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예향천리마실길 1코스-2
우리는 성곽을 한 바퀴 돌고, 성안의 관아를 만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고창 예향천리마실길 1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예향천리마실길은 북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성곽 바깥 길을 따라 이어진다.
북문을 출발하여 동문 쪽으로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면 북문과 옹성의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다.
성곽 아래에는 철쭉이 성벽과 나란히 띠를 이루며 심어져 있어 꽃이 피는 봄이면 모양성을 화려하게 채색해줄 것 같다.
세월의 떼가 묻은 성곽은 고창읍내의 현대식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준다.
성곽길을 걸으며 옛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새 것을 알게 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생각한다.
성곽 위를 걷는 사람과 아래에서 걷는 사람들은 이제 아군과 적군이 아닌 다정한 이웃이다.
성 밖에서 보는 성벽은 견고하고 난공불락이다. 그래서 성은 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었다.
성벽을 이루고 있는 암회색 바위를 푸른 잎의 소나무들이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이끼 낀 성벽은 푸른 소나무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성
곽을 따라 걷다가 동남치 근처에서 모양성과 헤어져 전불길이라 불리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잔잔한 파도처럼 완만한 야산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고즈넉하다.
솔향 그윽하고 부드러운 오솔길은 정다운 사람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잠시 도로를 지나기도 하지만 금방 산길로 이어진다.
사시사철 걷기 좋은 길이라 산책하러 나온 고창읍내 주민들을 자주 만난다.
중간 중간 쉬었다 가라고 의자가 놓여있고, 작은 정자도 기다리고 있다.
능선 고갯길에서 남쪽 골짜기로 내려서니 골짜기 깊은 곳에 김기서강학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성종 10년(1479)에 고창읍 호동리에서 태어난 김기서는 정암 조광조에게 학문을 배웠고
학포 양팽손과 더불어 경의(經義)를 강론했다. 김기서는 학문이 깊고 효성이 지극한 선비로 중종 3년(1508)에는
광릉참봉을 지내기도 하였다. 김기서는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전불사라는 절이 있었던 이곳에 들어와 두문불출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김기서강학당은 명종 3년(1548)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돈목재(敦睦齋)와 강학당(講學堂), 성경재(誠敬齋)라는 편액이 붙은 김기서강학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단층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강학당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위쪽에
앞면 6칸 옆면 2칸의 안채가 있다. 안채 뒤로 돌아가니 계단 위쪽에 노산사(蘆山祠)라 불리는 사당이 있다.
김기서강학당 마루에 앉아 있으니 옛 선비의 강직한 기운이 내 가슴에 스며드는 듯하다.
김기서강학당에서 다시 고개를 넘어 화산마을로 내려선다.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한 화산마을은 비어 있는 집들이 많아 쓸쓸하기까지 하다.
화산마을을 지나 호동마을에 도착하자 몇 그루의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정자가 발길을 붙잡는다.
취석정(醉石亭)이라 불리는 정자로 노동저수지 위쪽에 위치해 있다.
앞면과 옆면 모두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취석정은 담장 안에 7개,
담장 밖에 3개의 커다란 바위들이 있어 취석정이란 이름을 지었다. 이 바위들은 고인돌이다.
취석(醉石)은 욕심없이 한가로이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중국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집 앞의 돌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정자 옆 고인돌에 취석정이라는 글씨를 새겨놓기도 하였다.
호동마을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노동마을이 나오고,
노동마을 앞에서는 노동저수지가 푸르다. 저수지 건너편의 낮은 야산이 물위에 잔영을 만든다.
저수지 둑 아래로 고창읍내의 아파트들이 고개를 내민다.
잔잔한 저수지 위로 가끔 철새들이 날아들고, 주변은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물가의 소나무들은 줄기까지 그대로를 물위에 비취어 대칭을 만든다.
노동저수지 제방 아래로 내려오니 겨울철이라 텅 빈 논 뒤로 고창읍성이 바라보인다.
낮은 야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성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성곽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미 성곽과 하나가 되었다.
오래된 향기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엄마 품처럼 포근한 기운을 전해준다.
(2016. 12. 25)
*여행쪽지
-고창 예향천리마실길은 고창읍을 둘러싸고 있는 옛길로 7개 코스 65.4km에 이른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가 1코스 ‘읍성성곽길’인데, 고창터미널→하거리당산→고창읍성→전불길→김기서학당→화산마을→노동저수지까지 13.3km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고창읍성의 정취를 충분히 맛보려면 성곽 위를 따라 한 바퀴 돌고, 성안의 관아건물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이 경우 40분 정도 추가시간이 필요하다.
-난이도 : 쉬움
-가는 길 : 서해안안고속도로 고창IC 2.1km→고창터미널(광주 방향에서는 고창-담양고속도로 남고창IC 4.3km→고창터미널)
-고창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서울(50분 간격), 전주(20분 간격), 광주(40~50분 간격) 등 대도시에서 운행되는 버스가 자주 있다.
-고창읍내의 맛집으로는 조양관(한정식 063-564-2026)과 천변밥집(생선구이/조림 063-561-1824)을 추천할 만하다.