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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9]*모세조차 우상*
로마서1장 18–23절 / 이찬수 목사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18절부터 23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키는 인간의 죄악은 어디에서 출발하느냐 하면, 불 경건이라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가지고 종착점은 어디냐? 이게 우상숭배로 마치리라는 것입니다. 먼저 시작인 18절을 보십시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이렇게 이 말씀 단락이 시작이 되는데 이 말씀 단락의 마무리가 22-23절 이렇게 연결을 짓습니다.
➤“22.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 제가 이걸 제가 묵상을 하다가 보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인간의 그 죄악은 이 불의에서 시작해서 우상숭배로 마무리 짓는다는 데 이건 뭘 의미할까? 하나님께서는 그만큼이 우상숭배에 대하여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키는 이 인간의 죄악 중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우상을 싫어하신다는 것은 십계명을 봐도 금방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십계명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계명이 뭡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입니다. 이 계명은 뭡니까?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그것을 섬기지 말라” 이게 사실 같은 내용입니다.
첫 번째 계명인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가 마음의 문제라면 두 번째 계명은 그 마음의 문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물 로 이게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 열 가지 그 여러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범죄 죄악들이 뒤에 많이 열거 되지만, 하나님의 우선순위중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우상숭배가 살인보다 더 나쁘고 우상숭배가 간음보다 도둑질보다 더 나쁜 거라는 겁니다. 이게 인간 세상에서는 살인하는 것과 간음하는 게 도둑질하는 것보다 훨씬 죄질이 무겁고 악한 것으로 통영이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살인죄를 범하면 바로 감옥에 가는데요. 우상을 숭배한다고 감옥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우선순위로 우상 숭배가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도 악한 죄악으로 그렇게 자리 매김을 하실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우상숭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뭔가? 제가 십계명을 주신 출애굽기 20장 전후의 말씀을 쭉 읽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은요.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바로 직전에 그 전제로 주시는 말씀인데 한번 들어 보십시오. ➤“1.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곧 속박의 집에서 데리고 나온 {창조주} 네 [하나님]이니라.” 여러분이 2절 말씀이 십계명을 주시기 바로 직전에 주신 말씀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통해 세상 깨닫게 된 게 뭐냐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세요. “다른 누군가 가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들을 이집트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왜 인정받기를 원하실까요?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내포돼 있는 것입니다. 관계 맺는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불교 신자들이 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별로 마음 쓰이지 않습니다. 저 중동에 있는 그 이슬람 믿는 그 이슬람 신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왜? 관계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저 인정받고 싶어요. 우리 집에 있는 그 제 아내하고, 우리 새 아이들에게 저 정말 인정받고 싶어요. 저희 식구들이 저를 인정 안 해 준다고 해도 저는 나가면 인정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왜 그 어린 그 아이들에게 제가 인정받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들은 내 자식이고, 저하고 관계를 맺는 가족이니까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희들이 그 이집트의 속박으로 신음할 때 너희들을 건져 준 신이 누군지 아느냐? 나 창조주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주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데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문제는 뭡니까?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과의 관계 맺음에 있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복, 그 하나님께 복 좀 달라는 거 아닙니까?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가지고 목적지 가나안에 도착하고, 그들이 범했던 사건이 바알 신을 우상숭배 하는 일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농사짓는데 비가 오게 하는 신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광야의 그 유목민 생활, 그래서 그냥 양 몰고 다니는 그런 유목민 생활을 하다가 이제 가나안에 진입해 가지고 한 곳에 정착을 해야 되니까 이제 문화가 달라진 겁니다. 유목 문화에서 이제 농경문화로 바뀌지요. 농사짓는 게 당연히 서툰 거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어렵습니까? 안 하던 농사를 지으려니 그 농사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옆에 있는 가난한 원주민들을 보니까 농사를 너무 잘 짓는 거예요. 너무 부러워 가지고 그들에게 “아니 우리는 농사가 이렇게 안 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농사 이렇게 잘 짓느냐?” 그러니까 가나한 원주민들이 하는 말이 “그거는 [비를 주관하시는 신]이 있는데, 바알이다. 우리가 바알을 섬겨서 그렇다”고 “그 바알신이 비를 내려줘서 그렇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생각에 창조주 하나님도 참 고마운 신이신데, 창조주 하나님은 그 유목민 생활할 때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는 참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또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비를 주관하시는 바알신도 섬겨야 되는구나!