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의 의미(마태 6:25): The meaning of not being anxious (Matthew 6:25)
할렐루야! 평강의 하나님! 온 세상이 불안합니다. 코로나로 그리고 급변하는 현실로 그리고 정치, 경제적인 불안으로 모든 사람이 미래에 대해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현실입니다. 주를 믿는 모든 백성에게 아무 걷도 염려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이 세상을 승리하며 어떤 경우에도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친 심령, 병든 심령에 새 힘을 주시고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수많은 우리의 이웃에게 평강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증거하게 하시고 이들이 주로 인해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샬롬!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경제는 더욱 힘들게 되었습니다. 서울 시장과 부산 시장의 선거로 그리고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로 그리고 윤석열 검찰 총장의 퇴직으로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고 미국도 방위비를 큰 폭으로 인상을 했습니다. 그래도 봄이 찾아옵니다. 산과 들에 파릇 파릇 새싹이 돋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의 시대에 우리는 요동치는 현실을 보면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위로받고 힘을 내고 또 복음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장 25절을 보면서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6.25는 우리에게 전쟁과 참상을 떠오르게 하지만 마태복음 6장 25절은 이와는 반대로 우리에게 걱정과 염려를 말라는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본문과 아울러서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의 다른 곳의 말씀도 찾아보았습니다.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누가복음 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누가복음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태복음 6장 25절로 34절은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목숨과 음식, 몸과 의복을 대조시키시고 더 중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더 중한데 우리는 때때로 음식에 생명을 걸기도 합니다.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을 찾아서 전국을 헤매기도 하고 맛있는 한 끼를 위해서 비행기도 타고 제주도도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멋진 옷을 입기 위해서 고도하게 살을 빼기도 하고 온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그리고 음식과 옷을 위해서 과도하게 몸을 사용해서 밤을 새우며 일을 하기도 하고 위험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의 경우에 집을 위해서 일생을 허덕이며 사는데 이 경쟁은 태어나면서 아니 뱃속에서부터 태교로 시작이 되어서 배움의 경쟁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몸은 돌볼 틈이 별로 없습니다. 60이 넘어서 여유를 가지고 살고자 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집과 음식과 의복을 가지고자 너무나 우리를 돌보지 않고 혹사한 결과 당뇨와 고혈압이 찾아오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한 질병이 걸려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모두가 더 중요한 생명과 몸보다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일을 더 중하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비극입니다.
이 세상의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서 경쟁에서 지는 것은 곧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으로 세상이 가르치고 이 세상의 가르침에 속에서 나도 너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찾지 않고 그냥 죽음을 향해서 질주를 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됨을 비유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에 핀 꽃입니다. 공중의 새는 이렇게 인간이 음식을 위해서 수고하듯이 수고를 하지 않아도 다 먹고사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먹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옷은 들에 핀 꽃이 인간 중에서 가장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입은 것보다 더 잘 입고 있음을 말씀하시며 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욱 귀한 것이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임을 설명하십니다. 더 중한 우리를 먹이고 입히지 아니 하시겠느냐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를 확실히 믿으면 우리는 세상을 따라서 경쟁을 하며 살 필요가 없게 됩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을 하시니 우리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의 삶에서 한발 물러나서 과연 이런 경쟁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먼저 할 일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몸과 마음과 생명을 바쳐서 경쟁적으로 해야 할 일이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이 절대로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순서와 일의 순서와 경쟁의 순서와 우리의 목표에 대해서 분명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도 이 땅에서의 정의도 별로 아니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먼저 그들이 구하고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입니다. 좋고 큰 자신의 집, 큰 차, 그리고 좋은 직장, 그리고 마음에 드는 배우자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그리고 의복들입니다. 