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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시와 그 평설 15
풋풋한 짚신정신을 한국의 얼로 내면화한 송골 오동춘 시인의 시 탐구 - “한글문화” “영어에 온~ ” “솔뼈사랑~ ” “송골 다섯~ ” “솔뼈~” “짚신 12 · 21” -
조신권(문학평론가 · 연세대 명예교수)
서언
송골(松骨) 오동춘(吳東春, 1937- ) 시조시인은 1972년 처녀시조시집『깊신사랑』을 출간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시력 46년이 되는 당년 81세의 수탁한 원로 시조시인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과 더불어 돌아온 고국에서 어려서부터 한글공부와 글쓰기에 뜻을 세우고 스무 살 남짓해서부터 소설 시 등을 교지나 기관지 등에 발표하며 문학 수업을 쌓았고, 1964년엔 마산방송국에서『9·28의 감격』을 발표 연출한 장르를 넘나드는 특별한 작가요 수필가요 시인이다.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이며 중앙대학교 초빙교수인 이근배 시인이 송골 오동춘 시인 팔순기념 축하의 글에서 말한 대로 “송골 오둥춘 선생은 참글을 드높이 탑으로 쌓으신 큰 시인이고 교단과 대학 강단에서 한국문학을 깊이 있게 가르친 석학이시고,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글학회, 외솔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국어교육학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현대시인협회 등에서 공헌과 업적을 세우신 한국문단의 원로이시다.”
송골 오동춘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법률가가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대학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연세대학교 국문과로 진학하여, 윤동주, 유치환, 감수영 시인 등의 선배, 청록파 박두진 시인 같은 연세교수의 시정신을 음미하며 모국어 사랑, 나라 겨레사랑, 통일 염원, 부정부패 비판, 4·19정신, 자연 사랑 등을 소재와 주제로 삼으면서 시창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해병대에 입대해서는 정훈과에서 신문과 회보 만드는 일을 하며 해병대 근무 3년 어간에도 시창작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생활일기 쓰는 것이 60년이 훨씬 넘기까지 한 평생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쓰기에 진력하여 저서만 해도 18권의 시·시조시집을 비롯한 수필집 5권, 기타저서 4권 및 학술논문 8편 등을 헤아린다. 이로써 그의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확고한 심지와 그가 이룬 독보적 문학의 경지를 알 수 있거니와 그의 시화집이 출간 될 때마다 어김없이 상훈도 주어져 수많은 상훈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흙의 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노산문학상”, “연세교육인상”, “외솔상”, “매천황현문학대상” 등을 비롯한 많은 포상을 받았으며, 문단과 학계의 중추적 지도자로서의 경륜과 역량은 추존할 만하다.
송골 오동춘의 문학은 그의 학문 세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1970년 외솔회 회원이 되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은 본격적인 학문으로 연구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과 얼을 찾고 지키려는 노력으로 확대되었다. 또 한글학회를 통해 한글을 널리 사용하자는 적극적인 운동을 추진했으며 전통과 민족정신을 고위시키는데 앞장섰다. 이와 같이, 우리글과 우리 얼을 사랑하며 교단에 몸담은 지 30여 년이며, 한양대, 서울여대, 인하공전에 출강 중이며, 연세대 사회교육원 문학창작과정의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많은 제자들을 기르고 가르쳐오고 있다. 특히 오동춘 시인은 화성교회 원로장로서 평생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영감으로 시를 쓰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한글사랑으로 80평생을 일관되게 투명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신앙인이다. 그는 우리 생활 속에서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면서 편식 않고, 부지런히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송골은 ‘참삶’, ‘빛삶’, ‘뼈삶’이라는 짚신을 신었을지언정 고답적이지 않다. 언제나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채로 세상을 바라다본다. 그의 시선과 가치관은 상기한 세 가지 얼로 옹글었다. 그의 그런 옹골진 생각은『짚신사랑』을 상재하면서 한 지은이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 · · 내면의 밝은 등불을 밝히고 인생의 진실을 거짓 없이 아름답게 살아가겠다는 내 뼈의 마음은 오늘까지 습작의 붓을 멈추진 않았다. 비록 엉성하고, 허술하고, 설익은 글이지만, 풀무에 달구어진 쇠가 망치에 수없이 두둘김을 당해 쓸모의 연장이 되듯 내 글도 피멍을 맺히도록 시련의 비판을 받아 나와 내 글이 함께 영그는 빛을 바라는 뜻에서 여러 스승님, 선배님, 벗들, 그리고 나처럼 가난을 즐기는 겨레 앞에『송골시조집』을 햇빛 보게 한 것이다. 한 가지 힘 있게 자신 할 수 있는 사실은 나의 짚신사랑이다. 역겹고 징그러운 버림 속에 우리 울 밖 멀리 내팽개친 짚신을 지극히 한 서민으로 살아가는 내가 내 가슴 길이 임으로 모신지 오래 되었다. 그 나긋나긋 보드랍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한결같고, 정답고, 소탈하면서 뼈 질긴 우리의 핏줄, 짚신이야말로 우리 흰옷겨레 숨결과 넋이 스민 우리의 맥박이요 영원히 살아갈 우리의 생명빛이 아니겠는가? 가을 하늘처럼 한사코 소박한 진실한 짚신은 ‘한국의 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오천만 겨레가 샘물처럼 맑고 순수한 민족정신으로 다같이 사랑해야 할 짚신은 우리의 빛이요, 멋이요, 임자요, 뼈요, 자랑 빛난 유구의 문화재다.” 이런 짚신정신의 기초와 뿌리는 그의 말 그대로 외솔 최현배, 한결 김윤경, 도산 안창호 세분의 ‘나라 겨레사랑’, ‘정의’, ‘자유’, ‘평화사랑’이라는 ‘짚신’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송골 시인은 1999년에 연세대학교에서의 문학제자들을 주축으로 ‘짚신문학회’를 출발시켰다. 그는 시라는 문학 도구를 통해 전통적인 유가사상과 겨레사랑의 바탕 위에 기독교 복음정신을 아우르는 뼈지고 옹골진 시를 쓰며 맑은 양심에서 솟구치는 풋풋한 짚신정신을 한국의 얼로 시조화한 전통과 짚신의 정신을 담은 시를 쓰고 있다. 이런 그의 전통 속에 진솔한 현실 투시의 시선을 담은 그의 시 몇 편을 분석하면서 그의 시 정신을 살펴보겠다.
