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보고, 대구의 재실
87. 【대구향교】(대구유림) 대구 최초의 국공립 중·고등학교
글·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전 성균관청년유도회 대구광역시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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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삭망 분향례
프롤로그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아니면 학문으로 보느냐하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우리나라 7대 종교’라는 범주에는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민족종교’ 등과 함께 유교도 올라 있지만 이를 두고도 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유림내부에서 조차도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아니면 학문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서로간의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로 필자는 ‘유교는 종교’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유교를 종교로 놓고 보면 현실에서 난감한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말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주일이면 교회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본다, 천주교 신자들도 성당에서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본다, 불교 신자들은 법당에서 스님을 모시고 법문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다면 유교 신자들은···.
이것이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종교로서의 유교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이자 직면한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누구로부터 교리를 배우는 등의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말이다.
향교와 서원
향교와 서원에 대해서는 지금껏 여러 번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유교·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향교와 서원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지금의 중·고등학교쯤에 해당하는 학교라는 점이다. 물론 일부 서원의 경우는 지금의 명문사립대학정도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 향교와 서원 간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첫째,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국가나 지방관청이 설립·운영의 주체가 되는 ‘국립·공립·관립’이냐, 아니면 일반개인이 주체가 되는 ‘사립’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향교는 ‘관학(官學)’이요, 서원은 ‘사학(私學)’이 된다. 따라서 향교는 지금의 공립중고등학교, 서원은 사립중고등학교가 되는 셈이다.
둘째, 제향인물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향교의 경우 현재 남한에 존재하는 234개 향교의 문묘에 제향된 성현들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고을의 크기에 따라 문묘에 모셔진 위패의 수가 대설위(133위)·중설위(39위)·소설위(27위) 하는 식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공자를 포함한 5분의 성인’·‘중국의 성현’·‘우리나라의 성현’이라는 매우 엄격한 원칙에 따른 ‘인물군(人物群·인력풀)’이 미리 정해져 있다. 반면 서원의 경우는 미리 정해 놓은 별도의 ‘인물군’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해당지역의 당파, 학맥, 문중 등을 고려해 제향인물을 선정한다. 제향인물은 대부분이 우리나라 성현들이지만, 드물게는 중국 성현들도 있긴 하다. 중국 성현으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주자를 들 수 있으며, 현재 국내에 주자를 모신 원사(院祠)는 대략 20여 개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건축물의 구성을 보면 전국 234개 향교는 거의가 동일하지만, 서원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향교는 어디를 가나 강당의 이름은 ‘명륜당(明倫堂·심지어 글자까지도 주자의 글씨로 똑같다)’이요, 문묘 정전의 이름은 ‘대성전(大成殿)’이다. 그리고 동재·서재·동무·서무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서원의 경우는 강당·사우·동재·서재를 기본으로 하되 건물구성 및 건물의 명칭 등은 제각각이다. 또한 향교 건축물은 단청을 입힌 경우가 많고 서원 건축물은 단청을 입히지 않은 백골집이 많다는 차이도 있다.
넷째, 향교의 제의례(祭儀禮)인 ‘석전제(釋奠祭)’와 서원의 제의례인 ‘향사(享祀)’ 간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향교는 예나 지금이나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운명공동체적인 성격이 짙다. 따라서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는 그들이 지닌 유·무형의 유산에도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특히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제사하는 석전제의 경우, 그 행례의 전 과정이 전국 234개 향교가 거의 동일하다. 이는 성균관을 상급기관으로 향교를 하급기관으로 하는 일종의 지휘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서원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제향되는 인물이 제각각이듯이 향사를 지내는 모습 역시 각양각색으로 차이가 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이런 식이다. 전국 234개 향교의 경우는 그 출입하는 방법이 ‘동입서출(東入西出)’로 통일되어 있다. 따라서 문이든 계단이든 무조건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면 된다. 하지만 서원은 가는 곳 마다 물어보아야 한다. 문과 계단의 출입법이 서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향교는 석전제 때 ‘헌관·대축·집례’ 등은 금관제복을 갖추고 나머지 집사들은 유복을 갖춘다. 하지만 서원 향사는 그 복장이 ‘금관제복·관복·유복·심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타 한두 가지만 더 언급해보면 향교는 양반외 평민들에게까지 그 문호가 열려 있었지만, 서원은 오직 양반들에게만 문을 열었다는 점. 향교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거시험]이 교육의 주요목적이었다면, 서원은 성리학적 가르침에 따른 인격도야가 주요목적이었다는 점. 또한 향교는 고을의 중심부에 자리한 반면 서원은 외곽변두리의 산수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한다는 점 등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대구향교의 역사
우리나라에 향교가 처음 세워진 때는 대체로 여말선초쯤으로 본다. 이는 여러 기록 자료들을 참고해보면 조선시대 이전에도 향교의 존재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많은 향교들은 정확한 그 창건시기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수의 향교들은 조선건국 후 태조에 의해 공식적으로 성균관과 향교가 설치되기 시작한 때인 1398년(태조7)을 창건시기로 잡고 있다. 대구향교 역시 대구읍지에 나타나는 ‘1398년 부의 동쪽 2리(현재의 교동)에 세웠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창건년도를 1398년으로 보고 있다.
