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존재와 시간의 함수관계 그 진실 --홍대식 시집 『매화나무 그늘에서』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자아 인식과 ‘나’에 관한 해법 현대시의 경향은 대체로 ‘나’에 관한 인식을 통해서 지향하고자 하는 주제를 투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정하거나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나’의 존재에 대한 확연한 시적 신뢰를 구축하는 시법으로 발현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昨今)의 경향은 우리의 대다수 시인들이 시도했거나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적으로 선호(選好)하고 있어서 별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새로운 주제의 창출(創出)을 위한 실험이나 모험을 찾을 수 없다는, 말하자면 현재에서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안주(安住)의 시적 감성을 자주 읽을 수 있다는 혹자들의 언설(言說)이다. 우리 현대시가 소재의 취택이나 주제의 투영 그리고 표현 방법에서 현격하게 발전적인 요소로 안정적인 시법으로 창작하고 있다는 고무적인 경향도 많이 살펴볼 수가 있는데 이는 우리의 생활 상황이나 사유(思惟)의 범주(範疇)가 그만큼 확대되었다는 반증(反證)이다. 여기 혜송(慧松) 홍대식(洪大植)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매화나무 그늘에서』는 우선 그의 진솔한 인생론을 대할 수가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시적 정신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인생과 삶의 절정에 이른 시기지만 나이가 들어감을 후회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 이 시집을 상재할 수 있는 분량과 함께 성숙된 그의 자아 인식이 명징(明澄)하게 발현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이 시집에서는 몇 가지로 분류하여 그 주제별로 읽어보면 먼저 자아의 인식과 여기에 부수적으로 동행하는 시간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시 이 자아와 시간이 융합하거나 조화를 통해서 발생하는 ‘그리움’에 관한 언술이 많이 형상화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연과 동화(同化)한 서정적 사유가 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오는 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서 있다 누구를 기다려 서성이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휑한 거리 어디로 가야 하나? 오늘도 지친 영혼, 지친 몸을 이끈 무게 받친 두 다리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그 누구를 찾으려 함인가 알 수 없는 고갯짓은 상념을 털어버리듯... 은근한 기대감마저도 내리는 소나기는 용서를 안 하고 묵은 때 씻기우듯 몸을 적시고 또 적시어도 나 몰라라 하는 방황의 끝은 알 수 없어 거침없이 달려왔던 지난날의 청춘세월 젊음이란 피 끓음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이렇게 반백의 머리와 몸은 지쳐만 가는 건지... 이유와 회한을 묻어 버리기엔 마음의 상처는 커서 지나는 이름 모를 행인에게 길을 묻듯 물어본다 나!! 지금 어디로 가야만 하는 가를... --「비 오는 거리」전문 홍대식 시인은 ‘나’라는 시적 화자(話者-persona)를 작품 중심에 설정하고 자아 인식의 근원으로 실재(實在) 자신과의 동일감각으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어서 더욱 친밀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나’라는 화자가 ‘휑한 거리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의문형으로 먼저 자아에 대한 행방을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그는 다시 ‘오늘도 지친 영혼, 지친 몸을 이끈 무게 받친 두 다리 /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그 누구를 찾으려 함인가’라고 현재 실상의 ‘나’는 영육(靈肉)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로 그 누구를 찾‘기 위해서 고행(苦行)을 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확인하려 하고 있어서 그가 구현하려는 진실은 현실과 괴리(乖離)되어 있는 내면의 정신적인 진실을 탐색하기 위한 해법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그에게는 진정한 ‘나’를 위해서 상당한 고뇌와 갈등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러한 모든 방해요소들을 융화하기 위해서 마지막 결론처럼 ‘이유와 회한을 / 묻어 버리기엔 마음의 상처는 커서 / 지나는 이름 모를 행인에게 길을 묻듯 물어본다 / 나!! 