오동춘의 생애와 그 작품세계
송골 오동춘은 일제강점기 시대인 1937년 일본 다가야마에서 부친 오문달과 모친 하석임 사이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이었던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으로 광복이 되자 돌아와 유년시절을 보냈고, 마천초등학교(1950)을 거쳐, 1954년 함양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상경하였다. 현 용문고등학교의 전신인 강문고등학교(1957)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스승 외솔 최현배, 한결 김윤경 등을 만나 국어사랑 나라사랑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연세대를 졸업한 후 해병대에 입대하여 정훈과에 근무하며 신문과 회보 만드는 일을 하며 시 창작을 계속하였다. 해병대를 만기 제대한 후 1965년부터 1992년까지 근 30년 간 신경여상, 영도중학교, 영등포 고등학교, 중앙여중·고등학교, 대신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봉직하며 짚신을 실내화로 신고 다니며 한국의 얼이요 우리 빛인 짚신정신을 통하여 애국애족 정신을 깊이 심어주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25년 간 한글사랑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한 겨레 한글나무 고등학생 모임의 지도교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말 우리글 우리 얼 사랑을 통해 나라 겨레를 사랑하는 문학단체인 짚신문학회의 립 회원으로 가담하여 푸른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근 30년 간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던 송골은 좀 더 깊이 있는 학문 탐구에 뜻을 두어 1972년에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옛시조에 나타난 애국사상에 침잠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문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고등학문을 추구하기 위하여 진학한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가람 이병기와 위당 정인보의 시조를 연구한 논문으로서 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문에 대한 열정은 국어 교사를 하면서 가졌던 한글에 대한 사랑과 시조 연구에 대한 집념으로 계속되었다. 정년퇴임에 이르기까지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의 여러 대학교에서 ‘참삶’, ‘빛삶’, ‘뼈삶’의 기치 아래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하는데 기여했다.
부산날개문학동인으로 1958년에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1972년에 발행한 첫 시조집『짚신사랑』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한국시조인협회 이사 부회장을 지내면서,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현대시인협회 등 여러 문학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송골 제자들과 1999년도에 만든 짚신문학회 전덕기 이사장을 도우며 통일운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 흥사단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애국가 작사자는 순국애국자 도산 안창호로 주장하며 논문도 발표하고 제자와 함께 저서도 냈다. 한글학회, 외솔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중심으로 우리 말, 글, 얼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송골 오동춘 시인이 받은 상은 한글공로표창(1976), 제2회 흙의 문학상(1978), 제2회 기독교문학상(1986), 제15회 노산문학상(1990), 한글공로 국무총리표창(1990), 제2회 연세교육인상(1990), 재3회 장로문학상(2000), 제27회 외솔상(2005), 원로장로추대기념패(2008), 매천황현문학상 대상(2012), 세종문화상(2017) 등이다.
시·시조집으로는『짚신사랑』(1972),『산도라지』(1975),『봄나무』(1981),『하늘 한 조각』(1984),『잠들어 안 깨면』(1990),『살고 싶은 가슴』(1990),『벌써 흙이시네』(1992),『봄이 오는 소리』(1995),『아버지와 아들』(1995),『하늘하고 삽니다』(1997),『밝은 마음 밝은 길로』(1999),『사랑나무 생각』(2002),『흙마을이 그립다』(2006),『저기 봄이 오고 있다』(2006),『한글나무』(2006),『가시 꽃과 울음 꽃』(2012),『동해 해뜨는 나라』(2015),『짚신인생 나라사랑』(2017)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는『한알의 밀알이 되어』(1979),『무엇을 심고 갈까』(1986),『흙이 바로 사람인데』(1996),『새끼 서발과 인간 백발』(2007),『짚신은 한국의 얼 우리빛일세』(2010) 등이 있으며, 기타저서로는『이솝우화』(1987),『위당시조연구』(1990),『교회와 우리말』(공저, 2004),『애국가와 안창호』(2013)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교려가요와 국민사상” 등 8편이 있다.
송골 오동춘의 문학세계는 전통과 짚신정신의 얼을 이루는 ‘참삶’, ‘빛삶’, ‘뼈삶’을 전통적인 시조양식으로 형상화해 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의 시세계는 전통적인 시조양식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현대시에 가까운 시조의 형식을 구사하여 전래적인 유가사상과 겨레사랑을 아우르는 기독교 복음정신과 세계관을 풋풋하게 형상화해 냈다는 데 그 특유성이 있다.
