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고 사랑스러웠던 2016년 5학년 3반 아이들과의 한 해가 끝나갈 때 쯤,
각지의 학교는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학년을 지원해볼까, 어떤 업무를 희망해볼까,
혹은 이 업무를 어떻게 뗄까...
내년에는 운동회(학예회)가 있다던데 체육부장(문예부장)은 누가 될까,
올해 힘들다고 소문난 학년이 어디였더라? (내년에 그 학년 안만나도록..)
등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며 선생님이 눈치작전을 시작합니다.
각 학교마다 나름대로의 학년 배정 원칙들이 있으나 언제나 원칙이 들어맞지는 않고,
선생님이 희망하는 학년과 업무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해마다 선호하는 학년에 사람이 몰리기에
모두가 원하는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지는 않거든요.
어쨌거나,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다를때, 누가 희망하는 학년을 받고 누가 안 받을 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보라매초는 원칙을 세웁니다.
올해 힘든 업무나 힘든 학년(주로 고학년)을 받았던 선생님은 높은 점수를 매기고
또, 우리 학교에 오래 근무한 선생님들은 역시 높은 점수를 주어 차년도에 학년 배정때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둔 거지요.
또, 우리 학교에 오래 근무한 선생님들은 연차마다 점수가 쌓이니까 4~5년차 쯤에는 역시 배정때 어드벤티지를 주게 했습니다.
이 제도가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학년을 지도한 선생님들, 그리고 이 학교에 오시지 얼마 되지 않은 선생님들이 희생되는 분위기이도 한데
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생활지도가 어려우니 학교에서는 나름의 고심 끝에 이렇게 점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또, 우리 학교에서의 연차가 오래될수록 떠나기 직전 해나 그 전의 해에서는 원하는 학년을 배정받을 수도 있기도 하고요.
물론, 저 점수로 등수를 매겨 또 칼같이 자르지는 않습니다. 점수가 높아도 저경력 교사들이 희생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ㅠ_ㅠ
혹은 학교장(감)님의 판단 하에 따라 더 적절하고 우수한 선생님을 적소에 배치하시기도 하지요.
(그럴때는 면담으로 설득하시긴 하긴 합니다. 하지만 인사권은 고유의 권한이기에
사실 장님이 마음대로 임명해도 되긴 합니다. 어쩌면 면담을 하는 것은 그나마 나은 학교일 수도..)
저는 2012년, 15년, 16년 근무를 했고
15년에는 6학년에 청단 업무, 16년에는 5학년에 청단업무를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제 점수는 높은 편이었습니다.
차년도에 거진 원하는 학년을 할 수도 있었지요.
게다가 저는 그 다음해에도 고학년 담임을 희망했기에 무난하게 학년 담임을 할 수 있을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공문이 내려옵니다.
서울시의 모든 초등학교에 1학교 1초등체육전담교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2017학년도 학교평가에 체육교과전담교사 반영 예정' 이라고 굵직하게 표편해놓았지요.
초등체육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생의 체육활동을 강조하고 싶기는 한데
교사들은 체육을 못하겠다고 하고, 스포츠 강사는 내심 원하면서도 정책적으로는 싫다고 하는 초등교사의 목소리를 나름 반영하여
"그렇다면 각 학교별로 체육전담교사를 운영하시오!" 하고 공문이 내려온 것이지이요.
협조를 부탁한다고 써져있지만 보통 협조인 경우는 강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할 '업무전담팀'의 문제도 언제나 교육청은 '협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굵직하게 강조했지요. '학교평가에 반영' ㅋㅋㅋ
협조를 해주면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협조를 안하면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이니 사실상 명령인 셈입니다.
어쨌든, 이 공문이 서울보라매초의 모든 교사들에게 공람되는 순간 학교는 안그래도 술렁였지만 약간 더 술렁였습니다.