지금 어디로 가야만 하는 가를... ’하고 풀리지 않는 실생활(real life)에서 야기(惹起)하는 지적(知的)인 고뇌를 ‘비오는 거리’의 이미지에서 탐구하고 있다. 그다지 길지도 않게 살아온 인생길이라 누구에게도 한번 물어 보지 않았건만 바르게 걸어가는 거냐고? 지금 걸어가는 길이 진정 옳게 걸어가고 있는 거냐고? --「이제서야!」중에서 무 엇 이? 왜? 이토록 처절한 몸부림속의 물음은 자아의 방랑, 정착 없는 고달픔 누군가의 곁에 떠돌기만 하는 나 혼자만의 서러움이련가. --「고독」중에서 무엇을 하여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이 무에고, 인생이 무엇이더냐? 이 중년의 나이에... --「내일」중에서 보라. 여기에서도 인생(‘나’)에 관한 의문은 계속된다. 홍대식 시인이 추구하는 인생관에 대한 해법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게 된다. 어쩌면 소재나 언술들이 너무 관념에 치우쳐져서 실재의 ‘나’와 혼동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문학의 발상이나 동기는 어차피 ‘나’의 인식과 사유의 향방(向方)에서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지만, ‘바르게 걸어가는 거냐고? / 지금 걸어가는 길이 / 진정 옳게 걸어가고 있는 거냐고?’라거나 ‘자아의 방랑, 정착 없는 고달픔 / 누군가의 곁에 떠돌기만 하는 / 나 혼자만의 서러움이련가.’ 혹은 ‘무엇을 하여야 할까? /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삶이 무에고, 인생이 무엇이더냐?’라는 어조(語調-tone)와 같이 너무 진솔한 그의 심경에서 ‘나’의 진정한 가치관을 탐색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홍재식 시인이 탐구하려는 ‘나’에 관한 해법으로 적시하는 자아 인식의 이미지는 많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특히 작품 「나! 여기에」 「내 그림자」 「인생여정」 「세상살이」등에서도 그가 간절하게 현현하려는 ‘나’에의 현명한 인식과 그 해법을 하나의 고뇌로 헤쳐 나가고 있다. 2. ‘세월의 잔상’과 화해의 인생론 홍대식 시인의 절박한 다른 하나의 문제는 지금까지 살펴본 ‘나’와 동행하는 시간성에 관한 민감한 반응이다. 시계초침 재깍재깍 세월의 흐름을 일리우고 간간히 저 멀리서 뜀박질 하듯 들려오는 숨 가쁜 호흡소리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야속함은 시간 속 허공에 멈추어진 채 의절하고 지나온 유년시절 애달파 하는 하소연은 삶의 마감을 재촉하고 향기만은 어린 시절 동심과 같고 천진스런 아가의 모습은 머릿속에 여전한데 기약 없는 나의 약속은 시간을 되돌리기엔 너무나 멀리 와 있구나. --「시간 속의 향기」전문 그렇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 세월의 야속함은 / 시간 속 허공에 멈추어진 채’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재정립하려는 욕구에 대헤서도 의문의 언어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그가 결론을 제시한 ‘기약 없는 나의 약속은 / 시간을 되돌리기엔 / 너무나 멀리 와 있구나.’에서 우리는 그에게 잠재(潛在)한 시적 원류에서 풍겨나온 ‘시간 속의 향기’를 접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현대시는 흔히들 시인의 체험론을 자주 거론하는데 이는 그 시인이 살아온 체험에서 시적 발상과 주제까지도 천착(穿鑿)하는 것이 통상적인 시법의 보편성이다. 이러한 체험에서 추출한 진실이 이미지로 혹은 주제로 현현되는 시법을 보게되는데 ‘유년시절 애달파하는 / 하소연은 삶의 마감을 재촉하고 // 향기만 있는 어린 시절’이라는 회상(回想)을 통한 현재의 실상과의 비교된 성찰의 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목말라 하면서 삶에 애착과, 고달픔에 서러움조차 목울대에 걸려 토해내지 못하는 중년이란 아픔의 방랑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중에서 홍대식 시인은 의식은 위와 같은 흐름으로 보아서 ‘인생’과 ‘사랑’ 그리고 ‘삶의 애착’ 등 다양한 사유(事由)들이 ‘중년이란 아픔의 방랑자’로 떠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으로 ‘못난 인생 여정’으로 부정적인 결론을 적시하고 있다. 