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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들을 허준 선생 어록
1. 곡기(穀氣)가 원기(元氣)를 이기면
살이 찌게 되며 장수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원기가 곡기를 이기면 살은 찌지 않고 장수한다.
2. 나라를 다스리는
어진 재상이 되지 못할 바에는
사람과 병을 다스리는 명의가 되겠다.
3. 5가지 맛 중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소금이다.
그러나
되도록 적게, 가능하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4. 배는 덥게, 머리는 차게.
5.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
병이 생겼을 때,
남자인 경우에는
관계를 과도하였기 때문이 아닌가를 살피고,
여자이면
생리상태와 임신 여부를 따져야 하느니라.
6.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수명이 본래 4만3천2백(43,200) 여일,
약 120세이다.
7. 사람은 언제나 침을 삼키면 장수하며
얼굴에 광택이 생긴다.
8. 사람의 몸은 한 나라와 같으니라.
사람이 40세 이하일 때 제멋대로 놀면,
40세 후에
갑자기 기력이 쇠퇴하기 시작함을 느끼게 된다.
쇠퇴가 시작되면 여러 가지
병이 벌떼처럼 일어나기 시작한다.
손을 쓰지 않고 오래 내버려두면
드디어 구해낼 수 없게 된다.
9. 사람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되면
천지간의 도(道)와 합치되는 것이요,
야심이 있으면 도에서 멀어진다.
10. 생각이 많으면 신경이 약해지고,
염려가 많으면 뜻이 흩어지며,
욕심이 많으면 뜻이 혼미해지고
일이 많으면 과로하게 되고,
말을 많이 하면 기가 적어지고,
웃음이 많으면 내장이 상하고,
근심이 많으면 마음이 불안하며,
지나치게 즐기면 뜻이 넘치고,
기쁨이 지나치면 착란에 빠지고,
노여움이 많으면 모든 혈액이 고르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정신이 헛갈려 올바르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이 많으면 초췌하고 즐거움이 없다.
11. 소금 : 서북인은 적게 먹기 때문에
수명이 길고 병이 적으나,
동남인은 짠 것을 즐겨 먹기 때문에 수명이 짧고 병이 많다.
12. 술에 취했을 때는 관계를 하여서는 안 된다.
경할 때에는 얼굴빛이 검게 되고
해소증이 생기는 정도이지만,
심할 경우에는 내장 기능이 망가져서 수명이 짧아진다.
13. 술이 취했을 때는 마차를 달리거나,
높고 낮은 곳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
14. 신맛의 물질은 간에 작용하고,
매운 것은 폐에,
쓴 것은 심장에,
짠 것은 신장에,
단 것은 비장에 각각 작용한다.
15. 아직 생기지 않은 병을 미리 다스린다.
양생법(養生法)은
몸에 손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장수하는 방법이니라.
16. 옛날 진인(眞人)이 있어 말하되
언제나
침을 땅에 뱉지 않는 습성을 지녀야 하며,
무릇 입 속의 침은
금장옥례(金漿玉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며,
하루 종일
밖으로 뱉지 않고 계속 삼키면
사람의 정기가
몸 속에 보존되어 얼굴에 광택이 생긴다.
17. 우유죽 :
우유 한 되(한 홉)에
쌀을 조금 넣어 끓여 죽을 쑤어 상복하면
노인 건강에 가장 좋으니라.
18.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대신,
웃으면 눈물이 나고 콧물이 많아지고 귀가 울리고,
밥을 먹을 때는 침이 말라 괴로운데,
자려고
누우면 침이 흘러넘치고,
소변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게 되고
대변은
변비 또는 설사를 하여,
낮에는
졸음이 많으나
밤에는
말똥말똥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노인병이니라.
19. 60세가 되면
폐정(閉精)하고 배설하지 말아야 한다.
회갑 때쯤 되면
누구나 다 손자 손녀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행위도 필요 없게 되는 것이
자연적 순리로 되어 있다.
정력(精力)은 인체의 근본이니라.
20.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은 고칠 줄 모르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 쫓는 격이며,
그 근원은
캐지 않고 말류만 손질하는 것이다.
21. 추위를 물리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신진대사를 돕고
약 기운을 끌어주는 데는
술처럼 좋은 것이 없다.
