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엽 제(枯葉劑)
변 대 원
연변 조양재생의학 클리닉 병상에 누어 성체줄기 세포 시술을 받고 있다.
제대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숱한 질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병했다.
승용차를 운전하는데 가슴이 답답해진다. 눈앞에 있는 물체들이 희미해진다. 사타구니가 따끔거린다. 옆에 타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왜 이러지......! 눈앞이 잘 안 보이고, 가슴이 답답하고, 사타구니가 따끔거리네......”
아내가 말했다.
“그럼 차를 길가에 정차한 후 진정되면 가기로 해요…….”
“ 응 알았어.…….”
안간 힘을 다해 차를 도로변으로 주차하려는데 눈앞의 물체들이 아른거린다. 승용차를 멈추려 하다가 운전대를 잡은 채 오른쪽으로 쓸어졌다. 아내가 급하게 나를 흔들며 부른다.
“여보, 여보, 여보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거친 숨만 내뱉았다. 엔진소리가 윙윙거린다. 다행히 기어를 파킹에 놓고 졸도를 한 것이 다행이다. 아내는 이웃집 가게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그리고 길 지나는 행인들의 도움으로 운전석에서 꺼내져 뒷좌석으로 옮길수 있었다.겨 태웠다. 서둘러 가까운 대학병원응급실로 달렸다. 병원이 가까운데 있어서 생명을 건 질 수 있었다.
34년이 지나서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았다. 계속된 질병의 엄습으로 사경을 헤맸었다. 줄기세포를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급성폐렴과 연이은 중풍으로 왼편 손과 발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끈질긴 권유가 있었다.
"여보 요즘 줄기세포 이야기가 TV에 방영되었지…….그 줄기세포 당신도 시술하자? 시술하면 당신 살 수 있는데……."
"줄기세포가 뭔데…….말 같지 않는 소릴 하구 있구먼!…….아직 연구단계야 확실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믿어, 그만두시라고."
아내의 집요한 설득을 저버릴 수 없어 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다. 연구소 직원을 불러 자세히 물어 보았다.
"성체줄기 세포에 대해 알려 주세요"
"예, 성체줄기 세포는 창조주께서 우리 몸속에 예비한 선물이지요, 성체줄기 세포는 미분화세포입니다. 파괴된 세포벽에 자력으로 착상해서 분화함으로 손상된 부분을 재생하는 기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포를 채취하나요?"
"배꼽 아래서 5그램 정도 채취한뒤 제일 실한 세포를 연구소에서 선택 배양하지요."
"세포를 채취하는데 아프지는 않은가요?"
"그렇게 아프지 않습니다. 링거 맞는 수준입니다."
들어보니 일단 안심이 된다. 성체줄기세포는 미분화세포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체정보로 신체내부의 손상된 부분을 찾아가 착상해서 분화 재생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지금도 고통스럽지만, 죽을 때까지 서서히 손상되어가는 부분들을 재생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갔다.
"세포의 가격은 얼마나 됩니까?"
"일억만 세포에 이천이백만원인데요."
"만만치 않은 금액이군요? 아직 확실한 검증을 마치지 않았지요?……."
나의 질문을 받은 상담원이 머뭇거린다. 괜히 마음이 찜찜하다. 내가 이 일에 실험도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죽어가는 것보다는 한 가닥 실오라기라도 잡는 것이 났겠다 싶었다.
나는거액을 들여 실험도구로 시술을 받는 것이 괜찮을지지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선듯대답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아내가 말했다.
“여보! 당신이 우선이지 돈은 아무 것도 아녀…….”
"무슨 소리! 지금당장 무슨 돈이 있어서......!
"여보 걱정하지 마 은행에 가면 얼마든지 있잖아?"
"당신 말 들어 보니 정말 그러네!…….허 허 허……."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만족감을 누꼈다. 아내가 나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함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해볼까?”
“하구 말구요? 지금 당장 계약합시다."
나는 상담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거래를 터봅시다. 고엽제 환자로서 처음으로 시술받는 것이니 실험도구로 생각해 가격을 절반으로 깎아 봅시다."
상대는 곤란한 척 멈칫 하더니…….
"예 그렇게 해 보지요"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가 회사로 연락을 취했다. 한참 후 연락이 왔다. 허락을 받은 것이다. 절반 가격으로 해줄 수 있으니 우선 두 번으로 나누어 오억만 셀을 맞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돈을 준비하는 일이다. 시중 은행을 찾았다. 다행이 신용불량자는 아니지만 은행 문턱이 제법 높다. 무슨 서류들이 그렇게 많은지 어렵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연구소와 계약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배곱 밑 3센티 되는 부위에서 5그램 정도의 세포를 주사바늘로 채취했다. 세포 중에 실한 것들로 정선해서 1개월 동안 연구소에서 배양했다. 이것을 드라이 아니스 박스에 담아 이곳에 가지고 온 것이다.
3월 하순인데도 연변은 매일같이 눈이 네렸고 추웠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난생처음 밟아본 연변공항은 군용비행기장이다. 국교는 정상화되었지만 이념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라 기분이 좀 으스스하다. 무장한 전투기가 격납고에 있기도 하고 활주로를 활공하기도 한다. 훈련이 있는 모양이다. 항공기가 공중을 한동안 배회하다가 착륙했다. 허술한 공항시설이 인천공항과 비교된다. 새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현지 여행사직원의 인솔로 25인승 버스에 올랐다. 회사직원이 운전석 뒤에 허름한 책상을 놓고 사무정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의 버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허접한 것이 기술의 차이를 실감나게 한다. 1시간쯤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한국의 연구소가대지를 임대하여 지었다. 병원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점심을 먹은 후 2시부터 시술한다는 것이다. 조양재생의학 크리닉이란 간판이 붙어있다. 한국의 연구소에서 현지인 의사와 간호사를 고용한 것이다.