그는 다시 ‘삶에 무게와/ 인생의 무게를 느낄 때가 되어서야 / 이제사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 그 삶의 질곡속에 / 벌써 흐르는 세월이 나를 업고 가는 구나!!(「흐르는 세월」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이제사’라는 부사(副詞)로 ‘나’를 인식하게 된다. 그의 시간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집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 면죄부란 삶에는 주어지지 않는다 / 나의 온 마음과 정성으로 / 행복을 찾고 지켜 가야하 는 미래만이 있기에...(「내일이 오면」중에서) - 늘어진 세월이 가련한 연민이라면 / 하늘의 푸르름은 찬란한 청춘이였기에 / 사랑의 그 리움을 담아 주었지(「하늘바다」중에서) - 돌아다 볼 시간도 없이 / 훌쩍 지나버린 바쁜 세월 속에서도 / 때때로 잊혀지지 않는 사 람들이 있다(「돌고 돌아」중에서) -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진 / 퇴색된 사진 한 장에 미소 띤 얼굴하나(「다시 언다면」중에 서) - 의미는 산다는 삶 자체 /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 걷고 걷다 보면 어느새 다다르는 목 적지(「인고의 세월」중에서) - 한없는 지나온 시간들을 / 다만 아픔이라고만 여기지 않고(「감사한 하루」중에서) - 지나간 세월의 잔상 속에 잊혀져가야만 할 망각의 한(「간절한 기도」중에서) - 가는 세월 속에서도 느껴지던 님의 고운 숨결은 / 잠 못 드는 이 밤에도 소리 없이 내게로 다가오고(「멀리가는 향기」중에서) - 살아가고 / 또 살아 가야할 삶의 세월(「홍제천 길을 걸으며」중에서) 3. 그리움의 원천인 ‘나와 그대’ 홍대식 시인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다. 이는 ‘나’와 ‘시간’에서 창출된 이미지로서의 ‘그리움’이다. 그는 이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대’라는 화자와 ‘아버지’와 ‘어머니’ 등 가족들로 대별하게 되는데 그의 시적 어조는 너무나 진지하면서도 애절한 정감이 풍기고 있다. 나_. 이제 그대를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마음과 가슴으로 물밀듯이 다가오는 느낌만으로 그대라는 것을 알기에 그대_. 이제 믿음이란 소중함을 알리라 마음과 가슴으로 파도에 일렁이는 물거품이 아니라 나 하나라는 이유를 알기에 나와 그대_. 이제 우리라는 사랑이 생겼다 마음과 가슴으로 인연의 실타래 한올 한올 풀어가듯 행복이란 작은 성으로 함께 갈 수 있기에... --「나와 그대」전문 홍대식 시인의 심저(心底)에는 먼저 ‘나’가 ‘이제 그대를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인식과 함께 ‘그대’의 ‘믿음이라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와’는 ‘우리라는 사랑’을 그리고 ‘행복이란 작은 성으로 함께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심지(心地)에는 다변적이면서도 적나라(赤裸裸)한 그의 속마음을 후련하게 털어놓고 있다. 결국 ‘그리움=사랑’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그대’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타전(打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속박처럼 피어나는 열망과 욕망에도 / 언제나 자제라는 허울 속에 / 다하지 못했던 그대와 나의 사랑 다툼(「그대 가슴 속에」중에서)’이라거나 ‘구월이 오면 / 이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 그대와 나 한 마음으로 / 영원히 잊지 말자 맹세의 나무 아래서 하트를 그리며...(「구월의 노래」중에서)’라는 간절한 소회(所懷)를 절규하듯이 분사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진원지는 그에게 내재되어 있는 정서의 한 축(軸)이 그의 진정한 대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의 여망과 기원이 함축된 시법을 통해서 분출하는 과정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움 한 자락 남기시려면 / 떠난다 하지마시고 / 길 떠난 철새처럼 다시 오마 기약을 남기소서’라거나 ‘슬픈 이별은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소서’ 그리고 ‘길가다 문득 보고파지면 / 아련한 추억에 젖어 / 그대라는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리다.