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일인대전(一人大戰) 1 "넌 누구냐? 네놈이 둘째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당사혁이 분노해 소리쳤다. 감정이 극도로 고양된 탓에 목소리에는 내공의 힘이 담겨 있었다. 단지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 당사혁의 모습이 그 럴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남자는 너무나 태연하게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내가 그랬지.' "네놈..... 가만 두지 않겠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야." 남자가 숲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어둠에 잠겨 있던 그의 모 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음!" 당관일의 눈매가 좁아졌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평범한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남자의 몸에서는 무언가 불길한 냄새가 났다. 마 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이 가장 고요하듯 남자의 몸에서는 고요한 박력이 느껴졌다. 당만혁이 남자를 보며 분노를 드러냈다. "감히 당문의 사람을 죽이다니. 네놈이 앞으로 무림에서 발을 붙 이고 산다면 스스로 내 손목을 잘라 버리리라." 그러자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태곡에 들어왔던 모든 이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처참하게 죽어 가던 양민들이 당하면서 느꼈던 그 절망, 그 분노를 모두 느끼게 할 것이다. 죽어서도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 하게 만들어 주마. 비록 내가 오늘의 혈겁으로 지옥에 떨어진다 할지 라도. 이것이 나 적무강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이다." 푸드득! 그의 거대한 외침이 폭풍이 되어 숲 속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순간 새들이 기겁하여 하늘을 날고 짐승들이 그의 살기에 괴로워하며 날뛰었다. 살기가 넘치는 고함을 토해 낸 남자, 그는 적무강이었다. 소림사를 떠나 산서성에 도착해서 그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잿더미 로 변하다시피 한 문파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로 인해 피 해를 보는 것은 인근의 주민들이었다. 관에서는 손을 놓고 그저 바라 보기만 할 뿐 개입할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천왕성의 흔적을 쫓아 태곡까지 온 그가 본 것은 그야말로 목불인 견의 참상. 주민들 전체가 참살을 당한 데다 극독에 중독된 증세마 저 보였다. 주민들의 시체를 만지자마자 손끝을 타고 극독이 올라왔 다. 순간 화륜심결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주민들이나 근처에 쓰러진 무인들처럼 중독될 뻔했다. 단지 손끝의 느낌만으로도 적무 강은 그들이 얼마만한 극독에 중독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분노했 다. 최소한의 도의란 것이 있다. 그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제 아무리 칼밥을 먹고 칼날 위에서 잠을 자는 무림인들이지만, 자신들 끼리의 싸움에 양민들을 결코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최소한 의 도의이고, 지켜야 할 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은 그런 최소한 도의와 선을 무시했다. 양민들을 이용해 음모를 꾸미 고, 학살하고. 이들은 도대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 걸까? 힘이 없는 양민들 은 그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고 보는 걸까?'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적무강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서리서리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거대한 분노였다. 아직도 죽어 가던 아이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의 눈가 에 흘러내리던 눈물 한 방울이 적무강의 가슴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 켰다. 서문아 외에는 남의 일에 무관심했던 그의 가슴을 움직인 것은 여인이 죽어서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이었다. 그녀의 눈물이 적무강을 움직인 것이다. 적무강의 얼굴이 변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 의 얼굴과도 같았다. 스릉! 그가 생사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순간 당사혁과 당관일은 가슴의 기혈이 날뛰는 것을 느끼며 기겁 을 했다. "너, 너, 감히 당문과 척을 지려 하느냐?' 당사혁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러나 적 무강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만약 오늘의 일을 당문에서 지시한 것이라면 당문도 가만두지 않 으리라." "너 이놈! 감히.....!" 당사혁이 이를 부들부들 떨었다. 순간적으로 적무강의 기세에 위 축되긴 했지만 발밑에 누워 있는 당종혁의 시체를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이곳에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당관일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맹룡이 아니면 강을 건너지 않는다 했다. 