중국인 의사 앞에서 간단한 진료가 있었다. 물론 조선족 간호사들이 어눌한 말로 통역한다.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시설에 근무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시술을 받는 것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성체줄기세포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오히려 나에게 정보를 물어본다.
"이 줄기세포는 어떻게 채취했어요?"
빙그레 웃으며 조선족 간호사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뭐 하러 질문하지요?"
"처음 시술하는 것이라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요....!"
"배꼽 밑에서 주사기로 채취해서 배양한 것이지요."
눈을 동그랗게 뜬 의사에게 통역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한다. 기다리고 있던 내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예, 선생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지금 시술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직껏 들어보지 못한 것이란다. 알..바이오와 계약한대로 시술만 하면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줄기세포를 처음 대하는 의사 앞에서 시술받는다는 것이 정말 웃기는 일이다. 고국의 국회의원들한데 말로 다 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든다.
"계류 중인 법을 통과 시켜주면 되는 것을.....! 국가에 손해를 입히고 어려움을 겪는 환우들에게도 큰 부담을 안겨주는 놈들....저런 것들을 국회의원이라고 뽑아준 국민들 역시 바보 멍청이들인거야!"
중국인 의사와 곁에 서 있는 조선족 간호사가 나를 맞이하며 '안녕하세요.'인사한다. .
"중우 하오"
나 역시 중국말로 인사했다. 중국어 몇 단어 메모지에 적어갔다. 그래서 인사말 정도는 대꾸할 수 있었다.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응대했다.
"중우 하오, 추츠 젠멘"
중국말로 응대하자 의사가 활짝 웃으며 '반갑습니다. 저는 박민'이라고 소개한다.
"런스 닌 헌까오싱 자오 푸민"
나 역시 '반갑습니다. 저는 대원'이라고 대답했다.
"런스 닌 헌 가오싱. 워 쟈오 다이 유엔,
박민이 이곳이 '처음이냐'고 묻는다.
'닌띠 이 츠 라이 저리 마?"
나도 '처음이라 고 말했다.'
"스더 스 띠 이 츠"
의사는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하며 진료를 시작했다.
"하오 더, 주 닌 지텐 위콰이"
진료는 의사가 몇 마디 물어 본 후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항생제 와 아스피린을 두알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시술은 한국에서 만든 성체줄기 세포를 넣은 희석한 수액을 정맥에 꽂고 두어 시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전부이다. 최첨단의 줄기세포는 한국에서 배양해서 중국으로 공수한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유수한 기술을 확보한 생명공학의 신기술이다. 뛰어난 이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간단한 시술임에도 국내에서는 시술할 수 없다. 법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박이일이라는 시간과 왕복 비행기와 병원비와 호텔비를 추가로 들여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MBC방송 기자가 중국에서 시술받는 모습을 밀착취재하며 인터뷰를 했다. 나는 기자에게 간곡히 부탁했었다. 국회에 계류되어있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 국부가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게 하고, 불치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우들의 고통을 덜어달라고했다. 이는 의료비가 경감 되는 것이고, 이러한 신기술로 치료받으려는 외국인들을 의료관광으로 끌어드려 국가재정을 확충할 기회가 된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서둘러 상해로 가야한다고 했다. 이유는 줄기세포 시술로 미국인 여인이 실명한 눈을 뜨게 된 것을 취재하러 간다고 했다. 이후 방영된 MBC는 줄기세포를 시술받는 장면에서 인터뷰한 말을 편집하여 내진의가 전달되지 않게 하였다. 이것도 외압에 의해서인가 보다. 그 뒤로 기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의 안녕을 담보해 주어야 한다는 헌법의 명문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있으나 마나한 공염불일 뿐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은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어 국가 경영이 원활하고 국민이 안전과 평안을 도모해야한다. 그러나 국회에 입성만 하면 공복이 아니고 국민들위에 군립한다. 불필요한 명분 쌓기에 분주하고 당리당략만을 좇아 개점휴업하기를 일삼는다. 저들의 신상을 살펴보면 전과자들이 상당수 있다. 주인된 국민들이 공복을 취사선택하는 권리를 저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피해보지 않으려면 잘 살펴 뽑아야 한다. 국민들의 공복으로 뽑았더니 이들이 주인의 고혈을 빠는 흡혈귀가 되는 모양이다.
칠월의 무더위가 DMZ안의 병사들을 괴롭힌다. 이곳은 휴전 이후 녹슬고 끊어진 철조망으로 가로막혀있는 곳이다. 녹슨 철판에 MDL이라 쓴 푯말이 일정거리를 두고 박혀 있다. 군사분계선이란 표지이다. 이 푯말을 기점으로 사방 2킬로미터 안에 있으니 사실상 피아간에 완충지대다. '완충지대' 빛 좋은 개살구같이 피아간 죽이고 죽는 살육의 현장이다. 북괴군 지피와 칠팔백 미터의 지근거리에서 총부리를 맞대고 있던 중부전선 최전방 GP이다.
소대는 무연고 묘지 밑을 파고 거기서 기거했다. 병사들이 땅을 파고 벌목해 온 통나무들을 잘라 지은 지하 은신처이다. 무더위의 경계근무는 지겹고 피곤하다. 근무조 이왼 우거진 잡목들과 크게 자란 잡초들을 제거하는 작전을 한다. 시계청소를 하고 돌아올 때는 나무를 작벌해 끌고와 자체적으로 땔감을 준비한다. 땀에 흠뻑 젖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대에 복귀하였다. 침상에 걸터앉아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옷을 훌훌 벗어들었다. 팬티 바람에 세탁비누를 가지고 흐르는 계곡물에 뛰어 들었다.
“아휴 시원해…….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이 짜릿한 맛을 어디서 느낄 수 있는가? 소름이 끼치도록 물이 차갑다. 한순간 모든 피곤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간다. 정신을 차리고 저마다 세탁물을 바위에 얹고 비누질하여 손으로 비비고, 돌멩이로 두들겨 빨았다. 흐르는 물에 헹구어 온 종일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다시 계곡물에 들어가 서로 나뉘어 물 장난질을 한다. 입술이 새파랗고 피부에 소름이 끼친다. 선임하사가 말했다.
