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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緖言 2. 神會 禪思想의 特質 1) 東山法門의 禪思想 2) ‘般若’思想과 ‘頓法’의 宣揚으로서의 神會禪 3. 祖師禪의 기초로서 神會禪思想 1) 祖師禪의 槪念 2) 神會禪思想이 祖師禪에 끼친 영향 4. 結語 |
1. 緖言
荷澤 神會(668~758)禪師는 慧能의 南宗禪, 즉 祖師禪의 興起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신회선사의 선사상, 혹은 禪宗史를 연구한 이들이 모두 공감하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신회의 선사상 가운데 어떠한 점이 조사선의 勃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가? 일반적으로 신회선사의 滑臺 ‘無遮大會’를 통한 慧能의 南宗을 위한 정통성 논쟁과 그의 일생을 통하여 六祖 慧能의 禪思想을 宣揚한 점을 말하고, 그것이 조사선의 勃興을 推動하였다고 논증하여 그와 같은 결론을 얻고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사상에 있어서는 아직 명확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窺峰宗密은 신회의 선사상적 특질을 ‘知’라는 한 글자로 표현하고, 그를 ‘온갖 묘함으로 들어가는 문[衆妙之門]’으로 파악하여 ‘空寂靈知’로 개괄함에 따라서 후대에 있어 신회선사를 ‘知解宗徒’라고 비하되는 평가도 나타난다.
본고에서는 신회선사의 선사상에 대하여 그 淵源과 의의, 특히 祖師禪 성립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사상사적인 시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신회의 선사상에 대하여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동산법문의 선사상을 간략하게 살핀 후, 신회의 선사상적 특질을 고찰하고, 또한 그러한 신회의 선사상이 조사선에 과연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 하는 부분을 논하고자 한다.
그런데 ‘祖師禪’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중국의 학계에서는 禪宗의 발전을 如來禪, 祖師禪, 分燈禪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藉敎悟宗’의 如來禪, ‘敎外別傳’의 祖師禪(혹은 ‘超佛祖師禪’이라고도 함), ‘超佛越祖’의 分燈禪(혹은 ‘越祖分燈禪’이라고도 함)으로 선종의 발전을 개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다만 慧能의 南宗禪과 五家七宗의 分燈禪을 모두 祖師禪으로 통칭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보다 명확한 祖師禪의 개념에 대하여 접근을 시도하고, 그러한 조사선에 대한 신회 선사상의 의의에 대하여 思想史적 방법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神會 禪思想의 特質
신회의 선사상은 철저하게 ‘般若’사상을 근거로 하여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신회의 전체적인 선사상은 그 立論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그가 스스로 내세운 ‘如來禪’이라는 旗幟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야사상을 그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회의 반야사상을 중심으로 한 선사상은 어디로부터 淵源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慧能과 神會를 배출시킨 東山法門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東山法門의 선사상으로부터 고찰하여 신회 선사상의 특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東山法門의 禪思想
주지하다시피 동산법문의 開創者는 선종에서 이른바 四祖로 칭해지는 道信선사이다. 도신의 선사상에 대한 연구는 유일한 자료인 『楞伽師資記』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學界에 알려진 일이다. 『능가사자기』에서는 그 내용의 거의 반에 상당할 정도로 도신의 선사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능가사자기』는 일반적인 傳燈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도신의 선사상을 명백히 보이기 위하여 찬술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타날 정도로 도신의 선사상을 밝히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에 따르면 도신의 선사상은 바로 ‘入道方便法門’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러한 ‘入道’를 위한 ‘方便法門’은 다시 『楞伽經』의 ‘諸佛心第一’과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 즉 “念佛心是佛, 妄念是凡夫.”에 의거하고 있다는 法要를 제시한다. 그런데 『楞伽經』의 ‘諸佛心第一’을 法要로 삼고 있다는 것은 바로 『능가사자기』의 撰述者인 淨覺의 입장에 의한 것으로 본래 도신의 사상은 아니고, 또한 『능가사자기․도신장』에 보여지는 도신의 전체적인 사상의 흐름은 般若思想에 입각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능가사자기․도신장』에 나타나는 ‘一行三昧’, ‘坐禪’등의 설명은 분명히 ‘般若’사상에 입각한 것으로 『능가경』의 ‘諸佛心第一’이 개입한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도신의 전체적인 禪法은 바로 철저히 ‘般若’사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入道’를 위한 修行으로서 道信禪의 核心인 이른바 ‘五門禪要’(‘五方便門’, ‘五種觀法’ 등으로도 불리는)에서는 佛性論의 개입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五門禪要’는 ‘知心體’, ‘知心用’, ‘常覺不停’, ‘常觀身空寂’, ‘守一不移’로 이루어져 있는데, 선사가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한 ‘守一不移’에 있어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항상 머무르니, 능히 學人으로 하여금 佛性을 명확히 볼 수 있게 하고, 빨리 定門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動靜常住, 能令學者明見佛性, 早入定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부터 보자면 도신은 ‘般若’사상과 ‘佛性論’을 和會시켜 그의 禪法을 구성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면의 관계로 상세한 논증은 생략하지만, 도신의 시대에 『大乘起信論』이 불교 入門書의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로 볼 때, 마음의 ‘體用’으로부터 ‘守一不移’에 이르는 ‘五門禪要’는 바로 ‘般若’사상과 『大乘起信論』과 涅槃部의 『遺敎經』등에 나타나는 ‘佛性論’이 和會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신의 선법을 그대로 계승한 선사는 바로 이른바 五祖로 불리는 弘忍이다. 