눈앞의 남자에게서 풍기 는 기운은 분명히 맹룡의 기운이었다. 평범함 뒤에 감춰진 그 포악 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이가 덜덜 떨려 왔다. 천왕성의 수괴도 가 슴이 떨릴 정도로 강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 밑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스르릉! 마침내 적무강이 생사도를 완전히 빼 들었다. 그리고 당관일을 가 리켰다. "당신, 분명 오늘의 혈겁에서 양민들을 배제할 힘을 가지고 있었 다. 그런데도 당신의 조카들이 날뛰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은 전적 으로 당신의 책임이다." "그래, 그것은 내 실수가 분명하네. 하지만 더 큰 피해를 막고자 했던 일이네.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대의를 위해서는." "대의란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역겹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소수의 사람을 희생하는 게 너의 대의냐? 아서라. 너무나 역겹고 더 러워서 구역질이 난다." "인정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네가 날뛸 이유는 될 수 없네. 자네는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까. 설마 자네 도 협사라고 자부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잘 보게. 저들 천왕성을 가만두면 더 큰 참사가 중원 땅에 일어날 것이네. 이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시체의 산이 쌓일 것이고, 민초들은 피눈물 을 흘릴 것이네. 자네는 그래도 좋은가? 자네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도를 내려놓게. 그리고 우리를....." "닥ㅡ쳐!" 화아악! 갑작 거대한 살기가 밀려왔다. 이에 당관일이 기겁을 하며 몸을 피했다. 그가 삼 장을 이동해 조금 전가지 그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 다. 그러자 가로로 길게 갈라진 땅이 보였다. 만일 그가 그곳에 그대 로 있었다면 그의 몸은 두 동강이 났으리라. 자신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더러운 궤변, 역겹다." 순간 적무강이 살기를 토해 내며 당관일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관일이 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저자와 부딪치지 말고 피해라. 현재 우리로는......" 터ㅡ엉! "숙부님!" 당사혁이 기겁해 소리쳤다. 그의 눈앞에서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 어지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느새 적무강이 당관일의 앞에 서 있었 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발차기에 이제까지 무적으로 알고 있던 그의 숙부가 저 멀리 피를 흩뿌리며 튕겨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적무강이란 남자가 악귀처럼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쉬악! 순간,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가던 당관일이 몸을 뒤집으며 혈수를 펼쳐 냈다. 비록 내공의 태반이 유실되어 제대로 된 위력은 보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죽이는 덴 충분한 힘이었다. 그러나 그 가 펼친 혈수의 기운은 적무강이 흔든 일도에 너무나 쉽게 와해됐다. "제길!" 당관일이 이를 악물며 연신 혈수의 절초를 펼쳐 냈다. 몸이 어떻 게 되든 내공이 얼마가 남았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눈앞 에 악귀처럼 달려드는 남자를 떨쳐 버려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 는 너무나 간단하게 그의 절초를 파훼하며 달려들었다. 문득 남자의 눈가에 떠오른 진한 홍선을 보았다. 마치 지옥에 흐 르는 피의 강물처럼 선명한 홍선. 그리고 유리보다 차가운 남자의 눈 동자가 보였다. 그의 눈동자에 경악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 었다.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슈각! "크하학!" 허리부터 양단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불같은 통증이 뇌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 다. 주르륵! 눈물과 함께 핏물이 흘러내렸다. 허리가 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지고한 내 공 때문이다. 그는 입술을 악물며 위를 보려 했다. 그의 눈에 하늘이 비쳤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도. 남자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애원했다. "제...발 저 아이...들을 살려...주게. 저...들은 당...문을 이끌 어 갈....." 푸욱! 순간 적무강의 도가 확대되면서 그의 의식이 영원히 끊겼다. 적무강은 당관일의 미간에 박았던 생사도를 뽑아내며 차갑게 중얼 거렸다. "당신과 당신 조카들이 죽음으로 내몬 그들에게는 당신처럼 애원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비록 허리가 양단된 채 그에게 애원하는 당관일의 모습이 애처로 웠지만 그의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이미 살계 를 열기로 작정을 했으니까. "이놈, 감히 숙부를 죽이다니!" "널 죽여 버리겠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 앞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당사혁 과 당만혁이 적무강을 보며 소리쳤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들의 눈앞 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정신은 그야말로 공황 상태였다. "이야아아!" 