“야! 이제 구만 나가자 저녁식사 시간이 다되었다.”
“옛 써”
김병장이 복창했다.
“동작 구만 식사시간 오 분전…….세탁물 챙기고 선착순으로 식당 앞으로 집합한다. 시간에 늦는 놈들은 뒤에서부터 네 명은 오늘 저녁 불침번이다.”
불침번을 안 서려고 번갯불에 콩 복아 먹는 듯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동시간대에 식당 앞에 집합했다. 집에서라면 어땠을까? 군대란 누구든 단순화시킨다. 상급자의 명령에 일사분란 움직인다. 사용하는 단어도 단순한 것뿐이다. 기상, 취침, 집합, 제식훈련, 총검술, 사격, 전술훈련, 휴식, 점호, 식사, 휴가, 위문편지, 면회, 전역, 똥, 오줌 잘 쌌냐?
하루의 고된 작업이 끝나고 식사시간이다. 오늘 저녁은 특식이 있는 날이다. 잔득 기대하는 시간이다.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고깃국냄새가 입안에 침이 돌게 한다. 배식이 시작되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내가 자원하여 국물을 퍼주는 사역을 도왔다. 제대 말년이니까 머리를 쓴 것이다. 배식하게 되면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고 있다. 배식이 거의 끝나가니 국통에 건더기가 드러나 보인다.국자로 주먹만한 건더기를 조심스럽게 건졌다. 고기 뭉텅이에는 고양이 새기만한 쥐가 들어 있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있다.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맨밥을 물에 말아 단무지와 함께 먹었다.
태양이 서편 산허리에 걸리는 시각이다. 야간 매복조를 편성한 뒤 배낭을 둘러메고 방탄복에 수류탄과 소총에 실탄을 지급받고 군장검사를 완료했다. 무전병과 함께 소대장의 지휘 아래 무성하게 자란 잡목들로 덮인 숲을 뚫고 들어간다. 부비트랩과 지뢰밭을 피해 작전지역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적들이 접근할 적당한 장소를 설정하면 백여 미터 전방에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새로운 잠복 호를 파고 나뭇가지와 잡초들로 감쪽같이 위장한다. 그 다음 우리는 이인 일조로 매복한다. 공비의 침임을 막기 위해 잠복하지만 모기에게는 언제나 노출된다. 윙윙거리는 모기떼들의 공격에 일진일퇴를 지속하지만 결국은 피를 뺏기기 일쑤이다. 오늘도 어떤 상황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잠복 호에 몸을 감추었다. 모기에게 물린 자리가 오늘따라 더 가렵다. 도둑하게 부어오른 피부를 긁으며 가려움을 참아야 했다.
매복조간 전선으로 연결된 전화를 숨죽이며 서로를 점검한다. 밤하늘에 메밀꽃같이 펼쳐진 은하수가 보인다. 숱한 별떨기들이 반짝거리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것 같다. 반짝거리는 별빛을 바라보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속에 내 별도 있겠지…….”
파란 불빛을 내뿜으며 유성이 잠복호 위로 떨어진다. 왠지 불결한 생각이 든다.
“유성이 떨어지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무슨 일 있으려고…”
별들도 잠이든 깊은 밤중이 되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애써 참으려 해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나는 말년 병장이라서 이런 일에 이골이 나있다.
“김 상병”
나의 호출에 김상병이 얼른 부동자세를 취한다.
“예, 조장님”
“오늘 별일 없을 거야……! 내가 먼저 눈 줌 붙일게…….”
“박 병장님 그러세요."
방탄조끼에 수류탄을 단단히 꽂았다. 실탄이 장전된 M1소총의 안전장치를 잠갔다. 소총에 몸을 기대고 피곤함을 달래려 눈을 감았다. 잠은커녕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고등학교 삼학년 2학기 때였다. 육군 행정요원을 모집한다는 담임선생의 설명을 들었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했다. 밥상의 수저하나 덜어 주는 것이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소아마비로 전신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픈 아이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사업은 뒷전이고 용하다는 이 병원 저 병원 찾았다. 아이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더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채무자가 부도나서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다. 채무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오리무중이다. 아버지는 결국 하던 가게를 접고 시골로 이사를 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극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이 오히려 측은해 보였다.
나는 군대나 먼저 갔다 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다음날 등교해서 육군 행정병으로 지원하였다. 졸업 후 곧바로 영장이 나왔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군 트럭을 타고 춘천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었다. 여기서부터 38도선이란 녹슨 표지판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부터 진짜 전방이구나!”
트럭은 수풀이 우거진 산 고개 비탈길을 휘감아 돌았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덜거덩거리며 매연과 희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힘겹게 달렸다. 산골에 군 트럭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다. 병사들이 총을 들고 위장복에 나뭇가지를 꽂았다. 웅성거리며 밀집해 있다. 앰뷸런스도 주차해 있고 포신을 쭉 뻗은 탱크가 굉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다.
헌병들이 차량통행을 차단한다. 수송관 앞으로 다가와 병력을 대기시키란다. 나는 전쟁이 터진 줄 생각하고 걱정스레 현장을 예의 주시하였다. 다리 옆 빈터에 펴진 거적에는 5명의 공비들의 시체를 반듯하게 눕혀져 있다. 총맞은 부위에서 선혈이 흘러나온다. 간밤에 침투한 무장공비들이란다. 사살된 북괴군 병사들의 시체를 처음 보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 느꼈다.
“여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이구나! 자칫하면 나도 저들처럼 저런 꼴이 될 수 있겠지…….”