홍인의 선사상은 선사의 제자들에 의하여 集錄된 것으로 보여지는 『最上乘論』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最上乘論』의 서두에서 修道의 本體를 ‘自性圓滿淸淨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홍인의 禪法의 근거가 바로 ‘自性圓滿淸淨心’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다시 그를 『十地經』에서 설하는 ‘金剛佛性’을 援用하여 ‘守心’을 강조하고, 그것이 바로 涅槃法이 드러나는 行法이요, 또한 ‘守心’은 바로 ‘自性淸淨心’을 찾아내는 實踐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弘忍의 ‘守心’은 ‘守眞心’, ‘守我眞心’, 혹은 ‘守本淨心’, ‘守本眞心’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그 사이에 사상적인 深化를 살필 수도 있고, ‘守本眞心’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어 『最上乘論』에 보여지는 弘忍 禪法의 特質을 ‘守本眞心’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守本眞心’은 그대로 道信의 핵심적인 禪法인 ‘守一不移’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여, ‘守本眞心’은 전체적인 ‘五門禪要’에 보여지는 ‘般若’사상의 논리과정을 생략하고 ‘守一不移’에 드러나는 ‘佛性論’적인 특징만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最上乘論』에서 ‘守本眞心’을 道信의 ‘守一不移’에 사용된 동일한 경문과 유사한 설법으로 설명하고 있음에 그러한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홍인의 上首제자인 神秀와 則天武后 사이의 대화에 나타나는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를 所依經典으로 한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후에 『壇經』등에서 보여지는 혜능이 홍인 문하의 『金剛經』독경소리에 마음이 契合되었다고 하는 내용들은 단순히 근거 없는 조작만은 아니고, 분명 홍인선사도 般若사상을 중시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만약 神會系의 주장대로 동산법문의 嫡傳을 道信→弘忍→慧能→神會로 본다면, 그 사상적 樞要를 분명히 ‘般若’와 ‘佛性論’의 和會라는 측면에 둔 것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비록 직접적인 근거는 없지만 홍인의 선사상에 있어서도 그의 스승인 도신과 같이 ‘般若’사상을 그 논리적 과정으로 삼고, 최종적으로 ‘佛性論’으로 귀결하고 있다고 추론한다.
慧能의 선사상은 역시 도신․홍인의 선사상을 계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술은 다음 항으로 미루고, 신회선사의 선사상의 특질에 대하여 그의 『語錄』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2) ‘般若’사상과 ‘頓法’의 宣揚으로서의 神會禪
『荷澤大師顯宗記』에서 神會는 자신의 선사상을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無念으로 宗을 삼고, 無作으로 本을 삼는다. 眞空으로 體를 삼고, 妙有로 用을 삼는다. 眞如와 無念은 想念하지 않고서도 능히 아는 것이다.
이로부터 본다면, 바로 신회의 宗旨는 ‘無念’, ‘無作[無住]’임을 알 수 있고, 또한 ‘般若’의 대표적 논리인 ‘眞空妙有’를 體用으로 운용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신회 자신이 무엇보다도 般若사상을 중시하고, 또한 그의 모든 사상적 출발과 귀납을 반야로서 이루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신회의 반야와의 관련을 그의 『語錄』을 통하여 고찰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복을 생략하고, 본고에서는 신회의 반야사상과 그가 주장한 ‘頓悟見性’의 선사상과 연계하여 고찰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般若’사상은 초기 大乘佛敎의 興起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에 대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신회선사가 접근할 수 있었던 中國般若學의 대체적인 흐름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 ‘반야’와 관련된 경전의 역경은 이미 兩漢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반야’의 이해를 갖는 것은 바로 鳩摩羅什과 그의 제자인 僧叡, 僧肇, 道生 등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서 羅什이 중국인들에게 이해시킨 ‘般若’에 대하여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羅什은 龍樹․提婆 系統의 中觀論書를 번역하고 있고, 또한 그는 단순한 譯經家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영향력 있는 사상가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는 『實相論』등의 저술도 있다고 하는데, 관련된 저술을 통하여 본다면 羅什이 중국인에게 이해시켰던 ‘般若’는 ‘實相’적인 이해가 다분히 존재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實相’적인 ‘般若’의 파악은 지극히 方便적인 것이었고, 『大智度論』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후 전체적인 중국 불교학에 있어서 ‘般若’의 이해에 대한 하나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羅什이 ‘般若’를 ‘實相’적으로 파악한 것에 상당히 중요한 사상사적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羅什의 제자인 道生이 ‘頓悟成佛論’을 제시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시 道生의 ‘頓悟成佛論’을 살피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신회의 ‘頓悟見性’사상과 그 내재적 사유양식에 있어서 동일한 軌를 같고 있기 때문이다.