이런 일에 생명을 걸고 또 몸을 바치며 타인을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새롭게 거듭난 영생의 생명을 다 바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룩하게 된 우리의 육체를 전적으로 헌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절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집 문제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귀한 우리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으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그리고 집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이를 믿고 택한 백성 선택된 선민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과 이별을 해야 됩니다. 세상 사람의 삶과 불리된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놀고먹으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조용히 자신의 손으로 일을 하면서 벌어먹고 사라는 말씀입니다. 과도하게 세상을 따라서 올인해서 살지 말라는 말씀이지 우리의 양식을 위해서 놀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적성에 맞게 일을 하면서 먼저 추구할 것이 하나님이 나라와 의라는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이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헌신했고 순교했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주님의 약속대로 공급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역시 이렇게 믿음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생명도 걸지만 100억을 모아도 역시 염려는 그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불면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 영원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늘 공포로 다가옵니다. 속히 예수님께로 나아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고 안식을 누리려 합니다. 안식이 없다면 모든 인류는 순식간에 몰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쉴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의 일을 하시고 칠일째 쉬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쉽니다. 그리고 우리의 수고가 끝날 때 누릴 안식을 역시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쉴 수 있는 날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영원한 안식을 누릴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도하게 합니다. 이 불안한 세상에서 큰 놓임이 되고 큰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일생을 생명과 몸을 바쳐서 큰 부를 이룬 분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불안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젊을 때와 같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이제는 가까이 온 것을 느낍니다. 많은 재산과 아내와 자녀가 있지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생명을 더 이상 연장시킬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미리 들어놓은 보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늙은 육체는 소망이 점점 없어집니다. 여기서 불안이 오고 또 잠을 예전과 같이 깊게 자다가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가 걱정이 되어서 염려가 되어서 잠도 마음대로 들 수가 없게 되고 이렇게 몸도 마음도 점점 더 망가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곧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따라서 먹고 마시는데 집 문제에 올인한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100 세 시대다 하고 희망을 가지려고 하지만 100세를 사는 사람은 오천만의 국민 중에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70-80이 되면 99.99%의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헛된 소리에 희망을 걸지만 우리는 다 적당한 나이에 죽고 맙니다. 이런 불행한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먹고 입는 삶과 달리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이 삶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먼저 교회에서 잘 배울 필요가 너무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찌 올바르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 제자들이 3년을 따라다니면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배운 것과 같이 또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과 같이 잘 배울 필요가 먼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상세하게 제자들에게 잘 가르치셨습니다. 요한 사도의 글 5편의 성경과 그리고 베드로 등 예수님께 직접 배운 사도들의 글을 통해서 이들이 예수님께 얼마나 잘 배웠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벌에 상관없이 예수님께 순종하며 잘 배운 이들은 모든 세상의 박사와 학자와 식자를 능가하는 진리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배운 분들이 또 거친 절차가 있으니 성령을 받은 일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시면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하셨는데 이분께서 성령님이시고 이렇게 잘 예수님께 배운 분들께 또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잘 배우고 그리고 반드시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을 선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와 왔다면 이런 과정이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모든 과정을 다 마친 뒤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하면서 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예수님의 파송으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려고 여기저기를 다녔고 기적도 행했습니다. 