당사혁이 커다란 고함을 내지르며 팔을 내뻗었다. 슈슈슈! 허공이 온통 비침으로 빽빽이 물들었다. 적무강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터터터텅! 순간 비침들이 그의 앞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호...신강기?" 당사혁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분명 적무강의 앞 에 나타난 반투명한 막은 호신강기가 분명했다. 소림사에서 얻은 것은 비단 생사구류도의 후삼식뿐만이 아니다. 적무강은 면벽 수련을 통해서 새로운 내력의 운용 방안을 깨달았고, 그 결과 호신강기 또한 쓸 수 있게 되었다. "젠장! 빌어먹을!" 당사혁이 분통을 터트리며 있는 대로 암기를 집어 적무강을 향해 내던졌다. 그러나 나타난 결과는 똑같았다. "네, 네놈은 악마냐?' 당만혁이 입술을 벌벌 떨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적 무강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들에게만큼은 얼마든지 악마가 되어 주겠다." "으으으!" 그 살기 어린 목소리에 당만혁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당만혁은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자는 왜 자신들에게 이러는 것인가? 그깟 무지렁이들 몇 명 죽여다고 이 리도 광분하는 건가? 도저히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천에서 그들은 무소 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몇 명을 죽이더라도 그들에게 뭐라 할 수 있 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겨우 촌무지렁 이 몇 명 죽여다고 이리 분노를 한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너?" 갑자기 당사혁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적무강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 이다. "넌 십자성 철방의 그 장인?" "그래! 용케 기억하고 있군." 적무강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겨우 한 번 보고 자신을 기억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문...혁이도 네놈이 죽였느냐?" "문혁?" "그래! 흑기대와 같이 갔던 내 동생 말이다." "그놈이 문혁인 줄은 모르지만 흑기대와 같이 왔던 당문의 개새끼 하나를 죽인 적은 있었다. 죽일 작정으로 팼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하더군. 제발 그냥 죽여 달라고. 그래서..." "너......?" ".....그래서 그의 소원대로 해 줬다." "으드득!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으아아!" 당사혁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눈앞에서 당관일과 당종 혁이 죽고, 그의 사촌인 당문혁마저 죽었다. 눈앞의 남자에게 지독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무공이 얼마나 되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지금 은 그저 눈앞의 남자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싶을 뿐이다. 그가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촤아아! 그의 몸에서 다시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을 비롯한 수많은 암기 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하늘에 꽃비가 내리는 듯했다. "만천화우(滿天花雨)인가?" 문득 적무강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스르륵! 그의 도가 미끄러지듯 횡으로 그어졌다. 그 어떤 기세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조도 없이 들이닥친 기운은 암기의 꽃비를 횡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투두둑! 마치 거짓말처럼 하늘 가득 내리던 꽃비가 멈췄다. 수많은 암기들 은 기세를 잃고 바닥에 떨어져 내렷다. 그리고 그 순간 적무강은 이 미 당사혁과 당만혁을 지나치고 있었다. 철컹! 어느새 생사도는 도집으로 찾아 들어가 있었다.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곧 천왕성의 무리들도 뒤를 따를 테니." 적무강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 거기 안 서! 죽여 버릴.... 테다. 널..." 당사혁이 미친 듯이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적무강은 눈을 감 았다. "움직일 수 있다면......" "뭐?" "어...! 어!" 그 순간 당사혁과 당만혁의 몸이 기울어졌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 히고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투둑! 당사혁과 당만혁의 상체가 비스듬히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빛이 가득했다. 번쩍! 그 순간 적무강이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부터가 나의 전쟁이다." |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이혈(天刃血)과제5권 11"과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힘차고 신비로운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독!
즐감하고 갑니다.
다녀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