道生(355?-434)의 시대는 東晋十六國(혹은 五胡十六國)으로부터 南北朝로 전환되는 中國史에 있어서 가장 복잡한 시대에 속해 있다. 한편으로, 당시의 불교계는 남북의 분열, 즉 漢族의 통치계층이 지배하는 남방과 異民族의 통치계층이 지배하는 북방으로 그 불교학풍과 關注되는 敎義에 있어 커다란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남방의 불교는 曹魏시대로부터 유행한 玄學의 영향으로 部派佛敎의 논서와 大乘 般若學이 묘하게 결합된, 즉 ‘義理佛敎’라는 명칭으로 대변되고 있듯이 복잡한 혼합성과 過渡性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더욱이 남방의 불교에서는 中國佛性論의 최초의 형태인 梁武帝의 ‘眞神論’과 慧遠의 ‘法性論’이 이미 제시되어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북방의 불교는 西域 민족이 중국북방지역을 지배하게됨에 따라 당시 서역에 유행하고 있었던 대승불교, 특히 龍樹의 中觀學을 계승한 羅什의 영향으로 ‘中觀般若’사상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도생은 바로 남방의 義理佛敎와 북방의 中觀般若를 모두 섭렵하고 있다. 즉, 당시 남방불교의 대표인 廬山慧遠의 문하에서 修學하다가 羅什의 명성을 듣고 북방으로 가 그의 제자가 되어 다시 中觀般若學을 깊이 숙지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道生은 당시 남북 불교학의 두 巨頭인 慧遠과 羅什을 모두 師事하는 행운을 지녔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행운과 道生의 천재성이 결합되어 ‘頓悟成佛論’이 제시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도생의 ‘頓悟論’은 당시의 남북으로 크게 양분된 불교학풍을 止揚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생은 ‘理’를 극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남방의 ‘義理佛學’적 특징과 북방의 ‘中觀般若學’을 止揚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慧遠이 輪廻의 主體我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法性論’과 羅什의 ‘實相’으로 파악한 ‘諸法性空’을 지양하여, 당시 번역된 『涅槃經』의 佛性論사상과 西域을 통하여 轉入되기 시작하였던 초보적인 ‘如來藏’사상에서 和會시킨 결과물이 바로 ‘頓悟成佛論’인 것이다. 또한 그의 논리적 과정에서 ‘理’의 ‘不分離性’, 다시 말해서 理의 나눌 수 없는 성격을 강조하여 ‘頓悟’의 이론적 근거를 삼고 있다. 그 직접적인 경전의 근거는 명확하게 『維摩經』의 ‘不二法門’에서 찾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理極’, ‘理體’, ‘當理爲佛’, ‘返迷歸極’ 등의 논리과정에는 또한 중국전통철학인 老莊 道家의 영향과 특히 儒家의 사상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을 가능성이 너무도 짙은 것이다. 따라서 그의 ‘頓悟成佛論’은 당시 남북 불교학의 융합과 중국 전통사상체계의 整體적 지양이라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 도생의 ‘頓悟成佛論’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신회선사의 ‘頓悟見性’사상에 그러한 ‘般若’사상과 ‘佛性論’의 和會가 두드러지게 눈에 띠기 때문이다.
우선 신회선사는 중생이 모두 ‘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도처에서 논하고 있다. 그의 法語인 『南陽和上頓敎解脫禪門直了性壇語』에 다음과 같이 佛性에 대한 설명이 나타난다.
知識들아, 하나 하나의 몸에 佛性이 갖추어져 있다. 善知識은 佛菩提을 사람에게 주지 않으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安心하게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涅槃經』에 이르기를, “일찍이 이미 仁者에게 授記하였다.”고 한다. 一切衆生은 본래 涅槃으로, 無漏智의 性이 본래 스스로 具足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보지 못하는가? 지금 生死에 流浪하여, 解脫을 얻지 못함은 煩惱에 의하여 덮여져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善知識의 가르침을 받음을 인하여만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바로 生死의 流浪을 떠날 것이고, 해탈을 얻게 할 것이다.
이로부터 너무도 뚜렷한 ‘佛性論’의 주장을 볼 수 있다. ‘佛性論’의 대표적 경전인 『涅槃經』의 경문을 인용하여 ‘佛性’의 本有를 설하고 있다. 이렇게 佛性이 具足되어 있음을 제시하여 그것으로 볼 것[見]을 설하는데, 다시 그에 대한 ‘知’와 ‘見’으로 분별하고 있다.