한글사랑을 나라사랑으로 외연 시켜
송골 오동춘 시인이 추구하는 오메가 포인트는 ‘나라사랑’인데, 그 ‘나라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서술되지 않고 국어의식으로 구체화 되고 형상화 되었다. 이상각이 주시경 선생에 대해 쓴 책을 보면 한흰샘 주시경이 한 이런 말이 나온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지러짐 없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킬 수 있다. 글은 또 말을 닦는 기계라서 기계를 닦은 뒤에라야 말이 잘 닦인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잘 다스려지는 법이다. 너희는 우리 말글을 아름답게 가다듬어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속에는 한글이 짓밟히고 사라질 절체절명의 시기가 있었다. 일제 암흑기에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말살되어 가던 한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의미에서 한글이 홀대당하고 있는 오늘의 실정을 타개하기 위해 애쓰고 국어순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분이 송골 오동춘 시인이다. 그는 누구보다 한글사랑을 겨레사랑 나라사랑의 일환으로 보고 한글사랑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는 것은 작게 보면 문화의 독립운동이고, 크게 보면 민족의 영속성을 담보해 내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송골의 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글자는 삶의 도구 편할수록 더 좋은 것
천하 으뜸 과학 글자 한글 아니 그 좋은가?
쓸수록 불편한 연장 어찌 한문 쓰리요.
어른이여! 낡은 버릇 힘써 고쳐 한글 읽자
한글나무 무궁 열매 그 아니 가꾸련가?
밑거름 날로 쏟아라! 한글 문화 커진다.
- “한글 문화” 전문
이 시는 천하 좋은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 되는 것이 ‘한글’이라는 사실을 시조의 형식으로 형상화해준 작품이다. 시조의 전통적인 기본 형식은 현대시의 ‘행’에 해당되는 ‘장’과 ‘장’을 둘로 나눈 단위인 ‘구’와 보통 띄어 읽기를 단위로 하는 ‘음보’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평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가 되어야 하지만 기본 글자 수는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3장(종장)의 첫 번째 3글자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이것이 필수적인 룰이다. 송골 오동춘 시인은 서상한 바와 같은 전통적인 정형성을 지키면서 현대시의 형식을 끌어들여 독자들을 낯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표현도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고 감각적이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차분하고 절제적인 언어를 구사해서 함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글이 문자로서 많은 세계 언어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언어라는 것을 천명하는 동시에 그 이유로서 세 가지를 내세운다. 한글이 으뜸이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쓰기 편하기 때문이라 한다. “글자는 삶의 도구 편할수록 더 좋은 것”라는 1장에서 그 점이 극명하게 밝혀진다. ‘글자는 삶의 도구’라는 표현은 말과 글은 하나이어야 편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쓸 때는 ‘한자’를, 말할 때는 ‘한글’을 써서 글자가 삶의 도구로서 몹시 불편했었다. 기독교의 번역찬송가와 변역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육당 최남선이 한글로써 시조를 쓰면서 우리의 언어생활과 문학생활을 일치시키고 함양시키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입으로는 국어를 말하면서 글로는 한문을 쓰는 불편한 생활을 해왔다. 예를 들면 입으로는 ‘한밭’이라고 하면서 글로서는 ‘대전’(大田)이라고 한자를 썼다. 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불편한 생활이었는가? 글과 말은 하나로서 말하고 쓰는 것이 다르다면 그 생활 자체가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그것을 인식한 세종대왕은 그 불편함을 해소시키고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이중구조 속에서 매우 기형적으로 생활하는 겨레를 불쌍히 여겨 한글을 만들었고, 서상한 바와 같이, 한글이 널리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언문일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겨레는 한문 위주의 생활에서 국문 위주의 생활 즉 근대적인 생활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글은 평의한 사회성과 생활성을 지녀서 으뜸 되는 언어라는 것이다.
한글이 으뜸이 되는 이유 가운데 두 번째는 과학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2장 “천하 으뜸 과학 글자 한글 아니 그 좋은가?”라는 표현 속에서, 그런 이유를 확보할 수 있다. 한글 글자를 창제 당시에는 ‘훈민정훈’이라 했는데, 그것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훈민정훈’을 직접 만든 세종대왕 때 엮은 음운학 책 『동국정운』(東國正韻)에는 임금님이 직접 한자어 중국 발음을 한글로 적어 놓은 “홍문정운역훈”이 있는데, 그 서문에 “우리 세종대왕께서 운학(韻學)에 마음을 두고 깊이 연구해 훈민정훈을 창제하셨다”라고 적혀 있다. 즉 한자 음운을 연구하는 학문을 과학적으로 충분히 연구한 뒤 여러 신하와 세자와 공주로 하여금 발음하게 해보는 검증을 통해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내는 소리가 지정되어 있어서 익히기 쉽고 한글과 음성을 서로 바꿀 때 편리하며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이며 음절문자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문법으로 인해서 세계 언어 중 한글이 2위로 어려운 언어로 기록되지만 사실상으로는 쉽게 읽힐 수 있고 규칙적이라는 점에서 한글은 과학적이다.