언제나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하루하루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이제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세상의 가르침에서 속히 벗어나서 이런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세상의 삶에서 벗어나서 추구해야 되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으로 연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쏟아야 하는 열심과 땀과 눈물과 피를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쏟아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에서 걱정이 많으십니까? 혹 세상에서 몸부림치자 실패를 했습니까? 혹은 먹고사는 문제로 너무 고민이 많습니까? 속히 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고 속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시고 또 교회에 출석하시고 기도하시고 그리고 몸으로 교회에서 봉사하시고 그리고 입술로 예수님을 증거하시고 그리고 성령을 사모하며 늘 선물을 받기를 기대하고 또 충만한 삶을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같이 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같이 하나님의 나라도 이해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나라가 구성이 되려면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입니다. 그리고 바다와 하늘입니다. 영토, 영해, 영공이 우리가 사는 터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강과 산이 있습니다만 섬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산과 강과 들과 그리고 바다와 섬이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처음 우리의 조상 고인돌족이 이 땅에 기원전 1000년 경에 전라도 해안지방으로 상륙을 했을 때 한반도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중국과는 바다로 많이 떨어져 있고 일본에는 아직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배운 강 중심의 삶과 완전히 다르게 우리는 바다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다는 가뭄이 없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없습니다. 물론 태풍이 가끔 한반도에 상륙을 했겠지만 바다에서 조금 떨어지면 해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수백수천 종의 고기가 물 반 고기 반으로 넘쳤습니다. 갯벌엔 조개와 해삼과 게 종류와 낙지 등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각종 해초류도 넘쳤습니다. 굶어 죽을래야 절대로 굶어 죽을 수가 없는 삶이 바닷가의 삶입니다. 그리고 강에도 역시 어종이 넘쳤고 들과 산에는 산나물이 또 넘쳤습니다. 산과 들은 개간하고 밭도 만들고 논도 만들어서 농사를 지으면 봄에 파종하고 여름이 잘 자라서 가을엔 수확했습니다. 나무도 울창해서 땔감은 걱정이 없었고 동물도 온 한반도에 가득했습니다. 필요하면 사냥도 하고 그리고 집에서 가축을 다 키웠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늘면 동쪽으로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만 하면 되었습니다. 모두가 형제요 친척이요, 친구이니 싸울 일도 없었습니다. 이 땅의 에덴동산 청동기 1천 년의 역사가 이 땅에 존재했음이 성경을 통해서 온 천하에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 하면 이렇게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5천만의 백성이 오손 도손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저를 비롯해서 다문화 가정이 많지만 과거엔 모두가 형제요 자매인 한민족이 이 땅에 살았습니다. 절대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한 핏줄이 우리입니다. 경쟁을 하되 상대방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배려하면서 경쟁을 해야 됨을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천만이 집과 자신의 땅이 모두 있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집이 있는 사람이 52% 없는 사람이 48%이고 땅이 있는 사람이 30% 없는 사람이 70%인 상태로 절대로 한국헌법에 규정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1% 보장이 아니 되는 지금과 같은 나라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지금의 나라는 세상적으로도 지옥과 같은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측면에서도 절대로 생각도 꿈도 꾸어서는 아니 되는 저속한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땅에 대한 법은 구약에 있는데 땅의 소유는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세를 들어서 사는 나그네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소유의 땅을 일부 무정한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 가지고 수많은 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러한 나라가 아닙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믿는 이는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집과 땅으로 부를 늘리려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지옥에 가는 길 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과 집은 판 사람이 언제나 다시 살 수가 있게 했고 50년에는 모든 땅과 집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게 했습니다. 좁은 땅에서 과도하게 집과 땅을 그리고 재산을 소유하고 수많은 동족 형제를 집도 없이 땅도 없이 살게 하는 사람들, 형제의 정도 저버리고 동족의 도리도 저버린 자요,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도 저버린 자로서 이러한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믿는 모든 사람도 이런 하나님의 법도 성경도 모르고 세상을 따라서 살다가 역시 불행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사야서 5장에 있습니다. 공동 번역으로 봅니다.