知識들아, 自身 가운데 佛性이 있는데, 요연하게 볼 수 없으니 어떤 연유인가? 비유컨대 이 곳에 각각의 집을 생각하여 住宅, 衣服, 침구 및 일체의 물건들이 갖추어 있음을 알고 더욱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知라고 하고, 見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만약 행하여 집에 이르러, 위에서 말한 물건들을 본다면, 즉 見이라고 이름하지 知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이제 깨달으려는 자들이, 다른 말에 의지하여 身 가운데 佛性이 있는 것을 안다면, 了然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로부터 신회선사의 ‘見(佛)性’의 중시를 살필 수 있다. 이 논술로부터 본다면 ‘知’는 일종의 가치론적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고, ‘見’은 바로 실천적 體得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知’는 ‘理入’의 측면이라면 ‘見’은 ‘行入’의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두 측면은 불교의 전통적인 설법의 두 가지 측면이다. 즉, 阿含部 經典의 三十七助道品으로 개괄되는 ‘法說’과 十二處, 五蘊․四諦, 十二緣起등으로 전개되는 ‘義說’의 전통과 중국에서 達摩의 ‘二入四行論’, 더 직접적으로는 신회의 師祖인 道信의 坐禪法에 보여지는 두 가지 측면을 여실하게 보이는 점이고, 또한 중국 전통철학의 ‘知行’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거나 신회선사가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佛性’에 대한 ‘見’인 것이다.
이렇게 ‘見性’을 제시하였다면 마땅히 그 방법론적 제시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방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주의를 끄는 중요한 문답이 선사의 『語錄』에 보인다.
문: 緣起를 빌리는가?
답: 이 가운데 緣起를 세우지 않는다.
문: 緣起가 없다면 어떻게 아는가?
답: 본래의 空寂한 體 위에, 스스로 般若智가 있어서, 緣起를 빌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약 緣起를 세운다면, 次第가 있는 것이다.
문: 이 性을 본 사람이 만약 無明을 일으킨다면 業結이루는가?
답: 비록 無明이 있더라도 業結을 이루지 않는다.
문: 어째서 이루지 않는가?
답: 다만 本性을 볼[見本性] 뿐으로, 체는 얻을 수 없음[體不可得]에, 바로 業結이 본래 생하지 않는다.
이는 禮部侍郎 蘇晋과 신회선사 사이의 문답이다. 여기에서 ‘頓悟’에 이르는 논리적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緣起[十二緣起]’는 바로 一切 현상의 발생을 설명해주는 阿含部의 最高法이다. 즉, 無明으로부터 生老死에 이르는 集起의 과정을 설하고, 다시 無明으로부터 生老死의 滅을 통하여 ‘明’에 이르는 還滅을 제시하여 證果를 설하고 있다. 하지만 大乘은 그러한 證果인 涅槃을 정면으로 부정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 논리적인 과정은 지극히 복잡하고 난해하여 본고에서 논할 것이 아니지만, 大乘의 ‘般若’는 그러한 緣起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새로운 차원의 佛法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간략하게 그 단편적인 사유양식은 다음과 같다.
주지하다시피 ‘般若’는 ‘智慧’를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諸法의 自性이 비어 있음[空]을 如實하게 아는 智慧이다. 불교에서는 이른바 諸法, 다시 말하여 일체의 현상은 모두 ‘無明’으로부터 ‘緣起[기대어 일어남]’하여 성립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렇게 緣起한 제법은 마땅히 그 독자적 존재성[自性]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현상이 ‘自性’을 지녔다면 바로 ‘緣起’할 필요가 없이 如如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道理를 밝히는 것이 바로 阿含部의 ‘十二緣起說’인데, 그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十二緣起法’을 順逆으로 觀하여 ‘明’에 도달하면 바로 生死의 輪廻에서 벗어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十二緣起’의 최종적인 단계인 ‘明’의 설명에서 다시 ‘空’의 개념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른바 ‘십이연기’의 ‘第一義諦’가 바로 ‘空’임을 제시한다. 하지만 無始以來 無明으로부터 集起한 現象界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世間의 集起를 如實하게 안다면 世間이 없다[無]고 말할 수 없고, 世間의 滅을 여실하게 안다면 世間이 존재한다[有]고 말할 수 없어 바로 그 中道에서 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般若’의 ‘空觀’은 ‘諸法性空’의 ‘眞諦[第一義諦]’와 ‘緣起’된 ‘世俗諦’로 설정되고, 서로 끊임없이 相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諸法의 性인 空은 바로 諸法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인 擔持體[혹은 흔히 ‘本體’라고도 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하나의 實體 혹은 相을 가지게 된다면 근본적으로 般若에서 설하는 ‘空觀’과 정면으로 모순되게 된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갖는 하나의 논리적 딜레마인데, ‘般若’는 그를 끊임없는 否定의 논리로 해결하고 있다. 이른바 ‘四句百非’의 부정적 방법으로, 그를 통하여 諸法의 ‘不可得’이라는 논리적 斷案이 도출되는 것이다.