한글이 으뜸이 되는 이유 가운데 세 번째는 실용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른이여! 낡은 버릇 힘써 고쳐 한글 읽자/한글나무 무궁 열매 그 아니 가꾸련가?/밑거름 날로 쏟아라! 한글문화 커진다.” ‘한자’만이 가장 우수하고 존귀한 언어로서 정언(正言)이고 ‘한글’은 언문(諺文), 또는 ‘암클’ 즉 ‘이랫글’이라 하여 여자와 마찬가지로 홀대되고 천시여기는 옛 나쁜 버릇을 힘써 고쳐서 한자 말고 한글을 읽자는 것이다. 특히 어른들을 불러 그렇게 하자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은 나이가 많이 들었거나 결혼하고 상투를 튼 사람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지각이 깨고 의식이 성숙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새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건 중국을 배척하고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지각없는 사람 되지 말고 한자를 숭상하는 낡은 버릇을 힘써서 고치자고 한다. 왜냐하면 나무에다 비유되는 ‘한글’은 끝없이 많은 열매 즉 유효성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한글을 통하여 부인들이 책을 읽게 되었고 학문을 배우고 개화를 이루게 되는 등 그 유효성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송골 오동춘 시인은 이 시조에서 ‘글자’와 ‘말’, ‘한글’과 ‘한자’, ‘편한 삶의 도구’와 ‘불편한 연장’과 같은 대칭적인 개념의 어휘들을 배치해서 부닥치고 대치시키다가 변증적인 상충과정을 통해 서로 보완 수용 승화하면서 한자보다는 한글이 우수하고 실효적이며 쓰고 말하기 편리하다는 합일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상적이고 평이하면서도 심오한 함축적인 언어를 구사해서 시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영어에 온 나라 미치는가”라는 시를 가지고 한글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것을 좀 더 깊이 세찰해보겠다.
응아 응아 태어난 곳
분명 짚신 땅인데도
웬 꼬부랑 구두 말이
큰물로 마구 쏟아지고
곳곳에 영어 말글이
온통 판을 치는가.
버젓한 우리 말글 두고
뭐가 그리 모자라서
바다 건너 온 영어에
온 나라 다 미쳐서
우리 뼈
우리 얼까지
다 뺏기고 사는가.
쓸개 간도 다 빼 놓고
영어 노예로 살면
나라 운명 가물거리고
겨레 힘도 김빠진다
겨레여!
우리 얼차려
우리 말글 지키자.
- “영어에 온 나라 미치는가” 전문
이 시는 3연으로 이루어진 우리말글이 있는데도 ‘꼬부랑 말’이라고 하는 ‘영어’가 범람되어 ‘말의 노예’처럼 되어가는 얼빠진 이 땅의 현실을 꼬집고 풍자하는 식으로 형상화한 시다. 제1연은 ‘응아 응아’라는 갓 태어나는 한국의 아가만이 내는 ‘울음소리’를 모사한 ‘의태어’를 사용해서 화자가 태어난 곳이 ‘짚신 땅’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짚신’은 한국 땅을 대신하는 환유고 ‘게다’는 일본을 대신하는 환유며, ‘구두’는 서양을 대신하는 환유다. ‘꼬부랑말’은 영어 따위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비속어다. 이런 ‘꼬부랑말’ 영어 따위의 말이 마치 홍수가 밀려오는 것처럼 큰 물결을 이루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그렇게 밀려들어온 영어가 짚신의 땅 곳곳에서 온통 판을 치고 있어서 한심스럽다는 것이다. ‘판친다’는 것은 경향이나 풍조 따위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제2연은 “버젓한 우리 말글 두고/뭐가 그리 모자라서/바다 건너 온 영어에/ 온 나라 다 미쳐서/우리 뼈/우리 얼까지/다 뺏기고 사는가”라는 설의로 끝맺어진다. 이 의문문은 대답을 요하는 질문이 아니고 부정을 통해 더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수사다. 우리는 ‘버젓한 말글’, 남의 언어에 빠지지 않을 ‘우리 말글’, 곧 자랑스러운 ‘한글’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런 모자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 서양서 건너 온 ‘영어’에 온 나라가 미쳐서 우리의 지조와 얼까지 다 빼앗겨 가고 있어서 한스럽다는 것이다. ‘말’을 빼앗기면 ‘얼’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 그렇게 되면 ‘문화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제3연에서는 이런 ‘얼빠진 행동’을 좀 더 확대시켜서 묘사한다. 즉 “쓸개 간도 다 빼 놓고/영어 노예로 살면/나라 운명 가물거리고/겨레 힘도 김빠진다”고 한다. ‘말’은 ‘얼’을 담아내는 도구인데 남의 나라에서 들어온 말에 미쳐서 그만 ‘짚신정신’을 잃고 노예처럼 살고 있음을 볼 때 심히 나라의 장래가 우려되며 ‘겨레의 힘’ 즉 ‘국력’이 쇠하는 듯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도 분격해서 시인은 ‘겨레’를 향해 군사용어인 기율을 바로잡기 위하여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일을 일컫는 ‘얼차려’라도 해서 우리 말글 지키자고 절규한다.
이 시에서도 송골은 ‘우리 말글’과 ‘꼬부랑글’, ‘짚신’과 ‘구두’, ‘뼈’와 ‘얼’, ‘자유’와 ‘노예’ 같은 상충되는 언어를 대칭시켜 상충시키다가 남의 말글에 미쳐 날뛰는 쓸개 빠지고 간도 빼낸 얼빠진 겨레라고 날카로운 칼을 들어 수술을 하듯이 무섭게 꼬집고 나무란다. 이런 나무람을 통하여 우리말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보배라는 인식을 깨우쳐 준다. 이것이 카타르시스다.
하나님 주신 보배
겨레여, 한글 사랑 드높이자
서양 말, 한자말에
멍든 한글 뼈 깎는다
우리 글
우리 손으로
하늘 높이 잘 가꾸자.
민주꽃 우리 뿌리
한글나무 아니던가?