사 5: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자본주의에 취해서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린 부자 목사와 장로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경고입니다. 자 땅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지 말씀을 일부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땅과 집을 가지고 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를 모르시고 아직도 큰 집 큰 차를 그리고 좋은 옷을 즐기는 자는 목사이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이 작은 한국에서 5천만이 행복하게 사는 법 즉 구약의 율법을 잘 연구하시고 속히 회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은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요건은 국적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한국민이 됩니다. 그리고 다른 특이한 사항에 대해서 국적법에 잘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도 한국에 살 수는 있으니 이런 국적법에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국민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국민은 어떻게 됩니까? 세상의 사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고 영접할 때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교육과 세례의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게 됩니까?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교회에서 받고 그리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면 모든 이렇게 절차를 거친 사람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도장을 찍으시고 이분이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절차입니다. 이런 절차를 줄여서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이렇게 세상을 구원하시려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동정녀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모든 행위가 죄인데 인류의 조상이 범죄로 원죄가 있고 우리가 살면서 짓는 자범죄가 있는데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구약 성경의 율법 아래 죄인인 것입니다. 다만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의인으로 착각하고 마귀에 속아서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구원받은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리고 즉 예수님을 전해서 이들을 구원해야 내어야 하는 사명이 있고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길 의를 구하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통치권입니다. 통치권의 경우 국가 즉 대한민국의 경우는 여러 정치 제도를 가졌습니다. 왕정 시는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의 북한과 같은 일인 독재 체제였습니다. 왕제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제도가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사람의 통치를 받고자 세운 제도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모든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하나님께서 하시고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과 국가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는 예수님 한 분이시고 모든 믿는 사람이 형제와 자매로서 서로 평등하게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신분이 아니고 계급이 아니고 하나님의 집을 일을 하기 위해서 직분을 분류해 놓은 것에 불과하기에 이 직분으로 특권을 누리거나 혹은 권세를 부리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종도 아니요 오직 마귀의 종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악을 자행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가정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민족이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법이 존재합니다. 어떨 때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규율을 하는 성문으로 된 법조문이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집단에는 법이 존재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이 있었고 고조선의 8조 법금이 있었고 로마법, 영미법, 대륙법이 있었고 지금은 각국에 통치의 기본법인 헌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는 헌법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하위법이 잘 정비가 되어 있으니 민법, 상법, 형법, 행정법, 그리고 절차법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과 자치제의 규칙이 있으니 모든 법은 헌법의 테두리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무효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있고 만드는 입법부가 있고 심판하는 법원이 있습니다. 모든 나라의 법의 체계가 이렇게 각국의 헌법을 기준으로 엄격하게 정비가 되어있고 이를 어길 경우 사형으로서부터 각종 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이보다 더 엄격하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법의 존재를 어떤 신학이나 어떤 목사가 가르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교인이 세상에서 행동하게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파괴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한국의 개신교의 모습이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자 내가 교인입니다. 수십 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법이 있으며 이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법이 구약의 모세 오경의 율법이니 잘 배워서 세상에서 살면서 지켜야 합니다라고 가르치신 분을 얼마나 보셨고 나도 그렇게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아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지켜야 하는 법이 존재함을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하면 아직 배우지 않으신 것입니다. 대신에 이런 이야기는 쉬지 않고 설교로 교육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율법은 아니다 행위도 아니도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이 이신칭의이다 칭의된 백성은 한번 칭의가 되면 절대로 취소가 없다 따라서 구원은 취소가 절대로 없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상급의 문제이지 구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가르침을 듣지 않은 개신교 성도가 이 땅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가르침이 내가 천국에 가고 성경의 가르침과 합당하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 땅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20억 명 중에서 적어도 12-3억 명은 아니다 하는 가르침입니다. 반쪽짜리 가르침에 한국의 개신교는 올인해 있는데 저는 이 가르침이 절대로 성경적인 가르침도 아니며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니며 바울의 가르침도 아니며 잘못된 신학에서 나온 올바르지 않는 가르침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하니 10만의 목사 중에서 저를 좋아하는 목사가 이 땅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다고 가르침을 받은 성도 중에서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바로 분별이 되는 이 쉽고 간단한 문제를 신학이 엉망으로 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무책임한 목사가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이 아니라 파괴의 주장인 것입니다.
