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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편하게 잘 살고 있는 내게
자식들을 만난다는 것은
약간 버거운 숙제를 푸는 일이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힘겨운 노동이다.
그러나 내게 당신은
소풍 가기 전날 밤의 기다림이고
내 마음의 소중한 기쁨이다.
오 월은 가정의 달.
일년 중에서 가장 소중한 달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가정의 달
5월.
그 5월이 때로는 버겁다.
자유를 앗아 가는 달이기도 하다.
연례 행사의 달이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것이 5월이다.
자식들을 기다리고
손주들을 기다리고
기다림의 설레임을 줘서
좋은 게 5월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들이지는 않는다.
혼자 사는 집이라 그들이 와도 먹일 게 거의 없다.
겨우 내 놓는 다는 게 과일과 과자 몇 조각, 그리고 차 한 잔 정도.
그래서 요즈음엔 며느리 내외를 만나든 지
손주들과 함께 사위 가족들을 만나더라도
가능하면 밖에서 본다.
그게 서로 더 편하기도 하다.
번거롭지 않고 바깥에서 바로 헤어질 수가 있으니까.
딸과 아들을 만날 때에도 같은 날 만나지 않고 다른 날
따로 따로 만난다.
한날 한시에 만나면 정신이 없고 성가시다.
그리고 은근히 누구를 먼저 챙겨야 하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다.
딸과 며느리
사위와 아들.
이번에는 싹싹한 며느리 가족을 먼저 만났다.
그런데 얼굴 색이 별로다.
걱정 말라고 한다.
달거리로 인한 그냥 생리통이라고 한다.
그건 다행이다.
자식들이 아프면 괜히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온다.
일기 예보에도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미리 만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미룰 수도 없다.
그들을 만나자마자 향한 곳은 라발스 호텔 스카이뷰 카페다.
28층이라 하늘은 물론 주변 바다와 사방이 확 터여 좋다.
우선 카페의 전망이 좋으니
궁색한 대화꺼리를 걱정 할 필요가 없어 좋다.
거기에 비까지 오니
카페 분위기와 날씨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대화의 시작을
쉽게 풀어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송이와 후니의 나이 차도 열살이 넘으니
송이의 입이 쉬지도 않는다.
내내 무언가 재잘 거린다.
시간이 갈수록 빗방울이 더 굵어 지고 바람도 새게 부는 것 같아
움직이지 못하고 카페에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다가
상의 끝에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그냥
롯데 호텔 식당가로 가기로 했다.
메뉴는 크게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도 좋아 하고 나도 오랜만에 먹고 싶은
피자와 스파게티로 정했다.
거기에 메뉴를 한 두 개 더 추가 하면 끝이다.
물론 라발스 커피숍에서의 커피 값과 식사 값은
모두 내 부담이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미리 그들에게서 용돈을 받았으니
최소한 받은만큼은 내가 부담하자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다.
누구를 만나든지.
식사 후 백화점 내 서점을 한 바퀴 돈 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대신 나태주 시집을 한 권 사 달라고 하여
맘에 드는 책을 한 권 손에 쥐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활짝 개였다.
오늘은 워나 가족을 만나는 날.
만나자마자
윤서가 뛰어 와서 품 안으로 쏙 안겨 든다.
바로 후손들을 만나는 기쁨의 그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 하나 때문에
기다림의 설렘이 주는 행복이기도 하다.
만나기 전 약속은 기장의 대형 커피 숍에 가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할까 하다가
울산 대왕암 가기로 장소를 바꿨다.
가기 전에 롯데백화점 오렌지 갤러리에서 커피 한 잔과 견과류 한 봉지
그리고 손가락만한 백설기 한 조각 먹고 나왔다.
일정 고객에게 무료 제공되는 디저트라고 한다.
그런데 가는 길이 조금 흐리다.
아침에만 해도 화창한 날씨 였는 데.
드디어 도착한 울산 대왕암 숲.
2년 전 부산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얼마 후 오고는
이 번이 또 처음이다.
아이들은 처음 와 봤다고 한다.
경주 대와암은 가 보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대왕암의 이런저런 풍경들.
더욱 정답고 반갑다.
마치 오래 전 연인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다.
홀로 여기까지 해바라기 하러 어찌 왔을까.
너도 어지간히 무리를 싫어 하는 모양.
이 곳 이 터
해동용궁사 터를 꼭 빼 닮았다.
무릇
대부분의 해안가 바위들이 그리 하겠지만.
양양 휴휴암처럼.
대왕암을 한 바퀴 돌고
편안한 숲길도 한 바퀴 돈 다음
출렁다리로 향했다.
입장료가 무료다.
예전에는 입장료를 받았었는 데.
모험을 즐기고 겁이 적은 터라
이런 것은 그저 껌이고 재미 있다.
긴 롤로코스터도 싱가폴에서 몇 해 전에 탔었는 데.
대왕암을 돈 후 찾아 온 식당.
주말이고 연휴라 식당마다 사람들이 꽉 찼다.
찾아 온 곳도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대왕암과 일광 해수욕장이 붙어 있어 더욱 그렇다.
식사 후 바닷가를 한 바퀴 돈 후 찾아 온 카페.
다행히 아주 붐비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위가 많이 시끄럽고 웅성거린다.
손님들 대부분이 대가족들로 이루어져 더욱 그렇다.
밤길을 따라 집에 오는 길.
큰 숙제 하나 해결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 하다.
물론 아이들 마음도 나와 같으리라.
숙제 하나 풀었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