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식영정(潭陽 息影亭)
소재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식영정은 성산(별뫼)의 한끝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곰실곰실한 소나무가 가득한 성산 봉우리가 섰고 앞으로는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며 그 건너로 무등산이 언제나 듬직하게 바라다 보인다. 정면 2칸, 측면 2칸 정자에는 한 칸 반짜리 방이 있고 또 당연히 너른 마루가 있다.
명종 15년(1560)에 지금 식영정이 있는 곳 아래쪽에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1525-1597)이 새로 이 정자를 지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에게 드렸다. 임억령은 해남 출신으로 152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을사사화가 나던 1545년에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선비들을 추방하자 그는 자책을 느끼고 금산 군수직에서 물러나 해남에 은거했다. 나중에 다시 등용된 후 1557년에는 담양 부사가 되었다. 임억령은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했으며 시와 문장에 탁월했지만 관리로 일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당대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런 임억령인지라 정자 이름을 짓는 데도 역시 시인다운 남다름이 있었다. 식영정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아무 맥락을 모르고 그 이름만 듣더라도 가슴이 흥건해지는데, 그가 쓴 「식영정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장자」에 나온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사람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그림자는 언제나 본형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연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처지에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슬퍼하고 성내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과 함께 어울리어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니 식영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그림자는 내버려두고 그 이전의 경지에서 조화옹(造化翁)과 더불어 노닌다"는 이 유래를 알고 보면,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호방하고 무애(無碍)한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이곳에는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다. 송순, 김윤제, 김인후, 기대승, 양산보, 백광훈, 송익필, 김덕령……. 그 중에서도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은 식영정 四仙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들은 식영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풍경들을 시제로 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이곳을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송강의 「성산별곡」이다. 「성산별곡」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식영정 뒤편에는 배롱나무 서너 그루가 있어서 이제는 사라진 자미탄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임억령은 "누가 가장 아끼던 것을 산 아래 시내에다 심었나 보다:라고 자미탄을 노래했다. 뒤편 공간에는 누가 했는지 무덤이 하나 있는데, 그 뒤로 멀찍이 물러서서 식영정의 뒷모습너머 붕 떠오르는 듯한 무등산 정상을 바라보노라면 따로 말이 필요 없다.
식영정에서 내려와 왼편 안쪽으로 보이는 부용당은 1972년에 지어진 것이고, 그 뒤에는 김성원이 거처하던 서하당 자리가 있다. 또 식영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기념석물이 있다. 식영정 옆의 잘생긴 소나무를 딱 가리고 선 우람한 성산별곡 시비와 함께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잊은 우리 시대를 증거하는 듯하다.
식영정은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리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 1호이다.
담양 소쇄원(潭陽 蕭灑園)
소재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조선 중기의 별서 정원으로 양산보(陽山甫)가 은사인 조광조가 남곤 등의 훈구파에 몰리어 전라남도 능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하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은거처를 마련한 뒤, 계곡을 중심으로 조
영한 園林이다. 소쇄원의 '蕭灑'는 본래 공덕장의 '북산이문(北山移門)'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다. 양산보는 이러한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蕭灑翁'이라 하였다. 정원의 평면적인 모습은 계류를 중심 축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이며, 흙으로 새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지만, 구성 면에서는 비대칭적 산수원림이다. 각각의 기능과 공간의 특색에 따라 애양단구역(愛陽壇區域), 오곡문구역(五曲門區域), 제월당구역(霽月堂區域), 광풍각구역(光風閣區域)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애양단구역은 이 원림의 입구임과 동시에 계류 쪽의 자연과 첨경시설(添景施設)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사팔영(蕭灑園 四八詠)」가운데 있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 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이 붙인 이름이다.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갈짓자형모양으로, 다섯번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 넉넉한데, 영조 31년(1755)에 만들어진 「소쇄원도(蕭灑園圖)」에,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제월당구역은 오곡문에서 남서방향으로 놓여 있는 직선도로의 위쪽부분을 말하는데 주인을 위한 사적공간이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이 있는데,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 뒷쪽의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이 유학자 주돈이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소쇄원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배롱나무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우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와 자연폭포, 그리고 물레방아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포등 자연과 인공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시인, 묵객, 문사들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던 곳이며, 그들이 남긴 시들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정원은 경사면의 적절한 노단식 처리라든가 기능적인 공간구획, 대숲의 오솔길, 지형에 따라 변화 있는 담장 지붕의 선, 담 밑에 뚫린 수문등 낭만적이고 장식적인 조경으로 원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별서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