22. 취중(醉中)에 정욕을 삼가지 못하고
관계를 하는 것은 정력을 고갈시키고
생명력을 소모시킨다.
23. 하루에 조심할 것은
저녁밥을
지나치게 포식하여서 는 안 된다.
매달
조심할 것은
월말에 월급을 탔다고
술에 대취(大醉)하여서는 안 된다.
한평생
조심해야 할 것은
밤에 불을 켜놓고
관계를 행하여서는 안 된다.
24. 한(漢)나라 때의 괴경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120세가 되었어도
기력이 아주 왕성하였는데
매일
아침 침을 삼키고
이를 악물어
마주치게 하기를 열 네 번씩 하였다고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을 연정법(鍊精法)이라고 한다.
25. 사람이 있되
침 뱉기를 즐겨 진액이 말라 몸이 여위었는데
우연히
훌륭한 사람을 만나
회진술을 배워 오래 실천하였더니
체력이 회복되어 윤택하게 되었도다.
許浚 (1539-1615)
1. 개요
2. 허준 선서
1. 개요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의.
한국 한의학 발전의 지대한 공헌자.
조선 중기의 명의. 자는 청원(淸源)이고 호는 구암(亀巌)이다. 본관은 양천으로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2동)에서 출생한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서지학계(서지학자 이양재씨 주장)를 중심으로 경기도 장단군 대강면(현재 파주시)에서 출생했다는 학설이 등장해 논란 중에 있다.
양천허씨 시조 허선문(許宣文)의 20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상우수사를 지낸 허곤(許琨)이며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許碖)이다. 어머니는 허론의 소실 영광 김씨다. 이복형으로 허옥(許沃)이 있으며, 바로 아랫동생인 허징(許澂)은 같은 어머니가 낳은 동복형제로, 허준은 허륜의 차남이다. 일단 허준이나 허징은 족보에는 서자로 표기되어 있다. 허징도 형 못지 않게 비범한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시절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딸과 결혼까지 한다.
소설 동의보감 등에서는 그가 서자라서 설움받고 가난하게 지내며 경상도의 명의 유의태에게 의학을 배웠다고 나오나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애초에 '유의태'라는 사람은 가공인물이고, 그 모델이 될듯한 유이태라는 인물은 한참~(150년뒤 숙종대)후 의 인물이다. 허준이 어디서 어떻게 의학을 배웠는지는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알 도리가 없다. 허준과 허징
허준-허징 형제가 서자치고는 유난히 대우가 좋아서 아예 처음부터 서자가 아니고 후대의 족보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소수 있다. 하지만 이를 확실히 입증할 만한 물증은 없다. 그냥 타고난 운+본인들의 재능으로 인한 결과라는게 더 설득력 있다. 아직까진 허준이 서자라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선조대의 관료이자 학자인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 의하면 1569년에 유희춘 자신이 허준을 이조판서 홍담에게 내의원에 천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고 1573년에 정3품 내의원정에 올랐다는 것으로 보아 1569년에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진다.
1575년부터 선조를 진료하는 의원이 되었고 1578년에는 내의원 첨정에 올랐으며 1587년에는 어의 양예수와 함께 선조를 치료하여 호피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그 이듬해에 당상관에까지 오르게 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셔서 전후 호성공신 3등에 제수되었다.드라마 등에서 의료기록을 빼내서 늦게 선조에게 도착한 탓에 선조가 삐쳤다는 내용은 창작이라 보면 된다.
1596년에는 광해군의 천연두를 고쳐 종2품의 가의대부에 제수되었다. 이 때부터 선조의 명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발발로 중단했다가 1600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편찬을 할수 있게 되었다. 1606년에는 양평군에 제수되고 정1품 품계인 보국숭록대부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중인에게 너무 높은 직책이라는 대간들의 반발로 제수가 잠시 보류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품서용 원칙이 적용되는 잡과 급제자는 정3품 당하관이 승진의 끝이다. 게다가 허준을 제외하면 잡과 출신으로 정1품까지 승진한 사람은 조선시대 500년을 통틀어 역관 출신인 오경석이 유일하다.
