는 푸찌니(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 1924)가 작곡한 아홉 번째의 작품이며 [3부작Il Trittico] 중 두 번째 오페라이다. 세 번째의 밝고 유쾌한 [쟌니 스키끼(자니 스키키)]에 비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신(神)을 모시는 몸으로 그 종교적 규율을 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을 가진 비극이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재주에서는 세계 최고인 푸찌니인 만큼,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마치 하늘나라의 음악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게 감동적인 멜로디로 엮어 듣는 이를 감동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간다. 그 솜씨는 달리 비길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너무 어둡다, 종교적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는 자살을 주제로 삼았다 등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이 푸찌니가 자기의 음 체계를 확장(擴張)하여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던, 말하자면 그의 과도기에 있던 작품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불완전한 느낌을 주었을 수 있다. 하지만 수법이나 내용이 완벽하다고 하여 불완전한 것 이상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는 보장은 없다.
이 작품이 앞에서 말한 결점을 갖고 있다는 점은 단언(斷言)할 수는 없지만, 다른 오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는 달리 볼 수 없는 희귀한 특성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이 오페라에 나오는 15명 정도의 캐스트가 전부 여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푸찌니로서는 3개의 오페라가 동시에 공연됨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이런 기발한 곡을 작곡했겠지만 어쨌든 달리 그 예를 볼 수 없는 귀중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각본은 포르짜노(Giovacchino Forzano)가 썼다.
큰어머니에게 맡긴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수녀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한 수녀원이다. 정식 결혼식을 치루지 않고 사내아이를 낳은 죄로 회개(悔改)하기 위해 이미 7년 동안이나 수녀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안젤리카에게 어느 날, 냉혹하기로 소문이 난 큰어머니(伯母)가 찾아온다. 그녀는 안젤리카의 여동생의 결혼식을 기회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은 수녀 몸에 필요 없는 것이므로 그만 포기하라고 권유하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안젤리카는 그런 것과는 달리 7년 전에 맡긴 아이 소식이 더 궁금하다. 그런 애타는 심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집안 망신을 시킨 데 대해 온갖 욕설을 다 퍼부으면서도 어린애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꼭 다물고 마는 큰어머니이다. 그런 큰어머니에 초조감을 느낀 안젤리카가 “냉혹한 침묵에 대해서는 성모 마리아가 벌을 내릴 겁니다” 하고 다그치니까 큰 어머니는 마지못해 작은 목소리로 “2년 전에 무거운 병에 걸려… 최선을 다 했으나…”하고 어린애가 죽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 이 세상에 대한 유일한 희망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며 졸도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저승 밖에 없다고 결심한 그녀는 금기(禁忌)를 어기고 직접 재배한 독초에서 짜낸 독약을 마셔버린다. 죽어가는 안젤리카의 귀에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려와 마지막 힘을 다해 얼굴을 드니 거기에는 천사의 모습을 한 자식이 보인다. 하느님은 그녀의 자살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기적을 일으켜 그녀를 하늘나라로 맞아 들인다.
'엄마도 없이'
엄마도 없이 아가야, 너는 죽었구나!
아가는 내 입맞춤도 받지 못하고,
입술의 핏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
눈을 감았다. 아가의 고운 눈을 감았다!
내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두 손을 십자로 접은 채!
이렇게 죽은 네가 알아듣지 못하지만
얼마나 이 엄마가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지금은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어
이제 너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단다,
너는 하늘을 날아 내려와
내 둘레를 날개짓하고 있겠지,
내게 입을 맞추며 만지고 있는 너,
아 가르쳐다오,
언제 하늘나라에서 너를 만날 수 있는지를?
언제 너에게 입맞춤을 할 수 있는지를?
오 내 괴로움도 모두 부드럽게 마지막을 고하고,
언제 너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언제 나도 죽을 수 있을까?
천사인 아가야, 엄마에게 가르쳐다오,
별이 반짝이는 동안에
말해다오, 귀여운 아가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悲痛)한 생각을 표현한 감동적인 아리아이다. 특히 후반의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화음(和音) 진행 위를 흐르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비길 데가 없다 .또 하프와 오르간의 반주를 타고 노래하는 혼성합창이 서서히 음량을 높이다가 오케스트라가 가세하며 웅장한 휘날레(피날레)를 이루는 마지막 막이 내리기 전 부분은, 그 멜로디와 화음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세라휜 지휘, 로마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7) 로스 앙헬레스(S) EMI
좀 오래되었지만 이 [수녀 안젤리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주역인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의 따뜻한 목소리의 질이 ‘안젤리카’ 역에 들어맞고 바르비에리(Fedora Barbieri)와도 잘 어울린다. 드라마 지휘의 ‘신’(神) 이라고까지 불리던 세라휜(세라핀, Tullio Serafin)의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지휘는 마지막 하늘로 오르는 설계가 긴장감을 북돋아 준다.
