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날) 어영화
아마도 초여름이 시작되는 유월달로 기억이 된다
내가 살았던 상주 신봉동에 있는 현충탑에서 현충일 행사를 하는
축포 소리를 기억할수 있으니 말이다,
이른 더위가 아침부터 기승을 부려서 방문을 열어놓고 민경(거울) 앞에서 어머니는
참 빛으로 머리를 곱게 다듬고 봉우리를 틀어서 은 비녀를 꼽으셨다
바쁜 농사철임에도 시장에 꼭 필요한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시장구경을 한번도 데리고 가지않았다
나는 그 날 만큼은 어머니를 졸랐다
단 절대로 뭐를 사달라고 보체거나 떼를 쓰면 안된다는 굳은 약조를 하고는 어머니 뒤를 따랐다,
상주 역 앞에있는 상영초등학교를 지나 기차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농협창고가 있고 그 옆 신작로 가에 있는 포플러 가로수 나무그늘 아래는 시골 할머니들이 팥이며 참깨 콩 수수 등 직접지은 농작물을 가지고 나와서 필요한 사람들끼리 직거래를 하는 모양이다,
정오가 가까워지려면 두어시간이 더지나야 할때쯤인데도
벌써 장날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작로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는 사람은
장일을 볼참이고, 오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였다,
간혹 소달구지며 말이끄는 수레가 다니는 신작로에는 송아지의 울음이 여러군데서 메아리쳐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어린 가슴에도 목이메이는듯 애닮게 들려왔다
할타주고 감싸주며 애지중지 두어달이 지나 사람같으면 아장거리며 한창 엄마 아빠를 부를 정도인데 아닌밤 홍두깨처럼 장날을 맞아 찿을수도 없는 어느집으로 팔려가는 생이별을 겪으니
인간이 자식을 사랑하는것처럼 짐승도 모성애가 있을텐데 지새끼가 팔려가는 애미소의 심정이
오죽 했으랴!
송아지들의 울음소리는 슬픈곡조로 소프라노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수없는 이별앞에 지애미를 한번이라도 더쳐다볼려고 울며불며 목가지를 돌리는
어린 송아지를 새주인은 엉덩짝을 때려가며 모질게도 꼬삐를 잡아당기는 새끼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미소의 서글픈 울음소리도 들려왔지만,
자신이 격은 지난시절을 연상하며 이내 체음하는듯 거렁거렁한 눈에 눈만 껌벅거리는 애미소는
모든것은 단념하고 소리없는 한숨과 워낭소리만 들릴뿐이다,
그 신작로를 따라서 역전 파출소를 지나 제사공장쯤에 이르렀을때는 소 달구지며 말이 끄는
수레며 수많은 인파에 온갖 장사꾼에 그저 신기한 세상구경에 입을 다물줄 몰랐다.
어떤 사람은 목이며 팔에다 실타래를 걸고 연신 "실 사시요"
노래를 부르는가 하며 어떤 사람은 성당에서 본듯한 십자가에다가 사람키보다
한배 반은 넘는 고무줄을 수백개 메어달고는 고무줄을 팔고 있고 제사공장 입구 도로가에는
튀밥을 튀기는 난전도 있었다,
아침부터 영주집(대포집) 안에는 널판자 의자 위에 사람보다 짐을 더 많이 올려놓고
왕 대포를 마시는 사람 그 앞에는 이장 저장 옮겨 다니면서 톱을 쓸어주는 아저씨
그 옆에는 모처럼 대목을 만난듯 고무신이며 빵구난 장화를 때워주는 바쁘게 일하는 아제,
그 길을 따라서 내려 가면 우측편으로 소전걸이 있고. 좌측에는 그당시 상주에서 유명한 천일약국 옆으로는 시장통이 있는데 그 안에서 좌로 들어가면 철물점이며 건어물전 포목점등이 있다.
또 그 시장통안에는 만물상회라는 곳이 있는데 없는게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밖에도 새우젖 가계며 그릇가게 고추방앗간 이불집 솜틀집 찐방집 문구점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수많은 상점들 그 뒷편으로는 떡전골목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상주에서 유일한 색시집 이었다.(나중에 알았음.)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조금 더가면 가축시장이 있는데, 강아지나 닭 토끼 오리 염소 거위등 혹은
보기 어려운 올빼미나 심지어는 채바뀌도는 다람쥐까지 파는 그야말로 그 시절의 그 시장안은
요지경이며 인간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광장 이었다.
어머니는 도까루(시멘트)종이에 싸인 양재물을 짚으로 된 끈으로 묶어서 들고는 시장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전거 위에 올려놓고 파는 삼각형 비닐 봉지에 빨강색 단물이 들어있는 그 것이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것은 두 개에 1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