한겨레 한글로 뭉쳐
조국 통일 꼭 이루고
온 세계
으뜸 나라 만들자
한글나라 우리 한국 · · ·
- “한글나무” 일부
이 시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최상의 보배인 한글이 서양말과 한자말, 그리고 왜말(일본어) 등에 멍들고 뼈를 깎아내릴 지경이니 우리글을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 손으로 잘 가꾸자고 한다. 민주주의 본질적 이념인 자유 평화 평등의 뿌리가 한글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 모두 한글로 뭉쳐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로 만들자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외래어, 비속어, 신조어, 은어, 유행어 등이 난발되고 있다. 그들이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 가운데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의 조국을 비하하는 말들이 많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가령 헬(hell)과 조선을 합친 ‘헬조선’이라든지, 탈출과 조선을 합친 ‘탈조선’이라든지, 그리고 한반도를 지옥이라고 표현한 ‘지옥 불반도’ 같은 신조어들은 언어의 품격도 떨어지지만 자국을 비하 하는 언어들이다. 자신이 사는 나라이지만 비하하고 비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하드래도 이런 자국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언어사용은 국력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국민 분위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소위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의 편성표에 ‘리얼체험’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아연실색하게 한다. ‘희망로드’는 또 무엇인가. ‘해피투게더’ ‘해피선데이’ ‘풀하우스’ ‘오! 마이베이비’ ‘쿡킹코리아’ ‘모닝와이드’ ‘이슈 인사이드’ ‘애니갤러리’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희망의 길’보다 ‘희망로드’가, ‘행복한 일요일’보다 ‘해피선데이’가, ‘아이고! 내 애기야’보다는 ‘오! 마이베이비’가 더 좋게 보이고 더 좋게 들리도록 되어 버린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런 남의 언어에 매여 사는 노예가 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자멸을 초래해 가고 있고 국운이 쇠진해 가고 있다. 언어의 혁명부터 일으켜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송골 오동춘 시인이 주장하는 바이다.
솔 뼈 정신을 겨레의 얼로 승화시켜
‘송골’은 오동춘의 아호다. 송골을 우리말로 풀면 ‘솔 뼈’다. 솔의 굳세고 단단한 뼈를 한자로는 ‘송골’이라 하고 토박이말로는 ‘관솔’이라 한다. ‘송골’ 곧 ‘솔의 뼈’는 오동춘의 ‘오롯한 의지’를 표상하는 관념어다. 이 정신은 송골 시인 자신이 말하는 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삶’이요, 거짓이 없는 ‘참의 삶’이요, 굳건히 버티는 올곧은 뼈대 있는 ‘뼈의 삶’으로 집약된다. 이런 ‘송골정신’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겠다.
금수강산 뼈 중 뼈는
솔뼈 말고 더 있는가
성삼문 솔뼈 충혼
애국가에 새파랗다
소나무 끈질긴 지조
한글겨레 기상일세.
한가위 보름달빛
일편단심 겨레마음
솔빛 달빛 등불되어
무궁화도 밝게 핀다
솔달빛 우리 거울로
짚신 이땅 잘 지키자
1960년 4 · 19 거리
피의 화요일 뛰고 온
그날밤 내 마음 깊이
나라 솔뼈 안 보였다
나부터 솔뼈로 살자
송골(松骨)아호 지었다.
남과 북 물물 오랑캐
진신땅 울 넘어 오면
어진 선조 활과 창이
용감하게 다 물리치고
물려 준 삼천리강산에
솔숲 맥박 펄펄 뛴다.
세계심장 우리 강토
누가 감히 넘보랴
하늘 우러러 비는 마음
솔뼈 품고 나라사랑
겨레여! 하나된 솔얼로
짚신 이땅 길이 빛내자.
- “솔벼사랑 나라사랑” 전문
이 시는 5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송골의 아호를 지은 경위와 ‘송골정신’을 ‘우리의 얼’로 제시하는 시다. 제1연 “금수강산 뼈 중 뼈는/솔뼈 말고 더 있는가/성삼문 솔뼈 충혼/애국가에 새파랗다/소나무 끈질긴 지조/한글겨레 기상일세”라는 시행을 보면, 여기서 ‘뼈’는 몸 전체를 대신하는 제유다. 이런 제유에 따르면 ‘뼈’는 인물 또는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 ‘금수강산’도 우리나라의 전 영토를 지시하는 제유로서 ‘뼈 중 뼈’는 ‘솔 뼈’라 한 것은 이 짚신 땅에서 가장 으뜸가는 인물은 ‘솔 뼈’에 비유되는 끈질긴 지조와 충혼의 기상을 지닌 성삼문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제2연은 “한가위 보름달빛/일편단심 겨레마음/솔빛 달빛 등불되어/무궁화도 밝게 핀다/솔달빛 우리 거울로/짚신 이땅 잘 지키자”로 되어 있다. 이 연에서 시인은 정몽주나 성삼문의 일편단심으로 부조된 지조와 충혼을 ‘한 가위 보름달빛’으로 비유하였다. ‘한가위 보름달빛’이라는 이미지는 둥근 원의 비유로서 ‘가없고 끝없이 이어지는 다함이 없는 무궁한 원융의 정신’을 지시해준다. 이런 ‘지조’와 ‘충혼’을 우리겨레의 거울로 삼아서 미래를 잘 비춰보고 그에 반영되는 미래의 모습을 사표로 해서 나라를 잘 지키자고 한다.
