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침공작전 2 - 덩케르크 철수작전
1940년 5월 28일, 벨기에가 독일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독일군 A군단은 영국해협의 브로뉴, 칼레같은 항구도시를 제압했다.
연합군은 서쪽에선 A군단의 장갑부대, 남쪽에선 독일보병대, 동쪽에서는 추격해오는 B군단에게 압박당하여 프랑스의 항구도시였던 덩케르크 주변에서 독일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장갑사단의 피해를 우려한 히틀러에게 괴링이 <공군력으로 연합군을 격파합시다>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5월 23일부로 장갑사단에는 진군정지 명령이 떨어졌다. 덩케르크는 요새화가 되어 있어서 연합군은 간신히 버티던 실정이었다.
이에 영국의 해군중장이던 패트럼 란제이는 연합군의 철수계획을 세워 당시 영국수상이던 윈스턴 처칠에게 <다이나모 작전>이라는 이름의 연합군 철수작전을 보고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5월 26일부터 6월 4일간에 걸쳐 군, 민간선박 가릴 것 없이 동원하여 30만의 덩케르크 체류 영불 연합군을 영국본토로 구출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계획에서는 영국 해외파견군(BEF)의 병사들 중 우선 45,000명을 2일에 걸쳐 귀환시키려 했는데
이것은 독일군이 철수방해를 개시할 시간을 예측해서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날에는 프랑스군 7,000명을 포함한 25,000명 밖에 탈출시키지 못했다. 5월 27일 이른 아침, 10척의 구축함이 증원되어 구출을 시도했지만 해변에 접근하기가 힘들어 수천 정도의 병력밖에 철수시키지 못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연합군의 탈출을 알고는 더욱 덩케르크의 포위망을 좁혀 들어갔다.
5월 29일, 저녁에 독일공군이 중폭격기를 앞세워 덩케르크에 공습을 가해왔다. 하지만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영국군 병사 47,000명이 탈출에 성공했다. 다음 날, 프랑스군을 포함한 54,000명이 다시 탈출했고 5월 31일에 68,000명의 병사들이 구출되었다.
덩케르크 탈출에는 군함 외에도 어선, 유람선, 보트, 구명정, 낚싯배, 개인소유 선박들이 모두 동원되어 연합군 병사들의 탈출에 사용되었는데 이렇게 처참하고 위험했던 탈출은 영국 국민들의 감성을 울리게 하여 독일에 대한 증오와 영국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고양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0FBB534DC0087922)
영국함정에 올라타고 있는 프랑스군 병사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B2D5A4DC008AE05)
구명보트를 타고 덩케르크를 탈출하고 있는 영국군 병사들.
6월 1일, 다시 독일군의 폭격기들이 격렬하게 공습을 해왔지만 다시 64,000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탈출했다.
6월 2일 밤, 영국군 후위부대가 프랑스군 60,000명과 함께 출발했는데 3일 밤에는 다시 26,000명의 프랑스군 병사들이 탈출에 성공하자 프랑스군 병사들은 작전종료날짜 전에 모두 구출되었다.
한편 프랑스군 제 2사단은 철수를 보호하기 위해 남았었는데 그들은 독일군의 추격을 막긴 했지만 얼마안되어 모두 포로가 되고 말았다. 1940년 6월 3일, 영국군 호위사단의 잔여병력과 프랑스 영내에 남은 대부분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에 항복하고 말았다.
9일간의 철수작전에서 860척의 선박들이 영국으로 실어나른 인원은 총 331,226명으로 영국군이 192,226명, 프랑스군이 139,000명이었다. 때문에 덩케르크의 철수작전은 짧은 시간과 독일군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을 구출해 당시 기적의 작전이라고 불리웠다.