마태 5: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 말도 아니고 어떤 위대한 신학자의 말도 아니고 오직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단호하게 못을 박았으면 적어도 예수를 믿는 목사나 신학자라면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씀을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모든 서신서를 해석을 해야 됨이 그의 피로 구원받고 십자가로 용서받은 종이라 하는 분들의 태도이어야 하는데 바울 사도의 서신서를 그만 잘못 이해해서 이런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하늘과 땅의 통치자요 우리의 구주이시며 최후의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던져 버리고, 믿고 네 마음대로 세상에서 살아라 그래도 천국에 간다고 마귀의 속삭임을 주의 종이라고 지금도 요란하게 소리 높여서 강단에서 인터넷에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온 성도가 지 마음대로 땅도 집도 사 모으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매일 40명씩 자살하는 우리의 이웃을 외면하고 물질에 미쳐서 천국에 간다고 낄낄대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오면 목사요 장로요 권사이나 세상에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살면서 조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나라의 엄격한 법입니다.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되는 법이고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올바른지 그른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유일한 하나님의 율법으로서 모세 오경에 있고 613조문으로 정리가 되며 이를 예수님께서 가장 큰 두 계명으로 줄여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표현하셨고 그리고 10계명으로 또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지켜야 하는 지상 최고 최선의 법이 율법이며 정의롭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고 믿음을 굳게 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율법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공의롭다고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이 법을 능가하는 이 세상의 법은 있을 수가 없으니 어찌 100년 사는 죄로 물든 인간이 영원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법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마 23: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모든 율법의 조문을 잘 지키되 의와 신과 사랑의 더 중요한 율법의 중심이 되는 규정을 지킬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는 다양한 혜택을 받을 권리가 국민이면 있다는 것입니다. 각종의 자유권과 참정권, 평등권 등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아울러서 4대 의무도 역시 규정을 해서 어길 경우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권리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세상이 주는 국가가 주는 권리에 비해서 비교가 불가한 권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니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권리이고 이도 천국에서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언제나 보호와 위로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들으십니다. 그리고 성도를 정의롭게 살게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늘 함께 하시고 우리와 고난을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수고와 짐을 다 져 주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율법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셔서 새롭게 창조를 하셨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셨으니 이는 세상이 절대로 줄 수가 없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총을 우리가 받ㄱ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의무가 있습니까? 우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심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을 복을 주기 위해서 택했다는 말씀만 주의하는데 실상은 이런 목적을 두고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도 똑같습니다.
사43: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이스라엘)는 나의 증인(여호와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 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하신 목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절대로 불의하게 살면서 즉 율법을 어기면서 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살고자 하면 반드시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자 하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의 뜻에 합당하게 정의롭게 살고 그리고 이웃과 하나님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법이 없이 믿음 하나 만으로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법이 엄격한 법이 있으니 율법입니다. 이 법은 영원합니다. 이 법이 완전히 시행이 되기 전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지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을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조문 조문 잘 지켜야 하는 구약의 백성과 달리 신약의 성도가 이 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완성되길 예수님께서 원하십니다. 어떻게 이 율법이 완벽하게 지켜지게 되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은 완성이라고 하셨고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는데 사랑 속에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고 하셨습니다.