제3연은 “1960년 4 · 19 거리/피의 화요일 뛰고 온/그날밤 내 마음 깊이/나라 솔뼈 안 보였다/나부터 솔뼈로 살자/송골(松骨)아호 지었다”로 되어 있다. 오동춘 시인은 학생 신분으로서 1960년 4 · 19 혁명운동에 가담하여 거리로 나갔는데 그날이 화요일이었고 수많은 애국청년 학도들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사라져가는 현장을 목격하였다. 이 피의 현장을 그는 ‘한바탕 뛰고 온 것’으로 생동감 나게 묘사하였다. 피 흘리는 현장에서는 일편단심의 지조와 충혼을 다하는 성삼문 같은 솔 뼈를 지닌 인물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현장의 비감함을 가슴에 깊이 품고 돌아오며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솔 뼈‘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의 아호를 ‘송골’(松骨)로 지었던 것이다.
제4연 “남과 북 물물 오랑캐/짚신땅 울 넘어 오면/어진 선조 활과 창이/용감하게 다 물리치고/물려 준 삼천리강산에/솔숲 맥박 펄펄 뛴다”를 보면, ‘남과 북’은 역시 분단되지 않은 우리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제유고, 만일에 오랑캐가 무리지어 ‘짚신 땅 울’ 곧 우리 땅 경계를 넘어 침범해 오면 어진 선조들이 활과 창으로 용감하게 다 물리치고 물려준 삼천리강산 우리나라 전역엔 솔숲에 비유되는 청청한 지조와 충혼이 맥박의 피처럼 펄펄 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5연은 “세계심장 우리 강토/누가 감히 넘보랴/하늘 우러러 비는 마음/솔뼈 품고 나라사랑/겨레여! 하나된 솔얼로/짚신 이땅 길이 빛내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강토를 세게 심장으로 비유한 것은 대단한 과장이지만 이 땅을 무엇보다 중시여기는 세계관을 보여준 것으로서 이런 중요한 국가를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마음으로 ‘솔뼈’ 곧 ‘지조’와 ‘지사’ 같은 ‘얼’을 품고 나라를 사랑하고 온 겨레가 힘을 모아 ‘솔 얼’로 ‘짚신 땅’ 이나 ‘짚신 길’을 빛내자고 한다.
이 시는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관솔’과 ‘짚신’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여 우리나라를 거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얼을 표상하도록 하였고, 더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비는 마음으로 연결시켜 형이상학적으로 승화 지양시키고 있다. 겨레사랑 나라사랑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연계시킨 것은 실로 놀라운 시적인 장치요 가치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송골의 이런 다섯 가지 사랑을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하나님 사랑과 나라사랑과 가정사랑과 제자사랑, 시사랑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원 정신이요 솔 뼈 정신이다.
(1) 하나님/만백성의 길과 진리 빛도 생명되신 그분/우릴 위해 죽으셔도 다시 사신 그분만을/우러러 본받아 삶이 내 갈 길의 첫째기도.
(2) 나라/나라꽃 뿌리 깊은 삼천리 짚신 땅에/한핏줄 한글 겨레 용광로로 다 잘 살게/횃불로 몸바쳐 살자, 내 가슴의 깊은 염원.
(3) 가정/갚아야지 부모 은혜, 가족 아껴 힘껏 살며/나라빛 겨레힘인 가정 평화 꽃피우며/우리집 넘치는 행복 주께 비는 나의 꿈.
(4) 제자/새싹밭 바로 서서 샘물 퍼서 가꾸는 일/숨지도록 나의 천직 높고 푸른 그 보람에/벅찬 내 기쁨 내 자랑, 잊고 살 날 전혀 없다.
(5) 시/하늘 아래 으뜸 보배 내 말. 글. 얼 갈고 닦아/솔뼈 목숨 샘물 깊은 시의 열매 푸짐하게/그 향기 강물이거라! 내 가슴은 날로 빈다. - “송골 다섯 사랑” 전문
이 시는 송골의 다섯 가지 사랑을 우리의 얼로 내세운 시다. 제1연에서는 ‘하나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우리 온 겨레의 길이요 진리며 빛과 생명이 되시는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락으로 인해 죽게 된 우리 인간들을 위해 죽으셨다 다시 사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우러러 본받아 살아가도록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실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염원이요 기도라 한다. 제2연에서는 ‘나라꽃’인 무궁화가 뿌리 깊이 박은 삼천리 짚신 땅에 ‘한 핏줄, 한 글’을 사용하는 배달겨레의 뜨거운 사랑을 용광로로 해서 다 잘 살 수 있도록 횃불로 표상되는 희생의 몸을 바치겠다고 한다. 그것이 시인 자신의 가슴에 품은 깊은 염원이라 한다. 제3연에서는 그 정신이 가정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과 나라에 입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면, 부모의 은혜도 갚아야 하고 가족 아껴 힘껏 몸 바치며 살고 나라의 빛이요 겨레의 힘이 되는 가정의 평화를 꽃피워서 우리 집에 행복이 넘치게 하는 것이 시인 자신의 꿈이라 한다. 하나님의 은혜나 나라의 은혜를 갚듯이 부모의 은혜도 마땅히 갚아야한다는 공시적인 동일성의 가치를 주장한다. 제4연에서는 그것이 제자로 이어진다. “새싹밭 바로 서서 샘물 퍼서 가꾸는 일/숨지도록 나의 천직 높고 푸른 그 보람에/벅찬 내 기쁨 내 자랑, 잊고 살 날 전혀 없다.” 교육의 장을 샘물 퍼서 새로 난 싹을 가꾸는 밭으로 비유하고 교사를 농부로 비유한다. 교직을 천직 소명으로 받아 푸른 보람으로 삼아 벅찬 교육의 기쁨과 자랑으로 알고 하루도 잊지 말고 살겠다는 것이다. 제5연에서는 그것이 시와 연결된다. “하늘 아래 으뜸 보배 내 말. 글. 얼 갈고 닦아/솔뼈 목숨 샘물 깊은 시의 열매 푸짐하게/그 향기 강물이거라! 내 가슴은 날로 빈다.” 송골 오동춘 시인은 하늘 아래서 발견할 수 있는 보배 중에 가장 으뜸가는 보배인 ‘말’과 ‘글’과 ‘얼’을 갈고 닦아 이루는 시를 샘물 깊은 시의 열매와 시인의 목숨과 동일시하면서 그걸 푸짐하게 하고 그 향기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 한다. 여기서도 시인은 가장 크고 높은 것으로부터 흘러내리게 하여 시로 연결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는 모든 만물이 둥근 고리의 연쇄로 보는 형이상학적인 시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솔뼈세얼”이라는 시에서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참삶/귀히 태어난 사람 참되게 곱게 살아서/사람도리 다해 살면 하늘 축복 넘친다/거짓맘 깨끗이 씻어 밝게 밝게 삽시다.
