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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Asan UBF 주일메세지
인자가 나타나는 날
말씀 / 누가복음 17 : 20~37
요절 / 누가복음 17 :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요즘 유튜브에 인류의 전쟁사만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재미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난 역사를 통하여 현재를 비추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교훈을 얻고자 함입니다. 전쟁 역사에서 얻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떻게 하면 전쟁을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여야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입니다. 용병을 많이 활용 하였던 카르타고, 말기 로마를 통하여 배우는 교훈은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입니다. 그렇다면 강력한 무력으로 얻을 수 있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라를 지키려고 키운 군대가 오히려 평화를 삼킵니다. 돈으로도 평화를 살 수 없고 무력으로 항구적 평화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Asan ubf
결국 이 세상에서 지속되는 평화를 얻을 길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평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오늘도 전쟁이 있고 지금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가슴 아프게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고통과 눈물 가득한 세상은 끝이 나야 합니다. 때가 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끝을 향하여 나가는 지금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로 말세에 가져야할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 Asan ubf
1. 하나님 나라
2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권세 있는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께 꼭 여쭙고 싶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Asan ubf
유대인들이 소망 가득한 사람들 같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 그들의 소망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주의로 제한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땅 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주의로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건설되는 현세의 왕국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마치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루어졌던 것과 같이 모든 이방나라를 제압하고 이루어지는 강력한 왕국, 현실의 정치체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 여야 한다고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Asan ubf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이 변질된 하나님나라 신앙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그가 왕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 이것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주지 않는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의 뜰에서 고함쳤던 유대인들의 요구도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주지 않는 예수는 차라리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메시야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에 그들만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지상 메시야 왕국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영토주의, 민족주의, 지상현세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에 거하는 평화, 하나님나라의 은혜를 먼저 맛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의 한계적인 삶을 살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먼저 우리 내면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Asan ubf
22절을 보십시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인자의 날’은 예수님께서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큰 권위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는 날을 말합니다. 인자의 날 예수님께서는 위대하고 거룩하신 만왕의 왕, 주의 주로 오십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예수님은 위엄과 권위와 능력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심판주의 위엄과 권위와 능력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쇠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 주십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하나님나라가 임하면 우리에게 더이상 눈물은 없습니다. 그 나라가 오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립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메시야 왕국입니다. 유대인들은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들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헛된 믿음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죽인 것도 자기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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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올바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예수님과 예수님의 나라로 하여야 합니다. 그릇된 소망은 큰 죄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의 바라는 바는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이 땅에서 유명해지고자 하는 것,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송과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 이 땅에서 많은 소유를 얻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원수의 시험거리가 됩니다. 끊임없이 나의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결국 나의 모든 영혼을 어둠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Asan ubf
2. 인자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세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심판하시는 예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구원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3, 24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말세에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실족 시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오셨다’ ‘저기 예수님께서 오신다’ 합니다. 이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을 멸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이 긴가민가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맞는가?’ 의혹을 품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는 큰 영광을 얻으십니다. 지극히 높은 위엄과 권위와 능력을 덧입으십니다. 먼저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셔서 승리의 주,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지금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그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여기 메시야가 왔다’, ‘저기 메시야가 이미 와 있다’ 미혹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메시야는 거짓 메시야 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일시에 다 볼 수 있도록 임하십니다. 처음 오실 때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게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온 세상이 다 큰 영광과 위엄의 주 예수님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전 우주적, 전 지구적 대 사건입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국소적이고 지역적으로 임하지 않으십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이 다 보이도록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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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미혹 당하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마음을 다하여 깊이 공부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여야 합니다. 심판이 다가올 때, 구체적 징조에 대하여 마가복음 13장에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징조보다는 말세를 기다리는 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은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 입니다. 우리는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여 미혹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Asan ubf
26~30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노아의 때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세상에 죄가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노아의 시대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시대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고귀한 인간이 죄로 인하여 육체로 전락하였습니다. 창세기 6:5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하였습니다. Asan ubf
