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기후
모든 땅의 물리적 특징 다음으로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후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로마가 세계를 시민과 야만인으로 분류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내 말은 어떤 지리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유럽 계통이 아닌 국가의 기후는 열대 기후여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5월 말쯤 오후에, 일본의 수도에서 우리가 모닥불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내 친구가 똑똑하게 말한 적이 있다. 이 같은 믿음에서 예외가 인정된다면, 북극 탐험대가 방문한 곳일 것이다.
이제, 이 일반화에 포함된 땅들 중 하나에 우연히 거주하게 된 사람에게, 거의 투란어 처럼 적용이 느슨한 이 개념은 어떤 계절에는 재미있는 망상으로, 다른 계절에는 쓰라린 풍자로 여겨져 왔다. 감미로운 열기를 즐기고 있는 것을 축하한다는 사람 좋은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읽거나, - 그런 생각에 그들 자신의 추운 환경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썼다 - 혹은 곧 얼어붙을 것 같은 손에 편지를 들고 읽는 것은 웃을 일이 아니다. 당신의 첫 번째 감정은 당신 친구가 당신처럼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다는 사악한 기쁨이다. 당신의 두 번째 감정은 더 사악한데, 그가 기대하는 대로 대답함으로써, 당신이 너무 부러워서 그가 비참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믿음에 약간의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처음 방문했던 이국땅들은 실제로 열대지방이었고, 그들이 나중에 알게 된 온대지 역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모국에 도달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들에게 가는 길은 북쪽이든 남쪽이든 적도의 이쪽이든 저쪽이든 마찬가지 였다. 두 경우 모두 아열대 지대를 통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이 무엇이든 그 인상은 잘못되었다.
아마도 "그 위도"에서 "외국 위도" 그리고 그와 유사한 현재의 표현들이 망상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익숙한 문구들은 일반적인 의견을 형성하고 보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듯이. 무의식적으로 상상은 본질적인 진리조차 상상의 틀에 속한다고 여긴다. 이 경우, 이상한 이야기에 걸맞게, 상상력이 자연 자신에게 어떤 낯선 옷을 입히려고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지구 전체를 통틀어, "위도”라는 용어는 특이한 것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열대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그 발상에 옷을 입히는 재료를 제공했다.
이 문구들은, 그것들이 처음 사용된 목적을 위해, 그들의 시대에 매우 잘 쓰였다. 사람들이 외국 민족 자체보다 외국 땅을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갔을 때, 위도는 최고의 비교 기준이었다. 자연에서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차이점 때문에, 차이점들은 동시에 위도와 연관되었다. 초기 탐험가들은 배를 타고 여행했고, 그들이 생각한대로, 배들은 그 용어들을 영속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다소 유사한 오해의 사례는 귀중한 메르카토르의 투영도에서 보이는데, 그 투영도의 가치는 무한하지만, 땅의 지리를 가르치는 데에는 쓸모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지도에 그렇게 그려졌기 때문에, 학창 시절, 그린랜드가 남미보다 상당히 크다고 굳게 믿은 때를 누구나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땅과 더불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되자, 그 기준의 적용은 중단되었다. "위도” 대신 "경도”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것이 더 중요했었을 것이다. 위대해진 거의 모든 국가들은 대략온대 지역과 일치하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정된 등온선과 일치한다. 얼핏 예외적으로 보이는 멕시코의 아즈텍문명도 위 개념에 들어맞는다. 그 곳 사람들은 높은 고원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위도가 같더라도 고도가 낮은 지역의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였다. 다른 곳에서도 사실인 것은 우리가 극동의 반(半)문명 국가라고 부르는 것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일하고자하는 의지를 자극하기에 중분하지만, 의지를 꺾을 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정도로 춥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문명화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정의한 기후와 대략적인 위도를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추론에 의해 조선을 열대 지방이 아닌 온대지방에 놓는데, 바로 이 위치다. 조선의 위도는 남쪽으로는 서남쪽 군도의 가장 먼 섬인 퀼파르트섬의 북위 33.25도와 북쪽으로는 북위 43도 사이에 있다. 두만강이 러시아의 남하를 가로막고, 조금 너머 블라디보스토크가 갈망하듯이 탐나는 남쪽을 향하고 남하 기회를 엿본다. 조선이 훨씬 더 오래 침체되었더라면 정말로 그랬을 지도 모른다.