마 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둘째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은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사랑의 실천에도 성령의 인도에도 우리는 반드시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 분별력이 율법을 보면서 오는 것입니다. 율법에 반드시 우리의 행동을 먼저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땅을 사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집을 위해서 어디에 투자를 하라고 합니다. 너무나 확실하다고 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어떤 공사의 사람의 주장이라 틀림이 없다고 합니다. 곧 10배의 수익이 난다고 합니다. 집도 팔고 땅도 팔아서 속히 그 집과 땅을 사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사랑과 성령의 인도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살펴야 하는데 제가 이미 땅과 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드렸습니다. 좁은 땅에서 집도 땅도 없는 사람이 각각 48%, 70%인데 또 내가 내 집과 땅을 팔아서 투기를 한다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율법은 말씀하시고 있음을 믿고 이웃에 대한 도리도 하나님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령의 인도도 절대로 아님을 굳게 믿고 이런 유혹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그리고 간음 등 국가가 허락한 것 같이 보이는 범죄도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예전에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중대 범죄로서 여전히 믿는 사람의 법이 율법이 금하기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중요한데 율법이 아니다 율법은 폐기가 되었다 믿음이면 전부이다 믿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하는 어떤 주장도 모두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선과 악이 구분이 되고 정의와 불의가 구분이 되는 것을 마귀에 속아서 헛된 길로 가고 이 길을 가면서 고상한 채 하고, 목사도 하고 성도 앞에서 선생으로 지도자로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만큼 한국은 발전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조속하게 갈 것입니다. 이미 한국의 현실에 희망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이런 진리를 왜곡하고 불의한 세상을 만든 목사와 신학자는 회개하고 속히 정의로운 길을 찾아서 가야 할 것입니다. 대형 교회의 부자 목사는 모두가 이제는 차도 평범한 차를 타고 집도 보통의 집에 살고 그리고 옷도 월급도 퇴직금도 모두 다 평범한 사람이 받는 수준으로 낮추어야 하고 모든 모든 재물을 가난한 교인과 교회를 돕는데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재물입니다. 그리고 부자 장로와 권사는 정말로 천국에 가고 싶다면 이 작은 땅에서 홀로 잘 살려고 했던 과거를 회개하고 모든 재산을 정리를 해서 정말로 평범한 수준으로 남기고 모든 재물을 가난한 믿음의 형제와 교회를 돕는데 다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나라와 의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일부만 알아 보았습니다. 교회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대해선 다음에 따로 말씀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종에게 주신 의미 있는 사건을 통해서 회개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경부고속도로 변에 있는 어떤 아파트에서 근무를 하던 크리스천의 경험담입니다. 고급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밤에 두 명이 근무를 하는데 경부고속도에서 빠져나온 차량이 이 아파트에 불법으로 차단기를 치고 진입을 했습니다. 밤이라 고속도로에 달리는 차량의 속도는 빛의 속도로 달립니다. 이제 이 차량의 운전자가 나의 자녀라고 가정을 합시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이 운전자가 술에 만취가 되었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게이트가 곳곳에 있지만 수 킬로나 가야 합니다. 이사실을 아는 부모는 어떤 곳이든 속히 그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 근무하는 아파트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이 운전자의 부모가 바랄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그 근무자가 차단기 고장 난 것을 배상을 시키고 나가라고 해서 고속도로로 밀어 넣어야 합니까? 혹은 근무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다가 차단기에 이르기 전에 다시 고속도로로 추방을 해야 합니까? 술에 만취가 되어서 언제 사고로 자신의 자녀도 죽고 또 다른 사람도 죽게 하거나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만취 상태의 운전을 계속 고속도로에서 하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내가 그 아파트에 입주하고 경비원에서 월급을 주고 있다면 이들이 근무를 충실히 해서 이런 만취의 운전자가 아파트로 진입하기 전에 먼저 막고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아니면 손해를 배상을 시키고 그 운전자를 다시 아파트 밖으로 쫓아내야 합니까? 이제 경찰을 부르면 운전면허가 취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운이 없게도 이 운전자는 자신의 동생의 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면허는 있지만 보험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이 딸이 어떤 선택을 하고 경비원이 어떤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까? 내 딸이고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입니다. 그런데 그 운전자는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들어온 곳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아빠도 자신의 딸이 그 아파트로 들어온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만취된 딸은 판단력을 잃었습니다. 우선 자신이 어떤 상태에서 운전을 했는지 알고 이 일이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를 바랍니다. 그냥 아파트 경비원이 자신을 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차를 몰고 어디든지 가려고 합니다. 물론 배상은 하겠다고 약속은 할 것입니다. 