(이상「그대로 머물길」중에서)’와 같은 어조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움’에 대한 표상(表象-외적 자극과는 관계없이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구체적. 감각적으로 마음속에 재생되는 심상(心象))은 작품「후회」「너의 미소」 「이별의 그 끝은」「파초의 꿈」「그대가」「사랑 그 쓸슬함에 대하여」「반가움과 그리움」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도 명줄이 길기도 길구나 한숨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훔치고 나니 휘 몰아치는 비바람에 잠 못 들고 부러진 곡괭이 자루 둘러메고 밭고랑에 턱 괴고 눈물 훔치시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 밭에는 이제 푸릇이 내민 보리순에 종달새 지지배배 우는 봄이 오고 내 새끼 배부르게 어서 자라다오 거친 손 모은 눈물조차 속내로 갈무리 하신 어머니 깨진 바가지에 식은 보리밥 한 덩이가 너무도 애닯어라. --「보리밭」중에서 홍대식 시인의 ‘그리움’은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집중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그대’와 대칭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턱 괴고 눈물 훔치시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나 ‘눈물조차 속내로 갈무리 하신 어머니’에서 시적으로 설정한 상황(situation)은 육친(六親)에 대한 정의(情誼)가 바로 그의 체험속에서 숙성된 이미지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보리밭’이라는 사물에서 창출한 이미지는 그가 영원토록 잊지 못할 오매불망(寤寐不忘)의 진실이며 그가 시정신(poesie)으로 구축한 그의 진실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자식걱정, 끼니걱정 설움에 백발 되고 / 병석에 계실 적엔 그렁그렁 눈물 맺혀 / “불쌍한 우리자식 어이 살꼬...” // 그렇게 자식 효도 못 받으시고. / 그렇게 바쁘게 가셨나요? / 어 머 니!(「어머니」중에서)’라는 어조에서 우리는 그가 ‘어머니’에 대한 보편성에 절규하는 시적 진실이 명민(明敏)하게 분사하고 있다. 이러한 ‘어머니’에 관한 시적 언술은 ‘유유히 흐르는 영상 속엔 / 우물물에 비추어진 두레박 끌어 올리던 / 고왔던 어머님 모습(「고유 명절」중에서)’과 이 시집의 표제시(標題詩)가 되는 「매화나무 그늘에서」중에서도 ‘나의 사랑과 아픔을 함께 / 가지고 훨훨 나비처럼 떠나버린 / 백발의 고운 모습이 // 무디어지는 삶의 진통에도 / 이맘때면 울컥 / 가슴을 모질게도 시리게 하시던 어머니’라는 정감이 ‘그리움’으로 현현하고 있다. 4. 서정적 자연관과 시적 진실 홍대식 시인의 정서나 시정신에는 친자연적인 주제의 투영을 배제하지 못하는 천성적인 서정시인이다. 어쩌면 우리 시인들은 모두가 서정적 자아를 통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 서정적 자아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생각, 하나의 비젼, 하나의 무드, 하나의 날카로운 정서에서 출발한다는 고 김준오 교수(문학평론가이며 부산대 교수였다.)의 『詩論』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 동일성(serf identity)의 과정 그러니까 인생(혹은 인격이나 개성 등)의 형성이 서정시(lyric)의 본령(本領)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서는 이러한 서정성은 소재(material)에서부터 주제(thema)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개성이 인본(人本)과 자연을 상호 교감하면서 작용하는 특성을 읽을 수 있다. 신라의 향가와 이조시대 정형시(시조)들이 좋은 서정시에 속하나 현대에서는 현실의 복합적인 구조에서 창출하는 일반 서정성을 지칭하고 있다. 북한강 바라보며 어디로 가는 물인지 가는 곳 물어보고 한숨어린 인생여정 운무 속을 헤메이듯 갈 곳 몰라 서러워라 강물의 무심함은 거침없이 제 갈 길로 흐르건만 에이는 겨울 찬바람에 오롯이 서 있는 강가의 마른 고목은 서 있기조차 버거운 세상살이에 힘겨워 하는 나와 같구나. --「북한강에서」전문 이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강’이라는 소박하고 평범한 주변의 소재에서도 ‘한숨어린 인생여정’이나 ‘세상살이에 힘겨워 하는 나와 같구나’ 등을 주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언술은 홍대식 시인이 구현하는 하나의 날카로운 정서에서 출발하는 서정적 자아의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 있기조차 버거운 / 세상살이에 힘겨워 하는 나와 같구나.’