바로 신회선사의 “본래의 空寂한 體 위에, 스스로 般若智가 있어서, 緣起를 빌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약 緣起를 세운다면, 次第가 있는 것이다.[本空寂體上,自有般若智能知,不假緣起. 若立緣起,卽有次第.]”는 말은 ‘諸法性空’의 입장에서 끊임없는 ‘空觀’의 실천을 이끌어 가는 ‘般若智’를 긍정한 것이고, ‘緣起法’에 의하여 제시되는 여러 次第, 階位 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 논리적 근거로서 “다만 本性을 볼[見本性] 뿐으로, 체는 얻을 수 없음[體不可得]”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회선사는 역시 ‘般若’사상에 철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般若’사상에 의하여 깨달음에 次第와 階位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회선사가 얻어질 결론은 바로 ‘頓悟’인 것이다.
신회선사의 『語錄』에 다음과 같이 ‘頓悟’를 설명하고 있다.
事는 모름지기 理智를 아울러 해석하는 것을 頓悟라 한다. 階位와 漸法의 해석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 돈오의 뜻이다. 自心이 본래 空寂한 것을 돈오라 한다. 마음이 얻을 바가 없는 것을 돈오라 한다. 마음이 바로 道라는 것을 돈오라 한다. 마음이 머무를 바가 없는 것을 돈오라 한다. 법에 대하여 깨닫는 마음이 있고, 마음이 얻은 바가 없는 것을 돈오라 한다. 一切法이 일체법임을 아는 것을 돈오라 한다. 空을 듣고 공에 집착하지 않으며, 不空도 취하지 않는 것이 돈오이다. 我를 듣고 我에 집착하지 않으며, 無我를 취하지도 않는 것이 돈오이다. 生死를 버리지 않고서 涅槃에 드는 것이 돈오이다.
여기에서 신회선사의 ‘頓悟’를 명확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논리적 과정을 ‘般若’에 입각하고 있는 것은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事는 모름지기 理智를 아울러 해석하는 것을 頓悟라 한다[事須理智兼釋, 謂之頓悟]”는 말은 너무도 분명하게 道生의 頓悟成佛論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생의 돈오이론은 바로 ‘理’의 ‘不分離性’을 주로 강조하여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회선사가 말한 “自心이 본래 空寂한 것을 돈오라 한다[自心從本以來空寂者, 是頓悟]”, “마음에 나아감이 바로 道라는 것을 돈오라 한다[卽心是道爲頓悟]” 등등의 구절에 도생의 돈오론과 비교하여 분석하자면 상당한 사상적인 차별과 심화를 분석해 낼 수 있지만 그것은 3백여 년의 세월과 禪思想의 발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논술을 종합하여 본다면, 신회선사는 一切衆生에게는 ‘佛性’이 本有하고 있다는 ‘佛性論’의 대전제 아래 다시 ‘般若’의 논리로서 ‘頓悟見性’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신회의 선사상은 바로 ‘佛性論’과 ‘般若’사상과의 절묘한 ‘和會’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사상의 淵源은 또한 멀리는 道信․弘忍의 ‘東山法門’의 ‘般若’와 ‘佛性論’을 결합시킨 것으로부터, 가깝게는 그의 스승인 慧能의 선사상으로부터 왔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道信선사는 ‘佛性’이 있다는 대전제 아래 ‘般若’의 논리로 方便적인 수행법인 ‘五門禪要’를 제시하고, 그 수행법의 최고의 경계로서 ‘守一不移’를 제시하여 ‘入道安心’을 완성시키고, 弘忍선사는 다시 ‘守一不移’를 보다 구체적으로 ‘心’으로 바꾸어 ‘守本眞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필자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고 싶다.
만약 東山法門의 선사상에서 방편적인 行法을 걷어낸다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 바로 대전제인 ‘佛性’과 ‘般若’의 논리만이 남게되는 것이다. 또한 ‘般若’의 논리와 대전제인 ‘佛性’만이 남게된다면 그 수행법은 어떻게 될 것인가? ‘般若’의 수행법이 ‘六波羅蜜[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의 끊임없는 ‘空觀’의 실천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신회선사가 제시한 無念, 無住, 念不起, 心不起 등의 성격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기에 다시 ‘佛性’이라는 대전제가 부가되면서 ‘知’와 ‘見’이 제시되고, 결국 ‘見性’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시 ‘般若’와 ‘佛性’을 결합하여 본격적인 중국불교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道生의 ‘頓悟成佛論’을 떠올리게 된다. 신회선사는 마찬가지로 ‘般若’와 ‘佛性’을 결합하여 ‘頓悟’를 세우고, 앞의 ‘見性’과 함께 ‘頓悟見性’의 최종적인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신회 선사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바로 ‘般若’와 ‘佛性’의 和會를 통한 ‘頓悟見性’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祖師禪의 기초로서 神會禪思想
1) 祖師禪의 槪念
‘祖師禪’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景德傳燈錄․仰山慧寂禪師의 다음과 같은 仰山慧寂과 香嚴智閑 사이의 문답에서이다.