경비원은 그냥 보내면 부서진 차단기를 고칠 비용을 자신이 부담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상사의 책망이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먼저 차단기에 진입하기 전에 막아서고 돌려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 먼저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은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입니다. 우선 우리는 이 운전자가 구원을 받을 것에 주목을 해야 됩니다. 죽음의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술에 만취된 채 다행하게도 아무런 사고가 없이 다른 사람도 다치게 하지 않고 안전한 아파트로 들어왔습니다. 물론 차단기가 조금 휘어진 부분은 작은 돈으로 변상을 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선행을 베풀어서 조용히 끝을 내려고 경비원이 애를 쓰도 이 운전자가 이들을 믿지 않고 또 술에 취해서 올바른 선택도 못하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고 경찰은 출동해서 이 운전자의 차와 운전자의 상태를 살피고 전후 사정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주 측정을 할 것입니다. 만취가 되었으니 운전면허가 취소가 될 것이고 보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차량을 몰았으니 벌칙이 따를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문제에 물입하면 죽음의 질주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원한 것에 대한 인식과 감사가 사라집니다. 산 것은 분명하니 이제 다른 것에 대해서 이익을 보려고 합니다. 가장 사랑의 측면에서 보면 불행한 것은 경비원이 먼저 차단기에 진입하기 전에 발견하고 차를 정지시키고 다시 고속도로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아마도 진입하는 차량이 자신의 아파트의 차량이 아니고 또 차단기를 부수면서 들어오는 것을 언제나 미리 막도록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차단기를 살짝 치고 차도 별로 다치지 않고 아파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는 자신이 살게 된 것에 대해선 감사도 안도도 없이 우선 술 먹고 운전한 사실과 다른 차량으로 운전한 사실과 그리고 보험이 없는 사실에 너무나 마음이 쓰이고 걱정이 되어서 이를 해결할 것을 우선적으로 모색을 합니다. 그것도 정신이 온전치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경비원도 최선을 다해서 경찰을 부르기 전에 배상을 받고 이 운전자를 안전하게 귀가를 시키려고 차를 파킹을 시키고 다른 곳에서 잘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이 운전자는 이를 믿지 않고 미적이다가 결국은 경찰에 신고가 되었고 운전면허가 취소가 되고 벌금이 물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운전자의 아버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 모든 논쟁과 사실에 대해서 왈가불가할 것도 없이 사랑하는 딸이 우선 가장 가까운 게이트로 빠져나와서 몸도 차도 안전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고 안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만취된 상태에서 고속도 야간 운전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동시에 앗아갈 수가 있었던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서 완전하게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10만 원도 아니드는 차단기 수리비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아빠는 어느 정도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 딸이 외동딸입니다. 그리고 운전면허 취소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벌금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딸을 태우고 다닐 차도 있고 기사도 있습니다. 집에 전용 기사가 있습니다. 이제 이 아빠는 안도합니다. 다른 일은 별로 중요하지도 신경을 쓸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경비원이나 혹은 정신이 나가서 자신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당시의 술 취한 딸은 지극히 아무것도 아닌 작은 문제에 사로잡혀서 생명의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고 오직 벌을 받지 않고 경찰에 인계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인식이 될 수가 있고 경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술 취한 운전자가 자신의 아파트로 진입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고 그리고 미리 차단기 앞에 어떤 바리케이드를 놓고서 아예 아파트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으면 바랄 수도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위험도 모릅니다. 그러나 딸을 사랑하는 아빠는 정신이 올바른 아빠는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자신의 딸과 생명에 대해서 아무런 해가 없이 작은 돈으로 문제가 해결이 된 것에 대해서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영생이 시작이 되었고 이제 사는 날 동안 충성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다 보면 절대로 죽을 일이 없고 그리고 상급이 하늘에 쌓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받고 살면서 생기는 문제는 이제 어떤 문제라 해도 별로 중요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난 극도의 안도가 있습니다. 정말로 큰 문제 해결이 되었고 우리는 이제 이 세상에서 근심할 일들이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으로 끝이 나는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근심하고 염려할 일들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를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무나 귀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보호와 위로와 돌보심이 늘 있고 절대로 우리를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에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어디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여러분도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고 그리고 잘못된 자리에서 속히 떠나고 하나님의 계신 곳으로 이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늘 승리의 노래가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