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울한 거예요. “저희는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들이 나를 버렸다.” 여러분 이렇게 예배에 꼬박꼬박 잘 나오시고, 헌금도 하시고, 이렇게 봉사도 하시는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 버렸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버린 적 없지 않습니까? 그냥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돈이 좀 필요하고, 그래 가지고 돈, 돈, 그러면서 돈을 [맘몬 신] 자리에 올려놓고 살아간 것밖에 우리가 뭐 잘못한 게 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게 우상숭배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뭐 다 아시지만 우상숭배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 이게 다 ‘우상숭배’예요.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 제가 오늘말씀 로마서 1장23절을 묵상하다가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했어요.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자! 여기 보니까요 많은 우상으로 삼은 그 새와 짐승과 기어다는 동물 형상들을 묘사하는데 그중에 제일 먼저 바울이 뭘 기록한 것인가요?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 게 이게 이상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알기로 사람 모양을 우상으로 만드는 거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저도 본 적이 없는데요. 주로 우상 그러면 동물 모양, 짐승 모양, 이렇게 나가는데 왜 바울은 사람을 그 우상의 형상을 하는데 왜 사람을 제일 먼저 기록을 했나? 이제 이걸 생각해 보니까 그만큼 우리 인간들이 우상이 될 위험이 있다는 그 이야기예요. 그리고 제가 오늘이 시대를 쭉 바라보면서 참 일리 있는 이야기다. 출애굽기 32장1절에 보면 바로 바울의 이 시각이 참 대단한 시각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출애굽기 32장1절] 보십시오. ➤“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지금 이게 뭐냐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을 지금 묘사하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된 출발이 뭐냐? ‘모세 때문’이라는 거요.
자기들이 목숨처럼 의지하고 하나님처럼 따르는 모세가 산으로 가서 안 나타나는 거예요. 불안한 거예요. 모세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불안해서 만든 게 금송아지 우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절] 나오는 이 말씀이요.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사실 여러분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낸 건 모세가 아니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 아닙니까? 그들이 압제에서 신음할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들을 모세를 통해 가지고 이끌어 불러내신 분도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영이 어두워지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안 보이고, 뭐만 보이는 거예요? 모세가 자기들을 인도했다는 것만 보이는 거예요.
여기에 여러분 좀 찔리는 분 안 계세요?
요즘 “한국 교회가 지금 뭐 타락했다. 변질됐다. 한국 교회 이대로 안 된다. 제2의 종교 계획이 필요하다.”등 많은 말들을 하시는데요. 정말 여러분 한국 교회가 변질되었다면 변질된 한국 교회가 회복되는 첫 단추가 뭔 거 같아요? 교회, 교회들마다 하나님은 안 보이고, 그 교회의 모세만 보이는 현실 아닙니까? 인간 지도자가 너무 중요해져 가지고 이게 성경에 있는 얘기든 없는 얘기든 목사가 얘기만 하면은 거기에 그냥 개념 없이 따라다니고 있는 지금 오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모세가 너무 설치고 다니고 있는 현실, 교회를 이렇게 만들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세는 좀 덜 설치고 그 배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여 지는, 그래서 저는 어떨 때는 신천지가 여기 들어와서 예배를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옆 분에게 어떻게 미혹하고,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만 저는 여기에 지금 계시는 신천지 분이 하나도 걱정이 안 돼요. 그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천지보다 더 위험한 건 각 교회 담임목사들 아닙니까? 그들 자신이 우상이 되기 쉽고, 우리 자신들은 우상으로 섬기기 쉽고. 이게 타락한 인간이라는 거예요.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저는 저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달을 안 쳐다보고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게 이게 오늘 타락된 한국 교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가만히 보면 지금 각 교회들마다 이 손가락, 예쁜 손가락 만들기 경연 대회가 벌어지는 거 같아요. 여러분들이 다른 교회 성도를 만나면 “우리 이 찬수 손가락이 제일 예뻐, 왜 그래?” 그런 자랑만 하지 말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교우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 때문에 실족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내 신앙생활에 불가사이 한 것 하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MBC 점령하는 거, KBS 점령하는 거, 제가 여러 번 봤거든요. 자기 교회당 담임 목사님에 대해서 어떻게 한다? 그러면 몰려가서 단식하고 점령하고 농성하는 거 여러 번 봤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땅에 예수님을 조롱하고 방송국에서 신문사에서 예수님 이름을 모독 하는 거 보고 우르르 몰려가서 대모 하는 건, 내 평생에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모세가 너무 중요해져 버린 겁니다. 사실 제가 그 어릴 때는요 얼굴이 조금 더 잘생기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조금만 더 잘생겼으면 많은 여학생들도 저를 좋아하게 될 거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요. 그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목사 시키려고 여기다 제가 얼굴이 배용준처럼 생겼다 하면, 많은 여성도들은 ‘저 오똑한 콧날’ 하고 얼굴 쳐다보느라고 말씀은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올 것이고, 남자 성도들은 불안해 가지고 “이 여자가 또 저 목사한테 마음 뺏기는 거 아니냐?” 생각하느라 방해가 많을 텐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외모를 주셔서 제가 강단에서 말씀만 전하면 오직 복음밖에 신경 쓰이는 게 없는 거 아닙니까? 어떤 자매님 댁에 전화를 해도 어떤 남편도 불안해하지 않아요. “누구야?” “이찬수 목사!” 그래서 저는 제 외모도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요.