게다가 오경석은 개화기 직전의 사람이다. 즉 선조, 광해군(1500년대 말 1600년대 초)때 활약한 허준이 최초가 된다. 어찌 되었든 중인의 몸으로 정1품에 오르는 것이 논의될 정도이면 허준이 엄청 대단한 것이 맞다. 아무리 지체 높은 명문가의 자제라고 해도 정1품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능력과 처세, 심지어 운까지도 겸비되어야 하고, 그조차도 바늘구멍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중인이 그 자리까지 오르는 것이 얼마나 극악의 난이도일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1] 현대로 비유하자면 9급 공무원 출신이 총리까지 승진하는 수준.
당시에도 백성들 사이에서 허준의 입지전적인 출세 스토리는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고 하며, 이것이 백성들 사이에 계속 회자되면서 허준 설화가 전국 곳곳에서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런 허준과 관련한 설화 혹은 전설들이 우리가 아는 소설과 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608년에 선조가 사망하면서 어의인 그는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원래 왕이 승하하면 책임을 맡았던 어의는 형식적으로 귀양을 갔다가 곧 풀려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곧바로 풀려나서 광해군의 어의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610년에 "동의보감"의 편찬을 완료했다. "동의보감"은 당시의 조선과 중국의 모든 의서를 참고하고 허준의 연구가 더해져서 완성된 의학백과사전으로 나오자마자 조선, 청, 일본에서 엄청난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사람들마다 북경의 서점에서 "동의보감"이 팔리고 있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다.
이후 각종 의서 편찬에 매진하였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나라의 재건을 위한 의학자로서의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615년에 77세로 사망하여 생전에 보류되었던 정1품 양평부원군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허준의 직계 자손들은 현재 북한에 거의 남아 있어서 자세한 파악이 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동의보감과 다른 한 권을 제외하면 전부 전염병 관련 저작이다. 드라마에서는 침술의 달인으로 곧잘 나오지만 실제로는 역병의 예방 및 치료가 주 분야였다. 실제로 실록에서도 허준 본인이 선조에게 직접 소신은 침 놓는 법을 모르옵니다라고 폭탄 발언(?)을 한 기록도 있다.
상이 이르기를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하니, 허준(許浚)이 아뢰기를,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차례 침을 맞으시는 것이 미안한 듯하기는 합니다마는, 침의(針醫)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熱氣)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小臣)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하였다. -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년) 9월 23일
물론 침의가 따로 있으니 겸양의 의미겠지만 주 전공은 아니었던 것. 굳이 현대 의학으로 비유하자면, 실력있는 내과 전문의가 외과 수술 실력은 부족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침술이 현대의 외과 수술과 같은 것은 아니니 주의.
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이곳은 민통선 지역이라서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2009년,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만 등재이후 '의서로서는 세계최초'같은 보도기사가 나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타밀 의료기록 모음집과 디오스쿠리드 필사본 등의 의학서적이 이미 199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만 해도 광영인데 괜히 사족을 붙였다가 찬물을 끼얹는 케이스. 물론 이것이 동의보감의 역사적 가치를 깎지는 않는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위에 나와있듯이 동의보감은 선조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편찬되었으며 허준의 단독저작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동 작업으로 당대의 여러 명의들이 왕실 서고와 민간에 떠돌던 수많은 의서들을 참고하여 제대로 된 것을 추려내고 자신의 의학관과 경험을 첨가하여 작업한 것이다. 오늘날 허준의 단독저작인냥 취급받는 것은 전란으로 어의들이 모두 흩어지며 중지된 작업을 전쟁 후 허준이 마무리 한 덕이다.
2. 허준 선서
한국 한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니만큼 전국 한의과대학에서 본과진입식이나 졸업을 할 때 이 허준 선서를 외우게 된다. 서양의학의 시조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을 딴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비슷하다.
1. 나는 나의 한평생을 보람있게 살겠으며 한방 의료의 직무를 충실하게 이행 할 것을 하늘에 맹세 하겠나이다.
2. 나는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는 일체 하지 않겠나이다.
3. 나는 한의학의 학문 및 임상을 크게 향상시키기 위해 나의 전력을 다하겠나이다.
4. 나는 나의 환자의 비밀을 굳게 지키겠나이다.
5. 나는 의사로서 인류를 위해 성실히 봉사하겠나이다.
6. 나는 나의 동료들과 선배 스승들과 상호 친밀 협조로서 어상의 질서를 지키겠나이다.
7. 나는 환자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겨 생명이 다 할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치료하겠나이다.
8. 나는 한의사로서의 긍지와 인격을 지니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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