라는 어조와 같이 실생활에서 획득한 부조화(不調和)들이 비평적인 언어로 분사하는 것은 서정시의 기능을 다하는 자아형성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법은 ‘포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 정과 사랑을 들고 나는데 / 외로이 닿을 내린 빈 배는 나와 같아라(「황포 돛대」중에서)’와 ‘꿈속에서의 아름다움 끝으로 / 찢어지는 비명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나(「장미」중에서)’와 같이 ‘나’와 자연이 교감함으로써 자아형성의 진실이 홍대식 시인의 심중(心中)과 동일성으로 분사하고 있다. 개울가에 휘 늘어진 버들가지는 봄이 가는 세월에 허리 휘고 햇살 가득 고운 미소는 처녀의 심금을 울리나니 나물 캐는 바구니엔 춘심을 담았는가 나풀나풀 나비 쫓아 사랑을 탐을 내네 이 작품「개나리 처녀」중에서는 자연 정경을 통해서 아름다운 시심(詩心)을 우리들에게 메시지로 전달하여 봄처녀의 심성(心性)과 시적 상황(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는 다시 ‘자유로운 계절은 거침이 없고 / 인간의 한계는 자연이 주는 선물에 / 감동으로 화답을 하지 // 연리지 나무도 대 자연에 순응을 배우고 / 마음을 비우려 애쓰는 인간은 / 한갖 미풍에도 서러움을 느끼지(「자연 동화」중에서)’라는 어조로 자연과의 동화를 정감으로 음미(吟味)하고 있다. 현대시학에서 이러한 자연과의 동화(同化-assimilation)는 흔히들 감상적인 오류(誤謬)라는 표현으로 시인이 자연을 자신의 내면으로 흡인(吸引)하여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시법이 있으며 반대로 투사(投射-project)의 원리로써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해서 ‘자연 사물=나’라는 등식으로 교감하는 두 가지의 낭만적 자연관이라고 한다. 홍대식 시인은 이러한 비정적(非情的) 타자성(他者性)이라고 정의하는 자연의 인격화에 남다른 시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화선지 여백을 채우는 간결한 마음 / 눈과 비와 꽃을 수놓은 대지의 화폭에 / 한 마리 나비와 벌로 가만히 내려 않으리.(「자연 동화」중에서)’라는 동화와 ‘그대 추위에 몸지쳐, / 나에게 오심이 무척이나 더디더니 / 삼월이 가면 춘풍에 몸 실어 / 사월의 꽃처럼 나에게 어서 오서소.(「삼월이 가면」중에서)’라는 투사의 시법으로 자연과의 일체감을 적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는 많은 시편에서 친자연적인 정감으로 작품을 형상화거나 자신의 인격화에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다. 작품 「봄의 길목」「봄꽃 지는 사월」「영산홍 피고지고」「청매화」「사계찬미」「꽃」등에서 자연의 향취(香臭)에 흠뻑 젖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혜송 홍대식 시집『매화나무 그늘에서』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가 외적인 사물이나 현상들에게서 감지되고 포용한 체험들이 내적으로 긍정하면서 삶과 ‘나’에 대한 존재의 인식을 통해서 자아를 성찰하는 보편적인 사유이지만, 그가 설정한 ‘그리움’의 진원지의 탐색과 친자연적인 서정성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천명(闡明)했듯이 ‘매화꽃이 필 때면 오랜 병상에서 고생을 하시다 떠나가신 어머니의 하얀 머리결이 생각이 나고 그 꽃이 질 때면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보내드린 자식의 마음이 많이도 에리고 아파하며 남모를 속내에 그늘로 숨어 보는 못난 자식이었기에 가슴에 새겨 두었던 꿈을 다시금 꺼내어 이제서야 그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고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고뇌에서 느꼈던 글들을 하나둘 모아 갈증을 풀어내 본 부끄러운 작품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라는 진솔한 심경과 거기에 포괄한 진실이 바로 홍대식 시학의 원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너무 관념 일변도로 흘러버릴 우려도 있다. 외연(外延)과 내포(內包)가 조화를 이루면서 궁극적으로 적시하고자 하는 진실이 주제의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라는 철학자이며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적 순간과 형이상학적 순간」의 논지(論旨)를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