하나님 앞에 그래서 여러분 모세가 너무 부각이 되거나, 모세가 너무 매력적이라면 여러분! 사람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왜? 그 목사 때문에 실족을 해서 예배당을 안 나옵니까? 하나님이 그랬습니까? 이거는 지금 모세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 아닙니까? 어차피 수없이 말씀드렸지만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에요, 제가 은퇴하기 전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미리 지금 제가 말씀드려 놓는데요. “인간이 그럴 줄 몰랐다.” 그럴 줄 몰랐던 게 여러분 잘못이지 그게 제 잘못입니까? 인간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에요. 단지 그 약함을 제가 알기 때문에 여러분 혼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하나님 붙들고 사는 것뿐이에요.
오늘 한국 교회가 너무 눈에 보이는 모세! 눈에 보이는 인간! 이것이 너무 소중해져 버린 이것이 오늘 우리 의지를 시험하는 첫 단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부탁드리는데 물론 저도 더 많이 노력할 거예요. 여러분 제 손가락을 쳐다보시는 신앙생활이 아니고, 달을 쳐다보셔야 돼요. 이 달을 쳐다보셔야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러분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모세도 우상으로 전락될 수 있다.] 왜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겠습니까? 모세도 우상으로 전락될 수 있다. 우리 하나님 싫어하시는 이 우상숭배의 죄의 빠지지 않기 위하여 늘 자기를 점검하고 돌아봐야 됩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가진 잘못된 태도
저는 오늘 본문 23절 말씀을 가지고 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 두 가지를 점검하며 우리를 돌아보기 원하는데요. 여러분 우상 숭배자들이 가진 잘못된 태도, 첫째가 뭐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 마음이 쏠리는 미숙한 태도가 그것이에요. 23절을 다시 보십시오.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비극이 뭔지 다 아세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예요. 특히 지금 우리나라 분들은 더 그래요. 이게 아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얼굴이 좀 더 잘생기면 좋겠다.’ 이건요, 사춘기 애들이 하는 거예요. 왜? 미숙해 가지고 온통 보이는 게 눈에 보이는 거밖에 없으니까 그러다가 장성한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아 인간의 아름다움이 이런 외모 껍데기에 있는 게 아니구나! 이거를 찾아가는 게 이게 성숙해져 가는데 애고 어른이고 없이 전부 성형, 얼굴 뜯어고치고 우리나라는 정말 저질이 얼굴 못 생기면 취직도 안 시켜 주고, 얼굴 못생기면 결혼도 못 하고, 이게 지금 미숙한 사회를 말하는 거 아닙니까?
오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라도 이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잘못된 이 가치관을 우리가 바꾸는데 역할을 해야 되는데 우리 거기에 지금 다 엮여서 몰려다니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진짜 소중한 가치는 다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전부 안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 어머니 사랑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날 구원하신 이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의 능력! 여러분이 놓치고 있는 건 다 안 보이는 거예요. 이거를 못 보니까 그래서 여러분 로마서 1장23절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게 오늘 우리의 참 미련함 아닙니까? 앞에 언급했던 금송아지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출애굽기 32장 2-4절 보십시오.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3. 온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던 금귀고리를 빼서 아론에게로 가져오더라. 4.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므로 5. 아론이 그것을 보고 그것 앞에 제단을 쌓고 선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창조주}를 위한 명절이라, 하니라.”