창세기 6:11절에는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충만한지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자비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세상에 정의를 요구하시는 때가 오는데 세상이 패괴하고 강포할 때 입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패괴하고 강포한 것을 새번역에서는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강자들이 힘으로 약자들을 때리고 빼앗고 모욕하고 억울하게 하고 죽이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노아시대 사람들은 홍수심판을 받아 방주에 탄 사람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멸망하였습니다. Asan ubf
롯의 시대 소돔과 고모라도 죄악이 심하여서 더 이상 악해질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음란하였습니다. 남녀관계로는 부족하여 남자끼리 더러운 짓을 하였습니다. 그런 죄가 얼마나 일반화되었는지 성에 천사들이 들어가자 그들을 범하겠다고 롯에게 사람들을 내놓으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롯을 해하려고 하였습니다. 소돔성은 음란과 폭력이 최고조에 이른 무법천지였습니다. 소돔은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는 죄가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는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시대였습니다.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는 갑자기 심판받아 멸망한 시대였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는 장차 임할 ‘인자의 날’이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죄의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심판의 날이 찾아 옵니다. 사람들이 심판의 경고를 무시할 때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심판이 철저하여 어떤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죄의 길로 달려 간다고 해도 우리는 그 길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죄의 잠에 빠진다고해도 우리는 멸망하는 사람들과 그 잠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는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말을 향해 가는 우리는 세상이 모두 어둠속에 빠져들었어도 홀로 진리의 등불을 켜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두번째 삶의 자세입니다. Asan ubf
31~33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롯의 처는 천사들이 롯과 그 가족들을 소돔에서 내보낼 때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뒤돌아본 것은 미련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급히 나오느라 보석함에 모아둔 귀중품들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옷장에 걸어둔 아름다운 옷들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명품 구두, 명품 가방, 명품 시계, 명품 모자, 명품 지갑, 명품 만년필, 명품 향수, 최고급 화장품, 벽에 걸어 둔 화가의 비싼 그림, 아름다운 집, 그림같은 정원이 아까웠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그를 파괴된 성과 함께 부서지는 소금덩어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는 그 날 지붕위에 있는 사람들은 집안에 있는 세간살이나 귀중품을 챙기러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밭에서 일하던 사람도 집에 갔다가 오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 두지 말고 급히 뛰어야 합니다. 세상에 미련 두다가 구원을 잃고 맙니다. 말세에 우리는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소원을 부인하여야 합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적인 욕심과 인간적인 집착,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육신의 소원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할 세번째 교훈입니다.
34~3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Asan ubf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사는 모습은 같은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은 구원 받고 어떤 사람은 심판 받습니다. 함께 앉아서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환난에 남겨집니다. 구원과 심판은 그 삶이 무엇을 추구하였는지를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구원과 심판은 보이지 않는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추구하는 바가 다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하는 일은 같아도 마음 중심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내면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주님 다시 오실 때 하늘로 들리어 올라갑니다. 믿음과 소망을 예수님의 나라에 두고 고난을 감당해온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큰 차이가 없는데 마음 중심에 자기를 둔 사람, 소망이 땅위에 고정 된 사람은 남아서 환난 당하고 심판 받습니다. 우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항상 내면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네번째 교훈입니다. Asan ubf
제자들은 충격입니다. 유대인이라면 모두 다 구원 얻을 텐데 함께 살고 같이 섬겼는데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니!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 새번역에는 “주여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심판을 여전히 지역적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우주적 대사건으로, 전 지구적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마지막날 심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곳이 어느 곳인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Asan ubf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광야에서 양이나 염소가 다치고 병들어서 숨 넘어가려고 깔딱거리면 독수리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날아와 하늘을 빙빙 돕니다. 한 마리가 오면 두 마리가 오고 여러 독수리들이 날아옵니다. 멀리 저 하늘에 독수리들이 날고 있으면 그 아래에 죽은 사체나 죽어가는 짐승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가 가까우면 징조가 나타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기 전 세상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 징조가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장소를 찾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지 살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것은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고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Asan ubf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난리와 난리가 일어나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일어나고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이 가해지는 시대의 징조들이 나타날 때 단순히 분별하기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은 그런 시대에 해야 할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할 다섯번째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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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유대인들이 사는 땅에 왕국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 임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후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루어지는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예수님의 나라를 이루어주실 때까지 우리는 거짓 메시야에게 미혹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깊은 잠에 빠지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멸망할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내면에 예수님과 그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온 세상에 먼저 복음을 전하며 다녀야 합니다. Asan ubf
세상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시작이 있었고 역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끝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끝에서 예수님을 붙잡고 영원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삶에 부여된 최고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위하여 나의 삶과 나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금 이순간도 하나라도 더 소유하기를 원하며 자기 삶을 소모 시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금 이순간도 사람들에게 유명해 져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집착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사람들을 살피며 슬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가 합당한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마가복음 13:37 말씀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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