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드디어 끝냈습니다.........." "오! 그래! 축하한다 정말수고많았다 야! 그건 그렇고 빨리들어와라 허리띠 풀어놓고 한잔하자..." 2001년 7월 22일(즉 20년전 오늘) 그는 세계 8000m급 이상 최고봉 14좌중 마지막인 MT. "K2 - 8611m 세계2위봉"의 정상에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후 우리는 일단 너무나 큰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로서 "고생끝 행복시작" 이 열리는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미뤄놨던 7대륙 최고봉을 비롯 남극,북극, 심지어는 베링해협 통과등 갈수록 첩첩산중인 과업이 꼬리를 물었다.
그것도 산후배 "한왕용"군까지 14봉 완등을 하고나니 미치 마약환자가 점점 더 고강도의 약이 필요하듯이 산행의 위험도는 점점 높아져만갔다. 가령 MT. Everest를 오르더라도 Normal route로 올라서는 마치 뒷동산 약수터 가는 정도로 치부되어며 Direct 로 그것도 신코스로 또 무산소로 오르지 못하면 그누구도 관심을 갖지않게 되었다.
일례로 "엄홍길"군만 하여도 고봉 14좌에 추가로 위성봉 2좌를 더하여 16좌 등정에 힘쓰느라 생사람 여럿잡고 본인도 지옥에 끌려갔다 부처님의 가호로 구사일생 돌아와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도않고 휴먼재단을 만들어 그가다닌 오지에 학교및 병원을 지어주는둥 봉사활동에 전념하여 Nepal등지에 가면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고있는실정이다.
그러나 이친구는 계속 현역으로 고집부려 MT. Everest 에 Direct route를 개척하다 금쪽같은 후배 2명을 잃는등 악조건을 이어가다 2011년 10월 29일 MT. Annapurna 8012m에서 산후배 "신동민" 과 "강기석"과같이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성우 이놈이 이번에 이븐(Even)까지 치는등 실력이 많이 향상되어 기쁩니다. 성우란 그의 장남으로 당시 뉴질랜드에서 골프를 전공하고있었는데 아들이름만 거론되면 칭찬이 자자했다. "거봐! 아들놈 프로선수되면 애비가 케디백 메고 뒤따라 다녀야되는데 산에만 쫓아다니다 언제 골프 배울래?" "잔소리말고 빨리 시작해 머리는 내가 올려줄게" "예! 이번에 다녀오면 꼭 시작하겠습니다" 이 약속은 공수표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아들은 다행히 얼마전 5월 2일 장가를 가서 옛산선후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했다.
자고로 우리 옛말에 헤엄 잘치는놈 물에 빠져 어떻게되고 방귀가 잦으면 X을 싼다나 어쩐다나 그의 무모한 도전을 지금생각하면 말렸어야되었지만 그고집 꺽지못했을것이며 단 1%의 확률만 있어도 도전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지금도 높이 사고싶다.
위의 기념패는 그의 세계최고봉 14좌 등정기념으로 마지막 등정봉인 MT. K2 8611m 정상부근에서 체취한 돌을넣어 만들었으며 그의 산행에 도움울 준 50명을 골라 증정한것 인데 그는 떠나가고 없는데 그것만 본인의 서재한곳을 쓸쓸히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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