이 금송아지가 하나님에게 실정을 없게 하고 새로운 신을 만든 게 아니고, 이 금송아지가 창조주 하나님이라 그러잖아요. 하나님 안 보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안 나타나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 이게 화지(畵紙)입니다. 이게 탄식할 노릇 아닙니까? 이런 어리석음은 사무엘상 4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사무엘 4장 배경이 어떤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에요 적군인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다가 그만 패배합니다. 아 사람이 살다 보면 전쟁에 이길 때도 있고 또 패할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 패배 원인을 잘 교훈 삼고 그다음 잘하면 돼요. 이 이스라엘 지도자인 장로들이 패배 원인을 아주 유치하게 분석을 한한 거예요.
패배 원인이 뭐냐 분석해봤더니 ‘그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인 언약궤를 안 가지고 가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2차 전쟁 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갖고 가면 이긴다. 100% 그랬는데 결과는 1차 때보다 더 끔찍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사무엘상 4장 10-11절 “10. ¶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매 이스라엘이 패하여 그들이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거기에 심히 큰 살육이 있었으니 거기서 이스라엘의 보병 삼만 명이 쓰러졌더라. 11. 또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전쟁의 패배 원인?
그 다음에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1차 때보다 훨씬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고 반드시 이 언약궤가 자기들을 전쟁에서 승리케 할 거라고 확신했던 언약궤마저 뺏겨 버립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제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쭉 찾아보고 읽어 보다가 [사무엘상 3장1절]에서 패배의 원인을 발견했는데요.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창조주}를 섬겼는데 그때에는 {창조주}의 말씀이 희귀하여 열린 환상이 전혀 없었더라.” 이게 전쟁 패배의 원인이래요. [말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23절]에 비추어 설명하자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은 발로 다 차버리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 그 누가 만들었습니까? ‘언약궤’ 인간이 만들었어요. 인간이 만든 언약궤를 하나님 말씀으로 대치해 버린 거예요. [로마서 1장23절]에 우상이라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말씀에 두려워해야 되는 게 뭐냐? 여러분 놀랍게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조차도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 우리 강단 뒤에 걸려 있는 저 끔직한 십자가! 저거를 떼어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충동을 받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저게 뭔데요. 저 십자가 모양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십자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고 소중한 거지, 저 껍데기 저게 뭐가 중요합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십자가 왜 달아 놓았는지 아세요? 내가 시달려서 달아놓았습니다. 계속 저한테 “왜 교회에 십자가가 없냐? 왜 십자가가 안 보이느냐?”고 저한테 그냥 메일 오고, 전화하고, 항의 해오고.. 그래서 신경 쓰여서 달아 놓은 건데 저기 에 십자가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습니까? 그 언약궤는 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집에다가 그냥 예수님 사진이라고 붙여놓는데 그건 예수님 얼굴 아니에요. 그 이상한 중동 남자를 하나 갖다 놓고는 예수님이라고 그러는데요.
여러분! [이사야서] 읽어보세요. 예수님은 그 남자처럼 그렇게 잘생긴 얼굴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질투해서 그런 거 아닙니다. 진짜 그 알지도 못하는 남의 이상한 중동 남자하나 거기다 갖다 놓고는 예수님이라고, 그거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거 그 사진 벽에 걸어 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십자가 목걸이 하고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 저 흉한, 그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 걸어놓으면 아마 기절하고 도망갔을 거예요. 저게 살인범들 매다는 흉악한 도구 아닙니까? 저 흉악한 십자가 형태를 놀라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이 소중한 거지, 이제 형상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느 날 슬그머니 없으시면 저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십자가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두 번째로 이 우상 숭배자들이 가진 잘못이 뭐냐?
