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유기체의 발생과 퇴화는 없으며, 단지 합성이 있을 뿐이다. 라이프니츠는 그럼에도 '운동'의 두 가지 다른 범주를 구분하기 위해 발생-퇴화라는 범주를 유지한다. 내적변화, 외부적인 국소적 운동. 그러나 이 변화가 심리적 본성에서 온 것이라면, 유기적 합성은 운동만큼이나 물질적이다."
- G.J Gerhardt, <Philosopie>III. P.368 '마샹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1707년 7월
<시대의 착시 제7화> 두 개의 장면; 모순 속의 공통점을 찾아
구조주의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인류학>이란 책에서 소개한 자신의 연구방법 가운데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각각의 항을 하나의 독립된 사례로 연구하는 것을 거부하며 항과 항의 '관계'를 분석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이건 구조언어학에서 다루는 문제이지만, 인간의 행동이나 양식에서도 이런 예는 흔히 <대비와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12.1 조치가 내려진 지 하루가 지났습니다. 동일한 부류이지만 각각 역할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 신문을 장식합니다. 한 사람은 여당의 대표이고 한 사람은 통일부장관입니다. 두 사람의 논지를 한 번 보도록 하지요.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외신기자클럽초청 간담회.
"한국이 대북정책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않는 한, 어떤 방법도 북한을 잘 살게 할 수 없다."
"...벼랑 끝에만 가고 벼랑으로 뛰어내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비핵화와 개방이 전제가 된다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도 확충되고 기업활동에도 획기적인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하중 통일부장관. 통일연구원주최 '미국 신정부 출범과 대북 통일 정책추진방향' 학술회의 축사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급에서건 대화할 것을 북한에 제의하며, 북한이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호흥해 오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의 발언은 언뜻 보기에도 남북관계의 현 시점 <교착>(deadlock) 국면을 잘 설명해주는 듯 하지요. 그런데 <해법>은 세 가지가 던져지고 있군요. 그걸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첫째, 나는 바꾸지 않는다. 네가 바꿔라. 비핵하고 개방해라. 그게 전제다.
둘째, 대화하자. 허심탄회하게. 우리는 의지가 있다. 그러나 전제는 지켜달라.
셋째, 벼랑끝으로 가서 먼저 도발하지 말라. 우리는 기 안죽는다. 그래도 상생공영하자.
나는 이런 <모순>을 다시 이렇게 지속적으로 보게 되는 날이 있을거라고는 차마 생각을 못했지요. 만일 거꾸로 된 입장에서 이런 요구를 받았다면...그것은 아마 '싸우자!'는 걸로 해석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하나 이 모순을 지탱하는 '믿는 바 힘'이 보입니다. 바로 <경제적 우위심리>입니다. 이것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저변에 깔려 있지요. 마치 연초...4월경이었지만...배고프면 식량과 비료 달라고 대화에 응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던 정책담당자들의 시각 같은 것이 여기서도 똑같이 엿보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바로 <전제>에 의한 가동틀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금년을 관통하는 대북정책의 핵심은 <비핵과 개방>이었습니다. 그런데 <비핵>은 6자회담이 기 진행 중에 있지요. 물론 북미간이 대화가 그 중심에 있고, 중국의 레버리지 역할, 일본의 딴지걸기, 러시아의 조용히 지켜보는 눈이 어우러진 게임 틀입니다. 그렇게 왔고, 그렇게 가는 중이지요. 그런데 서울이 이것을 <전제>로 다시 꺼냅니다. 이건 약간 공부의 차이가 아닌가 싶지요. 일종의 억지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6자 회담의 합의문은 함께 서명을 했던 것이니까요.
<개방>에 이르면...이것이 바로 <비핵개방3000> 즉, 개방해라, 그러면 3000불 수준으로 맞추어줄께 라는 일종의 프로포잘입니다. 여기서도 문제가 드러납니다. 내용물이 전혀 없습니다. 어떻게 맞추어 갈 것인지,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 어떤 산업적인 협력구도를 가지고...또 수치로써의 타당성을 맞추는 일까지도...그러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북측 지하자원을 다 팔면...3000불 그거 못맞추겠느냐고. 여기도 <각론>이 없이 하는 제안이니 진정성이 보이지 않지요. 그런데...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항상 나오는 것이 <허심탄회>가 나옵니다. 원래 이 말은 다 비우고, 뜨거운 문제는 다 내려놓고...할 이야기 다 뱉어낸다는 것인데...그 말이 자주 사용되지요.
이것은 확실히 <모순>입니다. 민심 가운데서는 지난 십 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이른바 <퍼주기> 논란을 심각하게 본 국민들은 이것이 모순으로 잘 비춰지지 않는 지 몰라도 - 나도 '퍼주기'와 그런 유형의 지난 십 년 있었던 일에는 아주 비판적인 시각입니다만- 그렇다고 이 언어의 모순행위마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서늘한 눈>이 아니고, 그저 감정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건 모순 자체를 인정 않는 자신의 이성에도 불편한 수용인 셈이지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패>를 제대로 쥐고 이야기를 건네는 것, 압박을 하더라도 그리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서로 간의 갈등을 키우지 않고...세상일이 어찌 되는 지도 모르니...그러한 준비를 하는 것이 국가정책이 되어야 하는데...지금은 좀 어설픈 구석이 이렇게 말로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런데도 <국민적 합의의 중요성>만을 강조합니다. 이래서 어찌 합의가 되겠나요? 갈등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빤히 <언어적 모순, 행동의 갈등요소>를 지켜보고 있는데...합리적 판단을 하는 성인이라면 이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요. 갈등만 더 키울 뿐입니다. 굳이 한반도 미래의 비전을 따질 바도 없지요. 그건, 그 수준은 대체로 지금 기대도 안하니.
심각하게 보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자꾸 뭔가 '격발'(擊發)을 유도하는 듯한 언사입니다. '우리는 바꿀 생각이 없다'까지는 좋다고 하지요. 그러나 '벼랑으로 뛰어내리지는 말아달라'는 말에 이르면 아주 지독한 비꼬움과 조롱이 자리합니다. 그러니까 그 <벼랑>이란 것은 도발이라는 의미인데...한국은 여전히 '코리아 리스크'의 대상이고...그것이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외국투자자들의 투자 자체에 대해 '우리는 이 정도로 강하게 대립관계를 유지하니 겁나면 오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꼴이 되지요. 그럼 이렇게 하는데도 오는 사람은? 누구? 그 사람들을 기다리나요? '그'가 누구지요? 이런 질문이 바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언어적 대화의 흐름이 나오는 겁니다.
이 두 개의 장면은 레비-스트로스의 <항과 항의 관계>로 들어가 보면, 엑스레이에 찍혀 나오듯이 반듯하게 말짱하게 드러납니다. 바로 그 <모순됨>의 모양이지요. 나는 이런 모습으로 진정 이 시대가 올바른 길로 간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 비판은 아주 강하고도 강하지요. 그러나 어느 민초의 이 비판은 밀어붙이기 속에서는 무용지물일 수 있습니다. '가면 간다!'는 말이 꼭 어느 장면 가운데 하나인 "한다면, 합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12월 2일의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