본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국군이 프랑스에 가져왔던 화포같은 중화기 및 차량은 모두 방치되어 버렸고 수 천명의 프랑스군 병사들은 덩케르크의 포위망에 갇혀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6척의 영국 구축함 및 3척의 프랑스 구축함은 독일군의 공격에 침몰당했고 19척의 함정들이 큰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200척 이상의 민간선박들도 침몰당하거나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수상이던 처칠은 그의 회고록에서 영국공군이 독일공군에게서 철수병력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는데 영국공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연합군의 철수작전은 성공하기 어려웠으리라 술회하였다. 처칠은 덩케르크의 모래사장이 폭격의 충격을 흡수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독일공군이 132대의 항공기를 잃은 반면 영국공군은 그 3배에 달하는 474기를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철수당시 영국공군의 지원은 그다지 큰 힘이 되지 못했다.왜냐하면 당시 날씨가 안개가 짙은 바람에 시야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인데 제대로 된 지원임무 수행은 사실상 어려운 지경이었다.
프랑스도 구축함과 순양함으로 탈출을 지원하다가 적지않은 함선을 독일군에 의해 잃고 말았다. 모든 프랑스 해군함선들은 독일해군의 대형함정 출현에 대비해 항만에 정박중이었는데 철수작전 당시 영국군은 독일군이 이 함선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폭격해 자침시켜 버렸던 것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BF6524DC0090515)
철수하는 보트 안의 영국군 병사들, 이제 살았다는 안도 탓에 얼굴에 웃음이 흐르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32A7514DC0092019)
영국에 도착하자 기쁨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병사들.
덩케르크 철수작전 전에 처칠은 이 작전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여 영국하원에 대해 <굉장히 충격적일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철수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처칠은 이를 기적이라 부르며 영국의 매스컴에선 <대실패가 대성공으로 바뀌었다>라고 소개했다.
처칠은 6월 4일, 하원의회 연설에서 <우리들은 이 구출이 승리를 표시하는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철수했어도 전쟁은 아직 이기지 않았다>라고 국내에 이를 알렸다. 이것은 덩케르크의 기적이라는 단어로 영국국민들의 단합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덩케르크 작전에서 영국군 병사들의 구출은 영국 국민들에게 사기와 정신적인 면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여 독일과의 일전을 불사하게 만들었다. 구출된 영국병사들은 본토의 수비대로 배치되었지만 1944년 프랑스로 다시 귀환할 당시 이들은 다시 지원하여 영국 육군의 핵심을 담당했다.
칼 되니츠를 위시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하인츠 구델라인 같은 몇 명의 독일군 고급장교들도 독일군 최고사령부가 공격명령을 내릴 기회를 잃은 탓에 영국군을 전멸시키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것은 독일이 서부전선에서 범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이는 나중에 말타, 지브롤터의 점령실패라는 효과로 이어졌다.
100,000명 이상이 구출되어진 프랑스 병사들은 영국 남서부의 캠프로 보내져 본국으로 송환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영국에 체류하게 되었다. 영국선박들은 프랑스 병사들을 다시 브레스트, 쉘부르, 노르망디, 브르타뉴 반도의 각 항구에 다시 복귀시켜 귀환한 병사들 대부분이 독일군과 내전을 개시했다.
프랑스는 영국해군이 영국군의 철수를 우선시하여 그 댓가로 프랑스가 패했다는 것에 깊이 실망했다.
프랑스군의 프랑소와 다르랑 장군은 영국군이 탈출에 우선해야 한다고 명령했지만 5월 31일에 처칠이 파리에서 회담을 열 때 간섭하여 철수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해 영국군이 호위사단을 담당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했다.
최종적으로 수 천명의 프랑스군이 항복했지만 6월 4일에 26,175명의 프랑스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하루가 더 연장되었던 것이다.
영국정부는 덩케르크에서의 막대한 군수품과 장비의 손실이 재정적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미국에게 부탁해 훗날 랜드리스 법안을 이끌어 내게 하는데 성공했다.
참고 : 랜드리스 법이란 미국이 타국에 전쟁물자를 수출하는 것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법안이다.
2차대전 초기 미국은 유럽전선에서 중립을 지키며 타국에 무기수출을 금지했다.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의 선수기(船首旗)는 <덩케르크 잭>이라 불리며 1940년 덩케르크 구출작전에 참가한 크고작은 민간선박들만이 사용했는데 당시 군함이 이를 달았던 것은 해군원수의 승선함 뿐이었지만 이후 영국해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53D564DC007F321)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기,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깃발이기도 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6F41594DC0081608)
현재 영국해군이 사용하는 해군기는 성 게
오르기우스의 십자기에 유니언 잭을 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