잘못된 태도가 뭐냐?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신을 원한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6장24절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지금 왜 이 재물 신을 하나님과 동급에 놓고 계세요? 아! 예수님이 그 용어 선정을 신중히 하셔야지 아니 [재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말씀하셔야지 왜 [맘몬]을 섬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느냐고요. 이거 여러분 우리 다 아는 거 아닙니까? 전에는 재물이 우리를 섬겼어요. 그 가난한 신혼 시절에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봤더니 우리가 재물 신을 섬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그 보험금 얻어 내겠다고 전 남편 농약 타고, 제초제 타서 죽이고 그리고 재혼한 남편도 농약 타서 죽이고, 시어머니 농약 타서 죽이고, 그 다 보셨지요? 제가요 인간의 죄성으로 뭐 이럴 수도 있지 이것보다 더 악한 것도 할 수 있지 다 이해가 되는데요.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게 자기 배 아파 난 딸에게 제초제를 먹였다는 거는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보험금을 벌써 몇 번 타먹은 상태인데 뭘 이야기합니까? 그분이 붙잡히고 나서 했던 그 이야기가 “여기서 붙잡히고 나서 여기서 멈추게 돼서 다행입니다.” 그 뭘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재물이 맘몬 신이라는 위력이 이렇게 큰 거예요.
➤사무엘상 4장3절에 보면 제가 앞에서 이스라엘 성들이 블레셋과의 1차 전쟁에서 패했다 그랬는데요. 왜 2차 전쟁에서 그들이 언약궤를 동원하게 됐는지? 대한 분석을 3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르되, {창조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치셨느냐? 우리가 실로에서 {창조주}의 언약궤를 우리에게로 가져오고 그것이 우리 가운데 올 때에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
제가 이 구절에서 발견하는 첫 번째 포인트가 뭐냐?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님께로 책임 증가를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움직여서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들이 생각한 대안이 뭐예요? 언약궤를 동원하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동원하면 하나님인들 안 도와주시고 되겠나? 하나님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 전락시키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 기도가 안 하는 것도 문제인데요, 기도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잘못 되어 있어요. 이 기도를 하나님만 마음을 움직여서 뭘 받아내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너무나 무서운 잘못된 악한 생각이에요.
여러분 기도가 정말 그 고집불통인 하나님을 흔들어 가지고 하나님 손에 있는 복을 얻어내는 게 기도입니까? 기도하다 안 되면 금식 들어간다. 그러고 이게 기도도 보면 막 너무 비장해 이거 뭐 얻어낼 거 있을 때 말고는 죽어도 기도 안 하잖아요. 기도는 그런 게 아니에요. 기도는 아버지 대신 하나님 앞에 미숙하게 짝이 없는 내 고집불통 가지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해 가지고 미숙한 제가 사람 많이 모아 주세요. 그냥 헌금 많이 나오게 해주세요. 모든 사람들이 다 저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미숙한 기도를 하기 쉬운 우리가 나보다 크신 그 하나님의 생각 앞에 굴복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 기도 예화 적어 갖고 다니며 갖고 싶어 죽겠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것을 억누르고 내 탐욕을 탐심을 억누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게 그게 기도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이 아닙니까? 내 억장이 다 무너지더라도 그게 하나님 목적이면 해야 되고요. 꼭 하고 싶어도 그게 하나님 [목적]이 아니면 안 하는 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기도가 동원되는 겁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이 미숙한 모습들이 나타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 4장에서 이 미숙한 이스라엘 지도자 장로들과 너무나 대조적인 한 인물을 저는 [여호수아 7장]에서 발견하는데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사무엘상 사전과 거의 비슷해요.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게 얼마나 쓰라린 지요.
➤여호수아 7장 1-5절을 보십시오. “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저주받은 물건으로 인해 범법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에 속한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저주받은 물건 중에서 취하였기 때문이라. {창조주}의 분노가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타오르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벧엘 동쪽 편에 있는 벧아웬 옆의 아이로 사람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지역을 엿보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엿보고 3.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온 백성을 올라가게 하지 마시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이 적으니 온 백성으로 하여금 거기서 수고하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이에 백성 중에서 삼천 명가량이 거기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매 5. 아이 사람들이 그들 중에서 서른여섯 명쯤을 치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 내려가는 비탈에서 그들을 치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서 물같이 되니라.”