오늘따라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불길한 생각이 더해진다. 김 상병을 먼저 보초 서게 하였으니 조금 눈을 붙여야갰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자려고 한다. 윙윙거리던 모기떼 중에서 날랜 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얼굴에 붙었다. 그 억세고 뾰쪽한 빨대가 얼굴 깊숙이 찌르는 순간 손바닥으로 뺨을 탁 내리쳤다.
그 순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났다.
“ 딱콩, 딱 딱콩…….따르르......”
예광탄의 불빛이 우리쪽으로 빗발치듯 날아온다. 콩 볶듯 총소리가 들린다. 잠복중인 매복조가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자동소총과 MI소총, 카빈 소총을 발사했다. 수류탄과 크래모어와 유탄발사기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소대장이 무전병한테서 수화기를 낚아챈다. 허겁지겁 상황실로 보고한다.
“주우중대장님, 중대장님…….”
더듬으며 보고한다. 무전병이 답답한 마음에 소리 지른다.
“소대장님 암호명으로 호출해야지요? "
“응 그렇지……. 그런데, 야! 부대 호출명이 뭐지…….”
상황이 다급하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로 임관한 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황이니까
“소대장님 꾀꼬리, 꾀꼬리요.”
“그래 알았다. 꾀오. 꼬리. 꾀오. 꼬리. 나와라. 여기는 마알 리포……."
듣고 있던 무전병이 외친다.
“소대장님 꾀꼬리, 꾀꼬리, 말 리포, 말 리포요."
무전병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발음을 바르게 못한다.
“여기는 마알 리포. 꾀오. 꼬리 나와라."
무척 당황한 모습이다. 응답이 없자 소대장은 더욱 당황해 한다. 이런 모습이 답답하다. 무전병이 급하게 소리 지른다.
“소대장님 꾀오. 꼬리가 아니고 꾀꼬리…….말알리포가 아니고 말리포예요!”
“그래 알았다.”
이제야 바르게 발음한다.
“꾀꼬리, 꾀꼬리 여기는 말 리포 응답하라 이상.”
“여기는 꾀꼬리 여기는 꾀꼬리 보고하라 이상”
“중대장님 공비들의 기습 공격으로 지금 교전중입니다. 빨리 지원 병력 요청합니다.”
당황한 나머지 교전상황임을 망각하였다. 우뚝 서서 무전으로 보고하던 소대장의 위치가 드러났다. 딱 쿠웅, 따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억…….아이쿠!"
소대장의 손에서 무전기가 떨어졌다. 오른쪽 팔꿈치 쪽으로 선혈이 흘러내린다.
“어 내가 맞았네!…….”
압박붕대로 지혈한 후 잔득 긴장한 병사들 앞에서 작전을 지휘한다. 뻥뻥뻥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순식간에 주위가 대낮같이 밝아졌다. 정신없이 적진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숨을 죽이고 좌우를 살피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김 상병이 벙커에 고꾸라져 있고 구멍 뚫린 철모 안으로부터 선혈이 흘러 방공호 안을 흥건히 적셨다. 피비린내가 바람에 날려 코를 자극한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거 죽으면 안 되는데……!”
나는 허리를 굽혀 김 상병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야 ! 김 상병, 김 상병……”
몸을 흔들어 댔다. 머리와 몸뚱이가 제각각 따로 움직인다. 코에다 손을 살며시 대어보았다. 숨이 멎었다. 혹시나 해서 손을 잡고 맥을 잡아 보았다. 맥박도 안 뛰는 것을 보아 이미 숨진 것 같다. 나는 다급하게 위생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위생병…위생병……여기 삼번 매복 초소 중상자 발생, 중상자 발생 위독합니다. 위독해요!……”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위생병을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구조요청을 했지만 응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은 한두 사람이 전사한 게 아닐 테니까! 옆에 쓰러진 전우의 죽음을 보곤 슬퍼하기보다는 갑작스레 오기가 발동한다.
"이 개새끼들……모조리 싹 쓰러버려야지…….”
조금 전만해도 두려워 머리를 숙인채 총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대응 사격만 했다.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이 일제히 수백발의 총알을 쏴댔다. 지레짐작으로 총소리가 난 쪽으로 지향사격을 한 것이다. 그러니 어디로 쏘았는지 공비들이 맞았는지 불확실하다.
김상병이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을 보고는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조명탄이 공중에서 연이어 터졌다. 일순간 주위가 대낮같이 밝다. 나는 사방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벙커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전후좌우를 살피며 조준 사격할 곳을 찾았다. 어디서인지 낯선 총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쪽으로 총소리와 함께 수류탄, 유탄발사기와 포대에서 발사된 조명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지원 병력이 더 투입된 것인가 보다.
포대에서 발사한 예광탄 빛이 유난히 밝다. 콰앙 쾅, 따다닥, 따콩, 탕, 탕, 따르륵, 피용, 총소리와 함께 예광탄의 불빛이 네온등처럼 적진을 향해 날아간다.
적진에서도 역시 예광탄의 조명이 빛줄기처럼 내 쪽을 향하여 날아온다. 피할 틈도 고개를 숙일 틈도 주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문 예광탄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총알들이 나를 피해 가는 것이다.
두려움도 잠시 잃어버렸다. 대낮같이 밝아서 한밤의 무대조명에 우당탕, 꽈당, 쾅, 따르륵, 꽝 꽝, 피용, 피용, 딱콩 하는 총소리와 예광탄의 불빛을 불꽃놀이처럼 감상하며 즐기고 있었다.
총소리가 멎고 조용해졌다. 먼동이 틀 즈음이다. 한동안 쥐죽은 듯 피아간에 적막이 흐른다. 상황이 종료된 셈이다. 날이 밝자 보충된 수색중대 지원 병력이 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 공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색조의 보고다. 기습한 수십 명의 공비들은 한명도 체포되지 않고 잠적한 것이다. 그런데 아군 수십 명이 전사하고 부사상자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우리들의 근무상태가 분명히 안일했다. 공비들은 우리 지역을 사전에 정탐해 둔 것이다.
