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탁번, 송수권의 해학
세상에 떠도는 재담에서 소재를 채취하여 시를 쓰기도 합니다. 오탁번의 「굴비」¹¹³⁾라는 시가 그 사례입니다.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돌아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러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오탁번, 「굴비」 전문
처음에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에 아내가 성을 팔아서 사온 굴비를 먹어야 하는 가난한 가장의 슬픔 때문에 울컥해지는 시입니다. 창작자는 옛날 시점의 우스갯소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마 창작자는 이 우스갯소리를 듣거나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의 내용과 우스갯소리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습니다.¹¹⁴⁾ 이는 우스갯소리가 시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돌아다니며 첨삭되거나 시인이 우스갯소리를 시로 재구성하면서 내용을 변형시켰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의 내용과 시의 내용이 일치한다면 시 쓰기는 실패할 것입니다. 시가 내용의 요약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요즘 시대로 상상력을 확대해보면, 이를테면 실직으로 원하던 원치 않던 아내를 노래방 도우미나 술집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면서도 생계 때문에 아내의 밤일을 묵인하는 남편, 또 가정경제의 파탄과 이혼 등 가정파괴로 인해 생계 때문에 몸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없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요.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오탁번, 「폭설」¹¹⁵⁾ 전문
위 시는 가상의 시골 마을을 전라도 남도 끝으로 잡고 지역성이 강한 욕설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구성은 읽어갈수록 욕설의 강도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오면 웃음이 폭발합니다. 거기다가 성애적 이야기까지 가미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배꼽친구와 함께
운조루 대청마루에 눕다
목침 두 개를 나란히 베고 누워
우리 내기 방구할까 하고
내가 먼저 방구 한 방 트니
친구 놀라서 까르륵 웃고
나도 놀라서 웃는다
어릴 때처럼 두세 번 몸을 틀고
친구도 기어이 한 방 텄다
아, 그건 쌀방구도 아닌 보리방구잖아
내가 또 웃는다
동구 밖 고리고리한 곤쟁이 젓갈 냄새 퍼진다
쌈밥집 보리밥 먹고 온 탓이다
또 간드러지는데,
친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운다
서울 어딘가 불안하다
에라, 뽕
-송수권, 「뽕」 전문
뽕은 욕설입니다. 시골에 사는 화자가 서울에서 내려온 어린 시절 친구와 방구놀이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친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려 도시와 문명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골에 사는 화자와 서울에 사는 친구가 대비되고, 어린 시절의 장난과 문명화된 휴대전화와 서울이라는 단어가 대비됩니다. 시가 점점 동심으로 깊어지다가 휴대전화가 울리자 "에라, 뽕"이라는 반전이 웃음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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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시와사람》, 2004 봄, 154~155쪽.
114) 시의 창작동기가 된 떠도는 우스갯소리는 다음과 같다.
충청북도는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바다가 없다. 충청북도 사람들은 생선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충청북도 어느 마을에 조기장수가 조기를 팔려고 왔다. 사람들이 조기를 먹어본 일이 많지 않아 조기가 팔리지 않았다. 조기장수가 조기를 한 마리도 팔지를 못했는데 해가 저물어 밤이 되었다. 조기장수는 잠잘 곳도 없었다. 조기장수는 동네 사람들에게 잠잘 만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동네 사람들이 조기장수에게 말했다.
“이 골목 끝으로 가면 남편은 외지로 일 나가고, 부인 혼자 있는 집이 있을 거요. 거기 가서사정해보시오.”
조기장수는 동네 사람이 가르쳐 준 집으로 갔다. 조기장수는 부인에게 사정을 했다.
“조기를 팔러 이 동네 왔다가 조기는 한 마리도 못 판 채 해가 저물었는데 하룻밤만 재워주면 정말 고맙겠소.”
부인은 조기장수의 입장이 딱해 보여 건넌방을 내주었다.
조기장수는 잠자리가 해결되고 나니 혼자 자는 부인과 사랑을 한 번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조기장수가 부인에게 수작을 걸었다.
“부인, 내가 조기 한 마리 줄 테니 오늘 밤 나랑 사랑한 번 하지 않겠소?” 부인은 평소에 비싸서 꿈도 못 꾸는 맛있는 조기를 남편 밥상에 올려주면 남편이 몹시 좋아할 것 같았다. 부인은 흔쾌히 허락하고 두 사람은 사랑을 한 번 했다.
조기장수는 잠도 편히 자고 부인과 사랑도 한 번 한 터라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 후 남편이 외지에서 돌아왔다. 남편은 생전 못 보던 조기가 밥상에 오른 것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부인에게 물었다.
“이봐 조기가 어떻게 생긴 거야?”
부인은 남편에게 조기장수가 자고 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 남편은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남편은 몹시 화가 났지만 순진한 마누라가 나쁜 생각에서가 아니라 남편을 생각하는 충정에서 그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마누라를 타일렀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마!”
조기장수는 부인과 사랑을 한 번 한 것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조기장수는 남편이 외지로 나간 뒤 다시 부인을 찾아갔다. 조기장수는 부인에게 이번에는 두 마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조기장수는 그날 밤 부인과 다시 사랑을 했다.
외지에서 돌아온 남편이 밥상에 조기 두 마리가 올라온 것을 보고 부인에게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해서 뒤로 해주었더니 조기를 두 마리 주고 갔어요.”
남편은 정말로 화가 나서 부인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바보 같은 여편네야! 앞으로든 뒤로든 절대로 하지마!”
남편의 밥상에 조기가 세 마리 올라왔다. 남편이 부인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된거야?”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앞으로도 안 되고 뒤로도 안 된다고 해서 입으로 해주었더니 조기를 세 마리 주고 갔어요.”(출전 미상)
115) <시향> 2006 봄.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