살다 보면 이럴 때 있지 않습니까? 여기 한 40 넘으신 분들 중에 한 번도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분 계세요? 저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정말 쓰라린 마음, 마음이 녹은 물같이 잠이 오지 않아 베개머리 마저 눈물로 적셨던 날이 손으로 몇 날이나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게 인생이에요. 누군들 이걸 피합니까? 중요한 건,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는 쓰라림이 없어서 복된 게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 때 이거를 잘 분석해서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영적으로도 성숙해지는 사건으로 사용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 쓰라린 분이 자리 계시면 여러분 영안을 열고 보세요. 여러분 길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을 거예요. 한 갈래는 뭐예요? 사무엘 4장의 그 이스라엘 장로들의 잘못된 길, 더 그냥 인간적이고 더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그래서 더 큰 쓰라린 눈물을 진하게 만드는 잘못된 길이 하나 있고요. 또 한 갈래가 여호수아 7장에 여호수아의 길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여호수아 7장6-9절에 ➤“6 ¶ 여호수아가 자기 옷을 찢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창조주}의 궤 앞에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며 머리에 흙을 끼얹고 저녁때까지 있다가 7. 여호수아가 이르되, 슬프나이다. 오 [주]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주께서 이 백성을 데려다가 요르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주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르단 저편에서 만족하고 거기 거하였더라면 좋았을 뻔 하였나이다. 8. 오 [주]여, 이스라엘이 자기 원수들 앞에서 자기 등을 돌렸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 가나안 족속과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이 그것을 듣고는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이름을 땅에서 끊으리니 주께서는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하니라.”
범죄 한 건 여호수아가 아니에요. 그러나 여호수아는 누구에게 책임 전가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거 아니지만 백성들의 그 아간의 죄를 주님 앞에 중보하며 나아가며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거예요. 하나님을 이용해 먹어 가지고 언약궤를 가지고 하나님도 이번에는 안 움직이고 못 베길 거야! 이런 장로들의 태도에 그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점검하며 참회의 길로 나아갔던 여호수아의 길! 우리가 가야 될 길이 그 길, 아닙니까?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저는 오늘 로마서 1장23절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취해야 될 대안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장17절을 경험하는 거예요. 우리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사모하면서 구절을 읽어 보시면 좋겠는데요.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 뭘 기도해야 됩니까? 하나님 내가 지금 마음이 노가 불같이 됐습니다. 잘해보려고 시작한 가정인데 이렇게 됐습니다. 잘 키워보자 고 시작한 자녀 교육인데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 내 심령 속에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제가 목회 초기에 새벽에 부른 찬송입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하나님 앞에 나와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 혼미한 저에게만이 귀한 교회 맡겨 두지 마시고 아버지 이 교회당에 주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주님의 영광이이 교회를 가득 채우기를 원합니다.
종이 무능해서 주인께 그렇게 부르짖는데 하나님이 신실하게 일하셨어요. 많은 초신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많은 낙심한 성도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많이 들으셨지요. 이상하게 예배당에 들어와 자리 앉는데 눈물부터 나고 설교 시작한 것도 아니에요, 성가에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10년 하나님을 떠났던 그 어떤 성도가 주님 앞에 왔는데 포근히 자기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자기가 경험하고, 지금 우리 기존 성도들 등록을 안 받는데 1년에 여전히 전혀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한 주에도 얼마나 등록하는지 아십니까?
오늘 가정이 어려운 분 계세요? 자녀가 힘들게 하는데 손을 쓸 수 없어 답답한 분 계세요? 마음이가 물같이 되신 분 계세요? 영광을 구하셔야 돼요. 하나님 눈에 보이는 그 언약궤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 모양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 모양이 아니라, 내게는 주님 자신, 그 자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찬양 같이 부르실 때 마음이 노가 물같이 되신 분이 어떤 치유를 경험하는가? 이 시간 맛보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여러분 제가 개척 초기에 눈물로 불렀던 그 찬양처럼 간구합니다. 여러분 다시 촉구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쓰레기 같이 보는 그 질그릇은 아닌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그 어떤 것으로 바꾸는 일은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무슨 일로 힘드세요? 무슨 일로 마음이가 물같이 되셨습니까? 지금이 너무너무 중요한 때예요. 여러분 앞에 지금 사무엘상 4장의 어리석은 장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있고, 여호수아 7장에서 여호수아가 만들어 놓은 길이 있는데 영안이 어둔 우리는 내버려 두면 어리석은 길로 자꾸 마음이 가요. 이게 인간입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이 마음에 사모하는 소원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 우리 새롭게 하사 열방 중에서 주를 섬기게 하소서! 여러분 힘을 얻어 선포하십시오. 모든 나라 일어나 찬송 부르며 찬송 영광의 주님을 보게 하소서! 보게 하소서!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선에 주님과 함께 주님과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니 우리 천지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모든 열방 주 볼 때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고 우리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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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