숲이 무성한 우리 매복조를 지나 지피 가까이 내려와 이미 잠복해 있었다. 공비들은 우리 포대에서 쏴 올린 조명탄이 비취자 적외선 조준기로 정조준 하여 한명씩 살해한 것이다.
몇 명이 산재하여 총을 쏴댔다. 다른 조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다른 방향으로 총을 발사하며 퇴로를 연 것이다. 남은 공비들은 공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아군들은 적진의 총소리 나는 곳을 향하여 총을 쏘아대다가 적들을 다 놓쳐버린 것이다. 아군들은 적들의 유인작전에 완전히 당한 것이다.
사단장이며 군사령관이 사건이 종료된 후 현장에 나타났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보고를 접한 사령관이 헬기로 현장에 도착했다. 군단장을 영접하기 위해 사단장이 앞서나갔다.
“야! 이 새끼야!
상황을 보고하기도 전에 군단장은 사단장의 앞정강이를 차버렸다.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자 지휘봉으로 철모를 내리친다.
“야! 이 새끼야! 그래 어떻게 했기에 우리 애들만 죽이고 그 새끼들은 한 놈도 못 잡았나?……응! 너 옷 벗을 준비하라.”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 사단장의 배를 꾹 찌르며…….
“네가 사단 장 맞나 이 새끼야!”
중대본부에서 현장 지휘관들을 비상소집하였다. 화가 난 군단장은 이들을 보직 해임하고 다른 지휘관들로 전보하였다.
위생병과 병사들이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을 들것으로 분주하게 실어 날랐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와 비위를 상하게 한다. 부상자들은 사단의무대로 후송되었다. 오른 팔에 총상을 입은 소대장은 압박붕대로 지압했다. 부하들이 처참하게 사망했는데 어떻게 병원에 갈 수 있냐고 입을 굳게 다문다. 눈물을 머금고 텐트 안에 안치된 사망한 병사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다.
김 중사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부인이 맨 먼저 도착했다. 완전히 넋이 나갔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손사래를 친다.
“여보 ! 여보! 나 어떻게 하라고 당신이…….”
대성통곡하다가 실신했다. 병사들이 들것에 싣고 나가 응급조치를 받게 했다. 그러나 부인은 돌아와서 남편을 부르다가 다시 실신하는 것이다. 상태가 좋지 않자 앰뷸런스에 실려 의무대로 후송되었다.
병사들의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들아!”
“북동아. 북동아…….”
“순들아! 순들아……네가 이렇게 가면 네 어미 애비 어떡하라고……야! 이놈아 대답 좀 해봐라…….”
유족들의 울부짖음은 끝날 줄 몰랐다. 어떤 유족은 사단장의 멱살을 잡고 내 아들 살려내라고 흔들어댔다. 다른 부모형제들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실신하기도 한다.
시간이 약이라드니…….격동의 시간은 지나고 사흘 후 장엄한 장례식이 있었다.
조총이 발사되었다. 고인에대한 묵념과 경례가 있은 후 사단 참모의 조사가 이어졌다.……장례식이 끝났다. 병사들의 시신들이 관에 든 채 수십 대의 앰뷸런스에 실려 부대를 떠난다.
부대안의 분위기는 숙연하다. 장례행렬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말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이 태어났다가 한번은 죽는 것이다. 누구든지 만났다가 또 헤어진다. 무엇인가를 얻었다가는 또 잃어버리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시간의 선후만이 다를 뿐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란 생명을 얻은 자와 생명을 상실한자 일뿐이다.
합동장례식이 끝나고 부대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병력들로 보충이 되었다.
사망한 병사들의 총상은 대부분 이마에 명중한 것들로 보아 정조준된 것이다. 공비들은 특수훈련으로 무장 침투한 테러부대원에 틀림없다. 철저한 현장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는 책임자를 징계하는 것으로 별다른 변화란 찾아 볼 수 없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슬픔은 아들과 남편을 잃은 산 자의 몫이다. 전사자들의 시신은 화장되어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부대는 특별 경계태세로 정신훈련과 철저한 경계근무를 한층 더 강화하고 주야간 매복조를 삼교대로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병사들의 병영생활만 더더욱 고달파 진 것이다.
방어울타리의 제거와 신설이 병사들의 손으로 진행되었다. 참나무와 잡목으로 얼기설기 엮어 세운 목책 방어울타리가 풍우에 삭아서 쓰러질 듯 기대어 있다. 거기에다 수류탄을 매달고 지면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였다. 전방 248 킬로미터 디엠 지의 목책 방어울타리다. 15년 만에 목책이 철거되고 철책 방어울타리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경계하는 병사들을 작업에서 제외되었다. 모든 병력이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철책작업에 동원되었다. 작업 현장에서는 휴전 후에 매설된 수류탄과 부비트랩과 지뢰가 폭발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동원되어 제거작업을 지원했다. 그러나 작업 현장에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였다. 그렀지만 그것이 완료될 때까지 온종일 작전은 계속되었다.
한동안 뜸했던 유가족이 소복을 하고 부대를 찾아 왔다. 보초병의 만류를 뿌리치고 부대 안으로 들어와 사무실로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병사들에게…….
"내 남편이 어디 있어요?"
만나는 병사들에게 물었다.
"사모님 선임 하사님 전사했잖아요?"
아니란다. 내 남편은 절대로 전사할 수 없단다. 병사들과 옥신각신한다. 때마침 그 곁을 지나던 오 중사를 만나자 앞을 가로 막으며 말한다.
“여보 당신 여기 있었네!……,어제저녁 왜 집에 안 왔어요? 당신 기다리다 한잠도 못 잦잖아!……."
그 여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오 중사는 여인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형수님! 왜 그래요? 정신 좀 차리세요!……정신을! 김 중사님 돌아가셨잖아요? 장례도 치루셨잖아요?”