공문도 내려왔겠다, 각 학급의 담임들이 체육수업을 어려워하기도 하겠다. 좋은 제도다. 체육교사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누가하지?"
아닌 학교도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체육교담은 '그래도 남자선생님이 해야지!' 하는 인식들이 있습니다.
보라매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겠지, 그래도 남자선생님이 하겠지.
몇 안되는 남자선생님들도 '우리 중에 누군가 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니까요..ㅋㅋ
교장 선생님이 누구를 지목하실까에 대한 기대감(혹은 두려움)을 안고 다들 학년배정을 희망해서 써냈습니다.
저는 2016년도에 맡았떤 6학년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한 해를 더 맡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6을 지망했고, 저중고 골고루 지망해야한다는 원칙 하에
6. 4. 2. 5 4지망까지 지망하여 써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구서준 선생님 잠깐 내려오세요."
음... 나 구먼...ㅋㅋ 하고 내려갔습니다.
.
교감 선생님께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구서준 선생님 2년간 담임하느라 바빴지? 재작년에는 아파서 쓰러지기도 했잖아.
올해도 6담임을 썼지만 선생님은 휴식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특별히 교과 전담으로 뺴놨어.
그래도 우리학교는 큰 학교니까 다른 과목이 안섞이니 편하고 좋잖아.
큰 행사(결혼준비)도 앞두고 있는데 올 해는 쉬면서 해. 이건 정말 신경써준거야. 알지?
크게 대들지 않고 바로 알겠습니다. 라고 하고 체육전담을 맡았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니 남교사중에서 제가 제일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사알짝 아쉬운 마음은 있었습니다.
제 점수가 밀릴 점수도 아니고, 제가 스스로 담임을 희망했는데,
결국 제가 원하는 학년을 배정해주지 않을 때 약간의 부탁이라도 해주셨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강제로 정책을 시행하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인데, 서준쌤이 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주시기를 기대한 건
저의 너무 과분한 욕심이었을까요?
교과를 맡으면서 '수업 시수 감축 및 학교 업무 경감'이 있었지만
저희학교는 업무전담팀을 하게 되면서 사실 제 업무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됐습니다.
업무전담팀을 하면서 담임선생님들께서 맡던 많은 업무들이 3,4학년 담임과 교과로 넘어가게 됐거든요.
.
저희 학교의 특수한 사례일까요? 아닙니다.
매년 학교가 시끄러운 시즌이 있습니다. 이 학년 배정과 성과급 등급 평가 시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때로는 올 한해 관리자분들의 부탁으로(혹은 명령으로) 희생되는 교사들이 꽤나 있습니다.
특히 껄끄러운 교과에서 영어, 체육교과를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배정해야 하는 경우라면 체육은 저경력 남자가, 영어는 저경력 여자가 맡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일반화는 하시면 안됩니다...^^)
어쨌든, 그렇게 2017년에는 5학년 체육교과를 맡았습니다.
약간 어색하게 맡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장점도 많았습니다.
저도 평소에 확 자신있게 진행하지 못했던 체육시간을 위해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고
주변 연수들을 쫓아다니고 연구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있는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전담이 업무가 많아봐야 담임의 업무량을 어차피 따라갈 수는 없거든요.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쉬는시간이 있었고, 그 여가시간에 다시 재충전을 하거나 체육수업 연구,
그 밖에 동학년 선생님 돕기, 학교 행사 참여 등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학기에는 기회가 닿아 대만으로 잠시 파견도 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담임교사였다면 맡은 아이들이 밟혀 지원하기도 쉽지 않았겠지요?)
자, 그럼 다시 전환하여. 서울시교육청의 1학교 1체육교사 정책은 어떻게 되었을가요?
여전히 많은 학교가 참여하고 있을까요? 결과는 저도 모릅니다.
일단 저희학교는 올 2018년에는 체육전담 교사 선생님이 없긴 합니다ㅎ
-구서준 드림(http://9tschoo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