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마지막 주말과 이어지는 공휴일인 다음주 월요일에 영국은 노팅힐 카니발로 축제분위기를 마음껏 즐긴다.
노팅힐 카니발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흑인음악과 예술을 선보이는 카니발이다. 사실상 유럽에서 흑인음악이 대중에게 알려지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도 이 노팅힐 카니발이다. 노팅힐 카니발을 통하여 흑인들의 음악과 예술이 백인 사회인 유럽에 새로운 기여를 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노팅힐 카니발이 인종차별주의에 의한 폭력과 인종폭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종간의 반목과 갈등이 카니발을 통하여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노팅힐 카니발은 진정한 축제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의 정수에 도달하는데 약 40여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전쟁으로부터 사회를 재건, 복구하는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민지 국가로부터 많은 이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중 카리브해 사람들이 5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 대규모로 이민을 오게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런던 서쪽에 있는 노팅힐 지역에 거주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거시설이 형편없었으며, 파시스트 조직이 본부를 둔 노팅힐 지역에는 인종차별이 심하여 인간의 충돌 일촉즉발의 형편이었다.
1958년 8월 말 노팅힐 지역에 대규모 흑인에 대한 폭력과 린치가 가해졌다. ‘영국을 백인의 것으로!’(Keep Britain White)라는 슬로건이 벽에 쓰여진 것처럼 인종차별에 의한 노골적인 폭력이었다. 당시 신문에서도 ‘백인들에 의한 흑인사냥’(Nigger Hunt)이라고 표현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인종폭력에 영국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나 있는 것으로 믿었던 영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에도 이민을 통제하는 정책을 수립해야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카리브해에서 온 이민자들은 영국에 살려왔고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대신 카리브해의 흑인들도 전통과 문화가 있다는 것을 노팅힐 지역에 알리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는 카리브해의 전통과 문화를 백인에게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노팅힐 지역에 거주하는 카리브해 출신들 스스로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스스로에 대하여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959년에는 ‘카리브 카니발’이라는 이름으로 노팅힐의 아주 작은 인종 그룹에서 참가하여 카니발을 시작하였다. 크게 주목을 받지도 못하는 카니발이었다.
1959년에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사건으로 카리브해 출신의 흑인 젊은이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전체 영국 사회가 분노하였다. 이 젊은이의 장례식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을 포함하는 다양한 인종이 모두 참가하여 애도를 표하고 인종차별주의에 대하여 함께 분노하였다.
이러한 사건과 작은 카니발을 통하여 해마다 계속되는 카니발에는 점점 더 많은 다른 인종의 문화도 참가하고 카니발의 규모도 계속 커졌다. 카니발의 이름도 노팅힐 카니발로 정착이 되었다. 노팅힐 카니발을 통하여 소수 인종 집단은 자신의 문화적인 전통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이주해온 새로운 사회에 문화적인 다양성을 더하는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카리브해의 레게 음악도 노팅힐 카니발을 통하여 유럽에 소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백인의 입장에서는 카리브해 흑인들을 백인의 노동을 대신하는 노동자로, 일하는 기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백인이 가지지 못한 다양한 음악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노팅힐 카니발을 통해서이다.
이제 노팅힐 카니발은 영국 전체의 축제가 되었다. 하지만, 1958년의 영국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인종폭동을 기억할 때 노팅힐 카니발이 왜 진정한 축제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피로 물든 과거의 역사에서 이해와 화합의 축제가 싹뜬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노팅힐 카니발은 1958년 백인들에 의한 흑인에 대한 폭력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던 8월 마지막 주말과 이어지는 공휴일인 다음주 월요일에 카니발을 벌임으로써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