“여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당신이 이렇게 살아 있으면서 나한데 농담하는 거지 응! 그렇지 여보!”
참으로 애처로운 심정이다. 오, 중사는 고인이 된 김 중사가 동거녀와 함께 집들이 한 후 여러 차례 간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오중사는 이 여인을 내가 먼저 만났더라면 하고 생각했었다. 이심전심으로 그 여자도 이를 느낀 모양이다. 속담에 "꿩 없으면 닭"이라고 했다. 남편이 죽기 전부터 미혼인 나를 연모했던 모양이다. 이런 일은 내가 가깝게 대해준 것 때문에 일어난 몽상이라고 생각했다.
김 중사의 부인은 분명 제 정신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은 이제 육개월 지난 신혼의 꿈이 아직 깨지 않을 때이다. 막무가내로 오 중사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간신히 부인의 손을 떼어 놓았다.
한동안 소란함이 중대본부에 보고되었다. 군의관이 급히 달려와 위생병과 함께 의무실로 데리고 가서 신경안정제를 놓았다. 안정감을 회복하고 졸음이 엄습해 오는 모양이다. 야전침대에 누어 깊은 잠에 빠졌다.
사월 전선의 봄날이다. 휴전 후 한 번도 벌목작업을 한 적이 없다. 중부전선의 DMZ와 GOP의 우거진 수풀은 억새와 잡목들로 뒤엉켜있다.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내려온 후였다. 매연을 쏟아내며 트럭들이 드럼통을 가득싣고 들어왔다. 병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라고 기록된 드럼통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4월 중순부터 7월말까지 작전에 참여해서 고엽제를 수동식 분무기로 뿌렸다. 아무도 그 약의 독성이나 위험성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다.
분무기를 등에 지고 약제를 살포했다. 희뿌연 줄기가 운무처럼 펼쳐져 잡목들과 풀잎 위에 내려앉는다. 고엽제 분무액을 맞은 곤충들이 날 살려달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힘을 잃고 죽어간다. 무더위에 흘린 땀방울이 온몸을 적셨다. 심한 갈증에 흐르는 물에 고개를 쳐박고 실컷 물을 마셨다. 그리고 계속된 작업에 땀방울과 용해된 고엽제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오전에 뿌린 고엽제 독성 때문에 벌써 푸나무의 잎들이 시들해졌다.
그후부터 면역기능이 약한 병사들에게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부에 여드름이 생기고 기관지 염증으로 기침을 하는 등.......
전역한 후부터 몸에 심한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았지만 병명도 찾지 못했다. 그냥 응급처방일 뿐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발진이 생기는 피부질환과 머리가 빠지고 당뇨에 고혈압에 방광비대에 백혈병에, 폐암, 후두암…….헤아릴 수 없는 병반들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자식들이 불구자로 태어나기도 했다.
전해들은 일이다.
“이 세상 믿을놈 없다니까? 애국이라고 차출해서 전쟁터에 보내더니, 이제 와서 모르쇠하는 놈들……. 공무원들과 정치하는 놈들이.....'용촌백이 콧구멍에서 마늘씨 빼먹는다.'란 속담처럼 제 배때기만 채우고 서민의 애환은 생각지도 않는 놈의 새끼들…….”
나는 친구의 넋두리를 듣고 맞장구를 쳤다.
“네 말이 맞지, 마누라, 새끼들 없다면 벌써 올라가 때려죽일 놈들이 많지……. 목숨을 담보로 번 돈, 마중물 삼아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보상을 해줄 만도 하잖아…….”
“그러게 말이야 개새끼들…….피나는 돈 떼어 고속도로 뚫고 포항제철 세우고…….국가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세워났는데…….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면 안되나.....!”
“대통령 되어서 자기 지역 돕자고 특별법을 만들어, 개나 걸이나 광주민주화 유공자 만들어 팔자 피게 해 주고…….”
“목숨 건 우리들이 그들보다 못한 거야 이 세상 좌파 빨갱이 새끼들…….”
친구는 시골집 부농의 딸로 태어난 여인과 결혼했다. 일 년 넘게 참깨 쏟아지는 행복한 신혼이었다. 아이의 출산을 잔득 기대하며 무지갯빛 꿈을 꾸고 있었다. 아내의 진통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잠깐 동안 평온함이 왔다.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 내 손 좀 잡아줘…….이제 아이가 나올 모양이야!”
“응 알았어.…….”
아내는 갑자기 남편의 손을 으스러지게 붙잡고 있는 힘을 다했다. 갑자기 당한 아내의 강한 아귀힘에 놀라 손이 부스러질까봐 이를 악물고 더 힘을 썼다. 드디어 아기가 산모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왔다.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이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 손에 들려 아내의 가슴에 안긴 아들의 모습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눈망울은 불쑥 튀어나오고 이마는 찌그러지고 턱이 없이 입만 우묵하게 파진 것이다. 아이가 아니고 괴물을 가슴에 안은 기분이다. 우리는 이 아이를 보고서로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흐느끼고 있다.
“하필이면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흐느끼고 있다. 나 역시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아무런 말을 할 수 가없었다.
“..........!”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아내는 나를 불렀다.
“여보, 이 일을 어떻게 하지…….어떻게 하냐고…….”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병원 뒷마당 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한 모금 쭉 들이켜고 이 일에 대해 생각했다. 먼저 병원비를 생각했다.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병원비를 치룰 수 있을까? 박복한 놈, 어릴 때부터 부모 복 없더니 자식도 복이 없구나.……. 전쟁터에서 받은 돈으로 밭을 조금이나마 살 수 있었다. 그것을 다 팔아도 아이 치료비에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 입에 거미줄 칠 수 는 없잖아……. 그래 나 좋고 너 좋고 하는 게 났다 싶었다. 상상도하기 싫은 장애아로 태어났으니 한평생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서로가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편히 가게 해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퇴원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걸어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아내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보 우리 지금 퇴원하자…….”