仰山이 香嚴에게 “요즘 사제의 견처가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향엄은 “제가 끝내 설하지 못하지만, 게송이 있어,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다. 작년 가난은 송곳 세울 땅이 없었으나 금년 가난은 송곳조차 없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앙산은 “너는 다만 如來禪을 얻었으나 祖師禪은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문답에서 ‘如來禪’과 ‘祖師禪’의 명칭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傳燈錄』의 위산과 향엄의 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만, 『五燈會元․香嚴智閑禪師』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향엄이 다시 한 게송을 이르기를, “나에게 하나의 기틀이 있으니, 눈 깜박임이 이와 같다. 만약 사람들이 모른다면 沙彌를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仰山이 이에 潙山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또한 기쁘니, 智閑사제가 조사선을 깨달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학계에서는 이로부터 祖師禪과 如來禪의 개념을 도출하고 있다. 즉, ‘如來禪’은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다[去年貧, 未是貧, 今年貧, 始是貧]”의 ‘道出修證’의 단계이고, ‘祖師禪’은 “만약 사람들이 모른다면 沙彌를 부르지 말라[若人不會, 別喚沙彌]”라는 것은 ‘明瞭本來現成’과 ‘當下卽是’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여래선은 ‘漸次’에 떨어진 것이고, 조사선은 ‘頓悟’의 本然으로 보고 있다. 이로서 본다면 여래선과 조사선의 구분은 비교적 후대에 발생한 것으로, 그 판단의 기준은 바로 ‘頓’과 ‘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사선의 의미부여는 大珠慧海(唐代; 年代未詳)의 頓悟入道要門論에서의 적극적인 논증과 다시 漢月法藏의 엄격한 구별을 통하여 후기 五家分燈禪에 있어서는 그 의미가 극대화되었고, 如來禪과 祖師禪의 구분은 禪家와 禪師의 풍격을 가름하는 중요한 標識로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祖師禪』한 권의 책으로 현재 중국학계에 이름이 높은 소장학자인 董群선생의 글을 인용하여 논술을 대신하고자 한다. 그는 『祖師禪』의 서론에서 여래선과 조사선의 구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① 如來禪은 漸修적이며, 祖師禪은 頓悟적이고 當下에 바로 이루어 修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② 여래선은 言說과 學理, 思辨을 중시하지만, 조사선은 언어문자를 초월하여 直指人心하는 것이다.
③ 언어의 모순에 대하여 조사선은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離四句, 絶百非’를 강조하였다.
④ 여래선은 佛境界를 최고 이상으로 삼으며, 수행의 최고 목적은 佛果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선은 超佛越祖하여 구체적이고 完善한 인간의 성취를 최고 이상으로 삼는다.
⑤ 여래선에서 추구하는 부처는 중생의 自心을 초월한 것이고, 밖에 있는 우상이며, 피안의 권위이지만, 조사선에서 말하는 부처는 중생의 自心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董群 선생의 구분은 대체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董群 선생은 다시 이러한 조사선을 俠義와 廣義의 두 가지 의미로 나누는데, 협의의 조사선은 慧能과 神會, 그리고 大珠慧海의 선사상을 말하고, 광의의 조사선은 五家의 分燈禪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은 그 禪風에 있어서 거의 본질적인 차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佛性論’의 문제에 있어서 협의의 조사선은 佛性의 ‘人性化’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광의의 조사선, 즉 중국 학계에서 말하는 分燈禪에 있어서는 佛性의 ‘物性化’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협의의 조사선은 人性論의 각도로부터 불성을 논해 간다면, 分燈禪은 바로 佛性을 일체의 無情物에게까지 확대하여 汎化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心’과 ‘佛’의 문제에 있어서, 협의의 조사선은 ‘卽心卽佛’을 논한다고 한다면, 分燈禪은 바로 ‘非心非佛’로 나아간다. 이러한 분류와 논술은 대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신회의 선사상이 조사선에 미친 영향을 다룸에 있어서 다만 협의의 조사선 개념으로 한정하기로 하겠다.
2) 神會禪思想이 祖師禪에 끼친 영향
신회선사는 자신의 ‘般若’사상에 입각한 禪을 바로 ‘如來禪’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有와 無를 모두 보내는 中道 또한 사라지는 것이 바로 無念이다. 無念은 곧 一念이고, 一念은 바로 一切智이다. 一切智는 바로 깊고 깊은 般若波羅蜜이다. 般若波羅蜜은 바로 如來禪이다. …… 내가 如來를 觀하니, 前際가 오지 않고, 後際도 가지 않는다. 지금 이미 머묾이 없고[無住], 머묾이 없으므로 곧 如來禪이다. 如來禪이란 바로 第一義空이니, 이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如來禪’의 제시는 바로 『楞伽經』에서 제시되고 있는 ‘如來淸淨禪’를 援用한 것으로, 그 의도는 바로 이른바 北宗 神秀系를 “凝心入定, 住心看淨,起心外照,攝心內證”이라는 ‘漸法’의 傍系로 규정하여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如來禪’의 제시는 『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에서 주장되는 專衣付法說과 함께 중요한 공격의 수단이었다. 사실상 慧能 南宗을 正系로 定하고자 하는 신회의 노력은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회는 무엇 때문에 神秀系를 ‘漸法’의 방계로 공격하였을까? 그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선사상에 있지 않을까 한다.