위도와 대륙에서의 위치로 보아, 우리는 조선의 기후를 예상할 수 있을까? 다만, 질문에서 그 위치가 평소보다 더 중요할 뿐이다. 조선반도의 상황은 겨울과 여름 등온선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해안의 위치는 넓은 땅의 동쪽이나 서쪽 가장자리에 놓여있든 간에 절대 위도만큼 기후의 문제에 있어 큰 요소다. 연평균등온선이 대륙 한 가운데의 위도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름과 겨울 등온선의 상대적 위치가 변경되고, 서쪽의 변화는 동쪽의 등온선과 매우 다르다. 이것은 아메리카대륙보다 아시아대륙의 경우가 훨씬 더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의 기후를 조금도 닮지 않은 유럽의 기후가 아니라, 미국의 동부해안 기후와 비교해야 한다. 주로 불어오는 비슷한 바람과 비슷한 해류는 같은 기후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후가 조선반도의 남부와 같은 워싱턴의 기후부터 반도 최북단에 해당하는 메인주(洲)의 기후까지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름은 짧고 덥고, 가을은 맑고 아름답고, 겨울은 춥지만 상쾌하다.
하지만 내가 빠뜨린 계절이 하나 있는데, 그 계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 계절이 미국 동부와 조선반도의 유사성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두렵다. 봄은 진정한 봄이다. 늦을까봐 두려워하는 듯, 1월 중순에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는 성급히 겨울 날씨로 변해 예전으로 돌아간다. 이틀에 한 번씩 이런 변화를 겪다가 지칠 때쯤 되면, 갑자기 여름으로 들어간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완벽하다. 봄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되고, 나무에는 꽃이 핀다. 이른 봄에 땅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변함없이 꽃들은 꽃봉오리를 열며 만개한다.
조선인들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보다 한 달 늦게 그들의 새해를 시작한다. 이러한 계산과 때가 되면 꾸준히 돌아오는 봄으로 인해, 그들의 전통적인 한 해의 시작점은 현실적으로 자연스럽다. 봄으로 시작되는 한 해는 사람에게도 한 해의 시작이다. 지구는 얼굴을 붉히며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꽃피는 나무를 보면 지구가 마치 감정 이 있는 것 같다. 매화나무는 식용 매화가 아닌 일본에서 ‘우메’로 알려진 매화나무로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1월 말이 되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분홍빛이 도는 예쁜 흰색 꽃이다. 매화꽃은 그자체로 꽤 아름답다. 첫 번째이기 때문에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진다. 동양의 사랑과 찬미가 뒤섞인 사상을 서양인에게 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이란 대부분 왜곡되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내부에서 상당한 정도로 솟아나오지만, 심지어 외국인의 눈에도 이 극동 땅에서 그렇게 보인다.
일년 중이 계절에, 나무 혹은 하다못해 가지에 매화가 핀 집보다 더 좋은 집은 거의 없다. 매화나무는 보통 정원수다. 그러나 정원은 사람들의 매화에 대한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히 가깝지 않다. 사람들이 매화를 늘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인이 매화를 집 안으로 들여 대부분의 실내 생활을 보내는 방에 꽃이 피게 한다. 많은 방이 있는 집이라도 주인이 밤낮 없이 머무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서로 경쟁하듯이 시와 그림으로 꽃을 찬양한다.
먼 고대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시들이 그 명예를 걸고 쓰여 졌다. 그것은 무수한 그림 속에서의 주제 또는 부제이며, 여자 이름에 들어간 꽃들 가운데 가장 흔한 것 중 하나다. 나무의 영광은 꽃과 함께 사라진다. 꽃은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벚나무는 4월 초에 꽃이 핀다. 꽃을 피우는 나무와 관목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마치 한 송이처럼 나무가 온통 꽃이며, 열매는 이름값을 못하기 때문에 꽃이 전부다. 자연에서는 한 나무가 두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산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열매를 얻으면 꽃이 빈약하다.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사과꽃, 복숭아꽃, 배꽃을 바라보며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꽃이 져 멋있고 화려하고 헤플 정도로 흩날리는 모습을 동아시아에서 본다면, 이 꽃나무들을 집에 안 심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풍경 이 좋으나, 일본의 풍경은 더욱 좋다. 나무들이 다르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두 땅의 식물들은 사실상 동일하지만, 사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에서는 돌아가면서 나무 종류마다 축제를 벌인다. 가히 장관이다. 다른 때 같으면 만날 수도 없는 군중은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그들의 나무로 유명한 곳으로 떼지어 몰려든다. 이 모든 숭배의 찬미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벚나무의 개화는 한 해의 큰 사건 중 하나다. 그것을 보는 것은 환상적이다. 그것은 당신의 넋을 앗아 간다.