“예, 어떻게 퇴원하자는 거예요?”
“잔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하라고........!”
아내는 나의 강경한 태도에 아무 말 못하고 쳐다본다. 나는 병원행정실로 잰 걸음으로 찾아갔다. 간호사에게 말했다.
“여보세요 나 지금 퇴원해야 갰는데 어떻게 하지요.”
“예, 벌써 무슨 퇴원이예요…….아이의 건강상태도 그렇고, 산모도 지금 퇴원할 수 없어요?”
나는 큰소리로 원무과 담당직원과 다투었다.
“뭐라고…….왜 퇴원할 수 없는 거여, 너희도 알잖아!,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고, 살아간다 해도 이 아이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니까?”
“그래도 안돼요…….”
“안되면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병원에서 날뛰었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여서 숙의하는 듯했다. 조금 지나자 나의 발광하는 것이 불안했던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날 퇴원을 했다. 말없이 따라오던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여보 당신 말이야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그래도 내새끼인데 어떻게 당신 말대로 할 수 있어요........”
아내의 격한 말을 꺾을 수가 없어 내버려 두기로 했다. 더 이상 다툴 수 없어 아내가 하자는 대로 두고 보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중심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지 저 애는 살아 있을수록 고통인거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어…….”
잇몸이 없으니 어미의 젖도 빨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힘을 잃고 축 늘어진다. 아내는 산후 조리도 할 수 없었다. 죽을 끓여 호수를 목에 넣고 수저로 떠 넣는다. 받아먹다가 사래 들려 숨을 쉬지 못한다. 음식을 받아먹는 그 자체가 고생이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나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밀려오는 분노를 삭이려고 날마다 소주병을 손에 들고 다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아이 때문에 가정도 돌보지 않고 아내와도 이미 남남처럼 지냈단다. 불구자를 낳게 된 것이 아내를 잘못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루가 멀다고 다툼으로 불안했다. 거나하게 술기가 올라왔다. 저녁 늦게 돌아와서 술김에 아내를 구박한다.
“야 이년아! 그 자식 죽게 내 버려두었다면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 아냐……응.”
“뭐시라 이년 좋아하네! 그럼 너는 이놈이 잖아…….”
“뭐라고 이년아, 너 한번 죽어볼래…….이 쌍년아.....!”
술기운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아이쿠 아야…….네가 날 때려, 그래 잘했다. 더 때려라 더 때려…….차라리 죽여라 이 개새끼야!”
일그러진 얼굴에 코피를 쏟으며 비실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가정문제라고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해야 하는가? 요즈음은 인권문제가 대두되면서 가정폭력을 국가가 경찰력을 동원해 지켜주는 법을 만들었으나 가정폭력은 여전하다.
3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고엽제 후유의증 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애아를 출산한 것이 아내 책임이 아니고 자신의 책임임을 알게 되었다. 아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아내를 불렀다.
“여보 미안해……. 나 때문에 이제껏 고생 너무 많이 했소!…….이제는 술 먹는 것도 자제해 볼께”
아내는 말했다.
“여보 내가 더 미안해요, 당신도 고엽제 피해자인데 너무 모진 말을 한 것 미안해요…….”
“아냐, 여보 사랑해…….”
“나도요…….”
우리는 한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울먹였다. 여태껏 쌓였던 오해가 풀린다. 이게 부부란 인연인 것인가 보다.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은 해당질병만 국비진료를 받는 것이 전부이다. 가정은 풍지박살이 났다. 친구는 고엽제 후유의증 경도이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도 없다. 오늘도 술에 기대어 억울함을 달래다가 알코올중독에 걸려 폐인이 되었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소망이 있느냐고 말하던 친구는 그날 저녁 빈속에 강술을 마셨다.
친구는 그 날 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 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겨우 60인데…….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온갖 질병에 신음하며 2세까지 불구자로 태어나자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국가가 그를 결국 두 번 죽인 것이다. 그의 아내 역시 받은 충격에 지병이 악화되었다. 복합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아들이 잠든 사이 죽기로 결심했다. 화장실 사워기를 틀어 물소리가 들린다. 결심하고 저주받은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흐느끼다가 넥타이로 목을 매고 주저앉았다. 죽으려고 결심했으니 있는 힘을 다해 참은 것이다. 목이 조여지고 고통이 점점 더해진다.
“켁켁…….으음........”
방안에 있는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고서야 어머니가 목메어 자살한 것을 알게 되었다.
“ 어어,…….엄마…….어엄마아…….큭큭큭…….”
잘은 말할 수 없지만 너무도 엄청난 비극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껴안고 기절했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이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이웃집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 아무도 안계세요?”
“.......”
인기척이 없다.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사이렌소리와 함께 경찰이 도착했다. 상황을 물어본 후 경찰관이 현관문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에 누구 안계세요?”
인기척이 없다 경찰관이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물이 흥건하다. 화장실에서 흐르는 물이 방안을 적셨다. 화장실 안에서 목매어 죽은 어머니를 붙잡고 죽은 것처럼 아들도 엎드려 있다. 이틀을 먹지 못했으니 물속에 저체온 증으로 기절한 것이다. 경찰이 황급하게 구급차를 불렀다.
“여보세요 119지요, 여기 저주골이요, 응급상황 발생, 빨리 구급차 보내주세요”
잠시 후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왔다.
“여기요 두 사람이요,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위독합니다!”
두 모자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여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이고, 아들은 한 시간쯤 지나서 정신이 돌아왔다. 넋을 놓고 물끄러미 왕눈을 꺼먹이며 사람들의 얼굴들을 살피고 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동네 사람들과 연락받고 찾아온 친족들이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다 장례를 치러 주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아들은 30세가 되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친족들이 얼마동안 도왔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아들은 친족들의 눈치에 가출 했다.