이후 대구향교는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해 소실된다. 이에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던 한준겸(韓浚謙)과 대구부사 김구정(金九鼎)이 지금의 달성공원 내 남쪽 모퉁이에 대구향교를 재건하였으니 때는 1599년(선조32)이었다. 그로부터 6년 뒤 대구향교는 다시 본래의 자리였던 교동으로 옮겨진다. 이유인즉슨 달성(達城)이 습한 토성(土城)인 관계로 뱀·도마뱀 같은 해충들이 많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관찰사였던 류영순(柳永詢)은 당시의 이러한 향교의 상황을 ‘사갈불상지조(蛇蝎不祥之兆)’라 하여 조정에 보고했다고 한다. 여하튼 이때 다시 교동으로 옮겨진 대구향교는 대성전만 있었고 명륜당 등은 없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20년 뒤인 1625년(인조3), 비로소 명륜당이 세워진다. 이 일은 대구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대구부사 한명욱(韓明勖)과 함께 추진하여 성사된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본래의 교동 땅에 다시금 제 모습을 갖춘 대구향교는 이후 약 30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1932년, 대구향교는 530여 년간 지켜왔던 교동 땅을 떠나 현재의 남산동으로 이건을 한다. 공교롭게도 이때의 이건 역시 일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마치 임난 때처럼 말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대구향교가 교동에서 지금의 남산동으로 옮겨진 이유에 대해서는 일제와 우리의 주장이 달랐다. 일제는 교동 일대의 도시근대화 차원에서 향교를 옮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대구향교가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는 것을 막고자 한 까닭이었다. 후자의 이유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남산동의 향교터가 일제의 육군·헌병대·관사 밀집지역의 정중앙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골치 덩어리인 대구향교를 감시가 용이한 지역으로 옮겨버린 것이었다.
남산동으로 이건된 대구향교는 대성전이 서쪽, 명륜당이 동쪽인 ‘좌묘우학(左廟右學)·동학서묘(東學西廟)’의 배치로 교동 시절의 전묘후학(前廟後學·앞쪽에 대성전 뒤쪽에 명륜당)과는 건물의 배치가 달라졌다. 또한 이건 당시에는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만 있었고 동재·서재는 없었다. 동·서재가 세워진 것은 이로부터 58년이 지난 1990년의 일이다.
현재 대구향교 내에 있는 낙육재(樂育齋)는 1990년, 양사재(養士齋)는 1991년, 유림회관은 1995년에 준공되었다. 그리고 향교 뜰에는 ‘오상지(五常池)’라는 이름의 멋진 연못과 함께 ‘공부자(孔夫子) 백옥상(白玉像)’이 있다. 공부자는 공자를 말하며, 백옥상은 백옥으로 만든 상이라는 뜻이다. 이 백옥상은 1997년 대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청도시에서 보내온 선물로 실제로 한 덩이의 백옥을 조각한 것이다.
참고로 대구향교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1년 전인 1931년에 간행된 달성군지 「향교」조를 살펴보면 대구향교는 중설위 향교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대구향교 문묘에 모셔진 성현들은 다음과 같다.
<대성전>
오성(五聖):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공문십철(孔門十哲): 민손·염운·염옹·재여·단목사·염구·중유·언언·복상·전손사
송조육현(宋朝六賢): 주돈이·정호·정이·소옹·장재·주희
<동무>
설총·안유(안향)·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김집·송준길(동방18현)
<서무>
최치원·정몽주·정여창·이언적·김인후·성혼·조헌·송시열·박세채(동방18현)
에필로그
현재 전국 234개의 향교 중에서 글 읽는 소리가 가장 왕성한 향교는 대구향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대구향교가 필자와 인연이 있는 향교라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향교는 일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유교·유학 관련한 각종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매 수업시간마다 수강생수가 평균 100명 전후가 되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또한 대구향교는 문묘에 모셔진 성현들에 대한 제향의식 역시 많은 유림들의 참여하에 전통을 잘 유지하며 봉행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에도 대구향교가 강학과 제향이라는 향교의 주요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향교가 대구시내에 입지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대구시민들 사이에서 조상 대대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유교·유학 DNA’때문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유교를 종교로 인식하고 있는 유교신자들은 도대체 ‘누구랑’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왜’ 배우고 익혀야하는 걸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로다.
이상끝...
2017년 2월 4일
砧山下 풍경산방에서
訥齋 송은석拜
☎018-525-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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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유교유적, 유교문화, 문중 등은 기존의 자료가 충분치 못한 관계로 내용 중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신 경우 전화 또는 댓글로 조언을 주시면 적극 경청하고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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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과 공부자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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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삭망 분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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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대성전과 동무, 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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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추계 석전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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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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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명륜당 편액
좌측에 '신안주희서'라는 작은 글씨가 보인다. 이는 주자의 글씨라는 뜻으로
대부분 우리나라 향교 명륜당 편액은 이 양식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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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외삼문과 유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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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공부자 백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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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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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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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향교 내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