마치 지구가 신부를 위해 자신을 꾸미고, 어떻게 해서든 혼인식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벚나무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은 미국에 있는 것처럼 꽃이 한 송이 피기도하고, 어떤 것은 두 송이 피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분홍빛으로 어렴풋이 만진 하얀 꽃으로 짙게 덮여 있다. 빛과 색갈이 가득한 이 나무들은 색조의 섬세함으로 인해, 하늘의 찬란한 파란색과 눈부신 대조를 이루며 눈에 띈다.
그 밑의 땅에는 꽃잎이 떨어져 눈처럼 희다. 그리고 이 화려한 덮개 밑에는 쾌락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왔다 갔다 한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게으른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에 나무들을 보기 위해 매우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수마일 이동한다는 사실이 그 장관을 대변한다. 일부 품종은 다른 품종보다 꽃이 더 빨리 피고, 특정 장소는 특정 종류의 벚꽃으로 유명하다. 이번 주는 우에노, 다음주는 오지, 무코지마, 고가네이 이듯이. 한 장소의 여흥은 다른 장소에서 뒤를 잇는다. 길고, 지속적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축제다.
벚꽃이 지면, 등나무는 포도송이 같은 꽃다발을 피우기 시작한다. 순서대로 나무가 그날의 행사가 된다. 2주 전 벚꽃이 피는 정원에서 그랬듯이 군중이 모여들기도 하고, 이를 보러 가기 위한 유람회도 마련돼 있다. 등나무 다음에 모란이 오고붓꽃이 온다. 이것이 긴 꽃 사슬의 봄이다. 일본에서는 상춘객 수가 더 많고, 즐길 수 있도록 정원이나 공원에도 심어 놓았기 때문에 더 볼 만하다. 제대로 말하면 조선에는 상춘객이 없고, 국민 개개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요약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에는 너무 가난하다. 모든 것은 공식적인 소수의 사람들을 위 한 것이다. 그러나 작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규모지만, 매년 되풀이되고 국민적 찬양을 받는 일본에서와 같은 아름다움을 그들의 정원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봄은 길다. 봄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땅을 서둘러서 떠나지 않는다. 한 해의 새벽은 하루의 새벽이 시작된 곳에서 계속된다. 1월 말부터 6월 초까지는 봄이다. 봄은 결코 저절로 물러나지 않는다. 봄은 여름비에 의해 쫓겨난다. 6월 초부터 7월 중순까지 소위 장마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 지속된다. 열대지방에서 일어나는 우기에 해당되지만, 우기라고 부르기에는 기간이 짧다. 이 기간에는 해가 거의 비치지 않는다. 거의 지속적으로 흐리고,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날씨는 우리의 여름폭풍의 날씨와 매우 흡사하다. 다만, 그 전의 폭풍이 끝날 때면 쉴 틈도 없이 새 폭풍이 뒤이어 쉬지 않고 계속된다. 다시 비가 오려는 힘을 모으기 위해 비가 그치지만, 그 동안에도 구름은 남아 있어 비를 다시 내리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춥고 음울한 가운데 봄이 떠난 한 달 동안 하늘이 울부짖고, 7월 중순전이 돼서야, 더운 날이 처음으로 찾아온다.
그런 다음, 더운 두 달이 이어진다. 홍해와 같이 특별한 지역은 예외지만, 언제 어디서나 덥다. 적도보다 훨씬 더 덥다. 이것은 열대지방의 더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뜻한다. 그곳의 더위는 매우 심할 것이라는 막연한 인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류다. 물론 덥지만, 야자수가 죽을 정도인 뉴욕의 맑은 7월 날씨만큼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역설적이지만, 이를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열대”라는 단어는 마치 적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 표면의 띠를 의미 하듯이 대중적인 용어로 종종 매우 가볍게 사용된다. 물론, 그것은 그런 의미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열대 내”라는 더 긴 표현에 국한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열대라는 단어는, 정오에 수직 태양이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적도를 향해 다시 뒤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구 표면에 있는 상상의 두 개 선에 대한 이름이다.