여러 날 먹지 못해 기진하여 버스정류장에 쓰러져있었다. 쓰러진 노숙자를 발견한 경찰관의 도움으로 복지시설에 기거하게 되었다. 시설 내에서도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아 외톨이다. 도우미들도 한두 번 천사처럼 시중들다가 흉물스런 모습에 소원해지는 모습이 역겨웠다. 이마도 없고 눈알이 개구리처럼 튀어나오고 잇몸이 없어 구멍만 둥그렇게 뚫렸으니 말도 못하고 음식도 씹을 수 없다.
식사란 묽은 죽을 튜브를 식도에 삽입 주사기로 밀어 넣어야 했다. 누구를 탓하랴 태어난 것을 저주한다. 시설장이 이름을 묻자 내민 종이에 저주라고 적었다. 고엽제 후유증 2세로 태어난 그는 이제 30세의 남자가 되었다. 이 사회는 냉대만 할뿐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부담을 줄 수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시설을 나왔다. 노숙자로 방황하다가 최근엔 소식을 알 수 없단다. 이것이 고엽제 후유증피해자의 가련한 삶이다.
고엽제(Agent Orange)란 1961년에서 1973년까지 베트남전에서 밀림의 수풀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한국에서도 1968년 4월부터 GOP와 DMZ에서도 살포되었다. 고엽제란 다이옥신이 함유된 제초제의 일종이다. 극히 적은 양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혈액을 오염시키고, 각종 암을 유발시키고, 면역결핍증, 생식기능마비, 신경계통의 마비, 기타 건강문제를 유발한다.
현재 고엽제 피해자는 2013년 5월말현재 121,115명이며, 고엽제후유증은 18종으로 33,951명 국가유공자로, 2세 환자는 3종류는 보훈대상자로, 고엽제 후유의증은 19종으로 87,164명 보훈대상자로 지정 상이처만 국비로 지원해준다.
젊은 날 국가의 부름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국가는 이들을 나몰라하며 예산타령하며 동일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차별한다. 그동안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과 파탄난 가정이 얼마인가? 늙어 말년 남은 것은 가난과 질병의 대물림이다.
이 더러운 놈의 세상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요즈음 세월호 특별법을 가지고 제마다 애국자인양 국론을 분열하며 식물국회 만든 놈들이다.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서 국부를 창조한 마중물 같은 고엽제 피폭자인 노병들을 기억하는 자 하나도 없다. 우리 노병들을 까맣게 잊고 폐품처럼 버린 일이 서운하고 괘심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남의 것을 착취해서 누구든지 평등을 누린다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개인이 노력한대로 자기책임하에 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칠 것이다.
고엽제후유증으로 백혈병으로 면역력이 소진되고, 피부가 썩고, 폐가 썩고, 중풍으로 쓰러져 왼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네 번씩이나 응급실에 실려가 사경을 헤맸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성체줄기세포다. 세계적인 우수한 상품이 국내에서 시술하지 못한다. 이미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건만 의사와 약사들로 구성된 보사위원회에서 4년째 계류 중에 있다. 자기들의 이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지 않아서란다. 도둑놈의 새끼들이 국회 안에 다 있는 모양이다. 저들의 신상을 면면히 살펴보면 전과자들이 상당수 있는 모양이다. 두 눈 바로 뜨고 정당을 불문하고 국가관이 투철하고 인격이 바로 된 청빈한 공복을 뽑아야 한다. 선거할 땐 굼실대다가 막상 당선된 후에는 모르 쇠로 일관하는 놈들이다.
나는 중국 연변 조양재생의학 클리닉 병상에 누어 성체줄기 세포 시술을 받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미분화세포이다, 몸속에 들어가면 손상된 환부에 착상해서 분화함으로 정상으로 복원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설명을 믿고 지금 나는 중국 연변의 초라한 병상에 누워 2시간이 넘도록 링거에 희석한 성체줄기세포를 몸속에 주입하며 몸속에 주입되는 숱한 세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줄기 세포들이 꼬리를 흔들며 혈관의 핏속을 타고 꼬리를 물고 달리기한다. 세포들이 말한다.
“빨리 가서 부서진 곳을 보수해야지요?…….대답할 시간이 없어요, 심장이 막혔다고 연락 왔어요, 아니 머릿속의 실핏줄도 막혔데요.”
세포들이 내 혈관 속에서 춤을 추며 활짝 웃고 있다. 내가 당신을 꼭 고쳐줄 것이라고 속삭이는 소릴 들으면서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두 시간이 넘게 지나서 간호사가 나를 깨운다.
“선생님 이제 다 맞았어요, 이제 바늘 뺄게요!…….”
“예, 아휴 한잠 잘 잤다.”
간호사는 나를 깨우며 말했다.
“줄기세포가 워낙 고가라서 우리는 맞을 엄두도 못냅니다. 선생님 맞으시는 가격으로 우리는 평생 먹고 삽니다.”
간호사는 세포를 희석한 팩에 식염수를 더 넣고 거꾸로 들고 흔들어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 넣어 준다. 알뜰한 그녀의 행동이 고마웠다.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었다. 가만히 일어나 앉으며 처음 내 몸속에 들여보낸 세포들에게 말했다.
“세포들아 사랑해 잘 착상해라, 그리고 꼭 복원시켜줘야 한다. 알았지…….기대한다. 세포야 사랑해 파이팅…….”
군사적인 완충지대인 불안한 DMZ보다 내 몸 안은 절대적인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 작은집 한 채 값이다. 4억 만 마리의 세포를 정맥에 주입한 후에는 임산부처럼 3개월은 주의를 요한다. 과격한 운동이나, 뜨거운 목욕을 금하고 금주 금연은 물론,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줄기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태교하는 것처럼 줄기세포나 잘 보호하자.
나는 잔뜩 기대하고 시술을 마쳤다. 연변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긋지긋한 고엽제 후유증인 아홉까지 질병과 결별하리라 다짐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귀국하는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