[CD] 가르델리 지휘, 휘렌쩨 5월 음악제 관현악단/합창단(1961) 테발디(S) Decca
이 최초의 [수녀 안젤리카]는 전3부작을 한 묶음으로 영국 Decca가 처음 스테레오로 발매한 음반의 하나이다. 당시 Decca가 거느린 명가수를 총동원한 호화로운 배역이 망라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세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테발디(Renata Tebaldi)가 도맡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세 역의 목소리가 질과 성격이 다르므로 실제 무대에서는 한 가수가 다 노래하기 어려운 기획이다. 테발디는 이 세 역을 남다른 음색과 표현변화로 가려서 노래할 뿐 아니라, 확고한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통일감까지 정연(整然)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녀 안젤리카]에서 테발디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가 펼치는 긴박감 넘치는 대결도 놓질 수 없는 부분이다. 시미오나토는 저음부의 울림을 충분히 살려 표현한 인물이 자칫 담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이 오페라를 극적인 드라마로 북돋아 올리고 있다.
[CD] 파타네 지휘, 뮌헨 방송 교향악단/바바리아 방송 합창단/뮌헨 소년 합창단 포프(S) RCA
파타네(Giuseppe Patanè)의 지휘는 단단하게 다듬어져 수준이 높다. 그 중 [수녀 안젤리카]는 주역인 포프(Lucia popp)와 리포브쉐크(Marjana Lipovsek)를 기용하여 비교적 어려운 신비극을 빛으로 충만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엄마도 없이 - 푸치니, [수녀 안젤리카]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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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0월 13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오, 나의 소중한 아버님
푸치니 <잔니 스키키>
[쟌니 스키끼(잔니 스키키)]는 [3부작 IL Trittico]이라 이름 붙은 3개의 오페라 중 하나로 푸찌니(푸치니)가 완성한 마지막 오페라이다. 각기 1시간 정도의 3 작품은 내용상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다. 성격은 오히려 전혀 다르며, 간단히 말하면 현실적으로 늘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현실주의 오페라 [외투]는 이탈리아를 석권한 베리즈모 오페라이며, [수녀 안젤리카]는 신비극(神秘劇)이고, [쟌니 스키끼]는 이탈리이에 전해 내려오는 가면 즉흥희극(假面卽興喜劇)의 계통의 작품이다. 따라서 이 오페라 들은 인생이나 사회의 3면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3부작] 오페라 중 희극
푸찌니는 흔히 달콤한 멜로디와 낭만이 특색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나 한 묶음으로 작곡된 [3부작]중 이 오페라는 순전히 희극이다. 단테가 쓴「신곡(神曲)」중 ‘지옥편’의 일부를 다룬 이 오페라 [쟌니 스키끼]는 턱없이 밝은 음악과 흘러넘치는 생명력 때문에 모든 평론가들로부터 나폴리에서 일어난 이탈리아 오페라 부화(오페라부파, opera buffa)의 전통을 잇는 귀결점(歸結點)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음계적 변화를 짜 넣으면서 흘러 넙치는 정서로 노래하게 하던 지금까지의 푸찌니 답지 않은 상량한 화음(和音) 속에 가끔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섞어 신랄(辛辣)한 효과를 거두는 일과 얼핏 보기에 대편성을 택하면서 3부작 각기의 다른 실내악적 효과를 내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묘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쟌니 스키끼]의 대본작가는 포르짜노(Giovacchino Forzano)이며 전1막이다.
유산을 차지하려는 소동 속에 빛나는 기지
이야기는 이탈리아 휘렌쩨(피렌체)의 부호(富豪), 브오조 도나티가 죽어 그 유산을 차지하려고 가족과 친척들이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열심히 유서를 찾노라고 혈안이 되어 있는 데서 시작된다. 온 집안을 뒤져 한참 소동을 벌인 뒤에 일단 유서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그 속에는 “모든 유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은 그만 낙담(落膽)한다. 이 때 “좋은 수가 있다. 기막히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쟌니 스키끼와 협의해 보자”하고 제안한 사람은 그의 딸 라우레따와 연인 리누찌오이다. 이윽고 “이런 놈들에게 굴릴 머리는 갖지 않았어.”라고 내키지 않아 하며 나타나는 쟌니 스키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하다가 아끼는 딸 라우레따의 애원에는 이기지 못하고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하고 머리를 굴려 꾀를 낸다.