본고에서 神秀의 전체적인 선사상에 대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수의 선사상은 이른바 ‘大乘無生方便門’으로 총결하고 있다. 즉, “第一總彰佛體, 第二開智慧門, 第三顯示不思議解脫, 第四明諸法正性, 第五自然無碍解脫.”의 다섯 가지의 禪法으로 함축된다. 이러한 ‘大乘無生方便門’은 그대로 東山法門의 도신선사의 ‘五門禪要’를 계승한 것으로, 당시 유행하였던 華嚴, 法華등의 佛敎哲學을 추가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회선사는 보다 ‘般若’사상에 철저하여 東山法門의 방편적인 禪法을 걷어내어 직접적으로 ‘無念’, ‘無住’의 ‘頓悟見性’을 제창하는데, 이러한 그의 眼目에 北宗의 ‘大乘無生方便門’의 방편적 禪法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안목에서는 北宗의 禪法은 그의 『語錄』의 곳곳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모두 階․漸에 떨어진 것으로 ‘頓法’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신회선사는 이미 師祖의 東山法門을 초월한 입장에서 東山法門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北宗의 禪法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신회선사는 慧能의 南宗禪, 혹은 자신의 선사상을 알리기 위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생각되는 滑臺의 ‘無遮大會’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宣揚하였다. 그러한 표면적인 선양운동은 그의 선사상과 함께 서로 상응하여 결국은 선종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즉, 본격적인 조사선의 시대를 開創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회선사는 자신의 선을 바로 ‘如來禪’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신회선사의 시대에는 아직 조사선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은 원인으로 다만 이른바 『楞伽經』에서 제시하는 愚夫所行禪․觀察義禪․攀緣眞如禪․諸如來禪의 四種禪에 따라 최고의 선이라는 입장에서 제시되었던 것이다. 만약 앞에서 논한 대로 ‘祖師禪’과 ‘如來禪’의 가장 커다란 차별이 ‘頓悟’에 있다고 한다면 신회가 主唱한 ‘如來禪’은 사실 ‘祖師禪’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또한 慧能의 『壇經』에 보여지는 이른바 ‘三無’ 즉, ‘無心․無相․無住’의 사상과 ‘佛性’의 ‘人性化’라는 점이 신회의 선사상으로부터 제공된 것이라면, 마땅히 조사선의 성립과 부흥은 바로 신회의 공로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후대에 성립된 육조 혜능의 『六祖壇經』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상당한 부분이 신회의 語錄에서 援用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敦煌本 『神會語錄』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돈황본『壇經』과 동일한 字句를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壇經』의 原本이 『神會語錄』이었음을 비전문가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협의의 조사선의 개념을 육조 혜능의 선사상으로 본다면, 바로 신회선사의 선사상은 조사선의 근거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후기 설정되는 조사선이 혜능의 선사상을 근거로 하여 發現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신회선사의 선사상과 결코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신회선사의 선사상과 그의 滑臺의 無遮大會 등을 통한 여러 가지의 이른바 ‘六祖顯彰運動’이 아니었다면 과연 후기 선종에서 나타나는 南宗 일색의 ‘祖師禪’이 중국의 불교계와 사상계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선종사상사에 있어서 하택신회선사의 작용과 意義를 분명하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회의 선사상은 이후 分燈禪, 즉 넓은 의미의 조사선에서 제시하는 선사상과 비교한다면 역시 미진한 바가 나타나고, 그에 따라 또한 비판의 여지가 남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中國禪이 지니고 있는 ‘超越’정신의 극명한 體現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여, ‘超佛’을 이룬 ‘祖師禪’은 마땅히 ‘越祖’를 이루어낸 ‘分燈禪’에 있어선 또 다시 그 미진함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참다운 眞理를 체현하고자 하는 禪의 길이 아닌가 한다.