뼈삶/살아갈 길 이룰 일이 바로 선 바른 사람/한평생 바라볼 푯대 소망 높게 세워 두고/뼈삶길 힘차게 걸어 인생 승리 빛내보자
빛삶/죽은 범 가죽 남기고 사람 죽어 이름 남긴다/하늘 뜻 따라 옳은 일에 목숨 바쳐 남긴 그 빛/그 빛 삶 길이 푸르리 삶의 빛탑 높이 쌉시다. - “솔뼈세얼” 전문
이 시는 그가 ‘솔 뼈의 얼’로 내세우는 세 삶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 이 세 얼은 송골 오동춘 시인의 가치관이요 인생관이다. 제1연에서는 거짓 없이 살아가는 귀한 사람은 축복 받게 되니 밝게 살자고 하고, 제2연에서는 인생 목표를 바로 세우고 한 평생 그 푯대 바라보며 소망 높이 세우고 뼈 있게 살면 인생 승리가 빛나게 된다고 하며, 제3연에서는 죽은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은 남기는 것이니 하늘 뜻을 따라 목숨 바쳐 그 빛을 남기면 그 빛 된 삶이 길이 푸르르고 삶의 빛 된 탑이 높이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빛 된 삶이 우뚝 솟구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짚신정신’, ‘솔 뼈 정신’을 겨레의 ‘얼’로 승화시키고 있다.
결언 : 짚신의 눈으로 만상을 보는 향토적 세계관
송골 오동춘 시인의 첫 시집의 이름이『짚신사랑』이다. 우리의 많은 신발 중 하필이면 짚신을 선택한 그 의도 속에 시인의 정서적인 빛이 어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시인 자신이 첫 시집을 내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 그의 짚신사랑의 정신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 나긋나긋 보드랍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한결같고, 정답고, 소탈하면서 뼈질긴 우리의 핏줄, 짚신이야말로 우리 흰옷겨레 순결과 넋이 스민 우리의 맥박이요 영원히 살아 갈 우리의 생명 빛이 아니겠는가? 가을하늘처럼 한사코 소박 진실한 짚신은 ‘한국의 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오천만 겨레가 샘물처럼 맑고 순수한 민족정신으로 다 같이 사랑해야 할 짚신은 우리의 빛이요, 멋이요, 임자요, 뼈요, 자랑 빛난 유구의 문화재다.” 이런 소박하고 정겨운 짚신을 통해 ‘향토적인 사랑’을 보고 ‘흙 사랑’과 ‘나라사랑’, 그리고 ‘가족사랑’과 ‘제자사랑’ 및 ‘시사랑’을 보는 그의 눈 곧 연쇄 순환적인 세계관을 그의 시들에서 엿볼 수가 있다. “집신 12”와 1981년에 출간한 송골 제3시조시집『봄나무』에 실려 있는 “짚신 21”을 실례로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짚신 눈’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 먼저 향토적인 풍광과 향토애를 다룬 “짚신 12”를 다루겠다.
1. 보글 보글 토방 된장/천하일미 우리 탯깔//뚝배기채 끓은 된장/밥상 차려 행랑 온//열여덟 댕기 머리에/넋이 나간 머슴이여!