그 방법은 죽은 브오조 대신 자기가 침대에 들어가 목소리를 흉내 내 공증인에게 거짓 유언을 옮겨 적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계략이 들통 나는 경우에는 손목이 잘리고 휘렌쩨 거리에서 추방당할 거라고 못을 박는다. 드디어 공증인을 부르고 유언 진술의 장면이 된다. 순서는 잘 진행되어 그들이 바라는 대저택 처분 문제에 이르자, 사태가 갑자기 변한다. 스키끼가 연출하는 죽어가는 브오조의 가냘픈 목소리는 기대와는 달리 “나와 가장 친한 쟌니 스키끼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스키끼가 노래하는 “손목이 없는 손으로 잘 있거라 휘렌쩨”의 저주스러운 가락이 울려 퍼진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는 친척들은 넋 나간 사람들처럼 멍하니 공증인을 보내고 나서 스키끼에게 아무리 분풀이를 해도 행차(行次) 뒤의 나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히려 “여기는 이제 내 집이다!”하고 내쫓기는 가족과 친척들. 배경으로 라우레따와 리누찌오의 사랑의 2중창이 흐르고 웃음과 푸찌니의 낭만이 뒤섞인 속에 막이 내린다.
'오, 나의 소중한 아버님'
오 나의 소중한 아버님,
전 좋아해요, 그는 멋있어요, 멋있어.
뽀르타 로싸 거리에
반지를 사러 가게 해주세요.
네, 네, 가게 해 주세요!
만약 그를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
뽄테 베끼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에 떨어져 죽을래요!
전 괴로워요, 가슴 아파요!
오 하느님! 정말 죽고만 싶습니다!
아빠, 불쌍히, 불쌍히 여겨 주세요!
결국 스키끼는 친척들에게는 사소한 유산들이 돌아가게 하고 저택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 딸 라우레따는 청년과 결혼하게 된다. 교활한 방법이지만, 유산은 딸의 애인이며 고인의 먼 친척 중 한 사람인 리누찌오에게 돌아가게 되니, 정리(情理)에 그리 어긋난다고는 할 수 없다. “나의 소중한 아버님”하고 애원하며 딸이 매달리면 매정하게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 소위 ‘아빠’의 정이라는 것이다. 라우레따가 투신(投身)하겠다고 겁을 준 뽄테 비끼오는 다리 위에 점포들이 즐비하고 예나 지금이나 휘렌쩨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북적대는 번화한 고장이다. 뽀르타 로싸(붉은 문) 거리는 그 다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레뿌블리카 광장 근처에 있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산티니 지휘, 로마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8) 티토 곱비(Br),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S) EMI
[3부작]이라는 작품의 성격상 단편극 3개를 주역 가수가 한 사람, 또는 지휘자와 연주단 및 합창단이 같은 경우가 많다. 1950년대 말, 각기 다른 지휘자가 녹음한 음반이다. [쟌니 스키끼]는 우선 전성기의 티토 곱비가 강렬한 개성을 발휘한 작품이다. 잔니 스키끼가 간교(奸巧)한 술책을 꾸며서 부호 일가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 재산을 가로채는 능청스러운 몫을 절묘하게 노래한다. 딸 노릇을 하는 데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의 귀엽고 매혹적인 역할도 달리 비교할 사람이 없다. 산티니 지휘는 정교한 음악 진행으로 숨 돌릴 사이 없는 완벽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CD] 마젤 지휘, 런던 교향악단(1976) 일레나 코푸르바스(S) 도밍고(T) Columbia
도밍고 이하 쟁쟁한 가수를 갖추었으나 이 음반은 마젤(Lorin Maazel)에 주목해아 할 CD이다. 그는 푸찌니의 중요한 오페라를 모두 녹음하여 그 연주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 오페라도 그의 특징 있는 지휘에 꼭 들어맞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 나의 소중한 아버님 - 푸치니, [잔니 스키키]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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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 작품 모두 합쳐 180분, 3시간에 이르는 장편물입니다...마치는 시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실 분들은 <오페라 이모저모> 게시판 #14번 자료 '베리스모 오페라'를 한번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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