4. 結語
荷澤神會는 바로 祖師禪을 勃興시킨 선사이다. 본고에서는 신회선사의 선사상에 대하여 그 淵源인 東山法門으로부터 고찰하여 선회 선사상의 특질, 조사선의 개념과 신회선사의 영향에 대하여 사상사적인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신회의 전체적인 선사상은 그 立論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그가 스스로 내세운 ‘如來禪’이라는 旗幟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야사상을 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신회의 반야사상을 중심으로 한 선사상은 바로 慧能과 神會를 배출시킨 東山法門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동산법문을 開創한 道信선사는 ‘般若’사상과 ‘佛性論’을 和會시켜 그의 禪法인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을 제시하고 있고, 그에 이르는 핵심적인 수행문으로서 ‘五門禪要’를 확립시키고 있다. 이러한 도신의 선법을 그대로 계승한 선사는 바로 이른바 五祖로 불리는 弘忍이다. 弘忍선사의 핵심적인 선사상인 ‘守本眞心’에서도 역시 ‘般若’사상을 그 논리적 과정으로 삼고, 최종적으로 ‘佛性論’으로 귀결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신회선사는 이러한 東山法門의 ‘佛性論’과 ‘般若’의 논리로 禪法을 구성한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바로 동산법문의 방편적인 법문을 모두 제거하고, 더욱 ‘般若’사상에 철저하여 ‘佛性論’과의 和會를 통하여 ‘見性’이라는 새로운 선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방법론으로서 緣起의 漸次와 階位를 배제하는 ‘頓悟’를 제창하여 이른바 ‘頓悟見性’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頓悟見性’이 신회선사 선사상의 특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中國佛敎史에서 최초로 ‘頓悟成佛論’을 제시한 道生과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 3백여 년의 時差를 갖고서 드디어 禪宗에 본격적으로 ‘頓悟’사상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선종사상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다시 조사선과 여래선의 성격을 고찰하였는데, 그 핵심적인 구별의 기준은 바로 ‘頓悟’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좁은 의미의 조사선의 개념을 육조 혜능의 선사상으로 본다면, 바로 신회선사의 선사상은 그대로 조사선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후대에 성립하는 혜능조사의 『六祖壇經』이 신회선사의 『語錄』에서 그 淵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선종의 발전에 있어서 신회선사의 선사상이 지니는 意義를 충분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다.
The origin of HézéShénhuì(荷澤神會)'s Chán thoughts and its significant
Kim, jin-moo
/Dept. of Seon. Dongguk Univ
HézéShénhuì is rightly risen from ZǔshīChán(祖師禪). With regard to the prehistory of Shénhuì, the original article examined the characteristic of Shénhuì's Chán(禪) thoughts, the conception of ZǔshīChán and the impact of Shénhuì's Chán thoughts in view of thought by considering the source of Dōngshānfǎmén(東山法門).
It can be said that the whole Shénhuì's Chán thoughts is utilized basing on the idea of Prajña-pāramitā from the introduction to the slogan, called Rúláichán(如來禪), that he himself finally established. The Chán thoughts focused on this Shénhuì Prajña-pāramitā a thoughts can be found in Dōngshānfǎmén which produced Huìnéng(慧能) and Shénhuì. It suggests his Rùdàoānxīnyàofāngbiànfǎmén(入道安心要方便法門) by combining Dàoxìn(道信) which opened Dōngshānfǎmén with Prajña-pāramitā and Fóxìnglùn(佛性論) and establishes Wǔménchányào(五門禪要) as its central ascetic practice. Hóngrěn(弘忍), called the fifth patriarch(五祖) of Chán sect(禪宗), is him that took over Chánfǎ(禪法) of Dàoxìn as it is. Shǒuběnzhēnxīn(守本眞心), the central cha thoughts of Hóngrěn, also adopted Prajña-pāramitā idea as the logical process and can be inferred that it ultimately resulted in Fóxìnglùn.
It is said that Shénhuì succeeded to the tradition which made up the Chánfǎ of the logic of Fóxìnglùn and Prajña-pāramitā in Dōngshānfǎmén. However, not simply taking over but truly elimination all of the Buddhist writings in a way of Dōngshānfǎmén, Shénhuì suggested new Chán thoughts by combining Prajña-pāramitā more thoroughly with Fóxìnglùn. Moreover, with the method, he proposed DùnwùJiànxìng(頓悟見性) thought advocation Dùnwù(頓悟) which exclude the order of pratītya-samutpāda(緣起). This DùnwùJiànxìng is the exact characteristic of Chán thoughts. In the history of china, being equal to Dàoshēng(道生) which suggested Dùnwùchéngfólùn(頓悟成佛論) for the first time, this began to develop the real Dùnwù thoughts in Chán sect at last, having a time difference more than 300 years. It takes great importance in the history of Chán thoughts.
In the article, which the character of ZǔshīChán and Rúláichán were studied again, the yardstick for the differentiations is said to be Dùnwù. Furthermore, in a limited sense, if the conception of ZǔshīChán is said to be the Chán thoughts of Huìnéng, Shénhuì Chán thoughts can be mentioned to provide the basic knowledge of ZǔshīChán. It due to the fact that Liùzǔtánjīng(六祖壇經) by Huìnéng, which established later, would be able to find the source from Shénhuì Yǔlù(語錄). From these points, we can see greatly enough the significant of Shénhuì.
핵심어: 荷澤神會, 東山法門, 道生, 頓悟成佛論, 祖師禪, 般若, 佛性論, 頓悟見性, 楞伽師資記, 神會語錄
<본문;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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