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사진 찍는 이유
사진은 정말 좋은 기록이다. 어떻게 찍던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
사진 한 장에 엄청난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다. 사진 속성을 알아보면 찍은 날짜, 위치, 크기 이외에도 사진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시각장애인 엄마가 아기의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무턱대고 찍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하며 찍었다고 이야기 해야겠다. 물론 엄마는 사진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커서 자기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진기와
엄마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이 얼마나 탁월한 능력과 방법이더냐.
엄마가 그림으로 그리기는 어려운 방법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진은 가능하다.
나의 어릴 때 사진은 하나도 없다. 흔히 보는 첫돌 때 사진, 돌상을 받거나 엄마 품에 안겨 찍은 사진을 우리는 가끔씩 보았지만 나는 없다. 국민학교 3학년인가 열 살쯤 부산 피난시절 어디인지 누가 찍어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진이 있다. 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그 당시의 나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얼굴은 물론이고 체형 복장 주변 환경을 모두 볼 수가 있으니 귀중한 기록이다.
그 다음은 국민학교 앨범이다. 하지만 그 앨범은 지금 없다. 그래서 귀한 것이 중학교 입학사진이다. 엄마와 나란히 학교 정문 앞에서 찍었다. 이 사진은 그 당시 유행했던 이동 사진사가 찍었다. 물론 사나흘 후 학교 앞으로 오면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이 사진에도 많은 역사가 보인다. 엄마의 모습, 교복 입은 내 모습, 배경에는 중학교 간판, 교문, 학교 건물 등도 보인다. 그때부터는 사진이 기념일마다 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사진은 한 장이다. 졸업식 사진에는 엄마 아빠 형제까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다.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 정말 개인 역사와 가족 역사, 그 당시 유행, 날씨까지 보인다. 사진을 보면서 희미해지는 추억을 되돌려 다시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
요사이도 산책을 나가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리고 사진에 의미를 부여한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나름 정리하여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생각이나 삶이 사진 속에서 살아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사진도 살고 글도 살아 움직인다.
정물인 꽃도 동영상으로 찍는다. 움직이지 않는 꽃도 바람과 함께 찍으면 멋진 생명으로 태어난다. 바로 바람까지 찍어지는 것이다. 바람이 잎을 흔들고 꽃이 이야기하게 하니, 그것이 바로 꽃도 바람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거기에 작지만 들리는 바람소리까지 함께 노래를 한다. 작은 실내악이요 자연 음악회이다. 더 좋은 것은 벌이나 나비가 꽃에서 붕붕대거나 나풀거리는 것이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꽃이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자연의 향기가 곁을 지날 때마다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꽃을 들여다보면 순백의 아름다움이 어찌 저 가늘고 키 작은 나뭇가지에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무리지은 꽃송이가 백 개 아니 수백 개는 되겠다. 눈도 즐겁고 향기에 코가 호강을 하고 귀에 들리는 작은 벌과 나비의 날갯짓 파동에 어두워진 귀가 활짝 열린다. 바로 <나무수국>의 향연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아니다. 7월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9월초까지 계속 피어난다. 그리고는 연분홍에서 갈색으로 변한다. 또 추운 겨울을 나고 새 꽃이 피어나면서 바짝 마른 채 매달려 있던 갈색 꽃을 순백의 새 순으로 바꿔치기한다. 끈질긴 생명이요 탄생이다. 분홍 꽃도 갈색 꽃도 언제나 계속 당당함의 연속이었다.
작년 여름 장인의 1930년대 양정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모교에 기증하였다. 아내가 집에서 보관하던 것을 모교에서 보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보냈더니 귀한 것을 보내주었다고 답신이 왔다. 정말 지금으로서는 만들 수 없는 기록이 아닌가.
오늘 찍은 한 장의 사진도 이런 저런 의미를 담는다.
하나의 사진에 둘 셋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의 길도 사진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첫댓글 옛날에는 카메라가 사치품에 속했지요. 그래서 피난시절 초등학교 사진이 하나도 없을 뿐더러 중고교 학창시절 사진도 별로 많지는 않는데, 정민형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서 지난번 50주년때 추억의 사진을 많이 보내줘서 부럽기도 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복 35회 형이 사진기를 구입 많이 찍었습니다. 그 덕에 좀 있지요. 역시나 사진은 좋은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