태양은 하지에 북회귀선, 즉 북쪽으로 23.5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명백한 태양의 정지), 이는, 기억하겠지만, 태양이 여름이 아닌 봄이나 가을에 적도에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것이 전체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말하자면, 회귀선을 따라 태양이 훨씬 높아지는데, 이는, 지구본을 돌림으로써 독자들이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계절에 태양은 동쪽의 북쪽에서 떠서 서쪽의 북쪽으로 진다. 따라서 정오 앞뒤로 수 시간 동안 태양의 궤적은 적도에서보다 길고, 수직에 가깝게 유지된다. 그래서 한여름 며칠 동안 홍콩과 같은 곳은 싱가포르의 많은 지역에 내리쬐는 것보다 더 많은 열을 얻는다. 기후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여름철에 홍콩은 싱가포르의 어느 계절에도 없는 고온의 무더위 속에 있다. 나는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이 두 곳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다른 측면에서도 거의 비슷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둘 다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섬이고, 그 해안도 일반적으로 거의 같다. 이제 북쪽으로 갈수록 태양이 동쪽의 북쪽으로 점점 더 멀리 떠오르고 서쪽의 북쪽으로 점점 더 멀리 지는 한 여름날이다. 사진 찍을 때 노출시간 이 짧아지는 만큼 낮의 길이가 증가한다. 즉, 각 순간마다 태양은 거의 수직 위치에 놓인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연결되어, 북극이 받는 열의 양이 좋은 계절에 적도가 받는 그것보다 5:4의 비율로 더 많게 만든다. 주1 북극 탐험가들이 큰 고통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공기와 다른 물질들은 완전히 가열되어 포화 상태가 될 시간이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가열 효과를 돕는다.
그러므로 뉴욕과 같은 곳은 온도에 있어서, 우리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세계 다른 지역이 물리적이고 지리적으로 우연히 태양에 더 가깝다고 해서 여름에 뉴욕보다 더 덥지는 않다.
조선은 7월, 8월, 9월에 덥고, 때로는 매우 덥다. 그 영향은 땅의 형태에 의해 증가된다. 산 사이에 놓여 있는 좁은 계곡들은 모든 열기를 모으며, 그 열기를 발산시킬 기회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러한 보호가 없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온도에 도달한다.
가을과 함께 아름다운 날씨와 북미와 같은 멋진 단풍 변화가 찾아온다. 단풍나무는 화려하게 죽으며, 주홍빛 잎사귀 아래에는 봄의 영광을 숭배하러 온 바로 그 숭배자들이 보일 것이다. 특이하게도, 오면서 볼 때 와 가면서 볼 때, 빨간색의 색조가 달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왜 하루의 아침과 저녁에 그렇게 보이는지 알고 있지만, 왜 그것이 한해의 시작과 끝의 징조가 되어야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11월 말이 되면 조선에는 겨울이 시작되는데, 곧 연못과 강이 얼고, 지나간 한 해를 묻기 위해 눈이 내린다. 기온은 상당히 내려간다. 서울에서 보낸 겨울동안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갔고,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하였다. 온도차는 심하지 않은 반면, 특이하게도 일정하지 않다. 약간의 해빙은 한파와 번갈아 일어난다. 시베리아 평원에서 곧장 불어온 것 같은 예리하고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남아있는 구름을 몰아내면, 견고한 죽음의 손아귀 아래, 여전히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의 얼어붙은 모습이 보인다. 폭풍의 하얀 흔적이다.
북위 37.5도인 서울의 위도 때문에, 한겨울에도 태양의 힘 이 강해서 해수면의 땅에는 눈이 깊이 쌓이지 않는다. 폭설 이후인 전날 저녁, 더 위쪽 북반구 위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태양에 노출된 곳에서 그것이 얼마나 빨리 사라졌는지 알고서 놀란다. 계속해서 쌓이지 않는다면, 한겨울에도 눈이 거의 없을 것이다. 계절이 가고 낮이 길어지면서, 여러분은 폭설을 뚫고 어느 날 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는데, 다음 날 오후에는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눈보라 몰아치는 뉴욕과 눈이 빨리 녹는 버지니아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눈이 오는 날보다 눈이 녹는 날이 훨씬 더 추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 년 중 한 동안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저런 형태의 겨울 용품은 조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동물이 끄는 썰매는 없다. 작은 썰매에 관한 한, 나라의 중간인 서울 근교, 북쪽, 남쪽에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얼음낚시꾼들이 사이에서 특정한 종류의 썰매만이 유행한다. 낚시를 할 때 앉는데 쓰이고, 그 후에는 하루 동안 잡은 물고기를 싣고 집으로 가는데 쓰인다. 스케이트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얼음낚시꾼을 제외하면, 보통의 조선인은 겨울에 얼음 위를 모험하는 것을 여름에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즐기지 않는다. 물은 어디서나 흔한 반면, 얼음은 그들에게 경외심의 대상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