2. 땀 찌든 무명 수건/머리 질끈 동여 매고//첫장닭 울도록이/짚신 한짝 삼은 머//홀딱꿍 반한 비밀을/어쩜 졸까? 끙끙
3. 황톳길옆 풀한점/방가 놓은 지게 밑에//쪼그리고 펼친 종이/익힌 한글 한자 한자//침바른 몽당연필이/밤내 썼던 꽃편지
4. 비갠 날 모종 가다/뽕밭에서 만난 댕기//둘이 낮은 금새 산딸기/하나 사브자기 머슴말//사랑방 벽 걸린 짚신/너 보고파 숨지더라. - “짚신 12” 전문
송골은 그의 말대로 나긋나긋하고 정답고 소탈한 ‘짚신’을 통하여 농촌의 일상에서 피어나는 부부의 애틋한 정과 농촌의 풍광을 옛이야기 하듯이 풀어내기도 하고 땀에 젖은 무명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머슴의 동네 처녀와의 가슴 두근거리는 풋사랑을 재치 있게 그려내기도 한다. “짚신 12”가 바로 그런 순박한 머슴과 천하일미의 탯깔의 뚝배기 채 끓은 된장을 겻들인 밥상을 차려서 행랑으로 가지고 온 열여덟 댕기 머리 처녀에 홀딱 반한 사랑을 빠른 속도로 그리고 있다. 머슴이 반한, 토방된장이 맛이 나는 순박한 처녀를 ‘댕기머리’로 환유한 것이나 일만 열심히 하는 순박한 동네 머슴을 ‘땀에 찌든 무명 수건을 질끈 맨 머리’로 나타낸 것은 유효한 문재(文才)의 솜씨라 할 수 있다. 첫 장 닭이 울도록 밤새 짚신 한 짝 삼은 머슴이 지난날 모종하러 가다 에로티시즘의 표상인 ‘뽕밭’에서 만난 댕기머리 처녀를 생각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 끙끙대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눈에 선하다. 이 머슴은 끙끙대며 풀 한 짐을 실은 지게를 황톳길 옆에 괴여 놓고 쪼그리고 앉아 펼친 종이에 간신히 익힌 한글로 한자 한자 침 바른 몽당연필로 밤새 연애편지를 쓰는 모습이나 선 듯 머슴이 하는 사랑 고백 “사랑방 벽 걸린 짚신/너 보고파 숨지더라”는 표현은 끙끙대며 설레는 머슴의 가슴을 엿볼 수 있어서 생생하고 눈물겹도록 선하고 감동적이다. ‘짚신의 눈’을 통해 본 머슴의 진실과 간절함을 순박한 향토적 세계관으로 맑게 형상화해주고 있다. “짚신 21”을 분석하면서 ‘짚신의 눈’을 통해 본 세계관을 좀 더 세찰해 보겠다.
박꽃빛 가슴 속에 하늘 믿는 꿈을 담고
아침에 밝은 땅에 목숨 누릴 터를 잡아
이 삶터 지켜 온 겨레 긴 강물로 살아 있다.
진달래 붉게 타면 이랑이랑 씨뿌리고
황소하고 흙 사랑에 밤낮 거름 쏟아 주니
땀 값은 푸짐한 가을 동네마다 배 불러라.
삼천리 어딜 가도 철철 솟고 흐르는 물
그 물빛 우리 양심 일편단심 아니던가
행여나 얼룩진 맘일까? 거울 샘에 또 씻는다.
청솔 심지 등불 삼고 나라 밝혀 사는 겨레
부닥친 한 시련을 참아 이김 장하구나
살수록 더 굳센 지조 저 하늘에 파랗다.
아침도 고운 황토 흙사랑 힘찬 맥박
뭉치고 또 맘다져 세계 곳곳 한얼 심고
짚신땅 한 핏줄 자랑 온 하늘에 빛난다.
- “짚신 21” 전문
하얀 ‘박꽃 빛’으로 형상화 된 하늘을 믿는 꿈과 신앙을 가슴에 품고 아침빛처럼 밝은 땅에 목숨으로 제유되는 의식주생활을 누릴 생활의 터전으로 잡아 이웃 도둑들(중국이나 일본)이 침범하여 수탈해가지 못하도록 막고 지키며 온 겨레의 수난과 영욕의 역사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삼천리금수강산’에 ‘진달래’가 붉게 피는 봄이면, 씨앗 뿌리고 황소와 흙 사랑에 밤낮 쉬지 않고 거름을 쏟아 부으니 가을이면 동네마다에서 땀의 결실이 풍성하게 거두어 드릴 수 있어서 배불리 먹고 목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삼천리 어디를 가도 철철 솟구쳐 흐르는 물로 비유된 물빛 맑은 심성이 혹시라도 얼룩지지나 않았을까 해서 ‘양심 거울’에 비추어 씻어내고 또 씻어낸다는 것이다. ‘청솔 심지’로 묘사되는 ‘지조’나 ‘충심’을 등불 삼아 나라를 밝혀 사는 지혜와 종종 부닥치는 큰 시련들을 참아내는 끈기와 용기가 가상하고 살아갈수록 더 굳세지는 지조가 하늘을 파랗게 희망으로 수놓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침이 고운 나라고 황토 빛 흙을 사랑하는 맥박이 힘차게 뛰는 한 겨레이니 만큼 뭉치고 마음 다져 세게 곳곳에 우리의 큰 얼을 심고 짚신 땅으로 제유된 삼천리금수강산에 사는 한 핏줄 배달민족의 자랑이 하늘에 빛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개인적인 정과 가족에서 나라로, 세계로, 하늘로 외연 되면서 확대된다. ‘짚신의 눈’을 통해 농촌과 자연의 풍광을 보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겨레와 나라사랑으로 외연 시키며, 그것을 하늘을 믿는 꿈과 신앙으로까지 넓혀 놓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것들을 통해 거시세계까지 보는 눈을 나는 향토적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계관이란 신학이나 철학과 같은 사상 체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본적인 인식의 틀인 것이다. 즉 세계관은 사물을 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perspective) 또는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송골의 세계관은 한 개인이나 또는 한 민족을 특별한 생활방식으로 이끌어 가는 삶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외골수의 길을 갈 수가 없고 그 이상을 초지일관되게 추진할 수가 없는데, 송골이 한글사랑 나라사랑 청솔사랑이라는 함수의 등식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세계관은 한결같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송골 시인의 일관된 세계관은 짚신정신의 승화체인 ‘참삶’ ‘뼈삶’ ‘빛삶’을 솔선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행동에까지 ‘애국 복음시’로 일깨워 주며 80 성상을 아름다운 고난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골은 빛깔이 선명한 진정한 한국적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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